◆ 산행 코스 : 추원마을 왕의길 주차장 - 모차골 - 수렛재 - 숯가마터 - 세수방 - 불령봉표 -
용연폭포 - 기림사 - 기림사 주차장
◆ 산행 거리 : 약 8km
◆ 산행 시간 : 4시간(운동 시간: 2시간 40분)
◆ 함께한 사람들 : 포공산악회
'신문왕 호국행차길'로도 불리는 경주 왕의길은 삼국 통일을 이룬 후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고자 한
문무왕의 장례길이었다.
경주 왕의길은 또한 신문왕이 부왕을 추모하기 위해 대왕암으로 행차했던 길이었으며 용이 전해준 만파식적과 옥대를 받아 환궁했던 길로서 궁궐을 출발한 신문왕 행차는 토함산과 함월산 사이 수렛재를 넘어 천년 고찰 기림사 까지 약 7km정도
이어진다.
왕의길 주차장에서 트레킹 시작
자연향기 펜션
인자암(仁滋庵)
모차골
모차골은 동해 바다에 있는 문무대왕릉(文武大王陵)을 알현(謁見)하기 위한 신문왕의 마차(馬車)행렬이 다녔던 곳이다. 마차의 발음이 전이(轉移)되어서 모차골이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드나들었던 이 모차골 길은 비교적 완만하다. 추령의 엄준한 고개를 피해 통행하기 좋은 길을 찾다보니 이 모차골 길을 개발 한 것 같다. 이 길은 문무대왕의 나라를 사랑하는 충(忠)과 신문왕의 효(孝)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수렛재
수렛재란 왕의 행차 때 수레가 넘어 다녔던 고개라는 의미로 이름이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수렛재에서 동서 수계(水系)의 분수령(分水嶺)이 이루어진다. 즉 여기서 부터 추원 마을 쪽으로 흐르는 수계와 기림사 쪽으로 흐르는 수계가 갈라지기 때문이다.
숯 가마터
토함산 깊은 산골에 자리 잡고 있었던 이곳은 언제부터 형성 되었는지 아는 이가 없다. 주변으로는 숯을 구워내던 숯 가마가
군데군데 보인다. 이곳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숯을 구워 팔았을거라 추측 된다.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지만 지금 부터 50년 전만 하더라도 이곳에는 숯을 굽던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 오르던 풍경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웃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숯 굽는 연기가 사라지게 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간첩들이 많이 내려오자 간첩에게 밥을 해주지 못하게 하기 위해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 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수방
신문왕이 긴 여정에 이곳에서 세수를 하고 잠시 쉬어 간 곳
세수방 공터에서 점심 식사
불령봉표(佛領封標)
연경의 묘에 쓸 향탄(목탄)을 생산하기 위한 산이므로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임금의 명을 받아 불령에 봉표를 세운다.
아마도 이곳이 예전에 불령(佛領)이라 불리던 곳 인듯하다
용연폭포(龍淵瀑布)
'만파식적 대나무'와 함께 얻은 또 하나의 보물 '검은 옥대'
신문왕이 만파식적 대나무와 검은 옥대를 가지고 환궁 할 때 마중 나온 어린 태자의 예지로 옥대의 용 장식 하나를 떼어 시냇물에 담그니 진짜 용으로 변해 승천하고 시냇가는 깊이 패여 연못과 폭포가 생겨났다고 한다.
만파식적(萬波息笛)
만파식적은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해결된다는 신라 전설상의 피리다.
신라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감은사를 짓고 추모하는데, 죽어서 바다용이 된 문무왕과 하늘의 신이 된 김유신이 합심하여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부니, 적의 군사는 물러가고, 병은 낫고 물결은 평온해졌다고 한다.
이 설화에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흩어져 있던 백제와 고구려 유민의 민심을 통합해 나라의 안정을 꾀하려 했던 호국 사상과 모든 정치적 불안이 진정되고 평화가 오기를 소망하는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기림사(祇林寺)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함월산(含月山)에 있는 삼국시대 천축국의 승려 광유가 창건한 사찰.
경주시 양북면 함월산에 있는 신라 시대의 절로서 16동의 건물로 불국사 다음 가는 규모다. 이 절은 신라 초기에 천축국의 사문 광유성인이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처음에는 임정사라 불리다가 원효가 도량을 확장하면서 기림사로 개칭했는데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길이 없다. 기림사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고색 창연한 대적광전을 비롯, 수령 500년 이상 된 큰 보리수 나무와 목탑터가 있는 지역과 성보 박물관. 삼성각, 명부전, 관음전 등이 있는 지역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은후 6차례나 다시 지어졌다는 대적광전은 배흘림 기둥의 다포식 단층맞배지붕의 건물로 단아하고 웅장하다.
기림사는 또 다섯 가지 맛을 내는 물로 유명하다. 오종수라고 불리는데 차를 끓여 마시면 맛이 으뜸이라는 감로수와 그냥 마셔도 마음이 편안하다는 화정수, 기골이 장대해진다는 장군수, 눈이 맑아진다는 명안수, 물빛이 너무 좋아 까마귀가 쪼았다는 오탁수가 그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장군이 태어날까 두려워 물길을 막아버렸다는 장군수를 제외하곤 다른 네 곳은 지금도 각기 다른 물맛을 내며 물이 솟아나오고 있다. 기림사로 가는 도중에 12개의 석굴로 이뤄진 골굴사가 있다. 원래는 기림사 산내 암자였으나 독립 사찰이 된 후 선무도의 본산이 돼 전국에 선무도를 보급하고 있다.
기림사 진남루(祇林寺 鎭南樓)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기림사에 있는 건축물이다.
기림사는 함월산 기슭에 있는 절로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세웠다. 기림사란 이름은 부처가 생전에 제자들과 함께 활동하던 인도의 기원정사를 뜻한다.
진남루는 이 절의 중심 건물인 대적광전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지은 시기는 알 수가 없고 다만 조선 영조 16년(1740)에 쓴 사적기에도 기록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그 이후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인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이 건물은 호국 사찰로 승병 활동과 관련이 있던 것으로 추정한다.
기림사 대적광전(祇林寺 大寂光殿)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에 있는 조선후기 에 중건된 사찰건물. 보물.
보물 제833호. 경주 기림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인도의 스님 광유(光有)가 세워 임정사(林井寺)라 하였고, 그 뒤 원효대사가 새롭게 고쳐 지어 기림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대적광전은 지혜의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셔 놓은 법당을 가리킨다
대적광전은 1997년 해체공사 때 4종의 종도리 묵서가 발견되었는데, 이 묵서에 의하면 1629년에 5차 중수에 해당하는 개중건상량(改重建上樑)이 있었고, 1755년에 대웅전 개조중수(改造重修)가, 1785년에 6차 중창이 있었으며 이때에 경주 기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 제958호)이 봉안되면서 존상에 맞게 대웅전이 대적광전으로 개칭된 듯하다.
기림사 내 신문왕 호국 행차길(왕의 길) 안내도
기림사 일주문
함월산 기림사 사적비
기림사 임정교(祇林寺 林井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