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수첩| 배미주
불평하지 말자, 이야기의 힘은 영원하다
1. 좋은 청소년문학이란 무엇입니까?
질문에 대답하는 건 정말 어렵다.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답하는 건 더욱 어렵다. 세상엔 청소년을 위한 수없이 많은 문학이 있다. 책 한 권이 어떻게 쓰이는지 아는 나로선, 그 책들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어떤 책이든, 스마트폰 한 시간 하는 것보다 책 한 시간 읽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스마트폰이 거대한 스모선수처럼 전통적인 대중문화를 씨름판 밖으로 밀어내 버리고 있는 지금으로선 말이다. 아무튼 생각할수록 어렵길래 순수한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가족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좋은 청소년문학이 뭐라고 생각해?”
그랬더니 뜻밖에 술술 대답을 해 준다. 다른 사람들에겐 질문에 대답을 내놓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닌가 보다. 놀랍다.
“좋은 청소년문학은 역사지!”
역사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6학년 아들. 간추린 조선왕조실록으로 만화를 그리고, 아빠와 거실에 드러누워 ‘화정’을 보는 녀석이라 대답은 간명하다.
“왜 역사야? 앞날을 보는 눈을 갖추게 해 줘서?”
마침 역사물을 쓰고 있는 참이라 기분이 좋다.
“그런 것도 있는데, 음, 옛날에 왕들도 지금 우리보다 더 못한 것도 있잖아. 그러니까.”
“응. 그러니까 지금이 아주 나빠 보여도 옛날을 돌이켜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이거지? 불평만 하지 않고 열심히 살게 해 준다는 거지?”
그렇단다.
중 2 딸은 좀 컸다고 조금 더 신중하게 대답한다.
“음……. 상황에 대해 알게 해 주는 책?”
“현실 말이야?”
“응. 그러니까, 요즘은 너무 포장된 게 많잖아. 아이돌도 그렇고. 너무 다른 세상을 보여 주잖아.”
그래, 참 그렇다. 청소년들도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어 한다.
아이들 아빠도 명쾌하다.
“요즘 애들은 꿈이 없잖아. 꿈을 줄 수 있는 책이 좋지.”
알겠다. 작가도 평론가도 문학청년도 아닌 사람들은, 이 살기 힘든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해 주진 못해도 생각하게 해 주는 책, 힘을 주는 책, 꿈을 가지게 해 주는 책을 원하나 보다.
‘삼시 세끼’나 ‘냉장고를 부탁해’ 같은 텔레비전 쇼가 인기를 끄는 이면에는 그런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니냐고, 맛있는 거 먹고 힘내자고, 이왕 먹는 거 재밌게 먹자고. 뭐 그런 것 같다. 아, 물론 뭐 하나 유행했다 하면 비 온 뒤 황야에 풀꽃 피어나듯, 마지막 물기 한 방울까지 징하게 빨아먹는 공급자의 강박증은 논외로 치자.
다된 밥상에 숟가락 얹듯 내 생각도 덧붙일 차례다. 언젠가 저녁에 러닝머신에서 달리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어떤 뮤지션들이 나오는 라이브 공연 생중계였다. 무대 위의 젊은 그들은 멋졌고 무대 아래 청소년들은 열광했다. 그 에너지가 그저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풀어 보려고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고 있는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멋있네. 뜨겁게 신나게 살고 싶어지네.’
그 순간에 어떤 깨달음이 내 뒤통수를 쳤다. 해골 물을 달게 마셨던 원효 스님처럼 말이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힘없는 한 사람이지만 어른으로서 많이 미안해진다. 내가 청소년이라면 그럴 것 같다.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한순간, 에너지가 그쪽에서 이쪽으로 흘러와 채워지는 느낌, 그런 걸 원할 것 같다. 성장하는 시기인 만큼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좋을 것이다. 어른들 마음대로 성장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아들이 팔을 다쳤다. 뛰어놀기 좋아하는 녀석이 여름방학 내내 깁스를 하고 있게 돼서 걱정을 했다. 다행히 먹고 뒹굴대며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뛰어놀 수 없게 된 아이는 먹고 뒹굴대고 자고 먹고 뒹굴대고 자며 여름 나날을 보냈다. 어디 좀 다녀왔더니 어라, 어느새 키가 훌쩍 자란 게 보인다. 자연의 힘이란 무섭다. 우리 삶의 방식이, 문화가 그 힘을 돕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거스르고 짓누르는 게 아니라.
2. 작품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음 맞는 사람이랑 대화할 때 보면 나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말을 느리게 하는 사람은 더욱 아니다. 신이 나서 떠들어 대는 사람이다. 그런데 글을 쓸 땐 무척 고생스럽게 쓰는 스타일이다. 길지도 않은 창작 기간 동안 위병이 단단히 생겨 버렸을 정도로 내게 창작은 어렵기만 하다. 전에 쓴 글도 그렇고 지금 쓰고 있는 글도 그렇고 내가 쓰는 글은 내가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그린다. 내가 만나 보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그린다. 미래의 세상이든 과거의 세상이든 그렇다. 자료를 토대로 오로지 상상력에 기대어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웃고 울던 세계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작가로서 나는 참 무모하다. 경험도 길 안내자도 없이 오로지 시행착오와 대단찮은 믿음만을 벗 삼아 황야를 더듬더듬 나아간다. 한때 미래의 세계에서 그랬듯이 지금은 오래된 과거의 세상 속에서 그렇게 좌충우돌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가 창조한 사람들도, 욕망하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그래도 자신의 삶이 소중한 나와 하등 다를 바 없다. 그들의 마음속을 진실하게 들여다보려 애쓴다. 내 목소리가 아닌 그들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게 하려고 애쓴다. 내가 창조한 세계 속의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 만큼 독자들에게도 사랑받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3. 지금 작가로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
내 주변 사람들 모두 스마트폰을 쓸 때 혼자 꿋꿋이 옛날 ‘투지 폰’을 써 왔다. 뭐 별 이유는 없고 고장 난 것도 아닌데 바꿀 이유가 그닥 없어서였다. 작고 예쁜 녀석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자고 일어나니 이 녀석이 조용히 돌아가셨다. ‘밤새 안녕’이라더니, 아무런 예고도 전조 징후도 없이 돌연사 했다. 그러니까 늙어 죽은 것이다. 고민하다가 결국 스마트폰 인구에 한 명을 추가하게 됐다. 지금 그 조그만 녀석은 내 책상 위 책꽂이 한 켠에 놓여 있다. 왠지 버릴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전화기 속 수많은 전화번호가 다 날아갔다. 지갑 속에 늘 꽂혀 있던 큰 우표만 한 전화번호 수첩을 허겁지겁 뒤져보았지만, 거기 적힌 전화번호들은 지금은 사라진 ‘019’나 ‘016’ 등으로 시작하는 옛날 번호들이다. 한 십 년은 수첩에 새로 번호를 쓰지 않았나 보다. 먼저 연락해 주지 않으면 연락할 방법이 없어진 수많은 번호들이 생겨 버렸다. 카톡 상태 메시지나 바꿔 놓고, 가만히 기다리는 것밖에 할 게 없다. 무력하게도. 이 조그만 기계 하나를 그렇게 믿었다니.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전화번호를 외우고, 수첩에 이름과 번호를 정성껏 적던 습관을 잃어버렸다는 게 이상하기만 하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 전화번호를 따로 저장해 두세요. 그리고 오래 못 본 지인분들, 연락 주세요.
가끔 두렵다.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또 다른 시대가 온다. 그 두 시대에 걸쳐 살고 있는 사람은 그걸 잘 느끼지 못한다. 자기가 무얼 잃었고,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잘 모른다. 세상 사람 모두가 엄지손가락으로 대화를 나누는 세상. 귓가에 들리던 반가운 목소리도, 두툼한 아침 신문도, 컴퓨터도, 시디플레이어도, 무거운 카메라도, 사진 인화도, 전철이나 기차 안에서 읽던 책도, 모두 스마트폰으로 대체되어 버린 세상. 구미디어 종사자는 가끔 두렵다. 이제 아무도 시디로 음악을 듣지 않듯이 아무도 책을 읽지 않게 될까 봐. 좋아하는 책 한 권을 들고 책장을 넘기며 읽다가 생각에 잠기는 기쁨도 까마득하게 잃어버린 기억이 될까 봐. 누가 아쉬워할까, 책의 멸종 따위. 블루투스로 콘텐츠를 공유하듯 뇌를 공유하게 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는데. 불평은 하지 말자.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고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게 당연한 거니까. 좋은, 잘 만든, 경쟁력이 있는 창작물을 생산하는 것. 이야기의 힘은 영원하다는 걸 믿는 것.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어도 그 매력을 잃지 않는 원본이 되는 것. 그런 것들이 이런 시대에 그나마 문학이 살아남을 길이라고,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
배미주
미래 과학 소설 『싱커』로 2010년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웅녀의 시간 여행』, 공저 『천둥 치던 날』 등이 있다. 몇 년 동안 역사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소설을 준비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새롭게 떠오른 아이디어 덕분에 고대 실크로드를 배경으로 한 소설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