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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집권 과정 |
유럽은 18세기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많은 국가가 그의 봉건적 체제를 개조하여 광범한 지역적 기초 위에 근대적 국가를 형성하였다. 이 근대적 통일국가를 형성하게 되는 선봉이 프랑스 대혁명(1789년)이었으며 이 혁명의 정당성과 조기 정착을 위해 노력한 인물이 바로 세기의 작은 거인 나폴레옹이었다. 그러나 봉건 체제를 고수하려는 주변의 유럽 국가들에 의해 프랑스와 나폴레옹은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 일대의 전쟁에 휘말린다.
- 프랑스 대혁명의 이모저모 -
인권의 자각과 자유 민주주의적 혁명의 이상에 불타 구제도(앙시앙레짐) 타파에 프랑스 국민은 총궐기하였다.(국왕 루이16세는 야반 도주하였다. 1791년 6월 21일). 혁명의 혜택을 전 인류에 전파하려고 하는 숙명적 나폴레옹 전쟁이 발발하였다. 혁명은 국민이 국가의 주인임을 천명하였고, 특권계급 타파 와 전제군주 정치를 공화제도로 변환시켰다. ☞결과적으로 봉건제도가 사망하였고, 시민계급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자유, 평등, 박애). 낡은 기존의 절대 권력형 사고방식을 이성에 기초한 계몽사상으로 대체하였고, 어떻게 자유의 희생 없이 평등의 이념을 실현하는가? 이점이 큰 관심사가 되었다. 프랑스를 둘러싼 유럽 제국주의들은, 프랑스 혁명사상의 전파를 방지하기 위해 프랑스 국경으로 군대를 출동시켰다. 이때 프랑스는 국가 총력전으로 발빠르게 이에 대응하고자 했다. 즉, 프랑스는 혁명후 군주제 체제하의 용병제를 철폐하고 국민적 성격의 국민 군대를 조직하였다. 즉, 전 국민에게 병역의무를 부여하고 징집을 실시하여 국가 총동원의 개념을 창출시켰다. (현대적 총력전의 기초를 확립하는데 초석이 되었음) |
나폴레옹의 1차 집권 배경및 과정 |
(1)1792년에 오스트리아, 프러시아는 연합군을 형성하여 프랑스에 간섭을 하기 시작하였다. 1793년에 5개국이 제1차 대불 동맹을 결성하였으나, 프랑스 타도계획은 구체화시키지 못했다. ※ 5개국: 영국,오스트리아,프러시아,폴랜드,스페인 ※1795년 프러시아는 탈퇴,폴랜드는 프랑스의 침공으로 일개 공화국으로 전락하였다. ※ 1795년 오스트리아만이 프랑스에 대항하였다. (2)1796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와의 한판 전쟁을 치렀다. 이때 정부에서는 나폴레옹을 사령관으로 임명하였고, 결국 나폴레옹 군대는 오스트리아를 패퇴시키고 파리로 개선하였다(1797년 12월 5월). (3)이때 프랑스정부에서는 나폴레옹에게 영국원정 사령관으로 임명하나 나폴레옹은 불가론을 제시하고 이집트 원정을 건의한다. 프랑스 정부에서는 나폴레옹이 건의를 받아, 그를 이집트 원정군 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4)나폴레옹이 지휘하는 이집트 원정군들은 투롱항을 출발하여 (1798. 5.19일 / 약 38000명), ①5천년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이집트(카이로)를 점령(7. 24일)하였다. ② 이때, 영국군 넬슨제독의 함대가 대기중인 프랑스 함대를 격파시켰다. ③나폴레옹은 지휘권을 예하 장군에게 이양하고 이집트를 탈출하였다(1799. 7. 23일). ④같은해 파리로 귀환하여 정부 상.하양원을 발빠르게 해산시키고 제1통령이 되었다. ж파리 귀환: 10. 22일 ж상.하 양원해산: 11.19일 ☞ 총정리: 프랑스 대혁명(1789년)⇒루이16세 도주(1791년)
▶로베스피에르(甲)가 공포정치를 개념없이 펼쳤다. 그는 모든 봉건 특권을 폐지(1793년7월17일)하였고, 천여명 을 자신이 만든 단두대를 이용하여 무자비하게 처형시켰다. 그러나 甲은 의회의 탄핵을 받아 독재자 죄명으로 단두대 처형을 받았다. ▶1794년 7월 테르미도르(乙)가 집권(5명의 총재가국정 운영)하였다. 유산계층으로 구성된 乙정부는 왕당파의 지속적인 저항과 신평등파 와의 음모에 의해 총재정부의 근거는 동요되고 총재정부는 군대의 무력에 의존하여 반정부세력을 제압하였으니, 결국, 군부가 정치권에 등장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폴레옹을 핵심으로 하는 군부세력은 쿠데타로 결국 총재 정부를 없애고 나폴레옹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1799년 통령정부 수립) ▶이때 프랑스 국민의 민심은 어떠했는지? 10여년간의 혼란을 체험한 국민들은 질서와 안정을 구축해줄 오직 강력한 권력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하였다. ▶1804년, 나폴레옹은 본격적인 통령정치 시작으로 세습황제를 선언한 후 나폴레옹 시대를 열었다. ※국민투표결과 : 찬성표-3백5십여만표(3,572,329표),반대표-2천5백여표(2,579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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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고인 물이 썪었다는 것이겠지요.
프랑스사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따스한 시간 지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