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이 제정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유럽과 미국에 현대 산업사회(産業社會)가 출현하면서 과거의 농경(農耕)사회와는 다른 현상이 일어납니다. 산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 수 없는 경우들이 생겨나고, 가족이 사회의 기본이라는 생각도 점점 희석되고, 개인이 더 소중하게 보이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 교회는 가정의 중요성을 환기(喚起)시키기 위해 성가정 축일을 제정했습니다.
우리 가톨릭교회가 성가정 축일을 지내는 의미가 오늘의 본기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느님, 성가정을 통하여 참된 삶의 모범을 보여 주시니, 저희가 성가정의 성덕과 사랑을 본받아 하느님의 집에서 끝없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그리고 오늘의 전례 독서들은 우리가 성가정을 이루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먼저 제1독서에서는 자녀들에게 부모님을 잘 공경할 것을 권고합니다. 그런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단순히 인간적인 차원에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결국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집회 3,3-6)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ἐκλεκτοὶ τοῦ θεοῦ ἅγιοι καὶ ἠγαπημένοι’)답게 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σπλάγχνα οἰκτιρμοῦ’)과 ② 호의(‘χρηστότης’)와 ③ 겸손(‘ταπεινοφροσύνη’)과 ④ 온유(‘πραΰτης’)와 ⑤ 인내(‘μακροθυμία’)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주고 서로 ⑥ 용서(‘χαρίζομαι’)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⑦ 사랑(‘ἀγάπη’)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⑧ 그리스도의 평화(‘ἡ εἰρήνη τοῦ Χριστοῦ (Col. 3:15 BGT)’)가 여러분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콜로 3,12-15).
『채근담』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집안 사람들이 눈에 거슬리는 허물이 있다고 하여도 몹시 성내지 말 것이며, 또 가볍게 버리지 말 것이니, 봄바람이 얼었던 땅을 풀고 생명을 돋아나게 하듯, 부드러움과 인내심을 갖고 가정의 냉기를 녹이라. 이것이 가정의 규범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가정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일까요? 바로 그 내용이 오늘 제1독서와 제2독서에 나옵니다.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혀지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집회 3,12-14)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콜로 3,18-21)
요즘 가정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당신의 두 번째 권고문인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을 통해 가정의 소중함과 위기를 맞은 가정을 살리자고 호소하십니다. 교황님은 이 권고문에서 ‘부부의 친밀한 대화의 부족’과 ‘지나친 개인주의’를 언급하시면서 가정은 그저 잠시 머무는 ‘하숙집’과 같은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가정 복음화와 세상 복음화를 위해 자녀 양육에는 신앙 전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하십니다.
“신앙 전수는 부모 자신이 참으로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287항) “기도가 자신의 부모에게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자녀가 구체적으로 알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288항) “자녀에게 신앙을 전수하여 신앙의 표현과 성장을 촉진하면 가정이 복음화 되며, 스스로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이에게, 심지어 가정 밖에 있는 이들에게 신앙을 전하기 시작하게 됩니다.”(289항)
하느님의 사랑이 충만한 성가정은 ‘신앙의 학교’입니다. 신앙의 학교인 이 성가정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뿜어져 나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