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과불식'(碩果不食) 우리가 지키고 배워야 할 희망의 언어(신영복)
'정치'(政治)는 평화(治)의 실현(政)이다. 그리고 평화는 오래된 염원이다. 수신제가치국(修身齊家治國)의 궁극적 목표가 평화로운 세상(平天下)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평화란 글자 그대로 화(和)를 고르게(平) 하는 것이다. 화(和)의 의미가 쌀(米)을 먹는(口) 우리의 삶 그 자체라면 정치는 우리의 삶이 억압당하지 않고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정치가 평화의 실현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까닭은 오늘의 정치적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통치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으며, 정치란 그 통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현실은 정치의 정도를 벗어난 것이 아닐 수 없다. 길을 잘못 든 사람일수록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는 법이며 점점 더 미궁에 빠진다. 그런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광화문의 충무공 동상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다.
출처:<<더불어 숲 2>> 신영복. 브라질 아마존강가. 아마존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은 새 풀과 함께 태어나 그 풀을 입고 먹으며 함께 자랍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 정서는 한마디로 '불안'이다. 청년, 노년, 취업자, 비취업자를 막론하고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개인의 삶에서부터 국가 경영, 세계 질서에 이르기까지 그렇다. 더욱 불안한 것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절망이란 전망이 없을 때를 일컫는다. 그럼에도 정치는 희망과 평화를 이야기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의 압도적 정서는 정치 그 자체에 대한 불신이다. 화려한 정치적 언설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수사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정치권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들이 모여 있고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투명하지만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참으로 반평화(反平和), 반정치의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정치의 원칙과 철학을 다시 생각하는 까닭이 이와 같다.
우리는 숱한 곤경을 겪어 왔고 지금도 그 연장선상에 서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부터 온 것이며 그로부터 어떤 교훈을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없다. 곤경을 겪고도 깨닫지 못하는 곤이부지(困而不知)의 사회가 두고두고 얼마나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고통과 불안의 원인을 밝히고 그것을 극복할 의지와 희망을 결집해 내는 구심이 바로 정치여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현실은 이 모든 것의 근본인 신뢰를 얻는 일에서부터 실패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신뢰와 희망의 정치를 만들어가는 일은 더욱 먼 길이 아닐 수 없다.
출처:<<같은 책>> 미국 보스턴의 인디언 민속촌. 신대륙의 꿈은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비극을 '명백한 운명'으로 규정하는 신탁의 권능을 전재하지 않는 한 그것을 꿈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언어 중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희망의 언어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이다. <<주역>>의 효사(爻辭)에 있는 말이다. 적어도 내게는 절망을 희망으로 일구어 내는 보석 같은 금언이다. 석과불식의 뜻은 '석과는 먹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석과는 가지 끝에 있는 남아 있는 최후의 '씨과실'이다. 초겨울 삭풍 속의 씨과실은 역경과 고난의 상징이다. 고난과 역경에 대한 희망의 언어가 바로 석과불식이다. 씨과실을 먹지 않고 땅에 심는 것이다. 땅에 심어 새싹으로 키워 내고 다시 나무로, 숲으로 만들어 가는 일이다. 이것은 절망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길어 올린 옛사람들의 오래된 지혜이고 의지이다. 그런 점에서 석과불식은 단지 한 알의 씨앗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지키고 키워야 할 희망에 관한 철학이다. 정치의 원칙을 생각하게 하는 교훈이기도 하다.
석과불식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교훈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엽락(葉落), 둘째 체로(體露), 셋째 분본(糞本)이다. 엽락과 체로의 교훈은 한마디로 환상과 거품에 가려져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구조를 직시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삶의 근본을 마주하는 것이다. 포획되고 길들여진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일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과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는 일이다. '분본'은 나무의 뿌리를 거름하는 일이다. 엽락과 체로의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이 바로 분본이다. 무엇이 본(本)이며, 무엇이 뿌리인가에 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과 역사를 지탱하는 뿌리는 과연 무엇인가, 놀랍게도 뿌리가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까맣게 망각하고 있었던 언어, '사람' 이 모든 것의 뿌리이다.
출처:<<같은 책>> 인도 부다가야의 보리수. 나는 보리수 그늘의 한 자락을 얻어 잠시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나도 다른 사람처럼 나의 윤회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하다. 더구나 함께 할 동반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동반자는 나 자신이 먼저 좋은 동반자가 될 때 비로소 나타나는 법이다. 그것이 바로 원칙과 근본을 지키는 일이다. 혹한을 겪은 이듬해 봄꽃이 더욱 아름다운 법이다. 우리가 짐 지고 있는 고통이 무겁고 질긴 것이 사실이지만 바로 그 엄청난 무게 때문에 머지않아 '평화의 소통과 변화'라는 새로운 정치 전형(典型)의 창조로 꽃 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러한 전형은 분단 극복이라는 민족적 과제뿐만 아니라 나아가 패권적 세계 질서를 지양하는 21세기의 문명사적 과제로 발돋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치란 무엇인가. 평화와 소통과 변화의 길이다. 광화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길이다.(<<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신영복. 2017. 돌베개. 본문 중에서 참조)
참고도서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신영복. 2017. 돌베개.
<<강의>>신영복. 2008. 돌베개.
<<더불어 숲>>신영복.1998.중앙엠앤비.
[출처] '석과불식'(碩果不食) 우리가 지키고 배워야 할 희망의 언어:신영복|작성자 소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