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말씀 함께 보시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서 8장 1절에서 4절입니다. 로마서 8장 1절에서 4절 말씀을 한 구절씩 교독하고, 마지막 구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사. 다 함께 읽겠습니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멘. 이제 단위 목사님께서 나오셔서 "죄를 이기는 비결,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두 번째 시간, 이런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선포해 주시겠습니다. 그래도 고향에 좀 가셨나 봐요. 추석인데, 그래도 비교적 많이 오신 것 같아요. [1]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죄를 이기는 비결,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두 번째 시간인데요. 굳이 제목을 정하자면 "왜 나는 안 되지?" 이게 많은 성도들의 진실한 신자들 중에서도 많은 성도들의 신음소리이기 때문에 "왜 나는 안 되지?" 그렇게 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죄를 이기고 말씀대로 살 수가 있죠? 한마디로 성령의 도우심과 사람의 의지적인 노력, 이 두 가지가 하나가 돼야 돼요.
하나만으로는 안 돼, 두 가지가 하나가 될 때 사람이 변화가 됩니다. 설교자가 이걸 다 압니다. 그래서 설교에 돌고 도는 순항 논법 같은 것이 나타나요. 설교자들이 재력이고 말씀 들어서 할 수 있는 비결을 가르칠 때, 어느 때는 성령을 강조하고, 어느 때는 결단을 강조합니다.
결단과 인간의 노력을 강조합니다. 또 성도인들은 그때마다 은혜를 받습니다. 그때마다 은혜를 받고 도전을 받습니다.
그래서 다시 희망을 가지고 시도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는 그렇게 시도를 해도 원하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가 결단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되는 것도 성경에 나오고, 성경은 진리이기 때문에 성경의 입각에서 우리가 하면 돼야 되는데, 왜 성경의 입각에서 우리가 그래도 되지를 않는가? 왜 성령을 의지해도 변화가 안 되고, 결단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도 변화가 안 일어나는가? 성령을 의지하라, 이게 분명히 답이에요. [2]
답이고 진리인데, 왜 답이 아닌 것처럼 돼버리는가? 결단하고 노력해라, 이게 답인데, 왜 마치 답이 아닌 것처럼 돼버리는 것일까요? 저는 그 이유가 설명이 두루뭉실하고, 일부에게는 통하지만 전체에게 통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디테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시도를 해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이 주제의 설교들이 성도들의 일부가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성도들에게 효과적인 것이 되게 하려면 설명이 더 구체적이어야 돼요. 그거 갖고 안 되면 뭔가가 더 필요한 거예요.
뭔가가 설명이 더 필요한 거 아니겠어요? 그렇죠? 설명은 그렇게 되라고 하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 안 되면 뭔가가 설명이 더 필요한 거지. 이게 반복되는 거기 때문에 그 말씀 따라서, 때로는 이런 방법으로, 때로는 저런 방법으로 성도들이 수십 번, 수백 번 해도 안 된다. 그러면 그거 갖고 안 된다는 거예요.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더 디테일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 사실 자체가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더 구체적이고 더 디테일한 설명이 필요한데, 여러분 제가 두 주 전에 하나님의 언어로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3]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그것을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따라해 보겠습니다. "단순히 성령을 의지하고 죄와 싸우겠다고 결단하는 것을 넘어서 날마다 그 결단을 해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듣고, 기도하다가 성령을 의지하고 말씀대로 살아보겠다고 결단을 해요.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본래 그것만으로는 변화가 안 되게 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본래 그런 결단만으로는 변화가 안 되게 되어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오늘 내가 결단을 하고 그렇게 살았다고 내일도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혹은 다음 주와 다음 달도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오늘 그런 삶을 가능케 한 각오와 결단이 내일도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결단으로 내일 변화되는 삶을 살 수는 없다는 거예요. 이번 주 결단한 거로 다음 주 여러분 변화된 삶을 살 수는 없다는 거예요. 오늘 결단해서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으면 내일도 또 그 결단이 필요한 거예요.
이번 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으면 다음 주에도 또 같은 결단이 필요한 것이에요. 이것은 여러분 그 이후에도 계속 마찬가지라는 것이에요. 우리는 내가 성령을 의지하고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했으니 지금부터 계속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요. 또 여러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데, 이런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에요.
내가 오늘 말씀 듣고 은혜를 받았으니까, 내가 기도하면서 결단했으니까 이제 앞으로 계속 말씀대로 살겠지,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 아니고, 여러분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따라서 그런 생각 자체를 버리려는 것이에요.
여러분 한 번 따라해서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결단의 시효는 하루다." 계속 따라하세요. "길어도 2일에서 3일, 가장 긴 것이 일주일이다." 실제 시간을 안 재봤어요.
여러분 결단의 시효는 하루예요, 길어도 이틀에서 3일이에요, 혹은 일주일이에요. 여러분 이제 문제가 무엇인지 좀 감이 잡히실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오늘 성령을 의지하고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한 것으로 내일을 살려고 해요.
그것은 여러분 불가능한 일입니다. 쉬운 예로 우리는 날마다 숨을 쉬어야 되죠, 날마다 먹어야 됩니다, 날마다 씻어야 됩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신앙생활할 때 자주 그런 무모한 시도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결단하고 의지하고 노력해도 안 된다, 낙담하고 불평하고 좌절한다는 것이에요. 오늘날 수많은 신앙인들의 고민은 죄를 이기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하루에 몇 주는 되는데 지속적으로 안 된다는 거예요.
그게 고민 아닙니까? 많은 신자들이 또 그게 그러면 실제적인 문제 아닙니까? 그런데 이 문제 속에 답이 있습니다. 첫날이나 몇 주 동안은 왜 그것이 되었어요? 진실로 성령을 의지하고 진실로 죄와 싸웠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왜 다음 날 혹은 몇 주 후에는 안 될까요? 그것은 첫날 혹은 몇 주 후에 있었던 그런 각오가 없기 때문이에요.
그런 각오가 사라졌기 때문이에요. 제 말은 죄를 이기고 말씀대로 살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아니에요. 처음과 같은 단호하고 결연한 각오와 결단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각오는 있는데 결단은 있는데 노력은 하는데, 이게 처음하고 다르다는 것이에요. 이게 뭔가가 약화되고 흐리다고 여러분 빈 껍데기만 남았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지속적으로 죄를 이기지 못하고, 일시적이거나 즉위적인 죄들이나, 심지어 습관적인 죄에 빠지는 거예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성령을 의지하고 말씀 들어서 살겠다고 결단한 것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우리는 매일 그런 결단을 해야 돼요.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그런 결단을 하고, 그 결단의 입각에서 죄와 싸우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날마다 노력해야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죄의 주기적인 고리가 깨어지는 것이에요. 그때 죄의 주기적인 고리가 깨어지고, 여러분 우리가 계속 그렇게 하면 정말로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능히 변화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쯤에서 여러분들에게 몇 가지의 성경 구절들을 나누고 싶은데요.
창세기 5장 21절에서 24절에 보니까, 에녹은 65세에 무드셀라를 낳았고, 무드셀라를 낳은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큰 애는 365세를 살았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세상이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어요.
어떻게 해요? 300년 동행할 수 있는 은혜가 처음 결단할 때 주어진 게 아니에요. 매일매일 결단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간 것이에요. 그 결과 300년 동안 동행한 거예요.
주기적인 죄가 깨질 수 있는 비결, 습관적인 죄가 깨질 수 있는 비결, 그 비결이 여기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에게 일주일, 한 달, 1년을 하나님의 말씀 듣고 살 수 있는 그런 은혜가 주어지지 않아요. 우리가 아무리 말씀해 은혜를 받아도 그런 은혜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간절히 기도하고 결단해도 그런 은혜는 주어지지 않아요. 일용할 양식이 주어지는 것처럼 영적인 은혜들도, 여러분 고작 해야 하루나 며칠이나 일주일치가 주어지는 것이에요. 계속 새롭게 결단을 해야 되는 거예요.
계속 새로운 각오를 가져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새로운 마음으로 노력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나중에는 에녹처럼, 여러분 10년이든 20년이든 100년이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요한 8장 29절에 보니까, "나를 보내시니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니를 행함으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어떻게 항상 기뻐하시니를 행하죠? 자동적으로? 아니요. 항상 자기를 부인하는 거예요.
항상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것, 그거 외에 다른 방법은 없어요. 요한복음 15장 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오,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른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사도행전 13장 43절의 빈글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은혜를 받고 큰 은혜를 받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어야 돼요. 항상 그 은혜를 유지해야 돼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항상 조심해야 돼요. 항상 말씀대로 살기를 결단하고, 그런 각오와 마음을 가지고 항상 자기를 부인하고, 항상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항상 하나님께 순종해야 돼요. 사도행전 14장 15절, 16절에 "믿고는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기도하고 결단하고 난 다음에 하루 이틀 힘썼습니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양심의 거리낌 없이 그렇게 엄청나게 힘썼다는 것이죠.
이게 저절로 됐습니까? 결단할 때 큰 은혜를 받아가지고 저절로 한 달, 1년 막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게 아니라 바울이 항상 힘썼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양심이 거리끼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항상 힘쓰는 아이다. 빌리포서 2장 12절,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주력과 떨림으로 너희의 구원을 이루라." 복종은 우리가 해야 되는 거야, 성령을 의지해야 되는 거야,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복종이 되죠. 성령을 의지해야 결단이 되죠. 자기 마음을 쳐서 복종시켜야 복종이 되죠.
그렇죠? 항상 복종하는 거예요. 항상,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항상 버림받지 않고 자기 구원을 이루고, 궁극적인 구원을 받고자 하는 그런 각오와 결단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항상 복종해야 된다는 거예요. 히브리서 3장 13절에 보니까, "오직 오늘이라 읽고 있는 동안에 매일 피차 건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제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오늘을 잃었는 동안에 매일 서로 건면하고 말씀에서 도전받고, 자극받고 새롭게 결단하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제 유혹으로 마음이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그래서 범죄하지 않도록 매일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 매일 제가 왜 이 구절들을 인용했는지 아시겠죠? 이 구절들이 나오는 "항상" 혹은 "매일"이라는 단어 때문이에요.
우리는 한 순간이나 한 날 또는 몇 주 동안만 말씀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항상 말씀대로 살아야 돼요. 매일 말씀대로 살아야 돼요.
그런데 그것은 성령의 도우심과 우리의 결연한 의지가 하나가 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무슨 말이에요? 이 두 가지가 첫날에만 필요했던 게 아니다, 그 뒤로도 1년이고 계속 되기를 원했던 것이에요. 우리는 날마다 그런 결단을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날마다 이 두 개가 필요한 거예요. 날마다 성령을 의지해야 되는 거예요. 처음 의지하는 것처럼, 소주 처음처럼 여러분 처음처럼 날마다 성령을 의지해요.
처음처럼 날마다 새롭게 결단하는 것처럼 결단해야 돼요. 그리고 우리는 한 달 동안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1년 동안 그런 생각도 버려요. 오늘 하루를 말씀대로 살자, 매일 하루만 살라는 거예요. 하루만 걱정하고, 죄에 대해서도 하루만 걱정하라는 거예요.
오늘만 하나님 말씀대로 살자, 오늘만 이기자, 오늘만 나와 싸워서 이기자, 매일 매일 그렇게 살라는 거예요. 매일 매일 그렇게 살라고. 여러분, 바울이 뭐라고 해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언제? 다메섹 도상에서?" 평생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그리스도에는 싸우는 자예요.
평생 자기하고 싸우는 자예요. 언제 싸웁니까? 은혜 받았을 때 싸우고, 자동적으로 되기를 원합니까? 매일 싸워야 되는 거예요. 매일 결단하고 매일 싸워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여러분, 그거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이 두 가지가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거예요. 우리가 어느 날 설교를 읽고 성령을 의지하고 순종하겠다고 결단을 한 다음에 그것으로 하루나 한 주가 아니라 계속해서 살려고 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처음에는 성공했지만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고린도서 4장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게 된다." 여러분 이 고백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속사람이 하루 새로워지는 것과는 안 돼요. 한 번 새로워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한 번 그는 영원한 구원이 아니죠.
우리의 영혼이 새로워지는 게 거듭남이죠. 처음 새로워지는 것이에요. 하루 새로워지는 거, 한 번 새로워지는 건 안 돼요.
날로 새롭도다, 날마다 새로워져야 돼요. 그래야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고, 그래서 변화될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설교에 도전받은 날 한 번 결단하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그 결단을 새롭게 날마다 하는 것입니다.
그 결단을 새롭게 날마다 하는 것, 그것이 여러분 변화의 첫 걸음이에요. 그것이 변화의 첫 단추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결단을 하셔야 돼요.
무슨 결단을 해요? "나는 이제부터 성령을 의지하고 죄와 싸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 이 결단을 갖고 안 되어요. "나는 성령을 의지하고 죄와 싸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 이 결단을 매일 하겠다. 이 결단을 매일 내가 점검하겠다.
그리고 나는 이 결단을 매일 하겠다. 믿습니까? 그리고 그 결단의 입각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겠다. 그렇게 여러분 결단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부터 집에 가셔서 날마다 그 결단을 하세요. 이게 첫걸음이에요. 성령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오늘 하루를 반드시 그렇게 살겠다고 날마다 결단하는 여러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따라해 보겠습니다. "날마다 성령을 의지하고 죄와 싸우겠다고 결단할 뿐 아니라 그 결단을 강화시켜야 한다." 많은 경우 성령님을 의지하고 죄와 싸우기로 결단하면 말씀대로 하는 것이 일시적으로는 돼요, 일시적으로는 됩니다. 그러나 지속이 안 되는 것이 이게 문제예요.
그런데 왜 그러면 지속이 안 되느냐, 그것은 처음에는 설교 듣고 은혜를 받아서 성령을 의지하고 순종하기로 진심으로 결단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따라서 그것이 느슨해지기 때문에, 이것이 계속 죄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죄를 이기지 못하는 게 아니에요. 처음에는 이겼어요.
이거 바꿔 말해서 여러분이 이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왜 계속해서 이기지 못하느냐? 초심이 달라졌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성령님을 절박하게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런 절박함이 없이 피상적으로 의지합니다. 의지하기는 해요. 그런데 그런 절박함이 없어.
또 처음에는 제일 이기고 말씀드렸을 때는 단호하고 결연한 의지가 있었어요. "난 말씀대로 살 거야." 이런 의지는 소용이 없어요. 그 의지가 얼마나 단호한가가 결정하는 거예요.
그 의지가 얼마나 결연한가가 결정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단호하고 겨련한 의지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단 며칠이든 일주일이든 말씀대로 살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의지가 느슨해지고 이게 상투적인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러면 효과가 없는 것이에요. 여러분 성령님이 믿는 자 속에 오셔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이 뭔지 아십니까? 그는 소원을 일으켜주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소원이 뭐죠? 성령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원을 일으켜주는 거예요. 마귀는 자꾸 악한 정욕과 욕심들을 미움을 불러일으키려고 하고, 성령을 열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소원을 일으켜주세요.
그런데 소원이 뭐예요? 죄를 이기고 말씀대로 살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 이건 소원이 아니에요. 그것이 활활 타올라서 열망이 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말씀을 빌리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는 거예요.
배고픈 것은 막연한 게 아니에요. 목마른 건 막연한 게 아니에요. 먹을 것을 간절히 찾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마실 것을 간절히 찾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사슴이 신의 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그런 말이 있는 거죠. 소원은 줄이는 것입니다.
소원은 목마른 것입니다. 소원은 절실한 것입니다. 소원은 간절한 것입니다.
이게 여러분 소원이라는 거예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거예요. 오직 이런 사람만 의로 배부름을 얻을 수 있다는 거예요.
즉 변화가 된다는 거예요. 소원은 절박함 혹은 결연함과 관계가 있다는 거예요. 원하기는 원하는데 절박함이 없다면 이미 소원이 아니라는 거예요.
원하기는 원하는데 결연함이 없다면, 단호함이 없다면 이미 소원이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에게 절박함과 결연함이 그 속에 있는 이런 소원을 가질 때, 우리가 실제 삶 속에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갈 수가 있는 거예요. 처음에 기도하면서 결단할 때, 우리의 소원이 그런 소원이라고, 이 소원을 유지하는 거예요.
여기에 성공과 실패가 달려있는 거예요. 나는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도 안 돼. 이게 없는 노력이기 때문에 안 되는 거예요.
원해도 안 돼, 이게 없기 때문에. 기도해도 안 돼, 이게 없기 때문에. 시도해도 안 돼, 이걸 잃어버렸기 때문에 안 되는 거예요.
이게 있는데 안 될 수는 없어요. 여러분, 우리가 순종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우리가 의지로 순종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 의지가 단호해, 그 의지가 결연해, 그러면 순종하는 거지, 그러면 죄를 이기는 거지, 그러면 거룩하게 되는 거지,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거지,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변화되는 거지. 이게 빠져나갔기 때문에 사람들이 결단해도 안 되고, 기도해도 안 되고, 노력해도 안 되는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개혁성경 창세기 4장 7절에 보면, "죄의 소원은 내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는 이런 말씀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으려면, 죄의 소원을 다스려야 돼요.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하려면, 성령께서 일으켜주신 소원을 꺼트리지 말아야 됩니다.
그걸 유지시켜야 돼요. 이것이 여러분 능히 죄를 이기고 말씀대로 할 수 있는 비결인 것이에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성경 말씀의 입각에서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고 죄를 이기기 위해서 결단하면 실제로 그렇게 돼야 돼요. 그렇게 돼야 돼요. 그런데 왜 잠시 되는 것 같다가 안 될까요? 성경은 그렇게 하면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왜 잠시 되는 것 같다가 안 될까요? 성경이 가짜라서가 아니에요.
우리의 의지가 가짜라서예요. 성경이 가짜가 아니라, 우리의 결단이 가짜이기 때문이에요. 비슷하기는 한데, 처음과 달리 더 이상 진정한 결단이 아니라는 거예요.
겉모습은 진짜 같지만, 껍데기만 남아있고 알맹이가 빠져나가고 없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자신은 성령님을 의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는 노력하기 때문에 이런 착각 속에 빠지는 거예요.
그러나 그의 결단과 그의 노력에 단호함이 사라져버렸다는 거예요. 미지근해져버렸다는 거예요. 뜨겁든지 차든지 미지근해져버렸다는 거예요.
결연함이 사라져버렸다는 거예요. 그리고 껍데기만 남아있다는 거예요. 껍데기 결단이라는 거예요.
껍데기 노력이라는 거예요. 껍데기로 제가 싸운다는 거예요. 껍데기로만 성령을 의지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되면 작동이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작동이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가 안 되는 거예요.
그 사람이 이렇게 되면 실제로 변화가 안 되는 것이, 그 위에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만 성령을 의지하고 노력하면 되는데, 왜 나는 안 되지?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더 깊은 자질에 빠져드는 거예요. 그러나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성령을 의지할 때의 절박함과 간절함, 처음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할 때 가졌던 단호함과 결연함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여러분 누구나 되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만약에 그래도 안 된다면 성경은 진리가 아닌 것이에요. 이것은 진리가 아닌 것이, 그러면 내가 그것을 잃어버려서 말씀대로 살 수 없는 것일 뿐이지, 절대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나는 왜 안 되지? 이런 말 하지 마세요. 나는 왜 안 되지? 다 되게 되겠어요. 그 결연함을, 그 간절함을, 그 절박함을 유지시키면, 그것만 잃어버리지 않으면 믿습니까? 그것만 잃어버리지 않으면, 사람이 이 땅에 살 때도 그냥 막연하게 원하는 모든 걸 다 하는 거 아니잖아요.
간절히 원하는 것은 반드시 해내고야 말잖아요.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예요. 막연하게 성령을 의지하고, 막연하게 말씀대로 살겠다, 그런 거, 그거 아무것도 안 돼요 여러분.
단호하고 결연한 의지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믿습니까? 그거를 유지하면, 그거를 강화시키면, 다 변화가 되는 거예요. 제가 춘천 호수에 가서 이것을 동양한 목사님과 나누었을 때, 박세훈 목사님이 이와 관련해 있는 이런 말을 했어요.
제가 전에 주기적인 죄에 대한 자유를 경험했을 때, 그렇다고 안도하거나 자만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계속해서 죄를 이길 수 있는 비결이었습니다. 여러분, 맞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처음 성령을 의지할 때 절박함과 간절함, 처음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을 가졌던 단호함과 결연함, 그걸 유지해야 돼요. 우리는 그 중요성을 깊이 절감하고 깨닫고 응답해야 됩니다. 그 중요성을 절감해야 됩니다.
우리는 그것에 초점을 맞춰야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 날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막연하게 기도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돼요. 내가 성령을 의지해도 왜 말씀대로 살 수가 없나? 왜 변화가 안 되나? 내가 노력하고 애쓰는데, 나는 정말 애쓰고 노력하는데, 왜 안 되나? 여러분, 처음에 가졌던 단호함과 결연함이 빠져나갔기 때문에 그것이 없이 노력하고 기도하고, 그것이 없이 의지하기 때문에 안 되는 거예요.
결국, 만신대로 살아야 되는 건 난데, 내가 내 의지로 만신대로 살아야 되는 것인데, 의지가 작동하려면 단호해야 되는데, 결연해야 되는데, 그게 빠져나가기 때문에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날마다 기도해야 될 게 있어요. 한 번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고 죄와 싸우고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할 뿐만 아니라, 날마다 그 결단을 해야 된다고 그랬죠.
그날마다 결단하는 사람이 또 해야 되는 게 뭔지 아세요? 날마다 기도해야 돼요. 뭐라고? 구체적인 기도를 해야 돼요. 처음에 가졌던 단호함과 결연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처음에 가졌던 단호함과 결연한 마음이 빠져나가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내 속에서 유지되게 해 주시옵소서. 내 속에서 강화되게 해 주시옵소서.
여러분, 구체적으로 기도를 하라는 거예요. 이것이 계속 내 안에서 날마다 이것을 구하라는 것이에요. 그거를 기억하고 초점을 맞추고 날마다 그것을 구하라는 거예요.
이것이 여러분 변화의 두 번째 비결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세 번째까지만 말씀을 드릴 거예요. 다음 주에는 네 번째 얘기, 아마 한참 하다가 너무 길어서 그 다음날 네 번째를 좀 더 얘기를 하고 또 결론을 말씀드릴 건데, 결론까지 굉장히 중요해요.
어제 이렇게 결론에 대해서도 깨달아서 녹음을 좀 많이 했는데, 그래서 이 설교가 엄청 강화가 됐어요. 그리고 야, 이 말씀 진짜로 사람들을 다 바꿔놓겠다. 사람들이 변화되겠다.
능히 사람들이 변화되겠다. 그건 확신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제2예배도 이 설교부터는 오늘부터 제2예배 하지 말고 다 이거 들으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되더라고요.
여러분 다 기대하시고, 제2예배 참석하는 사람도 오늘 설교부터 3시간은 반드시 듣고, 아무튼 오늘 말씀을 잘 듣고 이 소교가 끝날 때까지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따라해 보겠습니다. 날마다 성령을 의지하고 죄와 싸우겠다고 결단하고, 그것을 강화시키기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그 목적으로 적극적으로 은혜의 수단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성령을 의지하고 죄와 싸우겠다고 결단하는 것을 넘어서 날마다 그런 결단을 해야 됩니다. 바로 그 결단을 해야 돼요. 날마다 그렇게 하겠다는 결단, 날마다 그런 결단을 하겠다는 결단을 해야 돼요.
또 우리의 결단을 매일 강화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 처음 가졌던 단호하고 결연한 마음이 변치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구체적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돼요. 날마다 쓰시노,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런 기도를 드려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기도하는 것보다 우리의 결단을 강화시키는데 더 확실하게 도움이 되는 게 있어요.
더 확실하게 도움이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결단을 강화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수단이라는 게 뭐예요? 아마 대부분 아시겠지만, 모르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은혜의 수단이라는 게 뭐냐면, 존 웨슬리와 찰스 피니, 청교도들이 주로 사용했던 용어인데,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거잖아요.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길 가고 있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딱 주셔서 구원하고 은혜를 걸고 이렇게 되는 게 아니라고요.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거잖아요.
이 은혜가 나에게 도달하는 통로로 쓰인 어떤 수단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걸 은혜의 수단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은혜의 수단.
그럼 그런 게 어떠느냐? 모이는 일에 힘쓰는 것. 영화 보러 갔는데 갑자기 거듭나겠어요? 쇼핑하러 갔는데 거듭나겠어요? 모이는 일에 힘쓰는 것. 만화보다가 은혜받고, 좋은 간증들을 듣는 것.
또 성도들과 교제하면서 역적인 좋은 신뢰가 있는 얘기들을 나누는 것. 물론 여러분 이 안에 매일 시간을 정리해놓고 기도하는 것도 포함이 됩니다. 우리가 진실로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가만히 있으면 안 돼. 변화되기를 원하고만 있으면 안 돼.
변화하려고 기도하기만 해도 안 돼. 변하겠다고 결심하고만 있어도 안 돼. 우리가 진짜로 믿어내려고 하면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우리의 결단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수시로 은혜의 수단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됩니다. 그러면 왜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하는 결단의 절박함과 결연함을 강화시켜서 유지하는 데 확실하게 도움이 되느냐? 그 이유가 있어요. 잠시 여러분이 처음 심령의 찔림을 받고 회개하기로 결단했을 때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세요.
즉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사람들처럼,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 거, 이렇게 탄식하면서 회개한 때를 생각해보세요. 이때 우리의 결단은 절박한 것이었어요. 이때 우리의 결단은 진실한 것이었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전인적인 것이었어요. 그냥 어떤 지적인 게 아니에요. 어떤 감정적인 게 아니에요.
지식, 감정, 의지, 이게 인격인데, 우리의 전 인격에 반영하는 전인적인 결단이었어요. 그래서 그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이에요. 그런데 이런 것이 가만히 있는데 저절로 생겨났나요? 그런 사람은 없어요.
가만히 있는데 저절로 생긴 게 아니라 잘 분별이 되고 기름 부음이 강한 날성동과 같은 설교를 들을 때 이런 일이 생겨났어요. 가만히 있는 데 생기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생기라는 게 아니에요.
날성동과 같은 말씀을 들을 때 일이 생기랍니다. 또 충격적인 간증을 듣거나 좋은 신앙서적을 읽다가 깊이 찔림을 받았을 때 이런 일이 생기랍니다. 또는 깊이 기도하다가, 그냥 기도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성령께서 우리 영혼에 빛을 비춰주시고 각성시켜주실 때, 뭔가 소원의 불을 지피는 불소식의 역할이 우리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와 달리 여러분, 그 뒤에 우리가 날마다 재결단을 하고 또 그것이 유지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도, 처음에 있었던 이런 불소식의가 없어요. 처음에는 이런 불소식의가 있으면서 결단을 했는데, 재결단할 때는 이게 없다고.
다시 이걸 강화시켜서 기도할 때도 이게 없다고. 그래서 결단을 하지만, 처음 결단과 차이가 생길 수도 있고, 여러분 그 결단이 약해질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 역할이 약해질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단을 해도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요. 안 그래요? 정말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 우리가 처음 결단을 가졌던 절박함과 결연함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단순합니다.
그리고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처음처럼 찔림 받을 수 있는 설교를 다시 들어야 돼요. 그러니까 주일에 설교 한 번 들어서 일주일 말씀대로 살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깨내는 거예요.
처음처럼 찔림을 받을 수 있는 설교를 다시 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겠다는 각오와 결단과 의지가 처음처럼 다시 타올라야 돼요. 처음처럼 다시 타오르게 해야 돼요.
한 번 불이 붙었다고 그 불이 계속 활활 타오르나요? 아니죠. 계속 석탄이나 나무를 넣어줘야 불이 활활 타오르나요. 그런데 우리는 한 번 불이 붙었다고 그걸로 일주일 살고, 그걸로 한 달 살고, 그걸로 자동적으로 될 거라고 착각을 했다는 거예요.
화목을 계속 공급하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또 한 번 밥을 먹었다고 계속 배가 부르나요? 아니죠. 어제 먹은 밥으로 오늘이나 내일 배가 부를 수는 없어요.
그러므로 우리의 결단의 절박함과 결연함을 유지하려면 필히 무엇을 해야 돼요? 모이는 일에 힘을 써야 돼요. 자주 설교를 들어야 돼요. 날마다 성경이나 신앙서적을 읽어야 돼요.
좋은 간증들이 있으면 찾아서 들어야 돼요. 매일 시간을 정리해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돼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말씀대로 살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이 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변화된 듯 하지만, 왜냐하면 처음 결단은 결연하고 단호한 거였으니까. 처음에는 변화된 듯 하지만 작심삼일이 되는 거예요.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것에 다시 돌아가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제는 왜 자신이 성령을 의지하고 죄와 싸워도 이길 수가 없었는지 그 이유를 여러분이 분명히 아셨을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이 그것이에요. 여러분, 이제 그 이유를 아셨다면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은 뭐예요? 주의 성수부터 하려는 거예요.
제일 먼저 주의 성수 안 하는 것은 영적인 자살행위입니다. 주의 성수 안 하고 영원히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주의 성수부터 철저하게 하라는 것이, 주의 성수는 여러분의 생명줄이라는 거예요.
또 여러분, 사사모도 열심히 참석하시라는 거예요. 주의 전형 예배, 수의 예배도 더 열심히 참석하시라는 거예요. 또 여러분, 이처럼 주의 설교만 듣지 말고 교회 홈페이지나 카페, 유튜브에 보면 여러분 좋은 설교들 다 올리잖아요.
그죠? 수의 예배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실력 있는 목사님들이 말하는데 수협에도 누군가 하나 담당을 정해서 내가 들어봐서 올리지 않으면 아무도 안 올려. 좋은 설교들은 올리라고 전체 교육자에게 다 공문이 내려간 지가 언제인데, 한 사람도 순종을 안 해.
제일 먼저 자기 좋은 설교를 올린 사람은 100만 원 준다. 아니 여러분, 좋은 설교, 스스로 내가 다 드릴 수가 없잖아요. 좋은 설교 있으면 스스로 올리라고 말한 지가 1년도 넘었는데 한 번도 올리는 사람을 못 봤어.
한 사람도 순종한 사람을 못 봤어. 제가 이렇게 해야 돼요. 성도는 내가 나쁜 줄 알아, 이런 거 올리려는 거예요.
누가 하나 담당자를 정해서, 진짜 좋은 설교들은 수혜의 입에다 다 올리도록 할 거예요. 카페에 올라오는 건 안 좋은 건 안 올려, 좋은 것만 올려. 그렇게 하면 적어도 올라오는 설교들은 전부 다 들으려는 것이에요.
저는 여러분 설교를 하지만 어젯밤에도 설교를 듣고, 오늘 아침에도 설교를 듣다가 나오고, 그전에도 설교를 듣고, 이번 주에도 몇 편의 설교를 들었어요. 여러분, 우리 영혼을 위해서 들어야 됩니다. 아니 말씀 들어서 살려는 의지가 그 결연함이, 그 결연한 의지가 내가 가만히 있는데 목사라고 생겨나네고, 계속 그런 좌우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앞에서 나를 살펴야 그 의지가 새로워지는 거거든요.
그 의지가 또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지고, 그래서 그게 경건의 능력이 되는 거거든요. 경건의 능력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그게 진짜 경건의 능력이 되는 거거든요.
죄를 뿌리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되는 거거든요. 여러분 믿습니까? 그래서 카페에 올라오는 설교는 다 들으세요. 거리가 먼 사람도 있어요.
수요일에도 들어보세요. 참석하고 주일 전일에도 참석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거리가 너무 나 어려울 수도 있어요. 여러분, 카페에 올라오는 설교만이라도 전부 들으라는 거예요.
그건 아예 그냥 철칙으로 생각하고 생활하지 않는 것이에요. 또 여러분, 책도 읽지 않은 그 책과 새로 나온 책들을 열심히 사서 읽으세요. 그리고 날마다 여러분, 열심히 기도하세요.
그래야 변화가 된다는 거예요. 가만히 있는데 변화가 안 되는 거예요. 가만히 있는데 결단했다고 성령을 의지한다고 하면, 이때서는 변화가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이런 일들을 열심히 해요. 변화가 되는 것이에요. 이것을 조금 다르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성경에는 경건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보여주는 굉장히 많은 구절들이 있어요. [4]
로마서 1장 18절에 보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심판입니다. 지옥 가게 되는 걸 말하는 거예요. 그 결과는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은 것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는 거예요.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고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간다는 거예요. 베드로전서 4장 18절에 보니까,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않은 자와 죄인은 어디에서 서리요? 경건하지 않은 자들은 절대로 구원 못 받는다는 거예요. 디모데후서 2장 4절 10절에 보니까,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 특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일을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스른 모든 과오로 인하여 그들을 정죄하려 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경건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우리는 경건한 사람이어야 해요.
우리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니고 경건한 사람이래요. 여러분은 경건한 사람입니까? 그걸 자신에게 물어봐야 돼요. 나는 진짜 경건한 사람인가? 경건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예요.
우리는 반드시 경건한 사람이 돼야 됩니다. 그런데 경건한 사람이 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성경에 두 가지 비결이 나와요. 하나는 경건의 능력이죠.
굳이 읽지 않겠어요? 디모데후서 3장 5절. 경건의 능력이 나옵니다. 다른 하나는 경건의 연단이에요.
디모데후서 4장 7절에 보면 경건에 이르도록 내 자신을 연단하라, 이렇게 경건의 연단이 나와 있어요. 이 말씀들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경건의 능력을 주신다고 다 경건해지는 것이 아니래요. 그런데 연단의 헬라우로, '김나조'라는 단어는 연습하다, 훈련하다 그런 뜻이에요.
연습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어요. 재능은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연습은 내가 해야 되는 거예요.
모든 일에는 먼저 재능이 있어야 하고, 그다음에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경건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경건의 능력인 성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성령 충만해야 됩니다. 기도에서는 성령 충만해야 해요. 그다음 우리가 경건에 이르도록 연습해야 됩니다.
그럴 때 여러분, 경건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냥 결단했다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냥 의지한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가만히 있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경건의 능력을 받았으면 경건에 이르도록 연습을 해야 돼요. 그런데 연습이 뭐예요? 여러분, 연습이 뭐죠? 반복입니다.
반복. 세계적인 선수들이 뭘 통해서 만들어져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한 반복하는 거예요. 공을 치든지 뭘 하든지 무한 반복하는 거예요. 연습은 다른 게 아니에요.
무한 반복이에요.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계속 설교를 들어야 돼요. 주의 설교 한 번 듣는 거 이거 갖고 안 돼요.
계속 설교를 들어야 돼요. 계속 간증을 들어야 돼요. 계속 책을 읽어야 돼요.
계속 기도를 해야 돼요. 이게 연습이에요. 성경은 여러분, 경건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경건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해요.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계속 반복해야 돼요. 그래야 여러분 비로소 경건한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거예요.
한편 그날 제가 차 안에서 이것들을 녹음하고, 차에서 호수 둘레길을 운동 삼아 한 바퀴 걸으려고 그러는데 박세호 목사님이 급히 다가오면서, 다른 목사님들은 안 그러던데, 급히 다가오면서 단임 목사님의 말씀이 정말로 맞습니다, 단임 목사님의 말씀이 정말로 맞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고백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평소와 다른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매일 들으면서 날마다 엄청난 찔림을 받고, 또 사모하는 마음으로 담임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완전을 경험했습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담임 목사님의 책을 하루에 최소 3권을 읽었고, 많이 읽을 때는 하루 5권까지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계속해서 들었습니다.
그 결과 마음에 계속해서 찔림을 받고 갈급함을 한순간이 아니라 계속 유지하면서 지냈습니다. 이것이 완전에 이를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여러분, 박세훈 목사님뿐만이 아니에요. 박상현 목사님뿐만이 아니라, 그보다 먼저 완전을 경험한 김옥경 목사님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설교도 많이 듣고 간증도 많이 들어서 아시겠지만, 김옥경 목사님이 저절로 된 게 아니거든요.
저절로 된 게 아니라, 날마다 성경을 억수로 읽고, 날마다 테이프가 늘어날 정도로 (요즘은 테이프를 안 듣지만) 설교를 억수로 듣고, 날마다 여러분 억수로 기도했어요. 비결이 서로 일치해요. 가만히 있는데 거룩해지는 방법은 없어요.
나는 성령을 의지해, 나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거야, 결단하고 가만히 있어,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그런데 변화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거룩해지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주님을 닮게 되는 사람은 없어요. 물론 여러분, 우리가 그 정도까지 해야 김옥경 목사님 정도까지 해야 죄를 이기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일정 수준 이상 그렇게 해야 계속 죄를 이기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가 있는 거예요. 참으로 여러분, 이것이 비결인 것이에요. 또 이것 외에는 다른 비결이 없는 것이에요.
그러면 여러분 모두 꼭 이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끝으로,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과거에는 많은 설교자들이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말씀과 기도가 성화의 비결이다, 그렇게 설교했어요.
저도 고등학교 때나 신학 시절에 그런 줄 알았어요. 물론 여러분, 이 구절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과 기도가 성화의 비결인 것만큼은 사실이지요. 그래서 변화되기 위해서 설교를 많이 듣는 성도님들이 있어요. 또 변화되기 위해서 기도를 더 많이 하면 변화되겠지, 전보다 기도를 더 많이 하고 열심히 하는 그런 성도님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다고 다 바뀌나요? 어떤 사람은 바뀌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렇게 해도 안 바뀌어요. 정말 성령을 의지한다고 하는데, 정말 기도한다고 하고 저도 열심히 싸우는데, 어떤 사람들은 안 바뀌어요.
여러분, 많은 분들이 계속 설교도 많이 듣고 기도도 많이 하지만, 그냥 단순히 설교를 많이 듣고 있을 뿐이야. 그냥 단순히 기도를 많이 하고 있을 뿐이야. 그런데 자기는 변화가 안 돼.
그러니까 더 힘들어. 이건 뭐 해도 안 돼? 그럼 더 힘들어.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설교를 더 많이 듣고 기도를 더 많이 한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게 잘못된 것이 아니고 필요한 것이지만, 그런다고 사람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바뀌느냐? 먼저 우리는 죄를 이기고 말씀대로 살겠다고 날마다 결단하고, 그 결단한 의지의 절박함과 결연함을 강화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돼요. 그것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것인지 깨달아야 돼요.
즉 그 일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목표로 설교 듣고 기도를 해야 돼요. 그냥 설교를 들으면 안 돼요. 그걸 목표로 설교를 들어야 돼요.
설교 들어서 말씀 깨닫고 배우고, 좋아요. 은혜 받고 좋아요, 은혜도 받고 좋아. 그런데 내 의지를 건드리지 않으면, 내 의지를 단호하게 결연하게 만들지 않으면, 나는 그냥 은혜 받고 변화되자는 나로 그대로 있는 거예요.
나는 그냥 은혜만 받고 설교만 듣고 배우기만 하고, 제일 읽힐 수 없는 상태 그대로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는 상태 그대로 있는 거예요. 여러분, 이해가 되세요? 그러니까 설교를 듣는 목적이 뭐냐? 변화되기 위해서 설교를 들어야 된다고, 회개하기 위해서, 순종하기 위해서 변화되기 위해서 믿습니까? 그 변화에 필요한 데 의지를 이 말씀에 도전받으면서 결연하게 만들기 위해서, 단호하게 만들기 위해서 더 확실하게 굳건하게 만들기 위해서 설교를 그런 목적으로 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기도도 그런 목적으로 기도를 해야 되는 거예요. 또한 여러분, 실제로 그것에 도움이 될 만한 설교들이 따로 있어요. 불행하게도 많은 목사님의 설교들은 도움이 안 돼요.
오직 믿음이고 한 번이고는 영원한 것이고, 우린 다 고아만 하죠. 지옥 가긴 걸렸습니다. 그런데 뭐, 그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를 의지가 다 풀어져.
이게 마귀 역사예요. 그러게 되면, 그런 의지를 강화시킬 만한 그런 설교들이 있어요. 그런 의지를 강화시킬 만한 그런 간증이 있어요.
그런 의지를 강화시키는데 유용한 그런 책들이 있죠.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그런 설교들을 들으라는 것이에요. 그런 설교들을 집중해서 들어라.
그런 간증들을 집중해서 들어라. 그런 책들을 집중해서 읽어라.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야 그 설교가 "배웠어.
이 말씀이 이런 뜻이네. 은혜스러워, 배웠네. 은혜가 되네, 감동이 되고, 감정이 은혜스러워, 좋네" 이게 아니라, 내 의지를 건드린다.
단순히 지식이나 감정이 아니라, 가장 깊숙한 우리의 의지를 건드린다. 의지, 이해가 됐어요? 여러분? 진실로 우리가 안다고 말씀드렸다. "안다고"와 "행치 못한 점은 더 많이 맞는다" 이렇게 말한 거죠.
안다고만 말씀드렸잖아? 그럼 목사들은 다 성자가 되게? 우리가 감동받았다고 다 말씀드렸잖아? 여러분, 결국은 얼마나 의지가 결연한가? 얼마나 의지가 단호한가? 얼마나 의지가 확고한가? 그게 우리의 행동과 삶을 바꾸는 거예요. 좌우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의지를 건드리지 못하는 설교, 이거 유의라는 거예요.
의지를 건드리지 못하는 책들, 이거 지적인 유의라는 거예요. 우리의 의지를 건드릴 수 있는 그런 설교들이 있다는 거예요. 이해가 되시죠, 여러분? 우리의 의지를 건드릴 수 있는 설교, 우리의 의지를 건드릴 수 있는 간증, 우리의 의지를 건드릴 수 있는 여러분, 그런 책들을 읽으려는 것이에요.
그렇게 함으로써 계속 우리의 결단과 의지를 강화시켜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죄를 안 이길 수가 없어요. 여러분, 그러면 변화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렇게 할 수 있는 단호함이, 결연함이 내 의지 속에 있느냐 없느냐, 그렇지 않습니까? 그게 있으면 회개가 되는 거죠. 그게 있으면 거룩이 되는 거죠. 그게 있으면 사랑이 되는 거죠.
그게 없으니까 안 되는 거예요. 이걸 자꾸 놔두고 결국 내가 말씀대로 사는 것은 의지에 달린 건데, 나는 하나님을 의지해, 성령님을 의지해, 그 의지하고 이 의지하고 다른 거예요? 나는 성령님을 의지해, 나는 말씀대로 살 거야, 한 번 결단하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의지를 돌보지 않아, 의지를 관리하지 않아, 의지를 내팽개쳐. 그런데 나는 말씀대로 살려는데 왜 안 되지? 여러분, 먼저 중요한 것은 성령의 도우심이고요.
그다음에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입니다. 의지가 얼마나 진실하냐, 의지가 얼마나 단호하냐, 의지가 얼마나 결연하냐. 여기서 여러분, 회개가 달려있고, 여기에 구원이 달려있고, 여기에 거듭남이 달려있고, 여기에 여러분, 거룩이 달려있고, 사랑이 달려있고, 완전함이 달려있고, 이해가 되십니까? 여기에 다 달려있는 거예요.
이것이 좌우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의지의 절박함과 결연함을 강화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돼요.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그걸 목적으로 설교 듣고, 그걸 목적으로 책 읽고, 그걸 목적으로 기도하라는 거예요.
이해가 되십니까? 그리고 거기에 유용한, 아무 설교나 듣지 말고, 정말 그곳에 유용한 설교를 드리는 거예요. 그런 일에 효과 있는 설교들을 드리는 거예요. 우리의 설교도 좋지만, 우리의 설교가 아니라도, 그렇지만 좋은 설교들이 있어요.
그러면 듣려는 것이에요. 그런 설교들을 듣고 싶다는 것이에요. 그런 책을 읽으려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계속 우리의 의지와 결단을 강화시키면 여러분, 능위제를 이길 수 있습니다.
능위제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거 아니에요? 여러분? 인과율에 의해서?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사람이 변화되지가 않아요. 설교와 기도가 우리의 지식이나 감정만 건드리지 말고 의지를 건드려야 돼요.
그래서 우리의 결단과 의지가 전인적인 것이 돼야 돼요. 지적인 결단은 소용없어요. 감정적인 결단은 소용없어요.
지식과 감정과 의지가 함께하는 사람은 전인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전인적인 결단이 되게 돼요. 그게 참 결단이에요. 그래야 여러분 지속적으로 변화된 삶을 살 수가 있는 거예요.
이제 여러분 모두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설교를 듣고 열심히 기도를 많이 했는데, 왜 시간만 늘어나고 변화되지 않는지 이유를 확실히 아셨을 거예요. 이유를 아셨으니까 더 이상은 여러분이 절망할 필요가 없어요. 더 이상은 절망하고 낙심할 필요 없이 이유를 알았으니까 답을 아는 거예요.
해결책을 아는 거예요. 더 이상 낙심하지 마세요. 더 이상 낙심하지 말고 낙담하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희망을 갖고 다시 일어나서 처음 결단할 때와 같은 절박함과 결연함을 강화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또 그것을 사모하고 갈망하고 그 은혜를 구하십시오. 또한 우리의 의지를 강화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설교나 간증을 열심히 들으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여러분의 지식과 감정을 건드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여러분의 의지를 건드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결단이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전인적인 결단이 될 것입니다. 원하는 데 안 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을 그런 행동과 삶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는, 그렇게 능히 살게 만드는 그런 결단이 된다는 거예요.
회개가 가능해진다는 거예요. 거룩이 가능해진다는 거예요. 사랑이 가능해진다는 거예요.
예수님을 담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거예요. 완전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거예요. 딱 이 말씀을 깨닫고 나서는 나도 막 심하게 생기더라고요.
나도 완전 반에 좀 들어가볼까? 거기 동양밖에 없는데? 나도 안전반으로 들어가볼까? 막 그런 희망이 생기더라고요. 여러분도 그런 희망이 생기지 않습니까?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린 것이 이게 진짜입니다. 사람이 변화될 수 있는 비결입니다.
믿습니까? 사람이 진짜로 회개하고 여러분이 변화될 수 있는 비결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들은 데서 멈추지 말고, 오늘 이 말씀대로 결단하고 이번 주부터 시작하세요. [5]
이번 주부터 의지를 강화시켜달라고 기도하세요. 그게 문제예요. 의지를 강화시켜달라고 핀셋 기도를 하세요.
그다음에 여러분, 안 들은 설교가 엄청 많죠? 안 들은 설교가 많죠? 가서 들으세요. 우리 교회 설교가 아니라도 좋아요. 이런 일에 도움되는 설교들을 들으세요.
심령을 찌르고, 믿습니까? 심령을 찌르는 좌우의 난상권과 같은, 정말 사람들을 각성케 하고 해결시키는 그런 설교를 들으세요. 교회 카페는 유튜브에 우리 교회 설교가 굉장히 많이 올라와 있어요. 여러분 살기 위해서 들으세요.
변화되기 위해서 들으세요. 여러분 그러면서 기도하세요. 그러면서 책 읽고 반복하는 거예요.
한 번 하고 되고 안 되고 그딴 얘기 할 거 없어요. 연습은 반복하는 거예요. 믿습니까? 반복하면 반드시 실력이 올라가는 거예요.
반복하면 반드시 죄를 이기게 되는 거예요. 반복하면 반드시 거룩하게 되는 거예요. 반복하면 반드시 주님을 닮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믿습니까? 이거는 선택이에요. 여러분들이 하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회개하게.
도와주세요, 거룩하게 도와주세요. 말씀대로 살게 도와주세요. 회개해라, 네가 거룩해라, 사랑해라.
우리에게 명령을 내린 거예요.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되게 돼 있는 것이기 때문에 믿습니까? 성령을 쫓아 행하라, 이 말씀 안에 이런 것이 다 들어가 있는 것이에요. 그것과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쫓아 행하라는 것 안에 이런 내용들이 다 그 속에 스며들어가 있는 것이, 그거를 끄집어내서 여러분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이것은 성경적인 것이에요.
이것은 반드시 통용이 되는 것이에요. 효과가 있고 역사하는 것이에요. 바꾸면 여러분 모두에게 희망이 있다는 말이에요.
여러분의 과거가 어땠든, 얼마나 패배를 했든, 얼마나 노력을 했든, 얼마나 넘어졌든, 다시 듣고 송화하세요. 말씀이 하라는 대로 결단하세요. 말씀이 하라는 대로 기도하세요.
말씀이 하라는 대로 은혜의 수단을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세요. 반드시 여러분들이 변화될 것입니다. 반드시 여러분들이 변화될 것입니다.
반드시 여러분들이 변화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 지어가면서 지어 삼창하고 통성으로 하나님 앞에 말씀 붙들고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지어! 지어! 지어!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다시 일어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다시 결단하고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처음과 같이 처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고, 성령을 의지하여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여 하나님 앞에 결단했던 그 처음처럼, 우리가 다시 결단하고 이 시간에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도우시옵소서.
성령님, 우리를 도우시옵소서. 우리가 반드시 변화되어,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온전하게 이루는, 온전을 이루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하오니, 하나님 우리를 도우시옵소서. 우리가 다시 새롭게 결단하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결단하고 새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우리의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여, 우리가 은혜로 하나님 앞에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하며, 우리가 새롭게 변화되어 반드시 새롭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의지가 얼마나 약하였습니까? 나의 의지는 얼마나 진짜였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는 진심으로 절박하게 주님 앞에 간절하게, 내가 변하되기를 원하는 그 내 속에 그러한 갈망과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있었습니까?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줄이고 목마른 마음을 부어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반드시 변하되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며 온전한 형상, 하나님의 그 온전해서 온전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자, 거룩한 사람이 되고자 우리의 심령을 아버지의 시간에도 새롭게 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우리가 말씀을 듣게 하소서.
구체적으로 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의 문제를 내어놓고, 하나님이 이 부분에서 반드시 돌파하기를 원하오니 주의 은혜를 구하며, 우리가 날마다 기도하기를 힘쓰겠습니다.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거리낌이 없도록 날마다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게 알려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설교를 듣는 목적이 내가 반드시 말씀 앞에 진립을 받고 변화되기 시작하는 그 갈망으로 우리가 말씀을 새롭게 듣도록, 우리의 자세가 달라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목적과 동기가 달라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은혜의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모이기를 힘쓰며, 하나님이 부어주신 아버지 하나님 기름 부어진 그러한 종교서적을 통하여 우리가 또한 깨닫고 변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가 지식으로 말씀을 듣지 않게 하소서. 단순히 내 마음을 살짝 흔들리는 감정으로 만족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지식과 감정과 우리의 의지가 하나가 되어서 오직 주의 뜻을 이루며, 아버지 우리가 새롭게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낙심된 마음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새 마음을 부어주시옵소서. 우리 안에 하나님 변화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 속에 그 타오르는 갈망과 같이, 우리의 의지가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마다 새롭게 변화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은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시고, 반드시 하나님의 형상을 담기를 원하시고, 아버지 우리 안에도 그 갈망을 우리 속에 부어주셨사오니 하나님 우리 모두가 새롭게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목사님을 통하여 주신 죄를 이길 수 있는 비결, 우리가 이것을 사활적으로 붙잡고 오늘부터 우리는 새롭게 일어나며 새롭게 변화되며, 반드시 우리의 의지가 성령님과 연합하여서 이 일을 이루어가실 것을 믿고, 하나님 우리가 주님 앞에 은혜를 구하며 나아갑니다. 아버지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아버지 아버지, 우리에게 살고 나를 부어주시는 아버지, 아버지 우리에게 은혜를 부으시고 하나님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삶이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우리의 삶의 목적과 목표가 완전히 변화될 수 있도록 주님, 우리의 의지와 결단을 날마다 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삶을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나의 의지를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나의 모든 경담과 뜻들이 날마다 하나님의 것과 같아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그 삶만을 아버지와 아버지와 우리가 목표로 삼고, 우리의 삶이 제대로 변화하기를 구하오니, 주의 성령님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고, 하나님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우리의 삶의 모든 태도들이 완전히 변화될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절대로 이 정교같이 살지 않을 것입니다.
날마다 부어주시는 아버지의 은혜, 하나님의 그 신은혜를 절대로 헛되지 않도록 하나님 우리가 이제는 제대로 결단하고, 우리의 매일의 삶의 모습이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혜의 순환을 전적으로 활용하여 하나님 우리가 다름질하여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악하고 게으렸던 모든 마음들은 하나님의 시간 중에 맞다 얘기하고, 우리의 삶이 완전히 새롭게 될 수 있는 은혜를 부으시는 주님, 아버지 우리는 절대로 아버지의 주님의 정과 같이 살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과 같이 살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시는 만큼 충분하게 변화되고, 충분하게 거룩하며, 하나님 온전히 향하여 나아가며 반드시 온전한 자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단합니다.
아버지 우리의 결단이 비상적이 되지 않게 하시고, 아버지 생명을 건 결단이 되게 하시며, 우리의 날마다의 시간을 오직 주님께 드리며, 우리의 마음과 결단과 의지를 주님 앞에 드려오니, 하나님의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사로잡으시고 완전한 변화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죄를 이기기를 구하였더니 원하였더니 하나님이 말씀 주신 것 감사합니다. 분명하고 뚜렷한 방법의 말씀에 득대하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 말씀에 또 한 번의 우리의 지식의 의의가 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 우리의 의지가 더욱 결혼하여 졌습니다. 하나님의 뚜렷하고 선명한 이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하나님 날마다 일이 우리에게 인기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경건의 연습을 거듭하여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 우리의 초심의 결단이 하나님 반복적으로 연습적으로 전인적으로 더욱 강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그리하여 날마다 회개하고 죄인의 이기는 삶, 성령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순종하는 삶, 의리에 이루어가는 복된 삶,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이뤄가는 자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돌이켜 주님을 바라볼 것입니다.
날마다 은혜의 수단을 최선을 다하여 사용할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님 우리의 의지와 결단이 하나님 바른 목적을 향하여 더욱 강화될 수 있도록 성령님 우리를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아버지, 진심으로 감사와 찬성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아버지 같은 신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가 거룩해질 수 있도록 우리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가 회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죄를 이기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참된 그 은혜를 아버지 우리에게 부시고 임하여 주시는 아버지 진심으로 감사와 찬성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하나님 더 간절하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의 완전을 이루기를 원하시는 그 삶을 살아가기를 소원할 수 있도록 아버지 우리가 그 간절함에만 묶여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가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 그 은혜를 부으신 한 아버지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찬양드립니다. 우리에게 성령으로 추마케 하소서.
그리고 날마다 아버지 하나님 죄를 이기며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부으시고 하나님 아버지 무한 반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이 말씀을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성사 다 있게 하시고 주의 성령으로 날마다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결단하는 이 모든 것 위에 하나님 아버지의 날마다 결단할 수 있는 은혜, 하나님 참된 의지 주의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고 내일마다 승리할 수 있도록 주 하나님 아버지 역사하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으로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아름다운 신부로 내일마다 변화되어질 수 있는 날, 하나님 사랑할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이 말씀이 하나님 아버지 대한민국을 흔들게 하소서.
대한민국 뿐만이 아니라 이 알방의 교회들, 진짜들을 언제나 깨울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 변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 역사하시고 인도해 주시옵소서. 생명의 말씀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버지 아버지 우리를 위로하시고 소망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살아가는 교회의 분명한 목표는 완전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계속해서 진리 가운데 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주의 성령님 더 임하소서.
주의 성령님 더 부어주소서.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사오니 아버지 은혜위의 은혜로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하느님 목사님을 붙잡으시고 더 온전히 생명의 말씀감을 전할 수 있도록 주님 붙잡아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더 열심히 모이게 하소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이 자리, 하나님 온전으로 함께 갈 수 있는 이 자리, 이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하기를 원하시는 그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아버지 모이기를 힘쓰는 자진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 깨어있게 하소서.
애독의 삶을 흠보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결단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아버지의 은혜를 모아 주시옵소서. 우리 안에 새 힘을 부으소서. 우리가 매일 결단하며 갈 수 있는 은혜를 부으소서.
다른 목사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 우리가 살아내며 우리가 변화되며 아마 아버지 이것이 열망 가운데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보여줄 수 있는 아버지 그 삶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결단하는 모든 심령 가운데 쏟아부으소서. 은혜를 쏟아부으소서.
아버지 주님 사랑하는 이 삶, 주님 닮아가는 이 영광스러운 삶에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독점하여 갈 수 있도록 주님 은혜를 쏟아부어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귀한 말씀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말씀으로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살아나며, 얼마나 많은들이 하나님을 닮아 고르게 이르게 될지 하나님 이 말씀의 중요성을 마음 깊이 새기며, 이 말씀이 곳곳으로 전파되어 갈 수 있도록 하나님 더욱더 길을 여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먼저 우리가 변화될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이 말씀을 전가하며 그들도 하나님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넉넉하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가 전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오니 사랑하는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이 놀라운 진리의 말씀이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함께 합류하는 모든 목회자들의 심령 가운데 사랑하는 교회의 꿈을 아버지 그들도 함께 꾸고 같이 갈 수 있도록 하나님 그들의 심령이 새롭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교회의 흐름을 타며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 위의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는 목회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삼중사익의 중요성을 깨닫고 아버지 그들의 목회 현장 가운데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며 하나님 삼중사익을 감당할 수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람들로 일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 목회자 세미나 가운데 하나님 기로 모시고 주님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진성은 목사님과 성교팀을 주님 강력하게 붙잡아 주시옵소서. 항상 주님의 안전한 보호와 심각 주님 강근하게 하여 주시어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이룰 수 있는 성교팀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은혜위에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특별히 아버지 하나님 그곳에 부여된 하나님 외국인 신분증이 발급되는데 문제가 없게 하시고 조속히 빠르게 발급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사의 모든 절차와 모든 성교 복부가 설립되는데 차질없이 진행되어서 하나님의 뜻이 그곳 가운데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나님 은혜 위에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아버지 루안다치교회와 성도님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루안다치교회 모든 목회자분들을 성령으로 사로잡아 주시고, 주님 진리의 영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와 그 모든 억압과 빈박 속에서도 하나님 모의기를 절대로 패하지 않게 하시고, 날 받아 모여 서로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함께 기도하고 날마다 변화되고 성장, 성숙해져가는 루안다 지교회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오이다의 어두운 때에 더 부흥하고 성장하는 진정한 부흥이 하나님 그들의 심령 가운데 폭발하여 일어날 수 있도록 주의 성령님이 나로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그 땅에 하나님 모든 벅들이 개정되게 하시고 하나님 교회가 뻗어나오고 말씀을 향하게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모든 구원의 역사가 노안과 땅에서 더욱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주의 성령님 함께하시고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한 자들로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경건한 자들로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들었으니 하나님 우리가 그와 같이 생명의 자들로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뒤로 물러가 침면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이 말씀의 열매가 우리 각 사람에게 그 인생에게, 그리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소명을 섭취하는 것에 하나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 축복하시고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존경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교회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우리 교회 처음 오시거나 온라인 등록 후 참석하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예배 후 방송 안내를 따라 오른쪽 스크린 앞으로 나오시면 환영과 함께 교회 생활에 대해 친절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신기록 경신 안내입니다. 할렐루야! 지난주 28만 6천 811명이 추석하여 최고 인원이 경신되었습니다. 2024년 추석 사랑 나눔 보고입니다.
올해도 성도님들이 추석을 훈훈하게 지낼 수 있도록, 가정의 총수입이 200만원 미만인 2인 가정 362가정에 30만원씩, 총수입 100만원 미만인 1인 가정 414가정에 20만원씩, 총 776가정에 1억 9,140만원을 나누어 드렸습니다. 아프리카 선교 소식입니다. 18 20 방법을 몰라서 아버지, 낙마하고 절망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통해서 빛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희망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말씀대로 따라 행함으로써 승리케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승리케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내 감사해서 오늘도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렸습니다.
주일원금, 11조, 감사원금, 성경금, 각종 헌금을 주 앞에 올려드렸습니다. 영광받으시고 높임받아 주시옵소서. 예물 쓰이는 곳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뜻이 아버지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물 드린 성도인들을 예수님으로 축복합니다. 양손에 재물어들 능력을 부어 주시옵소서. 심은 도로 풍성하게 거두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브라함의 복을 부어 주시옵소서. 복의 근원들은 사명 감당할 수 있는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살아갈 때, 언제 죽음을 맞닥뜨리게 되든지 천국에 갈 수 있는 신앙인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 성도들이 다 천국 갈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우리들에게 성령 충만 주시옵소서. 성령의 내쪽 충만.
주셔서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하시고, 성령의 충만을 주셔서 성령의 은사들이 강력하게 나타나게 하시고, 아버지 하나님의 주님이 하신 일을 하고, 그보다 큰 일을 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시간에 병든 사람들을 기억해 주시옵소서. 병든 사람들을 만져 주시옵소서.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만져 주시고, 고쳐 주시옵소서. 주님, 지금 고쳐 주시옵소서.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고쳐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의 권세로 치유될지어다. 예수 이름의 권세로 치유될지어다. 예수 이름의 권세로 치유될지어다.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크고 작은 모든 질병들, 예수 이름의 권세로 지금 치유될지어다. 모든 귀신의 억압과 모든 악한 영들을 예수 이름으로 묶임 받고 떠나갈지어다. 예수 이름으로 자유케 될지어다.
예수 이름으로 자유케 될지어다. 예수님으로 자유케 될지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와 교제가 항상 차고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거룩한 줄 알며, 주님을 예배하고 돌아가는 사랑하는 성도들의 심령이 가족과 자녀와 사업이 번창하고, 서울 시민과 북녘당의 굶주린 동포들, 이스라엘과 아프리카와 열방들 위해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한글 자막 by 한효정, 감사합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