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24:1-9, 등잔불과 진설병의 규례, 18.3.7, 박홍섭 목사
24:1-9절은 성소 안의 등잔불과 진설병에 대한 규례입니다. 절기에 이어서 본문의 내용이 다루어지는 것이 성결법전의 흐름과 맞지 않아 보여 해석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앞에서 다루었던 절기가 주기적으로 지켜야 하는 시간이며, 등잔불과 진설병의 관리도 매일, 혹은 매주라는 주기적인 시간표가 있기에 이 둘을 시간과 연관하여 묶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절기가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가 성취한 은혜의 방편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오늘 본문도 그리스도를 내다보게 하는 규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감람을 찧어 만든 순결한 기름으로 계속 성소 안의 불을 밝혀두라고 하십니다(2절). 그리고 아론으로 하여금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등잔불을 정리하라고 하시죠(3-4절). 금 등대의 일곱 가지에 밝혀진 불을 제사장이 관리하라는 말씀입니다. 제사장 아론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이 불이 꺼지지 않도록 정리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불집게와 불똥 그릇 같은 기구를 가지고 기름이 타고 남은 재를 처리하고 심지를 교체하는 것 등이 거기에 해당되겠죠.
순결한 감람기름으로 켜서 성소를 밝혔던 등잔불은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요1:9)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소를 비추는 참 빛으로 오셔서 그를 믿는 자를 지성소에 계시는 빛이시며 어둠이 조금도 없는(요일1:5)하나님께로 인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자들은 참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 빛 되신 하나님께로 나아가 빛의 아들이 됩니다. 빛의 아들이 된 자들은 하나님이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빛 가운데 행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신약 성도들은 왕 같은 제사장인 동시에 빛의 아들들로 항상 자신에게 있는 생명의 빛이 꺼지지 않도록 정리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등잔대에서 성소를 비추는 빛은 그리스도인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신 말씀입니다.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 빛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이 그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곧 빛입니다. 시119: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등잔대의 불을 밝히는 순전한 감람기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슥4:1-6절입니다.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것 같더라.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잔대가 있는데 그 위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또 그 기름 그릇 위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기름 그릇 위에 있는 등잔을 위해서 일곱 관이 있고 그 등잔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한아는 그 기름 그릇 오른 쪽에 있고 하나는 그 왼쪽에 있나이다. 하고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까 하니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므로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금 등잔대를 밝히는 기름이 무엇이라고요? 하나님의 영, 곧 성령입니다.
정리해보십시오. 주의 백성들이 성소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지성소에 계시는 빛 되신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빛의 아들이 됩니다. 그리고 빛의 아들들로 빛 가운데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결법이죠. 빛 가운데 행하는 삶은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고 내 발의 등이 되고 내 길의 빛이 되는 말씀의 인도를 받는 삶입니다. 말씀이 지시하는 대로 사는 삶입니다. 그런데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빛 가운데 행하는 삶이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능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성령의 조명하심이 없으면 빛 되신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며, 깨닫는다 할지라도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말씀대로 행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오늘 등잔불의 규례가 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매일 성소를 비추는 등잔불의 빛을 관리하고 정리하는 제사장들입니다. 등잔불이 꺼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과 은혜가 사라지면 빛 가운데서 행할 수 없습니다. 산위의 동네가 될 수 없고 세상의 빛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 성령의 은혜로 빛 가운데서 행하는 삶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일까요? 요일2:9-10절입니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도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형제 사랑의 삶이 곧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자기 눈을 어둡게 하는 자라고 사도요한은 말합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의 두 번째 규례인 진설병 규례를 통해 더욱 분명해집니다(5-9). 하나님은 고운 가루를 사용해서 떡 열두 개를 굽되 각 덩이를 십 분의 이 에바로 구워서 한 줄에 여섯 개씩 두 줄로 안식일마다 떡 상에 진설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제사장과 그의 자손들이 그 전에 진설되어 있던 떡을 거룩한 곳에서 먹도록 해서 이 떡을 지극히 거룩한 떡으로 돌리도록 했습니다.
진설병은 히브리어로 ‘얼굴의 떡’이라는 뜻입니다. 얼굴이 함께 있다는 것은 당사자가 그 자리에 있다는 전형적인 히브리적인 표현입니다. 임재의 상징이죠. 그래서 영어성경은 진설병을 the bread of presence, 임재의 떡으로 번역합니다. 열 두 덩이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의미하므로 진설병은 자기 백성들과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진설병을 제사장이 먹게 하셨습니다. 얼굴의 떡으로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자신을 먹여서 자기 백성의 모든 필요를 채우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성소의 빛일 뿐 아니라 떡 상의 진설병입니다.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면서 자기를 떡으로 내어주시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눅22:19절에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생명의 떡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우리의 양식으로 내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그를 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를 믿고 예수를 먹고 영생을 얻으면 그리스도의 몸이 됩니다. 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빛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까? 그가 그리스도의 같은 몸이며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성결법전에 나오는 등잔불과 진설병의 규례는 주의 백성들이 절기의 주인공 되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어떻게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원리입니다. 등잔불을 꺼트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능력을 약하게 하는 찌꺼기 들을 그때그때 잘 처리하고 성령의 조명하심을 사모하면서 아침과 저녁으로 빛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의 정욕을 버리고 말씀이 지시하는 형제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매일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먹는 삶이기도 합니다. 등잔불을 꺼트리지 않도록 잘 정리하고 진설병이 되셔서 매번 우리를 먹이시는 주님을 잘 먹고 형제를 사랑하는 빛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