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고 소멸하는 것…본래실체 없어
<25> 증시랑에게 보내는 대혜선사의 답장 ③-4
[본문] 사람들에게 “굳게굳게 쉬고 또 쉬어라”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생각을 잊고 공적한 것을 지켜서 알음알이를 내는 것입니다. 푹 쉬어서 느낌도 없고 앎도 없는 곳에 이르면 마치 흙이나 나무나 기왓장이나 돌과 같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될 때를 당해서 캄캄하여 무지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또한 이것은 방편으로 속박을 풀어주는 말을 잘못 알아서 알음알이를 내는 것입니다.
[강설] 묵조선에서 그릇되게 지시하는 또 한 가지를 들어서 지적하였다. “굳게굳게 쉬고 또 쉬라(硬休去歇去)”라는 내용인데 사람들이 본래로 갖추고 있는 활발발한 의식 활동을 푹 쉬어버리는 것은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지는 것이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 공적한 경지는 살아있는 사람을 목석처럼 만드는 일이다. 살아있는 사람이 목석이 되는 것은 되지도 않는 일이지만 설사 목석처럼 된다하더라도 그것을 무엇에 쓸 것인가.
만약 집착하여 실체 삼으면
곧 생사의 마음 생기기 마련
[본문] 사람들에게 “인연을 따라 비춰보고 나쁜 지각이 앞에 나타나지 않게 하라”라고 하니 이것은 또한 촉루정식(髑髏情識)을 오인해서 알음알이를 내는 것입니다.
[강설] 역시 묵조선의 병폐를 지적하였다. 인도에서의 초기선관(初期禪觀)에서 행해지던 관법이 중국으로 넘어와서 간화선이 일어날 때까지 묵조선 속에서 함께 섞여서 전해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촉루정식(髑髏情識)이란 죽은 사람의 해골과 같은 의식이라는 말인데 무기식(無記識)을 뜻한다.
지각하는 작용이 나타나지 않게 한다는 것은 곧 의식이 싸늘하게 식어버려 해골과 같은 경지가 된 것이다. 초기선관에서는 관법으로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치 죽은 사람과 같은 삶을 수행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본문] 사람들에게 “다만 놓아두어 자유롭게 맡겨두고 마음이 나고 생각이 움직이는 것을 관계하지 말라.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소멸하는 것이 본래 실체가 없다. 만약 집착하여 실체를 삼으면 곧 생사의 마음이 생긴다”라고 하니 이것은 또한 자연의 본체를 지켜서 구경의 법을 삼아 알음알이를 내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모든 병들은 도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관계가 된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다 눈이 먼 종사들이 잘못 지시한 것을 말미암아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강설] 역시 묵조선의 병폐를 지적한 것인데 자연스런 인간의 의식의 흐름을 따르게 가르친 것이다. 모두가 도를 배우는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눈 먼 선지식들이 그릇되게 가르친 것이라고 하여 지도자들을 비판하였다.
[본문] 공이 이미 청정하게 살면서 일편단심 진실하고 견고한 도를 향한 그 한 마음만 남겨 두었으니 공부가 순일하든 순일하지 못하든 관계하지 말고 다만 고인의 언구(言句) 위에 마음대로(只管) 탑을 쌓는 사람과 같이 일층을 마치고 또 일층을 쌓듯이 하지 마십시오.
잘못 공부하면 마칠 기약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마음을 한 곳에만 두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시절인연이 이르러 오면 자연히 성을 쌓는 돌처럼, 맷돌이 서로 맞듯 척척 맞아서 문득 살펴가게 될 것입니다.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았을 때 또한 허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수미산이니라.”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방하착하라”라고 하였으니 여기에서 의심을 깨트리지 못하거든 다만 여기에서 참구하십시오. 달리 스스로 가지나 잎을 만들지는 마십시오.
만약 나 운문을 믿는다면 다만 이렇게만 참구하십시오. 별달리 불법으로서 사람을 지시하는 것은 없습니다. 만약 나를 믿지 않는다면 마음대로 강북 강남으로 돌아다니면서 선지식에게 물어서 의심하고 또 의심하기를 바랍니다.
[강설] 이 한편의 편지에서 대혜 선사가 묵조선을 배척하고 오로지 간화선만을 주창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자신을 믿는다면 수미산이나 방하착이라는 화두를 들고 참구하라는 내용이었다.
[출처 : 불교신문 2012.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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