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도 주말도 없이 남들보다 10배 더 열심히 일하면 당연히 업계에서 남들을 이길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10분의 1로 줄어든다.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이나 아침의 풍경을 바라볼 여유, 삶을 돌아보며 추억을 상기하고 사랑할 시간도 줄어들 것이다.
성공이 마냥 나쁜 건 아니지만 그 누군가에게는 더 소중한 가치들을 가리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되어 기차 밖의 풍경 따위는 쳐다보지도 못하게 하고, 마주 앉은 사람의 얼굴조차 잊게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 - 정지우 작가, 변호사(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5077787?lfrom=facebook&fbclid=IwAR28h7pX4JKjkJ4rwaL520pKx5qgWNnMkYB6X62TngTSVf-sJa47__xLHZA)
정지우 작가는 로스쿨 시절 페이스북을 통해 우연히 접하면서 많은 위로를 받은 작가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라는 책을 깊이 공감하며 읽었고, 거의 매일 같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데 글 하나하나 삶에 대한 통찰력을 주었다(나중에 알고보니 나와 로스쿨 같은 기수였고, 똑같이 변호사시험을 준비했는데 매일 같이 에세이 한편씩 쓰는걸 보며 보통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지우는 위의 인용한 것과 같은 주제의 글을 많이 쓰곤 했다. 난 어린시절부터 이유모를 열등감에 시달리며 누구보다 나를 더 채찍질하는 사람이었는데 위와 같은 메시지는 나에게 그렇게 채찍질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해주곤 했다.
SFC나 아름다운마을공동체를 통해 20대 때 내가 받았던 인상도 비슷했고, 20대 때는 보다 덜 경쟁적인 삶을 살려고 했던 것 같다. 사회학을 단일전공으로 선택할 때나, 로스쿨의 서열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준비하려 할 때, 로스쿨에서 실무수습을 지원하고 졸업 후 취업을 하려 할 때도 같은 맥락에서 선택해왔다. 나는 내가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며, 많은 돈을 벌지 않더라도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다. 상품과 서비스가 주는 효용이 아니라 일이주는 보람과 관계에서 오는 애정을 원했던 것 같다.
니체는 그런 내게 '소극적 행복'을 추구하는 '왜소화된 인간'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사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BMW를 타고 싶었다. 중학생 때 드림카도 BMW 였고, 다양한 자동차 게임을 하며 가상현실에서 욕망을 충족시키곤 했다. 니체는 나에게 적극적으로 BMW를 추구하라고, 아니 더 나아가 포르쉐, 페라리, 벤틀리를 추구하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사실 그런 것들을 욕망하는데 따르는 고통이 두려워서 피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가족과의 시간 따위 그냥 다 핑계고 합리화 아니냐고(평생을 저녁없이 살아왔는데, 갑자기 저녁이 생긴다고 가족과 시간을 보낼까?). 사탄의 소리인줄로만 알았는데 어제는 나에게 진리의 소리처럼 다가와 혼란스러웠다. 유혹이 아니라 한숨섞인 비난으로 다가왔다(강사의 잘못은 물론 아니다). 나는 유혹에는 강하지만, 비난에는 취약하다.
니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타자에 의해 주입된 보편적 가치를 따르는 노예의 삶'을 부정하고, '스스로 세계를 긍정하고 해석하여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창조'해가는 삶을 살라는 것으로 보인다. 포르쉐를 추구하는 삶이 타자에 의해 주입된 보편적 가치일 수 있고, 오히려 이를 추구하며 사는 삶이 니체가 부정하는 노예의 삶일 수도 있겠다. 내게 있어 '일이 주는 보람과 관계에서 오는 애정을 추구하는 삶'이 스스로 세계를 긍정하고 해석한 삶의 의미라면 아반떼에 자족하더라도 힘을 추구하는 삶일 수도 있겠다. 니체가 말하는 힘이 자본은 아닐 것이다.
첫댓글 힘이란 분명 자본은 아닙니다. 자본 또한 힘을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니체는 당신에게 돈을 더 벌어라, 더 비싼 차를 소유하라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당신이 바라는 삶을 살라고, 다른 어떠한 사람의 소리도 그 삶을 추구하는 당신을 방해하도록 두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