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차량은 차가 커서인지 감속음과 구동음도 크더라고요. '띠~ 왜애애애애앵~ 위이이이잉~'... 그차가 떠날 때쯤 대곡행 지하철이 막 들어오고... '떠러렁 떠러렁 떠러렁 떠러렁' 하는 차임벨 소리가 담긴 안내방송과 함께 전동차가 들어옵니다. 제가 탄 칸에는 휠체어를 탄 승객분도 반대편 출입문 쪽에 서 있더군요.
노선도를 둘러보던 중, 저는 이 전동차가 중앙로역에도 정차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1년 전 그 엄청난 참사를 겪었던 중앙로역이 지금은 어떻게 변해 있을지... 수많은 역에서 승객들을 태운 전동차는 드디어 중앙로역에 도착합니다. 화염과 어둠에 휩싸여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었던 중앙로역, 승객들의 비명과 아우성이 맴돌던 중앙로역... 온 국민들의 가슴을 울렸던 그날의 상처를 지우고, 중앙로역은 새로 단장된 모습으로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폐허가 된 승강장을 무정차 통과하던 지하철도, 지금은 승차장에서 승객들과 만나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서부정류장... 전 노트에 적은 내용을 따라 서부정류장이 있는 곳으로 나갔습니다. 지하도를 나와 뒤를 돌아보니 정류장 건물과 시외버스들이 보이더군요. 전북고속과 아림고속, 경전여객, 경남버스를 닮은 도색을 한 거창고속과 (주)진안/광안... 그리고 천일/고려여객... 아, 천일/고려여객은 대부분 대구-마산과 대구-창녕, 부곡, 김해, 그리고 서부산 노선이 대부분이더라고요. 이따금씩 보이는 939도 전부 창녕과 부곡, 김해로 들어가는 차량들이었고...
서부정류장 - 해인사는 직통노선과 고령경유 해인사 노선으로 나눠지죠. 제가 탄 차량은 서부정류장에서 고령과 거창, 가야 등을 경유해 해인사로 들어가는 버스였고요. 진안의 Q엔진 그린필드였습니다. 옆에는 진주행 천일여객 939가 서 있군요. 뒤이어 올라탄 사람들로 차내는 어느새 소란스러워지고... 2시쯤에 차는 출발합니다.
시내를 통과해 고령 시외버스터미널과 거창, 가야 등을 경유해 해인사에 도착했을 때는 3시가 훨씬 넘어 있었죠. 기사아저씨는 구불구불 뻗은 도로를 조심스럽게 올라가셨고요. 이때까지 뒷자리에 앉아 있던 전 도로의 풍경을 구경하기 위해 앞자리로 나왔죠. 마침 옆자리에 앉아 있던 모녀도 저와 같은 곳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타고 있더군요. 아스팔트를 지나 자갈이 깔린 비포장도로를 지나 다시 아스팔트를 타고 올라오기를 20분, 기사아저씨는 가게들이 밀집한 곳에 차를 세우며 '큰절(해인사)올라가실 분들은 여기서 내리세요.' 라고 안내방송을 하셨죠. 기사아저씨에게 승차권을 드리고 인사를 한 뒤 내렸습니다.
시간이 많이 늦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천천히 둘러보기로 마음먹고 긴 산책로를 걸어 해인사 경내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해인사를 찾았더군요. 전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는 팔만대장경을 먼저 보기 위해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팔만대장경은 고려 고종 23년에 시작하여 고종 38년에 완성한 세계 최고의 목판본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강화도 선원사에 보관되어 있다가, 후에 서울 근교 지천사로 잠시 자리를 옮긴 후 1398년에 해인사로 봉인하였죠. 고려 고종 23년에 시작해 고종 38년에 완성한 세계 최고의 목판본 팔만대장경. 1236년에 침입한 몽고군을 격퇴하고, 민족의 일체성과 국민의 대화합을 염원하는 의미에서 이 대장경을 판각, 16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81, 340여장의 긴 대장경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장경판전을 둘러보는 동안, 전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동시에 이 거대한 기록을 만들어 낸 선조들의 정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장경판전을 나와 마지막으로 둘러본 곳은 대적광전이었습니다. 해인사의 큰 법당으로서 창건당시에는 비로전이라는 명칭으로 사용되다가, 1490년 '대적광전'으로 당호를 고친 것이죠. 대적광전의 의미는 '비로자나불이 대적광토에 머물면서 시공을 초월하여 화엄경을 말씀하신다.'는 뜻이죠. 대적광전 내에는 여러 사람들이 부처님을 향해 절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 사람들을 따라 3배를 올리고 대적광전을 나왔습니다.
해인사에서 머물고 다시 내려 온 시간은 5시 15분... 조금 있으면 해가 지겠구나 싶은 생각에 얼른 동대구행 표를 끊고 차를 기다렸습니다. 10분 후에 동대구행 차량이 저 멀리서 내려오더군요. 구형 에어로 스페이스 LD였습니다. 승객은 위에서부터 타고 내려 온 여자승객 1명 뿐... 차에 올라 오늘의 일과를 정리하던 전 피로와 바깥 공기에 지친 몸이 녹으면서 슬슬 잠이 쏟아졌습니다. 나중에 깨어보니 고속도로더군요.
주말 나들이 차량이 몰린 탓인지 고속도로는 상당한 정체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산행 막차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으니까... 그리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속도로를 가까스로 빠져나온 버스는 어둑어둑한 대구시내를 달려 정류장으로 들어섰습니다. 대부분의 차량이 운행을 끝내고 잠들어 있더군요.
싸한 바깥 공기를 몸으로 느끼며, 전 후닥닥 지하철역으로 들어가 자동발매기로 표를 사고 안심행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집에서 가져 온 책을 꺼내 읽는 사이 지하철은 어느덧 동대구역에 도착했고, 이때쯤 전 슬슬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녁을 먹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고, 잠시 후면 출발할 부산행 일반고속 막차 시간도 촉박했습니다. 으으윽... 아까 고속도로에서의 정체만 없었다면 남은 시간 동안 뭐라도 먹을 수 있었을 텐데...ㅠ_ㅠ
허기를 참아가며 동양고속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7시 55분. 승차장에는 천일고속 구형 블루스카이가 기다리고 있더군요. 이 차 역시 돌베개였습니다. 표를 끊고 음료수 하나만을 달랑 사서 차에 올랐습니다. 8시 10분에 차는 출발. 동양고속 선샤인과 함께 터미널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로 들어선 차는 본격적으로 속도를 냅니다.
건너편으로 7500호대 기관차가 끄는 화물열차도 지나가는군요. 부산까지 대략적인 소요시간은 2시간 남짓... 저는 차내 조명등에 의지해 아까 읽던 책을 마저 읽어 내려갔고요. 한참을 조명등에 의지해 읽다가, 눈에 무리가 오겠다 싶어서 조명등을 끄고 다시 바깥 풍경에 집중했습니다. 기사님은 간간이 속도를 높이시더군요.
나중에는 좀 무섭게도 달리시고...ㅡㅡ;; 왠지 마징가제트가 떠오르더군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마징가제트...ㅡㅡ;; 한참을 달리던 중 밖을 내다보니, ㅇㅈ고속관광 소속의 관광버스가 옆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더군요. 그런데 그 버스의 뒷좌석은 소파 형식으로 개조가 되어 있었고, 차에 탄 사람들 대부분은 노래를 부르거나 서서 춤을 추고 있더군요.ㅡㅡ^
부산이 점점 가까워져 옵니다.
한밤의 노포동터미널도 도로 아래로 보이기 시작하고... 두실에서 승객들을 잠시 하차시킨 기사님은 마지막 힘을 다해 노포동터미널로 들어섰습니다. 어둠이 내린 터미널의 풍경... 인상 깊더군요. 잠바와 가방을 챙겨 기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나른한 몸을 이끌고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나가 차를 기다렸습니다.
집에 전화를 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냥 저 혼차 타고 가는 게 낫겠다 싶어서 무작정 차를 기다렸습니다. 50번과 2000번 로얄시티가 잠시 왔다 가고, 그 뒤를 이어 푸른교통 2100번 로얄이코노미와 301번 신차 동글이 슈퍼에어로도 오더군요.
올해로 두 번째 탑승입니다.
몸은 피곤하지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여행, 어릴 적 감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여행... 그렇게 성취감과 피로감을 동시에 안고, 저는 집으로 귀가했습니다.
첫댓글 거창을 경유하여 해인사로 가는 차가 있었나요? 묘산 못가서 해인사 올라가는 길로 빠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