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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해방의 날을 기억시킨 하나님(2041.2020.8.16.) \사 43:4-7
할렐루야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힘을 얻는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치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옆사람과 옆에 앉아 영광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인, 일본인, 한국인 셋이 자유 우방이라고 사이좋게 아마존을 탐험을 하였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원주민들이 나타나 잡아갔답니다. 그들은 살려달라고 외치자 마음대로 영토를 침범했으니까 곤장 100대를 때리고 견디는 자는 살려주겠다고 했답니다. 그냥 맞으면 다 죽으니까 원하는 것을 엉덩이 위에 올려놓고 맞게 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답니다. 먼저 미국인에게 곤장을 치면서 원하는 것을 물었답니다. 그러자 엉덩이 위에 매트리스 10장을 깔아달라고 했답니다. 70대쯤 때리자 매트리스가 다 찢어져 나머지 30여 대를 고스란히 맞았답니다. 다 맞고 나서 그 미국인은 ‘역시 난 창조성이 뛰어난 민족이야’라고 말했답니다.
일본인 차례가 되었는데 미국인을 보고 일본인은 방석 100장을 올려놓아 달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100대를 맞고도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답니다. 일본인은 ‘역시 난 모방성이 뛰어난 민족이야’라고 말했답니다. 정말 얄미운 놈들입니다. 이걸 그냥 둘 한국 사람이 아니지요. 이제 드디어 꾀 많은 한국인 차례가 되었답니다. 추장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답니다. 미국은 메트리스 10개, 일본은 방석 100개, 한국인이 말하기를 뭐가 필요하다고 했겠습니까? 추장님 ‘저 일본놈을 자기 엉덩이 위에 올려놓고 때리라고’했답니다. ㅎㅎㅎ
세계 많은 사람들이 일본사람들을 무시하지 않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놈이라고 무시합니다. 일제를 체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2/3이상이 되는데도 학습되어 일본을 왠지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축구를 해도 일본은 이겨야 속이 시원합니다. 36년간 일제로부터 삼천리 반도가 강점당하고 정치적 자유와 주권을 잃고 수난을 당한 민족적 감정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제가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지 75주년이 되는 광복절입니다. 그동안 우리민족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정치 민주화를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정치적으로 해방은 되었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 일본으로부터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일본 무역 의존도가 22.3%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수출로 아무리 흑자가 나도 일본에게는 대일 무역적자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부품, 소재, 기계류 등 자본재의 대일 의존도가 높습니다. 요즈음 한류가 일본에 불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문화의존도도 만만치 않습니다. 일제 잔재가 전국 문화 전반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일본만화가 청소년들의 마음을 휘어잡고 있습니다.
정치적 자유는 어떻습니까? 지금도 독도를 자기 땅이라 주장합니다. 갖는 수모를 겪으셨던 정신대 할머니들 지금도 데모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자신을 구속하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참 자유를 누리를 기원합니다. 미국의 헨리는 ‘내게 자유를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주시오’라고 외쳤을 정도입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4대 자유 즉, 어디서나 말할 수 있는 자유, 어디서나 예배할 수 있는 자유, 어디서나 결핍으로부터 해방 받을 자유, 어디서나 공포로부터 보장 받을 자유를 외쳤습니다.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이한지 금년이 75년째 되는 해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 중에는 그때의 기억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당시의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극소수의 사람들뿐입니다. 그래서 지금 소위 신세대라고 하는 젊은이들은 당시의 쓰라린 역사나 해방의 감격을 알 수가 없습니다. 당시 우리민족은 일본의 압제 하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였습니다. 땅을 잃고, 말과 글을 잃고, 이름까지 빼앗기고, 온갖 자유를 잃고, 이 땅의 모든 자원을 빼앗겼습니다.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오는 수많은 문화재를 강탈당하였습니다.
청년들은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끌려가고 젊은 여자들과 처녀들은 정신대로 끌려가서 군인들의 위안부 노릇을 하였습니다. 나이가 들은 남자들은 징용으로 끌려가서 북해도 탄광에서 짐승만도 못한 생활 속에서 석탄을 캐다가 이름 없이 죽어갔습니다. 나이 많은 늙은이들만이 남아서 인권도 생존권도 짖밟힌채 먹을 만한 식량은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모조리 빼앗아 가고 심지어 밥그릇 숟가락까지 빼앗아 갔습니다. 교회당의 종까지 떼어갔습니다. 어린아이들까지 동원을 하여 소나무의 관솔을 따게 하였으며 짐승도 먹지 못할 꽁깨묵을 식량이라고 배급을 주었습니다.
신앙의 자유는 말할 것도 없이 신사참배를 강요하여 이에 반대하면 가차 없이 끌어다가 갖은 고문을 하고 급기야는 처단을 하고 말았습니다. 일제 36년 간 우리나라에서 죽은 사람과 실종된 사람의 숫자는 천문학적인 숫자입니다. 재산피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놈들은 지금도 독도가 자기들의 땅이라고 억지를 쓰고 있고 자기들이 한 행동은 결코 침략이 아니라고 망언을 일삼고 있습니다. 광복 75주년을 맞이하는 이때에 우리들은 다시 한 번 그 날의 감격을 되새기면서 이 광복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고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이 땅위에서 사라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세계 어느 민족이든지 뼈저린 전쟁의 수난을 겪어보지 않은 민족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어느 대학의 역사학 교수는 우리나라가 외침을 받은 것이 93회라고 하는 분도 있고 300번이 넘는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지나간 역사가 얼마나 고통과 괴롬의 치욕의 역사였나를 생각하게 하며 한편으로는 왜 우리 한민족은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수많은 수난을 겪어야만 하는 무능한 민족이 되었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8.15 광복은 우리 민족사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며 또한 잊어서도 안 될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기념되어야 할 날입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일제 36년간의 압제와 온갖 수난과 치욕의 굴레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기적은 바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이 민족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의 유월절을 영원한 규례로 정하여 대대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 이스라엘의 놀라운 기적의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 자신들이 이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관하여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8.15 해방의 날을 영원히 기념하면서 이는 하나님이 이 민족을 긍휼히 여기사 베풀어주신 은혜임을 기억하고 나라와 민족의 자유와 해방을 얻기 위하여 피 흘려 항쟁한 수많은 독립투사들과 숨은 애국자들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성경의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도 전쟁으로 얼룩진 수난의 역사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두 번의 해방을 맞이하였는데 첫째는, 야곱의 아들 요셉을 선두로 하여 일가족 70명이 애굽에 들어간 지 430년 만에 200만 명의 인구가 대탈출을 하는 출애굽의 역사요. 또 하나는 BC586년에 남쪽 유다나라가 바벨론에게 망하여 포로로 끌려간 지 70년 만에 파사왕 고레스가 해방을 선포함으로 고향에 돌아오는 역사입니다.
우리나라도 8.15 해방이 된 후 세계 각처에 흩어졌던 민족이 정든 고향산천을 찾아 돌아왔습니다. 물론 그때에 돌아오지 못하고 사할린이나 북해도 또는 동북아시아 등지에서 고국을 그리면서 살아가는 우리 민족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8.15 해방이 되어서 수많은 우리 동포가 돌아올 때 우리 민족의 감정을 잘 나타낸 ‘귀국선’ 이란 노래가 당시에 유행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유대 민족이 B.C586년 바벧론에 잡혀가서 70년동안 포로생활 하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고레스왕에 의하여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올때, 너무 기뻐서 해방의 감격을 노래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때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에게 자유는 죽음보다 강합니다.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지켜오는 유월절과 오늘의 우리가 지키는 광복절과는 성서적으로 어떤 연관성이 있으며 또 오늘의 우리들은 이 시점에서 어떻게 이 광복절을 맞이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은혜 받고자 합니다.
1.우리가 누릴 수 있는 참 해방, 참 자유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에서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옛날 옛날에 우리는 애굽의 노예였었다’라는 말이랍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갈 때부터, 민족교육, 민족의식을 강하게 심어주는 모양입니다. 이스라엘이 우리나라 보다 작은 나라인데도, 그래도 유럽하고 아랍의 강대국 사이에 끼어서도 큰 소리하면서 살아가는 이유는 뭐냐?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민족교육을 시켰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을 잊지 말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신6:12-13).
이스라엘 민족은 이 역사의 신기원을 교육적인 종교행사로 구별하여 절기로 지키면서 그들의 신앙과 생활의 근간을 삼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사건이 있었기에 그들에게는 어느 때나 희망이 있었고 삶의 용기와 기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70년의 유랑생활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민족의 혼을 지키고 제2의 해방을 맞은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구출해 주신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부귀와 영화를 누릴 때도 이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고 교만에 빠지지 않고 율법을 지키며 이웃에게 선을 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지난날을 잊지 않고 그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75년 전, 1945년 8월 15일에 하나님은 우리민족에게 ‘해방’이라는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일제 강점시기에 우리 민족과 교회가 겪어야 했던 고난과 아픔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 날의 감격과 기쁨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역사를 살펴보면, 한 민족이 어떤 신앙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민족의 정신세계와 그 운명이 결정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은 유교라는 종교의 바탕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중국의 민족정신은 공자와 맹자의 도인 유교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인도인들은 힌두교라는 토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피 속에는 힌두교가 흐르고 있습니다. 베트남과 스리랑카와 태국과 미얀마, 캄보디아는 불교권의 나라입니다. 이천년 동안 이어온 불교라는 나무에 맺힌 열매들입니다. 아랍과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슬람권입니다. 그들의 문화는 이슬람 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차이는 여호와 신앙과 알라 신앙의 차이입니다. 영국의 품위와 일본의 품위의 차이는 그 지성이나 경제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사상과 비기독교적인 사상의 차이에서 찾아야 합니다. 높은 인격적인 자아는 높은 인격적인 신관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서민들의 피 속에 기독교 신앙이 흐르고 있는 독일이나 영국, 북구라파의 나라들에서 민주주의가 꽃피고, 현대과학이 나왔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많은 학자들은 미국정신의 뿌리는 청교도 신앙과 서부 개척정신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신앙위에 미국이 세워졌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화폐인 달러에 보면 ‘In God we trust’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미국의 경제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어제가 일제로부터 해방을 받은지 75주년이 되는 8.15 광복절을 맞이하였습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6년 동안 삼천리강산 2천만 민족을 몽땅 통째로 삼킨 지 날짜로 계산해서 12,771일 만에 일본은 한국을 토해냈습니다. 그것이 해방이고, 그것이 8.15입니다. 12,771일 동안 그 사람들이 우리 한민족을 얼마나 짓밟았는지 모릅니다. 그걸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던 중 1945년 8월 6일에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습니다. 20만명이 몰사하였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8월 15일 무조건 항복하였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
일본은 8월 17일 한국의 애국지사, 교육계 지도자, 종교계 지도자, 정계 지도자 20만 명을 죽이려고 명단을 가지고 준비 중에 있었습니다. 소름끼치는 일입니다. 그러나 도리어 자기들이 20만 명이 죽었습니다.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결론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였습니다. 모든 것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만행을 용납지 않으시고 역사상 처음으로 1945년 8월 6일 아침 9시 15분 일본의 히로시마, 나가사끼 하늘에 B29 미국 비행기가 나타나 원자폭탄 3개를 투하시키는, 크고 무서운 채찍으로 징계하사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누가 이 오만불손하던 일본의 천황의 목소리를 이렇게 낮아지게 만들었으며 떨리게 만들었는가? 공의의 통치 자되시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운행하시는 분이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시146:6-7절‘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압박 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시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일본의 압제로부터 해방을 주신 8.15 광복절이 만물을 지으시고 세계를 공의로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로 알고 이 시간 뜨거운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75년 전에 자유를 찾았습니다. 그 날은 더 바랄 수 없을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온 국민들이 밖으로 나와 만세를 부르며 신나게 즐겼다고 합니다. 36년 만에 찾은 해방의 자유입니다. 이 은혜, 이 자유, 이 독립을 감사하고 귀히 여기면서 이 복을 누리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① 하나님만 섬기고, 그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945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1947년 8월 15일에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습니다. 우리나라는 36년간 일본 식민지 통치를 경험한 반면, 인도는 무려 200년간이나 영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그마치 1900년을 나라 없이 떠돌아다니는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서기 70년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과, 135년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이스라엘 영내 모든 유대인 추방령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나라 잃은 백성으로 로마 제국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900년 동안을 살아오다가 2차 대전이 한창일 무렵,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 시오니즘 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이런 민족주의 운동을 통하여 유대 민족지도자인 벤구리온(David Ben-Gurion 1886~1973)은 마침내 우리나라가 정부를 수립한 해인 1948년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건설하였고, 유대인들은 1900여 년 동안의 나라 없는 설움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이스라엘의 독립은 바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굳건한 믿음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벤구리온은 텔아비브에서 국가 수립을 선포할 때 성경 아모스서를 낭독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나라를 수립케 된 것이 옛 예언자들의 예언의 성취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400여 년 간 종살이를 했고, 무려 1900년 동안이나 나라 없이 세계를 이리저리 방황한 민족이 확고한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한 나라를 이루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이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조차도 약속한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죽음의 순간에서도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 되는 비결이 오늘 우리가 신28:1절‘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는 것처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민족이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 사사시대의 기록을 통해서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불손종하고 하나님을 떠나면 망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면 잘 사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② 남을 배려하고 악을 배격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날을 맞으면서 우리 민족 모두가 해방의 기쁨을 누리기보다 마음이 답답한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일제 36년으로부터 해방이 된지 벌써 75 년이 되어 감에도 아직도 남북이 양단된 채 통일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아픔 때문입니다. 아니, 전 세계의 공산주의가 무너짐으로 종주국이었던 러시아나 중국 같은 나라들도 이제는 자유의 물결이 점점 강하게 번져가고 있는 판이 아닙니까?
그런데 유독 북한만은 75년 이상의 무서운 독재체재 하에서 굶주림을 이기지 못한 백성들이 탈북하여 중국이나 베트남, 태국 같은 나라에서 거지나 창녀 꼴이 되어 떠도는 신세가 되고 있으니 같은 민족으로 개탄을 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최근 뉴스에 들으니 중국도 이제는 탈북자들이 너무나 골치가 아픈 탓인지, 매주 100명 가량을 체포하여 북한에 강제 송환시키고 있으며 탈북자들은 송환되면 투옥과 고문, 심지어 사형까지 감수해야 하는 처지라고 합니다.
세상에 이런 한심한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 나라가 바로 우리 동족이라니, 세계 앞에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지금 남북한이 똘똘 뭉쳐도 살까 말까하는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사실, 한반도는 역사상 가장 침략성이 강한 중국, 일본, 러시아 틈바구니에 끼어 있습니다. 그 세 국가는 언제라도 한반도에 약한 틈이 생기면 자기들의 땅으로 만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요즈음 중국을 보십시오. 너무나 분명한 고구려 역사조차 왜곡하려고 획책하고 있고 일본은 독도는 자기들 땅이라는 주장을 전혀 굽히지 않으면서 이제 군사력을 점점 높이고 있습니다. 그나마 가장 믿고 있는 미국도 이제 점점 자국 이기주의에 빠짐으로 믿을 수 없는 나라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에서 남한 만이라고 정신을 차리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남한도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국사회가 당면한 위기갈등이 무엇입니까? 지역 간의 갈등입니다. 남북이 양단 되어 있는 것도 너무나 부끄러운 데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동은 야당, 서는 여당으로 확연히 갈라지는 현상이 보였고 지금도 사안마다 의견이 갈라진 채 서로 비방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념과 세대 간의 갈등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면 보수 측과 진보 측의 갈등입니다. 마치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의 대결장처럼 보입니다. 사실, 민주화가 이룩되고 세 명의 문민 대통령을 배출한 현 시점에서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문제의 기준은 애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민주와 반민주’, ‘독재와 반독재’의 이분법은 무너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온 나라가 이러한 갈등이 노골적으로 표출됨으로 상처투성이가 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왜 나라가 이 꼴이 되었습니까? 우리 이제는 나와 다른 생각과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민족의 백년대계를 이룩하는 교육이 오직 학벌주의, 출세주의로 일관할 뿐, 정신과 도덕교육을 소홀히 함으로 민족정신이 황폐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오늘 한국사회는 어떻습니까? 물질은 선진국 못지 않게 풍부함으로 흥청망청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나, 정신면이나 도덕면에서는 너무나 황페하고 온 사회는 탐욕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백성들이 육적 본능만 능해짐으로 물질욕, 음란욕, 폭력으로 깊이 병든 사회로 퇴화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나쁜 것들은 1위국이 되었습니다. 교통사고율 1위국, OECD 국가 중에 1인당 술 소비량 1위국, 청소년 흡연율 세계 1위,‘주간한국’에 발표한 바에 의하면 이혼율 47%로 OECD 국가 중에 2위국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정치적인 부정부패를 통계를 내도 1위를 놓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니, 아무리 정치가 부패해도 차떼기로 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물질만능주의로 일관되게 나간 결과 이 모양 이 꼴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국가에 대해 육신적인 관점에서 보지 말고 영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육신의 욕망을 따라 보지 말고 영적인 사명을 따라 보아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나라, 이 민족이 어떤 나라를 되기를 원해야 합니까?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성도 하나하나가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고, 이 사회에서 악과 불의를 배격하는 단호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③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암담한 한국이란 사회가 사는 길은 무엇입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런 때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한국 교인들은 진정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변의 대국을 보나 북한을 보나 국내 상황을 보나 희망이 보이는 곳이 별로 없는 이 암담한 상황에서 우리가 바라볼 곳은 하나님뿐입니다. 우리나라가 침략성이 가장 강한 강대국 틈에 끼어서 말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극복해 온 것이나, 그리고 이만큼이라도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 면적은 22만 ㎢인데 비해 중국이라는 나라의 면적은 960만 ㎢입니다. 우리나라에 비해 거의 43배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5천년 역사 중에 중국은 요 작은 반도 따위야 얼마나 차지하기 쉬웠습니까? 일본은 36년동안 통치했으므로 얼마든지 자기 속국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기적가운데 5천년 동안 하나님의 강력하신 도우심 때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 북한에 의해 적화통일 될 뻔한 위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6․25사변 때는 부산 지역만 남기고 모두 공산치하가 되었을 때, 미국의 방어선에서 한국과 대만이 제외되어 있었기에 2-3일이면 적화통일이 될 절대위기였습니다. 그 때 일본에 있던 맥아더 장군이 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쟁터에 뛰어 들므로 절대위기를 막을 수 있었고 16개국의 유엔국이 참전한 것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6․25 사변 이후에도 남침의 위기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4․19 혁명시 국내의 대혼란, 1964년 한일국교반대에 대한 6․3사태, 1971년도 김신조 사건 시, 70년대 중반 미국의 월남전 패망 시, 1979년 박대통령의 시해사건, 북한은 남침용 땅굴을 파놓을 정도로 완벽한 전쟁준비를 다했지만 결국 그 좋은 기회를 다 놓치고 만 것은 하나님이 막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당이나 땅굴, 그리고 기도원에서 금식하며 철야하면서 눈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였던 수십만 혹은 수백만의 성도들의 호소를 들으시고 이 민족을 위기 때마다 지금까지 지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우리 성도들의 기도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막으시면 열 자가 없고 하나님이 지키지 않으시면 최첨단의 무기를 가진 미군이라도 패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민족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했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전세를 좌우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나라일수록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난국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가장 시급히 할 일은 기도하는 것이요, 우리 민족이 그 동안 물질과 탐욕의 우상을 바라보고 산 죄를 대신 회개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기도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설 때에 하나님은 이 민족을 지키시고 어떠한 상황들을 거두어 주시고 세계 앞에 영적 선진국, 영적 제사장 나라로 우뚝 세우시는 날이 올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8.15 해방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① 해방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43:4-7절에‘내가’라는 말이 유난히 많이 나타납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등입니다. 이 말은 해방의 주체가 하나님이신 것을 하나님이 확인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해방이 있습니다. 해방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왜 하나님이 해방하십니까? 하나님은 해방자이십니다. 반면에 죄는 방해자입니다. 성경은 이 곳 외에도 여러 곳에서 ‘내가 하리라’, ‘내 손에서 너희가 하나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해방의 주체가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둘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주체도 하나님이십니다. 헬무트 틸리케는 ‘역사의 축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주인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설명합니다. 눅4:18절‘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으로 자유하게 하는 이것이 하나님이 이 역사 속에 직접 들어오신 이유입니다. 새는 공중에서 자유를 누리지만 물속에서는 죽습니다. 고기는 물속에서 자유를 누리지만 모래위에서는 죽습니다.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지만 하나님 밖에서는 죽습니다. 죄와 더불어 살면 자유가 없습니다. 이미 죄의 종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고 그 질서 안에 참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질서를 알고 자유를 압니다. 우리가 참 자유를 누리려면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해주시기를 원하지 말고 옳은 일을 해주시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의 자유와 하나님의 자유를 동시에 둘 다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내 영혼이 자유할 때만이 영원한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란 하나님 안의 거룩한 부담감이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부여하신 하나님은 그와 동시에 자유를 부여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② 해방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사43:4절‘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해방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보배롭고, 존귀하게’라는 말도 사랑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보낸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면 절대로 보내지 않아요. 몸은 보내도 마음은 보내지 못해요. 사랑이란 나에게서 해방이 아니라, 나와 하나 되기 위한 다른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손에서, 죄로부터 해방하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세계적 정황은 주변국의 시달림이 끊임없는 것이 이스라엘의 당시 형편이었습니다. 주변의 강대국인 애굽, 앗수르, 로마, 불레셋 등은 쉴 새 없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침범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라고 하십니다. 무슨 까닭에 그렇게 하시지요?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이 이유였습니다. 사랑이 이스라엘을 해방하고 구하신 하나님 편의 이유였습니다. 정말 ‘사랑이 뭐길래’입니다. 이런 말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받는 민족이 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랑받으면 끝납니다. 하나님이 끝내 주십니다. 우리 민족의 살 길은 주변국이나 강대국들의 도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아기들처럼 예쁜 짓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예쁜 짓 많이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합니까?
지난날의 해방의 역사를 보세요. 일본은 교만이 극도에 달해 무모한 진주만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 일로 미국을 태평양 전쟁에 끌어들였습니다. 미국은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을 투하하였고 일본은 무조건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해방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독립투사들이나, 교회의 역할이나, 선교사들의 공이나, 국제적 도움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 필요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결정적 계기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품안에서 살 때에 비로소 해방이 있고, 자유가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자유를 버릴 때 비로소 자유함이 있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홍수로 모든 생물이 다 죽었지만 방주 안은 자유하고 평안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품입니다.
요한일서 4:8에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렘31:3절‘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고로’ 하나님은 사랑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시기에 해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랑받으며 해방과 자유를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어려움을 당해야 하나님의 사랑을 더 크게 체험하게 됩니다. 사랑으로 똘똘 뭉친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믿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의심치 말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③ 해방은 하나님의 지으심 때문입니다.
7절‘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창조한 자라고 합니다. 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같은 의미의 세 단어가 반복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조성, 완성의 세 단계 의미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지으심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마다 좋으시다면 하나님은 절로 보호하시고, 해방하시고, 자유를 주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고전7:22절‘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은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자유함 가운데서 자유를 얻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고 일치하고 단결하여 이제는 완전한 국토, 국론의 통일로 나아가는 우리 민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해방이 주는 기쁨의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여러분, 작품 중 명작은 좋은 환경에서 커피 마시며 콧노래를 부르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향이 짙은 향수는 발칸산맥 최정상 꼭대기에서 새벽 2시에 핀 장미꽃에서 추출한다고 합니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고열로 보름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 누워있던 중에 작곡한 것이라고 합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도 옥중에서 수난을 당하고 고난을 겪는 중에 만들어졌습니다. 시126:1-6절은 과거의 뼈저린 삶에서 용해된 언어로 표현된 그런 감격의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도 36년간 그 심정으로 참고 인내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때는 인권이나 자존심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1905년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를 통해 외교권을 박탈했습니다. 대 내외의 모든 일은 일본이 맡는다는 굴욕적인 조약인 ‘을사호보조약’을 강제로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5년 뒤인 1910년 ‘한일합방’으로 주권과 자유와 말과 글을 뺏고 남자는 전쟁터로 여자는 정신대로 몰아 몸과 마음과 정신을 송두리째 유린당했습니다. 그때부터 독립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1919년 4월15일 2시 수원근방 제암리에서 ‘아리타 도시오’라는 일본육군중위가 이끄는 군경이 주민 30명을 제암리 교회에 모아놓고 출입문을 잠근 채 총격을 가했고 그때 교회 안에 갇힌 부인들이 아이들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창 너머로 내 보냈는데 그 아이들까지 무차별로 학살했습니다. 그리고 인근 수촌리 교회와 화수리 교회 그리고 민가 31호에 불을 질러 죽였습니다.
그런 만행을 캐나다에서 온 의료선교사인 스코필드 박사가 사실 그대로를 사진으로 찍어 세계에 알림으로 그 만행이 들통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후에 스코필드 박사가 죽은 뒤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우리나라 국립묘지에 안장을 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조국의 독립투쟁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중에도 도산 안창호 같은 분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독립운동 하다가 붙잡혀 일본 젊은 검사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안창호 선생은 ‘나는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먹고 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답니다.
이런 애국지사들의 피나는 투쟁으로 마침내 1945년 8월15일 해방이 되었고 3년 후 1948년 5월 31일 날 제 1대 제헌의회가 열리던 날 임시의장이었던 이승만박사는 198명의 초대의원들 앞에서 ‘오늘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일은 광복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얻은 것이니 우리 모두 하나님께 먼저 기도부터 드리자’고 해서 개원 첫날 국회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기도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오늘 신세대들은 이런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이런 역사를 모르니까 오늘 별 소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난 당하다가 해방되었으니 얼마나 기쁩니까? 그래서 그때부터 행사 때마다 우리는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젊은 세대에게는 해방의 날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지만 민족에게 이날만큼 잊어서 안 되는 날도 없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생일을 잊을 수 없는 것 같이 광복절은 국가적으로 잊을 수 없는 날인 것입니다. 독립하지 않는 나라는 지상에 존속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세월이 아무리 지나가도 이 8.15의 해방의 감격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유대 민족이 B. C586년 바벧론에 잡혀가서 70년 동안 포로생활 하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고레스 왕에 의하여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올 때, 너무 기뻐서 해방의 감격을 노래한 것입니다. 시126편에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에게 자유는 죽음보다 강합니다.
① 해방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종 된 삶, 예속된 삶,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1910년 8.23. 우리나라가 일본의 강압에 의해서 한일합방에 조인함으로 그때부터 나라 잃은 백성이 되고 해방되기까지 36년간 슬픈 역사의 주권 없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땀 흘려 농사지은 것 공출로 착취당하고 아버지는 보국대, 형님은 징용으로 전쟁터에 총받이로 누님은 정신대로 끌려가서 위안부가 되고 이름도 성도 빼앗기고 창씨개명을 하였으며 나중에는 말도, 글도 빼앗기고 민족혼을 말살하려고 하였습니다.
애국자는 감옥으로, 지식인들은 조국을 등지고 망명하고 남은 백성은 생존의 권리마저 잃고 확대 ,빈곤, 설움에 죽지 못해 살았습니다. 교회는 일본 귀신들여 놓고 절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해방이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해방은 이 모든 잃었던 것을 다시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잃었던 우리의 주권, 땅 그리고 자유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400년 종살이 하다가 해방이 되었을 때 홍해를 건너서 얼마나 기뻐하였으며, 70년 포수가 끝나고 고국에 돌아오는 유대인들이 얼마나 기뻐하였습니까? 해방의 기쁨은 나라 잃어본 망국의 백성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입니다.
② 해방은 하나님의 대사였습니다.
시126:3절‘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하였습니다. 유대 민족의 해방은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대 역사의 사건이었다는 말씀입니다. 70년 포수생활은 2세대가 지난 긴 세월이었는데 거기서 해방된 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애급 400년 종살이에서 모세를 통해서 이끌어 내실 때도 하나님의대역사로 그들은 가나안을 향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조국도 우리 힘으로가 아닌 연합군의 도움으로 해방을 이루었으니 하나님의대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해방은 하나님의 큰 역사로 얻은 큰 축복이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해방도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은 얼마나 큰 역사입니까? 우리가 그리스 도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에서 해방된 그날부터 우리의 심령에는 자유가 있고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소망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는 예수믿고 죄에서 자유함을 얻어서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③ 해방이 가져다주는 축복
잃었던 모든 것을 회복하였습니다, 주권, 국토, 자유, 민족혼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이전보다 더욱 자유롭게 잘 사는 나라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해방이 된 지금의 우리의 형편은비교할 수 없는 복된 나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가 마귀에게 종노릇할 때 모든 것을 잃었다가 구원받고 해방된 후 천국의 축복과 영육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나라의 국방이 튼튼하고 경제가 튼튼해야 하듯이, 교회도 튼튼하게 힘이 있어이 마귀세력 물리치고 계속 발전,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기도하는 파숫군이 많아야 하며, 전도의 군사가 많아야 하며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부흥, 성장해야 합니다. 정지는 후퇴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라를 위한 기도를 들으십니다. 에스더의 기도를 들으셨고,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셨고, 다니엘과 스룹바벨과 모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늘 평안만 주시지 않고 환란도 핍박도 고난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눈물을 흘리고 탄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환란도 고난도 은혜입니다. 한국교회는 고난과 더불어 성장했습니다. 그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나라가 기독교 강국이 된 것도 이 역사속의 핍박과 고난과 전쟁과 일본 압제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런 고난을 통해서 성장했고, 기도했고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나라로 하여금 기독교 강국을 이루게 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고난과 더불어 부흥되고 강해집니다. 우리 모두 해방의 기쁨을 찬송하면서, 감사하면서, 계속하여 이 해방의 축복을 지키고 발전하는 나라, 교회,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안에서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죄에서 자유함을 누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 여러분의 양심, 여러분의 이성, 여러분의 생각은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진실로 정직하고, 아무 것도 숨길 것이 없이 창공을 나르는 것 같은 그러한 상태가 될 때, 그러한 영적인 상태에서만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의 참 자유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노아 홍수는 죄에 노예가 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정리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인간은 계속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가지고 바벨탑을 만들어 대항했습니다. 축복을 받아도 죄가 있으니 그 축복을 축복으로 누리지 못하고 저주를 자초하는데 사용하고 마는 것입니다. 물질로도, 축복으로도, 율법으로도 죄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자유’라는 단어만큼 혼돈을 가져다주는 말도 없을 것입니다. 자유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무엇으로부터 자유하느냐’ 하는 것과 ‘무엇을 향한 자유’가 있습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을 석방시켜 준다고 자유를 얻은 것 아닙니다. 요8:34절‘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탕자는 자유롭게 살려고 집을 나갔습니다. 그러나 집나간다고 모든 생활이 자유는 아니었습니다. 탕자는 자유를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데 사용했기에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집에 돌아올 때까지는 자유인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자유해야 할, 부분은 물질, 환경, 욕망이 아니라, 영혼입니다. 영혼이 자유하지 못하기에, 이성과 감성의지도 병들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여 하나님을 볼 수 없고, 자기 자신 조차 바로 볼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을 때만이 비로소 영이 자유해집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고 그 영이 있는 곳에 오로지 자유함이 있습니다. 이제는 참 자유를 알고 참 자유를 지키고, 그 자유 안에서 주의 은혜를 감사할 때 생명력이 넘치고, 소망이 넘치고, 창조적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있지 마십시오. 고후3:17절‘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느니라’참 자유는 내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른 삶을 살지 못하게 하고 죄를 짓게 하는 유혹이 있을 때 그것을 뿌리칠 수 있는 것이 참 자유입니다. 사람은 불행히도 태어나면서부터 죄의 종입니다. 까닭에 유대인들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잘 느끼지 못하나 로마의 종인 것처럼 인간은 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광복절, 8.15 해방되는 날 날씨가 좋았답니다. 너무 좋아서 부등켜안고 울었다고 합니다. 해방이 뭔지, 자유가 뭔지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답니다. 어떤 동네에서는 일본군 준다고 곡식이며 소를 공출해 놓았는데 그걸로 한달 내내 잔치했답니다.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었는데 일년에 한 번 구경할까 말까 하는 쌀밥에 쇠고기를 코에서 누린내가 나게 먹었답니다. 이대로 영원히 되는 줄 알았더니, 이대로 자유롭게 사는 줄 알았는데 문제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남북으로 갈리고 얼마 안 있어서 6.25 전쟁이 낫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해방을 맞은 겁니까? 도대체 자유가 어디에 있는지 혼란에 빠지더라고 합니다.
8.15 해방은 우리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얻었습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고 이 은혜를 가지고 세계에 나아가 빚 진자의 자세로 사회와 이웃을 선기며 살아야 합니다. 챔피언이 되기는 무척 힘듭니다. 그러나 챔피언의 자리를 지키이 더 힘듭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는 일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죄의 세력이 우리를 죄에 빠뜨리려고 해도 성령께서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도와주심을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은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롬8:31절‘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능히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우리를 향해 죄인이라고 할 때 ‘나는 죄인이 아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고 나는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죄가 용서받고 의인이 되었다’는 것을 자랑하시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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