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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문학 23년 봄호 문학상 평론
<선정심사표 별첨>
●.대지문학상 (김상미 시) 평론
인묵 김형식
먼저 대지 문학상 수상을 크게 축하드립니다.
김상미 시인은 시적 지평이 넓은 시인이다.
푸시킨은 일찍이 시인에게 주는 글에서 '시인이여! 민중의 사랑에 연연해하지 마라. 열광하는 칭송도 한순간의 술렁임일 뿐이니 어리석은 자의 심판과 차가운 군중의 비웃음을 듣더라도 그대, 의연하고 침착해야 한다. 그대는 황제, 고독하게 살아라.'을 떠올린다.
수상작 평하며 축하글을 올린다.
수상의 들뜬 마음에
초심 잊지 말고 더욱 발전하는 모습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흙에서 보석을 일구어 내듯 갈고닦아 문단에 큰 족적 남기는 발전한 모습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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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별이여 사랑이여 / 김상미
들녘에 누워
밤하늘 수놓은
꽃들을 바라본다
형형색색 고운 빛깔
수많은 사연을 쏟아내며
저마다 환하게 피어난다
영롱한 별꽃 하나
예쁜 꽃잎 따다
내 마음 물들이고
꽃내음 가득 담아
그대 뜨락에
별빛으로 수놓으리라
별이여
사랑이여
2).별이 된 사랑 / 김상미
하늘빛 닿는 곳
반짝이는 별 하나
그대 가슴에 내려앉으리
아련한 그리움
영롱한 별이 되어
그 마음 밝혀주리라
사랑하는 님아
마음속 깊은 곳에
별꽃 되어 피어나리
그대는 영원한 사랑
내 맘 가득 느낄 때
찬란히 빛나리라
3).가을 그림자 / 김상미
발길에 스치는
가을 그림자
시간을 지고 온
그리움 하나
아스라이 파고드는
사무치는 기억
아련히 피어올라
소리 없이 동여매고
바람결에 실려 온
한줄기 고운 숨결
가슴으로 마주하며
내 마음 얹어 본다
그립다 말하면
또다시 그리움 되어
허공에 맴도는
가을 그림자
4).눈사랑/ 김상미
눈구름 타고 살포시
날갯짓하며 다가온
눈의 천사 그대여
하얀 미소 속에
눈부신 눈꽃 한 다발
수줍음에 건네고
함박웃음 반기며
내 품으로 들어온
새하얀 그대 마음
온 가슴 포개어
사랑꽃 가슴에 묻고
눈사랑 마주하네
ㅡㅡㅡㅡㅡㅡ
●.신인문학상 (오세창 수필) 평론
인묵 김형식
오세창 선생의 등단작 '하늘의 별'을 읽으며 수필은 인간의 생각을 최대한으로 표현할 수 있는 광범하고도 보편적인 문학 장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이 작품은
수필이 詩가 아니라는 통상적인 틀을 깨는 시험작이라 할 수 있겠다.
행과 연으로 휴지를 주며 짧고 짭짤한 문장으로 지루하지 않게 똑똑 끊어 함축된 글로 독자에게 읽을 맛을 북돋아 주고 있다.
글은 역시 동적이어야 맛이 난다. 역동적인 글은 독자에게 신선미를 안겨 준다. 움직이는 글이 살아 있는 글이고 설득력이 있는 글이다.
수필이야말로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 infrastructure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좋은 수필 쓰기에 진력하시기 바란다.
더욱 발전한 모습 기다리며 마음을 담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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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오세창
하늘에 별 / 오세창
하늘도 맑고 깨끗해서
촘촘하게 박혀있는 무수히 많은 별들
공기가 탁한 서울에서는 상상만 할 뿐이지요.
그렇지만 차를 타고 1시간만 벗어나면
그 많은 벌들,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윤동주 시인도
밤새 별을 세었다고 하지만
다 혜지는 못했겠지요.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이라고 하며
자기 정당화를...
밤하늘의 별
다 세어볼 필요가 있을까요?
지구의 인구보다 많을 테니까요
그걸 어떻게 아냐구요
증명할 방법이 있습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볼게요.
우리나라 유행가 노랫말에도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이란 가사가 있잖아요?
옛부터
혼불 하나가 하늘에 오르면
누군가가 태어났다고 믿었잖아요?
또
별 하나가 떨어지면 생명 하나가 하늘로 올라간다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도 있고요
옛날 전쟁 때도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하여
적장의 죽음을 알리는 징조의 속임수로
많이 이용한 증거가 이곳저곳에..…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도
동방의 박사들은 하늘에 갑자기 나타난 별을 통해
그 태어나신 곳을 알았다고 마태복음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 때
맨 꼭대기에 별을 붙이는 이유가 아닐까요?
예를 하나 더 들어 볼까요?
크리스마스 캐롤송에도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저 동방의 별 하나가 이상한 빛을 비추어
이 땅 위에 큰 영광이 나타날 징조를 보였네
노엘 노엘 이스라엘 왕이 나섰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그대도
본능적으로 하는 행동이 있죠.
외롭고 가슴이 답답할 때면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는 이유를 아시나요?
그곳엔 나의 영원한 고향, 나의 별 소행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선험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겠죠.
깨달은 자 쌩떼 쥐베리는
하루에 마흔세 번이나 노을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별
소행성 B612 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아 지구로 온
'어린 왕자'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대들도 지구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았나요
결국은 장미가 기다리는 나의 별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외에도 찾아보면 많은 문헌들을 찾을 수 있을 듯...
오늘 밤에 한 번 찾아보세요.
나의 별은
어디 쯤 있는
어떤 별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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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문학상 (전병덕 수필) 평론
인묵 김형식
전병덕 선생의 수필 《어머니의 江》을 읽으면서 시골 5일장 풍경에 쏙 빠져들었다.
화자는 우리 시대의 가난했던 농촌의 풍경과 훌륭한 어머니의 모습을 잔잔하면서도 감동적인 글로 담아내 놓았다.
법정法頂스님의 명 수필
《파장》을 소환한다.
스님은 '파장'을 보고 화엄사로 돌아가면서
'잔치는 끝났더라 잔치는 끝났더라. 마지막 앉아서 국밥들을 마시더라' 하고. 미당(未堂)의 시 (행진곡)을 몇 번이고 돼 외었다고 했다.
전병덕 선생의 글은 살아있는 글이다. 더욱 노력하여 좋은 글 많이 쓰시기 바란다.
아쉬움이 하나 있다. 글속에 부모님을 불러 모실 때는 반드시 부모님 본명으로 모시기로 하자.이는 우리 글쟁이 모두의 덕목의 이기도하다. 공주에 들리면 5일장 한번 구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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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전병덕
어머니의 江 / 전병덕
옛 정월 달력에는 늘 앙상한 나뭇가지에 눈이 많이 내려앉은 시골 풍경. 그 안에는 썰매를 타거나 연 날리는 아이들과 및 마리의 까치가 해마다 고정 출연한다. 담은 돌담이오. 초가지붕 뒤 굴뚝엔 항상 연기가 피어오르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초저녁 풍경, 뒷동산에서 놀이에 점심도 굵은 채, 소맷자락은 온종일 콧물을 훔쳐서 소매 것은 가죽처럼 허옇게 굳어 버
리고, 자치기 몇 자 더 부르지 못한 억울함에 씩씩거리며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투덜거리며 집으로 향한다. 눈이 오려나 기압이 낮아 굴뚝 연기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골목에서는 소 여울죽 끓이는 머슴의 무쇠솥 뚜껑 여닫는 소리가 들린다. 연기에 눈이 매워 조금씩 눈물을 찔끔거린다. 얼음이 아무리 두꺼워도 그 밑에서 물이 흐르듯 시간도 함께 흘러
흘러 뒷동산에서 아직도 노는 아이들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리움만 쌓이고... 고드름이 많으면 부잣집이라는 얘기에 행여 누군가 우리 집 고드름을 따 먹을까 봐 처마 밑에 보초 서던 아이도 더 이상은 없다. 창호지 사이로 항소바람 들어오고 문풍지가 부르르 연주하던 시절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무겁고 두꺼운 목화솜 이불 칭칭 감아도 추운 밤도 이제는 그런 추위는 전설의 고향으로 덮여버렸다. 어머니의 한 시린 눈물, 어머니의 江은 오늘도 내 심장에 수혈된다.
짧았던 머리 조금씩 기르고 가르마를 타며 구두 솔질 손놀림이 익숙해질 나이 때쯤, 가끔 집에 들릴 때마다 참 잘 컸다는 동네 어른들 칭찬에도 나는 아직도 시작도 못 한 무엇인가 똬리 튼 구렁이처럼 가슴 속에 숨어 있었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열어보지 못한 상자이기에 열쇠를 찾지 못한 오늘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 본다.
명절이 다가올 때쯤이면 명절 며칠 전에 열리는 대목장이 있다. 매출이 큰 몫을 잡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내 고향은 충청도 공주다. 공주장은 5일마다 열린다. 즉 1일 6일 열리는 5일 장터다. 충청도에서는 제법 큰 장터로 소문난 상태가 공주 장날이다. 우리 집에서 공주장터를 가려면 주변 흩어진 시골 마을에서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이다. 동전 몇 잎을 주고 터덜거리는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우금치 고개를 넘어서 옵내로 나갔다. 이맘때면 으레 아낙들의 머리 위로 묵직한 짐들이 올망졸망 올려져 있었다.시골 어머님들은 가을걷이해서 꽁꽁 유념해 둔 것들과 푸성귀들. 돈이 될만한 것들은 모두 주섬주섬 광주리 등에 담아서 고개가 쏙 들어가게 이고 장터로 바쁘게 걸음질을 친다. 꺼먹고무신, 하얀 고무신 나름대로 치푸라기 수세미로 양잿물 빨랫비누 쓱쓱 비벼서 깨끗이 씻어 군불아궁이 앞에 널어 두었다가 장에 갈 때만큼만은 깨끗하게 차려입고 간다. 우리 어머니도 그렇게 하셨듯이 공주장 전날이 되면 엄청 분주하셨다. 그렇게 어린 나는 전날부터 어머니 따라 장에 따라갈 생각에 들떠서 시키지 않는 하기 싫은 심부름 등 집안일도 잘 도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불 속에서 엎치락뒤치락 선잠을 잤다. 아침 일찍부터 머리 감고 잠빗질까지 하
시면서 곱게 가르마도 탄다. 고추도 정성스레 말려두셨던 것을 꺼내서 다듬으시고 저울에 달아 보시고 콩과 알곡들도 꺼내서 됫박에 담아보고 한줌 더 넣었다 덜었다 하시다 밤이 깊어진다. 결국은 '에라 한줌 더 준다고 망하겠냐?' 그렇게 장에 갈 준비를 하시고는 우리들 이부자리 다독이시며 자식들 잠자는 곁에서 새우잠을 잔다. 새벽에 일어나 후드득후드득 불 때는 소
리와 무쇠솥 누룽지 긁는 소리와 함께, "일어나라 밥 먹자. 우리를 깨우신다. 밥상을 차려 들이밀고 부엌에서 광주리에 이것저것 덤으로 줄 것까지 집어서 넣었다 꺼냈다 하시면서 궁시렁 대다가 아침도 거르신다. 그리고 텃밭에서 뽑은 대파를 다듬어 광주리 한구석에 담아 놓으시곤 이내 곱게 빛은 머리에 똬리를 얹으시고 그 무거운 광주리를 머리에 앉으시고 고개가 쏙
들어갈 정도로 무거운 것을 이고, 심리 길 장터로 내달음치신다. 나는 그럴 때쯤이면 눈치껏 엄마의 작은 보따리를 챙겨 들고 따라오라고 하지 않아도 으레 바쁘게 따라갔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십 리 길은 그리 멀지도 않았었다. 어떤 이들은 구르마에 무엇을 가득 싣고 가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자전거나 리어커에 가득 싣고 부부가 밀고 당기고 하면서 가기도 한다. 그러
나 우리는 어머니가 소같이, 마차같이 리어카 같이 그렇게 사신 것 같다.
시골에서 아버지가 모두 탄광 사업하신다고 강원도로 작은 마누라 얻어 가셔서 모든 재산을탕진하고, 고향에는 작은 초가삼간에 6남매를 버려두고 가셔서 우리 어머님은 때로는 남자 머슴 같기도 하고, 때로는 여장부 같기도 하셨다. 그런 6남매를 홀로 키우시느라 여성들만의 아름다움을 잊어버리고 사신 것 같다. 그래도 종갓집 맏며느리 역할을 잘 수행하신 듯하시다.
나름대로 가끔은 우리 어머니가 멋있게 느껴질 때가 더 많았다. 동네 큰일이 생기면 으레껏 어머님이 가셔야 일이 추슬러진다. 상갓집에 가시면 어머님이 먼저 가위질과 바느질을 시작해야 상복이 지어지고, 잔칫집이 생기면 어머니가 가셔야 음식이 시작되었다. 각종 떡과 전병등 약과도 못 하시는 게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궁중요리 전문가 수준은 된 듯하다. 또 만물박사 같았다. 동네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와서 어머님께 묻곤 하시면 모두 답을 해주시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읍내 장터에도 이미 소문이 나섰던 모양이다.
그렇게 무거운 것들을 이것저것 머리에 이고 장터로 가시면 장터에 들어가시기 전에 모두 다 팔아 버리시고 막상 시장에 들어설 때는 빈 광주리만 들고 이 장터 저 장더 서성대시면서 홍정 하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래서 그런지 장터에 가시면 참 많이도 어머니께 아는 체하시고 인사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쭈그려 앉는 곳은 무더기로 양을 많이
주고 싸게 파는 허름한 좌판 앞이었다. 난 그럴 때마다 울 엄마는 왜 저 좋은 것을 인 사시고 양만 많고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걸 사시는지 이해가 안 갔다.
"엄마 저것 좀 한번 사봐요." 하면서 졸라대면 못 들은 채 하시고 내 손목을 확 끌고 골목을 빠져나오신다. 그리고 큰 문방구 앞에 들어서서 우리들 연필, 공책 등 문구류를 몇 가지 집어 들게 하신다. 허기가 잔뜩 들어 엄마 배고파 하면 '그랴 어여 가자.' 하시면서 구수한 냄새가 풍기는 골목으로 나를 끌고 허름하게 포장이 처진 집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그 집 할머니 엄청 반기시면서 "워매, 야기 많이 컸네 그리 하시면서 펄펄 끓는 가마솥에서 휘휘 저어 가시
면서 뚝배기에 뜨끈한 국물을 한 그릇 떠 담으시곤 삶아서 건져놓은 국수를 한 덩어리 넣어 "어서 먹어라." 하신다. 그러면서 누런 삼베 보자기를 걷어 제치면서 집시에 인절미 한 접시
담아주신다. 그러면 울 엄니, "이여 많이 먹어라." 하시면서 내가 정신없이 먹는 모습을 보시 먼저 국물만 몇 숟가락 뜨셨다. 그럼 난 엄마는 왜 안 먹어?" 하면 울 엄니 대답은 변함없이 "난 속이 안 좋아. 배가 안 고프니께 너나 많이 먹어. 하신다. 난 정말 그때는 어머니가 배가 부르신 줄 알고 배가 아프신 줄로만 알았다.
저녁 무렵 바쁘게 돌아오는 길에 광주리에 무엇인가 그들먹하게 머리에 이고는 집으로 돌아 오신다. 그래도 우리 어머님은 앞집 혼자 사시는 할머니 몫까지 챙겨 오신 것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바쁘게 명절 전 장날을 보내면서 설 명절을 맞이했다.
※첨부선정심사표 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