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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심장이 뛰는 교회(2205.2023.8.20) \
빌1:8-11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절대로 포기하지도 않으시고, 버리시지도 않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주시고 살게 해주시는 사랑입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힘을 얻는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신앙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상주감리교회를 찾아오셔서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에게 하늘의 은총과 땅의 기름진 복으로 채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상주감리교회가 뜨거운 기도를 통하여 국가와 사회에 하나님의 영권이 미치도록 해야 할 것이고, 이 지역 사회에 곳곳에서 선교하는 교회가, 사랑을 나누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상주감리교회가 어떤 교회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을 하시겠습니까? 예수심장이 뛰는 상주감리교회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내 안에 뛰어야 할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은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2박3일 동안 제주도 한라산 통일 기도회에 다녀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러 올라가는데 130명쯤 모인 것 같습니다. 계단으로만 되어 있는데도 나이든 분들도 잘 올라갑니다. 숨이 헐떡이고 힘들어 하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한라산 백록담 정상으로 올라간 것이 아니고 어승생악 정상으로 올라가서 예배드리고 기도회하고 성찬식도 하고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올라가면서 날씨가 더우니까 심장이 막 뛰는 것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잘 올라가서 사람들 올라오기 전에 독사진도 찍고 잠시후에 구름이 쫘악 올라와서 그늘이 되어지고 멋진 풍경들은 사라졌습니다.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잘 마쳤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성령충만이란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을 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에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와 성도들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표현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으로’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처럼 사도바울과 빌립보교회 성도들 사이에 예수그리스도의 뜨거운 심장 같은 사랑이 흘러 넘쳤기 때문에 좋은교회, 건강한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예수그리스도의 뜨거운 심장처럼, 서로 사랑하며 성령으로 놀라운 역사를 이루는 교회, 성도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심장은 도대체 어떤 일을 하기에 그처럼 중요한가를 살펴보면서 우리도 그렇게 행하기를 결단하는 심장 같은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심장은 항상 신선한 혈액을 공급하여 온 몸을 건강하게 합니다. 심장은 우리 몸에 퍼져있는 혈관을 통해 계속해서 좋은 피만 공급하며, 그 피가 돌아가며 몸의 불순물들을 흡수해 가지고 오면 네 개의 방을 돌면서 정화시켜 좋은 피로 만들어 다시 우리 몸에 공급합니다. 즉 심장의 첫 번째 사역은 ‘좋은 것을 공급하는 역할’인 것입니다.그러므로 심장 같은 성도가 되려면, 남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는 성도, 좋은 말만하는 성도 그리고 나쁜 것도 좋게 만들어 공급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위로와 힘, 격려와 기쁨을 주는 성도들이 다 되셔서, 자신의 영적 강건은 물론 그 심장으로 인해 온 교회가 건강하게 되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심장박동은 중단하지 않습니다. 우리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중단하지 않습니다. 중단하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심장 같은 성도가 되려면, 주신사명 감당 할 때 지속적으로, 결코 쉬는 일이 없어야 됩니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남이 알아주던 안 알아주던 간에 쉬지 않아야 합니다. 심장이 제 멋대로, 자기 기분대로 쉬기도 한다면 큰 일이 벌어지듯이, 스스로 우리교회에 심장과도 같은 자라 여기면서 자기 기분에 따라 충성하기도 혹은 방관하기도 한다면 교회는 죽어갈 것입니다.
심장은 뜨겁습니다. 사람의 일정한 체온은 생명을 유지하는 최고의 요소입니다. 심장이 바로 이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심장이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온 몸을 뜨겁게 하듯이, 심장 같은 성도는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도 함께 뜨겁게 신앙하도록 데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의 심장처럼, 좋은 것만 공급하는 성도, 나쁜 것도 좋은 것으로 바꾸어 나누어 주는 성도가 되며, 한결같은 봉사와 헌신, 중단 없는 사명감당하는 성도가 되고, 성령 충만으로 늘 뜨거운 역사를 이루어 가는 심장 같은 성도들로 다 회복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달로 ‘심장이식’ 수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심장이식 수술이란 ‘생명을 위협하는 심장질환을 가진 환자에게 죽은 사람의 건강한 심장을 이식하는 수술’입니다. 심장이식을 받는 환자는 대게 심장 이식 수술을 받지 못하면, 1년 내 사망률이 30-70%인 환자입니다. 최초 심장이식수술은 1967년 남아공에서 성공되어 심장이식을 받은 사람이 18일 동안 생존했습니다. 그러다 점점 기술이 발달하여 현재는 1년 이상 생존률이 84% 이상으로 늘었답니다. 이제 심장이식 수술로 남의 심장을 이식 받아 살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영적인 차원에서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자기 심장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답게 살 수 없어서 아예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이식수술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심장이식수술을 받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자기 심장으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더 이상 우리 심장으로는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이식 받고자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그대로 닮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심장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심장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몸속에 들어 있는 심장은 그 모양이 복숭아씨와 같고 크기가 그 사람의 주먹만하며 무게는 250~350g 정도라 합니다. 성경학자들은 심장이 신체적, 지적, 정서적, 의지적 에너지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심장은 개인의 생각을 결정짓는 계획과 태도 그리고 공포와 희망이 거하는 장소라고 보고 있습니다. 심장은 사람의 신체적, 정신적, 영적생활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바울은 그토록 중요한 자신의 심장이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자기의 본래 심장은 없어지고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바뀌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은 어떤 심장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은 사랑이 불타오르는 심장입니다. 빌1:6절‘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말씀은 ‘사모’라는 단어입니다. ‘사모’라는 말은 ‘갈망한다. 절실하게 바란다. 사랑에 빠지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은 사랑의 심장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은 뜨거운 그리고 진실한 사랑의 심장을 말합니다. 갈망하고 절실하게 바라고 깊은 사랑에 빠지는 사랑의 심장이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은 사랑하는 자들을 살리기 위해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던진 심장입니다. 예수님은 심장이 찢기고 터질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심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심장입니다. 요15:9절‘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 사랑 안에서 살아라’, 요15:12-14절‘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내 계명이다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다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명령하는 것을 너희가 실천하면 너희는 바로 내 친구이다’ 바울은 그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율법과 학문과 명성 때문에 도도하고 교만하고 건방지기 이를데 없는 심장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예수를 만나고 나서부터 예수의 심장으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를 만나기 전의 그의 심장은 병든 심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후로 그이 낡고 병든 심장은 사라지고 예수의 심장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살전2:8절‘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엡5:2절‘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바울이 예수의 심장으로 빌립 교인들을 사랑했다는 것은 예수의 심장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 사도의 권고입니다. 요일3:16절‘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도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의 심장을 이식받아 심장으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은 생명이 솟아나는 심장입니다. 심장이 뛰면 그 사람의 생명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장이 멈추면 그 사람의 생명은 죽은 것입니다. 심장이 잘 뛰어야합니다. 심장은 혈액을 온 몸에 공급하고 순환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심장이 건강해야 혈액을 통해서 산소와 영향을 온몸에 공급하여 생명이 유지 됩니다.
현대인은 저마다 영적 심장 마비에 걸려 있습니다. 교만이라는 심장 마비에 결려 있고, 미움이라는 심장 마비에 결려 있고, 불신이라는 심장 마비에 걸려 있고, 부정이라는 심장 마비에 걸려 있습니다. 그 외에도 온갖 심장병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이 심장병으로도 죽지 않고 사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한 가지, 즉 제구실을 못 하는 병든 심장을 때내고 예수의 심장으로 바꾸는 것뿐입니다. 현대인들은 심장질환을 많이 앓고 있습니다. 심근경색이나 동맥경화, 협심증 같은 심장질환이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특히, 심장마비는 사람의 생명을 치명적으로 위협합니다. 심장마비가 오면 그 자리에서 생명을 잃게 됩니다. 심장은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심장은 생명이 솟아나는 심장입니다. 요일1:1-2절‘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요일5:11-12절‘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10:10절‘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20:31절‘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은 열정이 불타오르는 심장입니다. 요2:17절‘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딛2:14절‘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계3:19절‘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눅24:32절‘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했습니다. 우리가 각자의 부르심대로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서 이 예수님의 열정의 심장을 이식받아 뜨거운 심장으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2. 예수심장이 뛰는 교회를 많이 사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9절‘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여기에서 ‘사랑’으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가 바로 ‘아가페’(agape)입니다. 아가페는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이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풍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이 나오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데 예수님의 사랑이 아니라 마귀의 이상한 모습이 나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바울은 사랑을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한번하면 결정되는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은 우리 안에서 성장해 나갑니다. 그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여기 보면,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나 소망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믿음과 소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중요하지만 사랑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신령한 은사를 받도록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방언이나 예언 같은 은사들이 신앙생활에 활력을 주며 유익을 끼칠 수 있지만, 그것들도 역시 사랑만큼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바울은 소위 ‘사랑 장’으로 불리는 고전13:1-3절‘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곳입니다. 예배는 혼자 드리는 것보다 함께 드려야 합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기뻐해야 하고 서로 서로 그것을 권면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 주시되 교회를 통해서 복을 주십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중심으로, 교회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의 역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믿음이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좋은 교회관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기초가 됩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좋은 교회관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님이 직접 세우신 기관이고 교회를 사랑하고 잘 섬기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강한 인상을 심어주어 자녀들이 교회 안에서 평생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세우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은 약속하신 대로 큰 복을 받습니다.
교회 생활을 잘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교회는 신령한 은혜가 있는 집이기 때문에 피 흘려 세운 교회를 사랑하며 이 교회를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사랑을 베푸십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을 내리시는 곳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려면 교회를 거처로 삼아야 합니다. 교회에 뿌리를 내리고 날마다 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에 머물며 기도하고, 섬기며 항상 찬송하여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요 그리스도의 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입니다. 우리들 마음에 꼭 들 수 없는 그런 교회이기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면 예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부릅니다. 신부가 갖추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순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기다리는 교회는 영적 순결함으로 단장해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룩함과 영적 순결함을 우리 속에 채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힘은 거룩함과 성결함에 있습니다. 이 거룩함과 성결함을 뿌리로 둘 때 참된 헌신과 봉사와 전도의 열매는 맺히게 됩니다. 거룩함과 성결함의 회복이 없이는 우리에겐 희망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 거룩함과 성결함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장 소중한 것을 교회를 위해 드리며, 교회에 우리의 젊음을 드리고, 교회에 우리의 귀한 시간을 바치며, 교회에 우리의 물질과 정성을 드리고, 교회에 우리의 눈물과 희생의 피를 드리기를 바랍니다. 이는 가장 소중한 보배로 훗날 놀라운 열매가 되어 맺힐 것입니다. 영혼이 구원되며 세상이 변화되는데 교회를 통하여 성령이 크게 역사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상주감리교회를 찾아오셔서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에게 하늘의 은총과 땅의 기름진 복으로 채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상주감리교회가 뜨거운 기도를 통하여 국가와 사회에 하나님의 영권이 미치도록 해야 할 것이고, 이 지역 사회에 곳곳에서 선교하는 교회가, 사랑을 나누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상주감리교회가 어떤 교회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을 하시겠습니까?
3.예수심장이 뛰는 아름다운 신앙고백위에 갈보리 은총을 받은 상주감리교회입니다.
11절‘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단순히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함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죽으면 천국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지금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의의 열매를 맺으며,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으로서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지식과 총명으로 풍성한 사랑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이며,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극히 선한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도록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시 말해, 구원받은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는 ‘선한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상주감리교회는 아름다운 신앙고백위에 갈보리 십자가의 은총을 받은 교회입니다. 마16:16절‘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제자들에게 주님이 물었을 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우리의 아름다운 신앙고백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이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어서 나의 삶 속에서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이 고백을 가진 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과 이 땅에서의 놀라운 축복을 주십니다.
여러분! 교회라는 것은 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입니다. 마16:18절에 교회는 주님이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세워진 교회이기에 하나님의 집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통하여 이땅에 세우신 거룩한 몸입니다. 갈보리에 나타난 은총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인간의 모든 죄와 허물을 다 소멸시켜 주시고 죄로 말미암아 저주받은 슬픔과 가난과 질병과 절망의 형극속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이 주님이 교회를 세우신 목적입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이루었다’고 하셨는데 이 말은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의 죄를 갚았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인간의 죄와 허물과 질병 까지도 가난과 저주까지도 해결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은총이 교회에 나타나야 합니다. 갈보리 십자가 은총을 받은 교회입니다. 갈보리 십자가 은혜를 받은 성도입니다. 갈보리 십자가 은총을 체험한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십자가의 은총을 강물처럼 흘러내려 보내시니 여기에 몸을 담그는 사람마다 죄를 용서받고 병도 고침 받고 가난과 저주가 떠나가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이 이곳에 교회를 세우셨으니 이곳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병을 치료하시며, 가난을 부요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상주감리교회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의 권능과 기적을 이루시니 마귀가 떠나가고, 귀신이 물러가고, 병마가 물러가고, 고통이 물러가고, 주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상주감리교회가 어떤 교회냐고 물으면 예수님이 흘려주신 보혈의 피가 넘치는 교회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화) 책에 나오는 이야기 한토막입니다.
옛날에 한 청년이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여인은 사랑을 증명해 보라고 하면서 청년에게 별을 따다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청년은 별을 따다 주었습니다. 다시 여인은 청년에게 달을 따다 달라고 하자 청년은 달을 따다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인이 청년에게 네 어머니의 심장을 꺼내달라고 하니까 청년은 고민하다가 어머니의 가슴속에서 심장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여인과 행복하게 살 생각을 하며 어머니의 심장을 들고 뛰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심장이 저만치 굴러 떨어졌는데 언덕 밑에서 심장을 다시 주웠을 때 흙투성이가 된 어머니의 심장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들아. 많이 다치지 않았니’ 이것이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이면서 또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인간은 참 이기적입니다. 기회만 있으면 ‘달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장까지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갈보리 십자가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사랑하는 아들을 내어주시면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여전히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김영윤이를 사랑한다’, ‘내가 상주감리교회를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우리에게 희망이 있고 길이 있으니 마지막 까지 충성을 다하셔서 봉헌하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인생이 아무리 어두워져도, 아무리 짙은 먹구름이 끼어도, 아무리 험난한 골짜기를 만나도 상관없습니다. 어딘가에 희망이 있다는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그런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이 오늘 여기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내가 사랑한다고’하기에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부활하고, 우리의 가정이 부활하고, 우리의 양심이 부활하고 상주감리교회가 예수의 심장을 가진 교회로 부활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금년에도 우리 교우들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위해 날마다 죽는 자세로 사업하고, 공부하는 학생은 날마다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자세로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직장인들은 날마다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자세로 직장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주부들은 날마다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자세로 가정을 섬기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배에서 생수가 넘쳐날 것입니다. 겉으로는 죽는 것 같으나 속으로는 주체할 수 없는 감사와 감격과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주위는 조금씩 변화될 것입니다.
4.예수심장이 뛰는 가슴으로 하는 바울의 기도입니다.
지금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교회와 성도를 사랑하고 그리워합니다. 그런데 옥중에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낙망합니까? 절망하고 있습니까? 눈물로 지새우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이게 얼마나 감격스러운 말 인줄 모릅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이 말은 실로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 교제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만의 유일한 기도의 특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 무리를 사랑하고 사모하는데 나는 지금 갈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갇혀있지만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나는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을 통해 기도의 향연을 올려 너희 빌립보 교회에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교회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참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교회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고 사모하는데 갈 수가 없습니다. 그의 사랑이 무엇으로 증명이 됩니까? 기도로 증명이 됩니다. 실로 참된 사랑은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간절한 기도가 동반됩니다. 감옥에 있지만 기도의 창문을 열고 빌립보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바울을 보면 진정으로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로마는 바울을 감옥에 잡아두었는지는 모르지만 바울의 하늘을 향한 기도만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자유롭지 못한 감옥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발에 쇠고랑을 찼을지도 모를 그런 환경에서 ‘내가 기도하노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실로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는 사람은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기도합니다. 다니엘도 그러했습니다. 그는 기도하면 죽는 상황가운데서도 예루살렘을 향한 기도의 창문을 열고 기도의 향을 올려 보냈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동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도의 길을 달려갈 때 자기 목숨을 걸고 그들을 위해 중보했습니다. ‘차라리 내 생명을 가져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저들을 구원해달라고’ 이것이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 나라를 사랑하십니까? 이 민족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정치인을 비판하고 경제인을 비판하는데서 그치지 말고 눈물로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을 사랑하십니까? 배우자를 사랑하십니까?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특별히 여러분은 교회를 사랑하십니까? 상주감리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눈물과 땀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눈물로 기도하는 교인들이 많아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면 바울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해 기도했습니까? ‘사랑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없이 사랑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그 사람의 삶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실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의 바탕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위해 가장 먼저 사랑을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기도하고 있는 이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아들을 화목제로 보내신 그 사랑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새 계명으로 주신 그 사랑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그 사랑이 부어진바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회에도 이미 그 사랑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 사랑으로 바울이 고난 당할 때 쓸 것을 보내면서 그 고난에 동참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사랑이 그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풍성해지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더 풍성해지고 자라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실 때 선을 그어놓고 사랑하지 않으셨고 우리에게도 선을 그어놓지 않은 사랑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선을 그어놓고 우리를 사랑했다면 누가 그 하나님의 선에 합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런 사랑을 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할 때 사랑할만한 사람만 사랑한다든지 마음에 드는 부분만 사랑한다고 하면 그것은 참으로 하나님이 바라는 사랑이 아닙니다. 이기적이고 정욕적인 사랑에 익숙한 우리에게 어떻게 이런 사랑이 가능합니까? 그래서 우리의 사랑은 더 깊어져야 하고 넓어져야 하고 길어져야 하고 높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이 자라가고 풍성해질 수 있습니까? 지식과 총명입니다. 사랑에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 지식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하는 통찰력입니다. 총명은 그 통찰력을 삶에 적용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식과 총명이 없는 사랑은 무분별하며 이기적이고 욕심적인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해서 무턱대고 감싸주고 덮어주고 용서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올바른 사랑은 무턱대고 감싸주거나 덮어주고 용서하지 않습니다. 올바른 사랑은 지식에 근거합니다. 무엇을 감싸주고 무엇을 책망해야 할지 분별할 수 있는 지식이 있어야 참된 사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식이 도둑질을 하면 사랑한다고 그냥 덮어주겠습니까? 자식을 때려잡더라도 바로 잡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렇게 사랑이 지식과 총명으로 충만하게 되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영적 분별력이 생깁니다. 영적 분별력이 생길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된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선택과 판단의 연속인 우리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영적 분별력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영적인 분별력이 없기에 되는대로 살면서 너무 많은것과 시간을 허비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기도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 다음 이렇게 분별력이 생겨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 분별력으로 세상에 오염되지 않고 진실하고 허물없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10절)
여러분! 진실하고 허물없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지금 온통 세상이 외모로 평가를 받는 시대이지만 그리스도의 날이 오면 외모가 아니라 진실이 드러나고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진실한 사람들이 손해보고 바보취급 당하지만 그때는 진실한 사람만이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지금은 진실을 비웃는 사람들이 득세하고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때는 그 사람들이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지식과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해져서 가장 좋은 것을 분별하여 이 세상에 오염되지 않고 진실하고 허물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게 해달라고 바울처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마가 다락방을 통해서 성령이 역사 했는데 성령충만 하지 않은 제자들은 능력이 없어서 사역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한자들은 권능과 용기를 얻어서 사명을 잘 감당을 했습니다. 여러분 내 혼자의 힘으로 일어서려고 하지 마세요. 힘이 듭니다. 성령임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체험하고 나면 삶이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전하는 곳에, 병든자를 치료하는 곳에, 하나님나라를 선포하는 곳에, 귀신을 쫒아내는 곳에,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곳에 동서남북 어디든지 성령은 역사합니다.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실패 같으나 성공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많이 가진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무명한자 같으나 유명한 자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것입니다. 이제 상주감리교회는 성령이 바람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바로 열매도 있고, 성령충만도 있고, 기도도 있고 주님이 역사하는 교회입니다. 주님이 역사할 때에 쓰임받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