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은 대략 16세기 경에 처음 나타났다고 합니다. 어떤 천재가 이런 구조의 악기를 발명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구조를 찬찬히 뜯어보면 처음엔 그 아름다움에, 그 다음엔 그 놀라운 음향학적 구조에 감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옛날에 바이올린과 비슷한 '비올(viol)'이라는 악기가 있긴 했습니다만, 바이올린에 비해서는 약점이 많은 악기라서 점차 도태되고 바이올린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게 되었죠. ('세상의 모든 아침'이란 영화를 보신 분은 아마 비올의 모양과 소리를 들으셨을 거예요.) 그래서 바로크 시대 이후에는 바이올린족의 악기들이 기악합주 음악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비발디의 '사계' 같은 음악을 연상하시면 그 당시 바이올린이란 악기가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어졌는지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위에서 '바이올린족'(Violin Family)이란 말을 썼는데, 이 말은 바이올린과 비슷한 계통의 악기를 모두 일컫는 말이랍니다. 쉽게 말해 모두 비슷비슷하게 생긴 바이올린 가족이죠. 이 바이올린 가족의 멤버를 소개하자면, 제일 크고 굵은 소리를 내는 '더블베이스' 할아버지, 따뜻하고 깊이 있는 소리를 들려주는 '첼로' 아빠, 오케스트라나 실내악의 중간 음역에서 모든 소리를 조용히 감싸주는 '비올라'엄마, 그리고 가장 까불거리는 귀염둥이 '바이올린'이 있습니다. 이들 가족들은 서로 아주 비슷해서 같이 연주하더라도 음색이 잘 융합이 되죠. 그래서 오케스트라의 현악기군은 이런 가족들로 구성되어 아주 통일감있는 소리를 들려줍니다.
그러면 바이올린의 줄이 걸쳐져 있는 다리 모양으로 생긴 것은 뭐라고 부르냐고요? 그건 그냥 말 그대로 다리(브릿지, bridge)입니다. 물론 바이올린 하는 사람들은 ‘다리’라는 말을 안 쓰고 ‘브릿지’라고 부릅니다만... 바이올린 줄이 그냥 바이올린 몸통에 붙어있다면 어디 진동할 수가 있겠어요? 이 브릿지가 지탱해주는 덕분에 바이올린 줄이 제대로 진동할 수가 있는 거죠. 이 브릿지를 자세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냥 다리처럼 생기지가 않고, 특이하게도 예쁜 구멍이 뚫려있어요. 그건 예쁘라고 뚫어놓은 것이 아니라, 줄이 진동하면 그 진동을 바이올린의 몸통으로 유연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이올린을 자세히 뜯어보면, 정말 예쁘면서도 그 모양이 음향학적으로 꼭 필요한 모양이라는 게 참 신기합니다.
바이올린을 흔히들 찰현악기에 속한다고 하죠? 현을 활로 마찰시켜서 소리 내는 악기라서 찰현악기라고 부르나봐요. 찰현악기냐 발현악기냐를 구별해주는 활(bow)에 대한 설명을 빠뜨릴 수가 없네요.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는 바이올린 몸체 뿐 아니라, 바이올린을 진동시켜주는 활이 있다는 사실을 꼭 생각해주세요. 한 손으로 박수를 칠 수 없듯이, 바이올린만 가지고는 소리가 나지 않겠죠. 바이올린을 울려주는 활이 있기에 바이올린은 그 기막힌 소리를 들려준답니다.
바이올린은 활로 바이올린 줄을 문질러 소리를 내는 악기이니까. 바이올린의 연주법이 뭐 별거냐고 하실 분들이 계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줄을 어떻게 문지르느냐, 또는 줄을 어떻게 때리느냐, 퉁기느냐 등등에 따라 그 음색의 효과가 다를 뿐 아니라, 왼손의 위치를 어떻게 하느냐, 손가락 관절을 흔드느냐 마느냐, 손끝에 힘을 주느냐 마느냐에 따라서도 음정이나 음색이 많이 달라지지요. 때로는 왼손가락의 마디를 얼마나 구부리느냐에 따라서도 미묘하게 음이 달라져서 바이올리니스트들은 항상 신경이 날카롭습니다. 항상 귀에 거슬리는 높은 음을 들으며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듯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는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들이지요. ㅠ.ㅠ 하지만 아름다운 음악을 할 수 있다면 이런 어려움도 감수해야겠지요. 자, 그럼 바이올린 연주법이 얼마나 다양한지 한번 살펴볼까요? 바이올린 연주법은 크게 왼손 주법과 오른손 주법으로 나누어집니다. 보통 바이올린을 왼쪽 목에 끼고 오른손으로 활을 잡게 되니까, 왼손 주법은 바이올린 지판 위에서 놀리는 손가락의 움직임과 관련된 것이고, 오른손 주법은 활을 쓰는 법, 즉 보잉(Bowing)과 관련됩니다. (간혹 오른쪽 턱에 바이올린을 끼우고 왼손으로 활을 쓰는 바이올리니스트도 있긴 합니다. 매우 드문 케이스이지요.) 1. 왼손 주법 먼저 왼손의 주법은 정확한 음을 내는 법과 비브라토로 크게 나눠볼 수 있어요. 하나는 음정, 다른 하나는 음색과 관련된 주법이지요. 1) 정확한 음을 내는 법 바이올린 연주에 있어서 정확한 음을 찾아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지난번에도 설명 드렸듯이 바이올린의 지판에는 정확한 음을 알려주는 프렛이 없어서 정확한 음을 찾아내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예요. 새까만 지판의 어느 지점이 '솔'이고, 어느 지점이 '라'인지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도 바이올린을 처음 배울 때 정말 막막하더라고요. 피아노처럼 정해진 건반을 누르는 게 아니니까 매번 음을 만들어내야 하니까요. 하지만 연주자가 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바이올린 연주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끝없는 연습을 해야 하고, 지금 연주하고 있는 음이 정확한 음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예민한 음감이 있어야만 포지션을 완벽하게 익힐 수가 있겠지요. 그래서 바이올린을 비롯한 현악기 연주자들은 특히 누구보다도 귀가 좋아야 합니다.
다 예상하시겠지만, 바이올린의 음정을 내는 데에 사용되는 왼손가락은 모두 네 개입니다. 엄지 손가락으로는 악기를 받쳐야 하기 때문에 음정을 짚을 수가 없겠죠. 손가락 번호는 집게손가락이 1번이 되고 차례로 4번까지 메겨집니다. 손가락 번호를 정하는 일은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기교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손가락은 연주 상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제2번 손가락, 즉 중지는 관절을 유연하게 구부릴 수 있고 힘이 있기 때문에 아주 강하고 풍부한 음을 소리낼 때 유리합니다. 하지만 제4번 손가락, 즉 약지는 일단 길이가 짧고 약하기 때문에 좋은 소리를 내기도 어렵고 정확한 음을 짚는 것도 쉽지 않아요. 그래서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제4번 손가락의 힘과 독립성을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체적 조건과 음악적 해석에 맞는 음색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손가락 번호를 정하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렇게 어떤 곡을 연주할 때 손가락 번호를 정하는 방법을 운지법(Fingering)이라 합니다. 바이올린 명곡 악보를 구입하면 악보 자체에 손가락 번호가 적혀 있는데, 이건 지노 프란체스카티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같은 대가들이 쓰던 손가락 번호인 경우가 많아요. 물론 그분들의 손가락번호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도 좋지만, 연주자 자신의 신체조건과 음악적 아이디어에 맞게 손가락 번호를 정해야 성공적인 연주가 가능합니다. 2) 비브라토 비브라토는 음정을 잡은 왼손가락의 관절을 빠르게 움직여서 음고에 미세하고 주기적인 변화를 줌으로써 음색을 풍부하게 하는 주법입니다. 이 비브라토야 말로 바이올리니스트의 개성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죠. 비브라토의 속도가 빠르냐 느리냐, 폭이 넓으냐 좁으냐에 따라 그 연주자의 음색이 결정됩니다. 대개 비브라토의 폭은 반음의 반 정도이고 속도는 1초당 6~7회 정도입니다. 성악가들 중에 바이브레이션이 과해서 아예 다른 음으로 넘어가는 일도 있습니다만, 바이올린 연주 시에 그 정도로 넓은 비브라토를 구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비교적 넓은 비브라토를 구사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는 사라장이 있습니다. 사라장의 비브라토는 거의 반음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폭이 넓어서 간혹 비브라토가 아니라 트릴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런 폭넓은 비브라토야말로 그녀만의 관능적인 음색의 비밀이겠지요. 사라장과는 반대로 폭이 좁으면서 빠른 비브라토를 구사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는 아르투르 그뤼미오나 힐러리 한 같은 바이올리니스트인데, 매우 달콤하면서도 정제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고 보면 비브라토는 정말 신기하면서도 매력적인 주법이지요. 바이올리니스트의 소리를 만들어주니까요. 저도 처음 바이올린을 배울 때, 포지션도 다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비브라토를 해보려고 혼자서 애썼던 생각이 납니다. 원래 정확하게 음정을 짚을 수 있게 된 다음에 비브라토를 배우는 게 순서이지만, 너무나 신기하고 해보고 싶어서 어디 견딜 수가 있어야죠. 그런데, 아무리 해보아도 도무지 관절이 유연하게 흔들어지지가 않더군요. 좋은 비브라토를 한다는 것은 바이올린을 오래 연주해본 사람이라도 아주 어려운 문제로 느껴집니다. 자신이 원하는 비브라토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으려면 보통 노력 가지고는 안됩니다. 매일매일 자기 소리를 듣고 연구하고, 손가락의 근육을 키워야 하지요. 비브라토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손가락 관절은 수동적으로 따라서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브라토의 충동이 오는 손이나 팔의 움직임에 관절이 따라 움직이게 해서 그것을 완전히 몸에 익히는 것이 중요해요. 2. 오른손의 보잉
언뜻 보면 활을 아래위로 움직여 줄을 문지르는 게 쉬워 보이기도 하지만, 중력의 저항을 받으며 활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고른 음색을 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활을 쓸 때 음색을 만들어내는 요소는 세 가지입니다. 활의 힘과, 활의 속도, 그리고 활의 지점이지요. 활의 힘은 활로 현을 얼마나 누르느냐 하는 것인데, 초점 있고 단단한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활에 힘을 가해 연주하는 것이 효과적이지만, 너무 누르면 현의 자연스런 공명에 지장을 주기에 막힌 듯한 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큰 소리를 낸다고 무조건 활을 누르는 건 좋지 않지요. 다이내믹의 표현을 위해선 오히려 활의 속도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러시안 바이올린 악파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보면 활을 순간적으로 빨리 쓰면서 강하고 활기찬 소리를 만들어내는데, 초보자들이 섣불리 따라 했다간 ‘끽’소리가 나기 쉽지요^^; 활의 힘과 속도가 적절히 안배되어야 그런 강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 활을 어느 지점에 갖다 대느냐 하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좀 더 카랑카랑한 소리를 내려면 줄을 버티고 있는 브릿지 가까이에서 활을 쓰면 효과적이지요. 젊은 시절의 막심 벤게로프는 이런 식의 활쓰기로 매우 엣지 있는 소리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비브라토보다는 활을 효과적으로 잘 썼던 바이올리니스트이지요. 하지만 이것도 초보자들이 따라하기는 어렵습니다. 브릿지 근처에서 잘못 활을 썼다간 했다가 거칠기 짝이 없는 지저분한 소리만 나게 되지요. 이제는 활로 만들어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주법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 레가토(legato) : 음과 음 사이가 부드럽게 연결되도록 연주 * 데타셰(detache) : 음과 음 사이가 분리 되도록 연주 * 스타카토(staccato) : 활을 멈춰서 음이 끊기도록 연주 * 스피카토(spiccato) : 활털의 탄력을 이용해서 활을 튀어 오르도록 연주 * 피치카토(pizzicato) : 오른손으로 줄을 튕겨서 연주 * 콜 레뇨(col legno) : 활털이 아니라 활대로 연주 * 술 타스토(sul tasto) : 활을 지판 위에서 쓰라!(이렇게 하면 음색이 더욱 부드러워집니다.) * 술 폰티첼로(sul ponticello) : 활을 브릿지 가까이서 쓰라! (음색이 아주 날카롭고 거칠어집니다.) 사실 바이올린 활 주법은 이것보다 훨씬 더 많지만 이 정도만 말씀 드려도 바이올리니스트가 얼마나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지 충분히 이해하셨으리라 생각되는군요.^^ 바이올린 음악을 들으실 때 위에서 소개해드린 기술적인 면을 염두에 두고 들어보시면 좀 더 연주자의 개성을 잘 느끼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다 보면 연주자에 따라 바이올린 소리가 얼마나 많이 다른지 그 다양한 음색의 차이를 발견하는 기쁨을 얻게 되지요. |
출처: 클래식의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