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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실 좋은 마노아의 기도(2262.2024.8.11)
삿13:15-23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힘센 사람이 누구일까? 제가 아는 한 삼손입니다. 삼손이 만약 우리 시대에 살아있다면 힘과 주먹으로 하는 모든 올림픽 게임에서 금메달을 휩쓸었을 것입니다. 역도, 레슬링, 권투뿐만 아니라 프로권투와 격투기에서 적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삿13장부터 무려 4장에 걸쳐 삼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만큼 삼손을 통하여 전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많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기대는 컸으나 기대에 못 미친 인물의 대명사입니다. 삼손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1.기쁜 소식을 듣게 된 마노아입니다.
오늘 본문 사사기 13:1 말씀은 사사가 등장할 때마다 나타나는 익숙한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1절‘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여기 ‘다시’라는 말은 ‘계속 또 다시’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역사 공부의 필연성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신앙 선배들의 잘잘못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같은 실패를 또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사기의 한 본문은 한 세대의 교훈을 그 다음 세대로 잘 이어지지 못했음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한 바보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며 ‘저게 뭐야’그랬더니 다른 바보가 ‘손가락’그럽니다. ‘왜 저렇게 밝아’그랬더니 ‘너, 메니큐 칠했잖아’그럽니다. 달을 봐야지 왜 손가락만 쳐다봅니까?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들은 손가락입니다. 손가락 자체가 아닌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하나님을 보실줄 아는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 인간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 인간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을 고백합니다.
아브라함도 실수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위대한 것이 아니고 그를 사용하신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입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였습니다. 한마디로 비열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로 만드셨습니다. 야곱이 위대한 것이 아니고 그를 사용하신 하나님이위대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스스로의 힘을 과신한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겸손히 만드셔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것이 아니고 그를 사용하신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잡아 죽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가장 위대한 복음 전도자로 삼으셨습니다. 바울이 위대한 것이 아니고 그를 사용하신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입니다.
삼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손은 실수가 많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나 인간적인 약점이 많아 보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로 내셨나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사기 삼손의 이야기를 읽을 때 ‘삼손이 무슨 실수를 하나’두 눈을 뜨고 찾을 것이 아니라 삼손의 약점과 실수 그리고 실패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관심과 시선을 두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의 약점과 실수만 바라보지 말고 우리를 붙잡고 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삼손 드라마의 진정한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마노아’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마노아의 아내는 지금까지 아이를 낳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마노아’의 아내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와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라’하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소식은 마노아 부부에게는 기쁜소식이었습니다. 또한 이 소식은 마노아 부부에게도 기쁜 소식이지만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들에게 종살이하면서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큰 기쁨의 소식이었습니다.
마노아의 아내가 낳을 아들은 삼손이었습니다. 삼손은 그때까지 삼손 보다 더 힘쎈 사람이 태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을 40년 동안이나 지배하였던 블레셋이었으므로 보통 사람을 사사로 보냈었으나 않되었기에 하나님은 전무후무한 힘이센 삼손을 사사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이 소식은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이 찾아오기를 축원합니다.
1절‘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여기에서 ‘다시’라는 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다시 하나님 보란 듯이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님은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겼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부족하지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의심 없이 믿고 말씀을 즐겁게 순종하며 사시는 복받은 주님의 자녀로 살기를 소원합니다. 하루라도 아니 몇시간만이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아보는 것이 저와 여러분의 소원중에 소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3절에 마노아 부부에게도 자식이 없다는 것이 큰 고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라’했습니다.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라는 말은 처음 부터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자였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이시기에 아이를 임신 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을 능히 하실 수 있으십니다. 마노아 부부에게는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성경을 많이 읽으시잖아요. 성경에는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임신하게 된 경우가 여럿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잘 알려진 인물 위주로 살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임신을 못하던 여자였습니다. 창17:15-17절‘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은 99세이고 그의 아내 사라는 89세였을 때 아브라함을 찾아온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도록 해주실 것을 말씀 했습니다. 사라에게는 이 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을 것입니다. 너무나 놀라운 말씀이라서 사라는 믿지 못하고 웃었습니다. 좋아서 웃은 웃음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기쁜 소식을 뛰어 넘어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놀라운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창25:21절‘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라 하였습니다.이삭은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하여 대략 20년 동안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삭의 간구를 들으시고 리브가가 임신하였습니다. 이 보다 더 기쁜 소식이 이삭과 리브가 부부에게는 없었을 것입니다.
‘한나’라는 여인도 임신하지 못하여 고통 받았으나 한나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심으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한나는 자식을 낳지 못하여 남편의 두 번째 여자에게 심하게 시달렸습니다. 한나로 하여금 분통이 터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고통받던 한나는 결국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던지 기도소리는 나지 않는데 입술만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눅1:7-13절 말씀을 보면 세례 요한에 관하여 기록된 말씀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 이름은 사가랴였으며 어머니 이름은 엘리사벳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13절‘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삼손의 어머니. 그리고 이삭의 아내 리브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와 어머니 엘리사벳 이들은 모두 아이를 갖지 못하던 여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이 아들을 낳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기쁜소식들을 들었던 그대로 기쁜소식이 현실이 되었던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들도 자녀들도 많이 낳는 역사도 일어나고 영혼구원에 대한 자녀를 많이 낳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주실 수 있으신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뿐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쁜 소식은 사람으로서는 블가능한 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들은 임신이 불가능한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의 문을 열어 아들을 낳게해 주셨던 것을 보았습니다. 위에서 말씀 드린 5명의 부부는 모두 사람의 능과 힘으로는 아기를 갖는 것이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모두 낳게 해 주시므로 그 아들들이 모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는 하나님의 종들로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상상을 잘 합니다.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들도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알에서 사람이 나왔다든가, 뚜꺼비가 어떻게 했어 아이를 낳았다라든지, 아니면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살았더니 여자가 되었다라든지, 이런 신화나 옛날 이야기를 보면 처녀가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뚜꺼비이든 곰이든 말이 알을 낳든, 뭔가를 통해서 아이가 태어났다라고 말합니다. 남자가 전혀 없었는데 여자가 아들을 낳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처녀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눅1:28-31절‘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마리아는 처녀였습니다. 동정녀(童貞女)였습니다. 동정녀의 몸에 하나님의 아들이 잉태된다는 소식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큰 기쁨의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처녀가 즉 남자를 전혀 가까이하지 않는 동정녀(童貞女)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을 전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동정녀 였던 마리아의 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잉태되었으며 그리고 태어나셨습니다. 눅2:10절 말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베들레헴 변두리에서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들을 지키고 있었는데 주의 사자가 그들 곁에 서서 그리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그들이 크게 무서워하였습니다. 이런 목자들에게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라고 전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다는 소식은 소식 중에도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하여 멸망을 받아 지옥행으로 결정나있었습니다. 이러한 운명 아래 놓인 죄인들에게 구원의 문이 열렸습니다. 천국의 문이 열렸습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간들에게 가장 기쁜 소식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어 우리를 대신하여 죄벌을 받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것이 모든 죄인들에게는 큰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마노아에게 찾아온 기쁜 소식은 아들을 낳으리라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아들이 삼손입니다. 삼손을 주신 것은 블레셋으로부터 고통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아들을 낳게 해 주시어 구세주를 보내주심으로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기쁜 소식이 우리들 심령 심령안에 보배처럼 간직 되어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나실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삿13:5-7절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여 주시려고 사람을 보내십니다. 고통 받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님은 구원하여 주시려고 준비한 인물이 모세였습니다. 이제 삿13:1절‘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살게 될때면 이웃의 강한 나라, 악한 나라에게 넘겨 주실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죄를 철저하게 후회하고 회개하도록 강한 나라의 손에 넘기시는데 그 고통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호와 하나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을 때 하나님은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잘못을 깨닫고 고통 중에 부르짖을 때면 거기에서 구하여 주십니다. 그럴때는 사람을 세워 구원하여 주십니다. 블레셋 나라에 40년 동안 고통을 받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하여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소라 땅에 살고 있던 마노아라 이름하는 사람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고 살고 있던, 마노아의 아내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하고 희소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몇가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4절‘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하였습니다. 아기를 주시돼 부부 모두는 포도주도 먹지 말며, 독한 술도 먹지말라고 하였습니다. 5절‘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하였습니다. 태어날 아이의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 하면 5절‘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하였습니다. 나실인이라는 말 ‘바친다’, ‘헌신한다’는 뜻을 가진 ‘나자르’(nazar)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특별한 일을 시키기 위하여 특별하게 구별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일정 기간 혹은 일평생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서약 제도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실인 제도입니다.(민 6:2). 나실인에게는 나실인이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헌신 기간 동안 나실인은 발효된 음료와 포도주와 독주 등을 마시지 않았습니다(민6:3) 그리고 머리카락을 자르지도 않았습니다.(민6:5) 죽은 시체를 만지지도 않았습니다.(민6:6-8). 만약 어쩔 수 없이 시체에 가까이 가게 되었다면, 장기간의 정결 예식을 행해야 했습니다. 일평생 동안 나실인으로 서원했던 사람들로는 삼손(삿 13:5),사무엘(삼상 1:11), 레갑 자손들(렘 35:6), 세례 요한(마 3:4; 눅 1:15) 등이 있었습니다. 마노아의 아내가 낳게 될 아들, 삼손입니다.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이었습니다. 나실인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하기도하지만 한편은 억울합니다. 내가 원하여 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 없는 사람들에게는 포도주 마시는 재미와 독한 술을 마시는 재미를 빼고나면 무슨 재미로 삽니까? 우리나라 회식 문화가 밥만 먹고 헤어지지는 않습니다. 밥먹고 나면 술마시러 2차를 갑니다. 나실인이 되면 술을 마시지 못합니다. 독한 술이든 순한 술이든 술을 마실 수가 없습니다. 맑은 정신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였습니다.세상에 취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술이 아니라도 세상에는 취하게 하는 것이 많습니다. 재물에 취하고 권력에 취하고 음란에 취하고 오락에 취하기도 합니다. 나실인은 오직 하나님이 주신 사명 하나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삼손은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나실인이 되었습니다. 7절‘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하니라’ 삼손은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하나님께 헌신할 자로 하나님께 바칠 자로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왜 삼손을 이처럼 나실인으로 부르셨습니까?
5절‘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삼손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서는 그가 하나님께 ‘나실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포도주와 독주 등을 마시지 말라 하였습니다. 머리에 삭도 즉 머리카락을 자르지도 말라 하였습니다. 죽은 시체를 만지지도 말라 하였습니다. 이 모두가 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람은 하지 말라하면 더 하고 싶어합니다. 담배는 백해무익하다라고 의사들이 말하는데도 담배를 피우고 싶어합니다. 사람들은 울타리를 쳐두고 여길 넘어다니지 말라하면 반항심으로 그곳을 더 넘어가고 싶어 합니다.
우리 안에는 불순종하려는 본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우리 안에 있는 나라는 것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만 사시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려면 힘이 세야하고 정신이 흐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보기 위하여서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쓸 때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을 밑에 두고 쓰고 겠습니까? 당장은 그 사람의 기술이 아쉬워서 가만 둘지는 모르지만 때가 되면 끊어내고야 맙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하지 말아야 나실인으로 하나님이 계속하여 능력 주심으로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삼손은 나중에 보면 머리카락에 삭도를 대지 말아야 했음에도 블레셋 여자의 꾀임에 빠졌어 머리카락이 짤리게 됩니다. 그래서 힘이 장사였던 삼손은 힘을 잃어 버리게 되어 두 눈알이 빼이고 놋줄에 매여 감옥 안에서 멧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삿16:21,22) 이처럼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실인은 하지 말라, 금하라는 것을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사람을 구하여 내듯이, 나실인의 도움으로 구원을 받으려는 사람 역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만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믿으라면 믿고, 기도하라시면 기도하고, 예배 드리라하시면 예배 드리고, 사랑하라 하시면 사랑 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 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으로 부터 구원을 받습니다.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들에게 고통받던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시려고 삼손을 나실인으로 태어나게 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우라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동정녀에게 성령으로 잉태하게 하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들도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시므로 영혼이 잘되며 그로 인하여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복을 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마노아 부부의 신앙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마노아 부부의 신앙을 같이 살펴 보시므로 상주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 하시는 저와 여러분의 믿음으로 삼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에게는 나타나지 않으시고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서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마노아의 아내가 그의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오셨는데 그 모습이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내가 심히 두려워서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라고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아내가 전해주는 말을 듣고 남편인 마노아가 했던 것이 바로 여호와께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8절‘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해달라라고 기도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사람을 다시 오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까?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다시 오셨어 자신들에게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기도하면 역사는 일어납니다. 새벽기도 하세요. 주님이 역사합니다. 기도하세요. 하나님 역사합니다. 12절에 보면 마노아가 다시 오게해 달라는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시고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마노아에게 오셨습니다. 마노아는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하고 똑같이 물었습니다.
이 질문은 상주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우리들에게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있으시고, 받은 것이 있으면 ‘하나님 주신 것 어떻게 하라고 주셨습니까’하고 물어보셔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는 목사로서, 장로로서 권사로서 집사로서 ‘하나님, 이 직분 이 사명 어떻게 감당해야 합니까’,‘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게됩니까’라는 질문을 하나님께 항상 물어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들의 봉사와 충성이 잘못되지 않습니다. 속담에 ‘아는 길도 물어보라’하였습니다. 잘 알고 있을찌라도 항상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봉사하고 충성하도록 기도하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8절 말씀에서 한가지 더 살펴 볼 것이 있습니다. 마노아는 아내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하신 말씀들을 다 전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마노아는 자신도 직접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나님의 사람을 다시 보내달라 하였습니다. 이것이 좋은 신앙입니다. 우리가 설교를 듣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도 말씀의 은혜를 주시며 깨닫게 하시며 성령에 충만함을 주시기를 기도하며 사모할 것입니다.
9절‘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여인이 밭에 앉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였으나 그의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마노아가 자기 아내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해달라는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다시 오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기도뿐만 아니라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하는 말도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가 복을 받는 것도 화를 당하는 것도 다 우리의 말에 달려 있습니다. 잠13:2절‘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복록이라는 말은 행복을 말합니다. 그가 행복하고 불행하고는 그 사람의 입의 말에 달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가까이하시므로 일상생활 속에서도 우리 입에서 말씀이 나올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10절‘여인이 급히 달려가서 그의 남편에게 알리어 이르되 보소서 전일에 내게 오셨던 그 사람이 내게 나타났나이다 하매’하나님의 사람을 다시 오게 해 달라는 기도는 마노아가 하였지만, 이번에도 하나님의 사람은 마노아가 아니라 밭에 있던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시었습니다. 아기를 임신하여 10달 동안 수고와 고생할 사람도 마노아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아기를 낳게 될 사람도 그 여인이며 아기를 낳아서 젖을 물리고 키워야할 사람도 그 여인입니다. 하나님은 이 크신 일에 마노아의 아내가 중심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봉사할 때 수고를 알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봉사를 하거나 전도를 하거나 기도할 때에 수고를 알아주심을 믿고 낙심하지 말고 충성 할 것입니다.
11-12절‘마노아가 일어나 아내를 따라가서 그 사람에게 이르러 그에게 묻되 당신이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그 사람이니이까 하니 이르되 내가 그로다 하니라 마노아가 이르되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아들을 낳으리라 하고 말씀하셨던 그 사람에게로 마노아는 아내를 따라갔습니다.
마노아는 그 사람 앞에 섰을 때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하고 물었습니다. 아이가 없다가 아들을 낳게 된다는 그말만 기뻐 어쩔줄 몰라 하지 않았습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합니까? 우리 부부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마노아의 물음에 하나님의 사자가 대답을 하였습니다. 13-16절까지가 하나님의 사자의 대답입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마노아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네 아내에게 말한 모든 것을 지켜라 네 아내는 포도나무에서 나온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말고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말고 부정한 어떤 것도 먹지 말아야 한다. 내가 그녀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녀가 지켜야 한다’라고 말씀 했습니다.
마노아의 사람 됨됨이를 볼 수 있습니다. 마노아는 부부간에 화합했어요. 이들 부부는 금슬이 참 좋았어요. 아내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을 때, 아내는 그 당장에 남편에게 자세하게 전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들 부부 사이에 ‘불통’이 전혀 없어요! 서로 대화가 원활합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떠난 이후, 마노아가 두려움에 떨었어요. ‘하나님을 본 자는 죽는다’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봤다! 이제 우리는 죽었다! 바들바들 떨었어요. 이때 아내가 위로합니다. 어떻게 위로해 줍니까?
23절‘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아내가 남편보다 ‘조금’ 더 똑똑합니다. 참, 아내가 이 정도는 되어야지요. 부부간에 소통이 잘되고, 서로 위로하면서 사는 잉꼬 부부였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부부는 함께 대화하며 서로 위로하며 살아야 합니다. 절대로 자기 식구를 흉보면 안됩니다.
마노아는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마노아는 아내 얘기를 잘 들었어요. 아내 듣자마자 행동합니다. 아내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다고 얘기하자마자 뭐 했어요? 기도했어요. 마노아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 시대에 참으로 보기드문 의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어떤 시대라고요? 하나님께 악을 행하여 무려 40년간! 블레셋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에 마노아 부부, 하나님이 들어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마노아는 나그네를 대접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히13:2절‘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오늘 본문에서 마노아 부부 ‘부지중에’하나님의 사자를 대접하고 있어요. 오늘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도 이런 부부, 이런 신앙인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노아는 기쁜 소식을 알려준 이 사람이 하나님의 사자인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 정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자였습니다. 사람이라면 염소를 잡아 대접을 하면 되겠지만 하나님인 경우에는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마노아가 새끼 염소를 잡아서 음식을 대접해 드리겠으니 기다려야 달라했을 때, 번제를 준비하여 그것을 여호와께 바쳐라하고 말했습니다. 번제는 가죽을 제외하고 내장과 정강이를 씻은 후 각을 떠서 전부 태워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제사입니다.
구약에서는 5대 제사가 나옵니다. 그 중에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번제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우리들은 영적인 번제를 가장 먼저 드려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영적인 번제는 자신이 산 제물되어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번제는 상번제라 하여 아침, 저녁으로 제사장이 드렸습니다 (민28:3-4). 이것은 아침, 저녁은 하루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삶의 전부를 드리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배자들은 먼저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번제와 같은 삶의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17-18절‘마노아가 또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귀히 여기리이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이 말씀에서는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이는 우리 신앙에 아주 중요한 물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처럼 무슨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그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씀 하시며 우리는 그 이름을 그대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시더니 ‘내 이름은 기묘자라’하고 이름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름을 기묘자라 하였습니다. ‘기묘자’라는 뜻은‘경이로운 일’ ‘불가사의한 것’을 뜻합니다. 인간의 이성과 지혜, 상상과 감각으로써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분을 말합니다. 초월적인 능력과 성품으로 오묘하신 섭리를 수행하시는 분, 곧 하나님에 대한 별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 마노아를 찾아오신 이 분이 장차 세상을 구원하려 오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들을 주신다 하신 것은 이 아들이 블레셋의 억압으로 부터 구원할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들, 즉 삼손은 이스라엘을 진정한 의미에서는 구원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기묘자라 말씀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인들을 구원하려 오실 분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마노아의 아내가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들 삼손을 낳습니다. 하나님은 삼손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의 영이 삼손을 움직이기 시작하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인도 속에서 자랍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때에 그분의 계획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상주감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마노아 부부의 신앙을 통해 우리들의 신앙에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가는데 쓰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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