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타마 싯다르타(석가모니) 붓다(부처)의 원가르침(근본불교) 입장에서 남방불교의 가르침(상좌부 불교)을 보면 불법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1. 고타마 싯다르타 붓다의 깨달음, 4성제 중 고성제에서 말하는 고의 의미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극복하고자 하는 괴로움(고성제)은 요약하면 정신적 괴로움(5취온고, 5온을 취착함으로써 오는 괴로움)이다.
현 남방불교에서는 5온과 5취온의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고 있다.
5온의 본성 자체가 괴로움이라면 그 어느 누구도 이 괴로움을 소멸할 수는 없는 것이다.
2. 집성제는 12연기의 유전문으로 지금 바로 여기 현실의 괴로움이 일어나게 된 원인, 연기관계를 보여주는 것인데, 12연기를 남방불교에서 3세양중인과로 보는 것은 현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얼토당토 않은 것이다.
이는 불교의 힌두화로 윤회를 불교에서 포용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무아론 입장인 불교에서는 상론 입장인 힌두교의 윤회를 결코 인정할 수 없다.
3. 불교의 힌두화로 일어난 문제이겠지만 인도의 전통 관념과 불교의 관념을 혼동함으로써 불법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힌두교의 윤회, 태어남 등의 개념을 불교에 잘못 적용, 이해함으로써 불교의 근본 가르침(제법 무아)을 훼손하고 있다.
힌두교의 견해는 상견이지만 불교의 견해는 상견(전세, 현세, 내세도 아트만은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 단견(현세에서는 아트만이 존재하지만 죽음으로 아트만은 소멸한다는 견해)도 아닌 중도 입장인 무아견(전세, 내세는 말할 것도 없고, 현세에서도 나라 말할 존재가 전혀 없다는 견해, 정견)이다.
4. 열반의 개념은 불선법인 탐진치의 멸진 상태인데, 이를 무위법으로 설명하면서 열반 개념을 이상야릇한 경지로 설명하는 것은 불법의 이치에 맞지 않다.
불선법인 탐진치는 그 어떤 실체가 있어 멸진하면 다시 일어나지 않는 그런 존재 개념이 결코 아니다.
고타마 싯다르타도 죽을 때까지 수행을 멈추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열반 개념은 한번 증득하면 결코 사라지지 않는 자격증 같은 것이 아니다.
첫댓글 느낌은 해탈하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단지 그느낌에 휘둘리지 않고 그저 지켜본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