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상자 속에 뭐가 들었는지 무척 궁금하다. 이왕이면 고려시대 그릇이나 오백 년쯤 된 옛날 책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할아버진 세상에서 나랑 제일 친하니까 ‘나의 보물은 사랑하는 손자 표영욱에게 전부 준다.’ 이런 편지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특급 비밀이 들어 있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서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무슨 비밀요원이었다는.(52)
‘다’들이 오고, 꽃 선물이 오고, 옥자 할머니는 얼굴을 어루만지고, 활명수 한 상자 받고, 일본에서 할머니가 오고……. 할아버진 완전 소원 성취 인기 폭발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진 이제 활명수를 먹을 수 도 없고, 일본에서 온 할머니 손을 잡을 수도 없었다. 왜 죽은 다음에애 모든게 이루어지는 걸까? 슬픔이 북받쳐 올랐다.(175)
---1인칭 시점으로 6학년인 나, 표영욱의 시선으로 등장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인물들이 우리 주변에 있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며 이를 담담히 표현한다.
할아버지는 사고도 많이 치고 사기도 당하고 이혼까지 당했다. 서서히 몸이 아파 오고 있다. 변기까지 부축해야 하는 상황과 실수한 장면의 모습, 빤스를 빨아달라고 하는 모습이 참 애잔하다.
---할아버지의 회한이, 후회로 가득한 삶이 여자수의로 상징되었다. 영욱이 눈으로 바라본 장례의식에 대해, 죽음 앞에서도 살아야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은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로 합리화가 된다. 삶과 죽음, 억압된 삶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유은실의 사실감 넘치는 문장이 감칠 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