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대목이다. 내 고향 계룡산자락 산촌마을 에도 설 대목이 찾아왔다. 한달 전부터 어머니 손과 발이 눈코 뜰새 없이 분주하시다.
이불 빨래부터 시작하여 한복 바지 저고리 설빔 준비에 저녁이면 희미한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시고 다듬이를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누나가 방망이 두드리는 소리 악보 없이도 아름다운 선율을 정확하게 밤공기를 타고 집밖으로 까지 전달한다. 타악기 난타공연의 원조였는지도, 어머니는 설빔이 끝나고 차례상 음식 준비에 분주함을 더한다.
기계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천구백 사오십 년대 (1940~50년대) 설 날, 떡국을 먹기 위해서는 주로 가마 솥에 떡 시루를 앉치고 수증기로 밥을 지어 절구나 떡 메에 놓고 쳐서 떡 가래를 만들고 광주리에 한 가닥 한 가닥 담아 굳어지면 가래 떡을 썰어 떡국 끓일 준비를 한다. 곁에서 한줌 얻어 먹는 그 맛 ! 요즈음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피자 맛에 비하여 더 맛 있다.
차례준비를 위해 제기祭器를 닦고 떡이며 부침개 채반 산적 약밥 약주 등 음식 준비는 어머니 몫이다 아버지는 대목 5일장에 나가시어 산적과 떡국에 넣을 고기며, 명태와 조기 등 제수 물품을 사오시고 난장판 가게에서 기성복과 고무신 운동화 양말 등의 설빔은 아버지의 몫 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설 준비에 설 대목을 힘들게 지나는 줄도 모르고 설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마냥 즐거워하던 설 대목의 어린 시절 그리움이다.
설날은 조상 님께 차례를 올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집안어른들께 세배를 드린 후 맛있는 떡국에 산적과 과일을 곁들여 음복으로 동동주 한잔을 마신다. 기분 좋은 설 날 아침이다.
조상님 묘에 성묘를 올리면서 아버지와 숙부 형님으로부터 조상님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다음 형님들과 함께 동네 어른들은 물론 이웃동네 어른들까지 하루 이틀 세배를 다니며 그 집 설 음식을 대접받아 맛 있게 먹는다. 멀리 떨어져 사시는 고모님 과 외가는 졍월 대보름 전에 다녀온다. 설 대목과 설날은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날이었다. 고향은 역시 잊을수 없는 항상 그리움의 고장이다
- 2017년 1월 25일(음력 2016년 12월 28일) 설 대목에 고향을 생각하며-
# 그때 그 시절에는 대부분 생활이 어려웠던 사회환경으로 세배 돈은 주지 않았지만 세배 가는 집집마다 음식 대접이 푸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