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의사행세 시작한지 40년이 된다. 성모병원에서 인턴으로
시작한 수련의 5년, 군의관 3년 그리고, 대학부속병원 외과 스탭,
응급실장 3년을 포함하여 반세기 가까운 인생 대부분을 의료현장
에서 임상의사로 생활해온 왕고참 의사인 셈이다. 돌이켜보면
축복받은 인생이지만, 복잡하고 골치 아픈 사고와 사건들로 순탄
하지만은 않은 삶을 지켜왔다.
요즈음 한국 의료계가 ‘포괄수가제(DRG)’로 시끄럽다.
의사들의 강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강제 시행을 지시한
복지부는 한해 약 100억원의 의료비 지출 감소효과가
있다고한다. 절감된 100억원 안에 숨어있는 의사와 환자
들이 감수해야 할 갈등과 고충을 환자나 일반인들은 이해를
하지 못하고 그냥 ‘싼 비지떡’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의사의
행동을 걸핏하면 ‘환자를 볼모로......’내세워 대의(大義)가
무엇인지 관심 갖지 않는다. ‘경험해 보지 못한 자(者),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진리는 시쳇말로 ‘당해봐야 알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의료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절대로 ‘서로 당해서는’ 안된다. 의약분업같은 「선(先)시행,
후(后)보완」의 우(愚)를 다시는 허용할 수 없다.
미국 미시간대학 유학시절에 DRG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경험한 바 있다. 유방암 수술 후 불안한 심정으로 사흘
만에 퇴원해야 하는 환자. 디스크 수술 후 닷새 만에 퇴원
후 가시지 않는 통증 때문에 ‘차라리 죽고 싶다’고 호소하는
이웃환자. 이비인후과 수술 후 계속되는 통증을 호소하는
흑인 환자의 아들이 유명한 수술 담당 의사를 총으로 살해한
사건 등...... 그리고 병원 당국은 항상 「위험관리과(Risk
Management Department)」에 의료소송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하고......
DRG가‘의료 정찰제도’인만큼 국가에서 관리, 통제는
쉬울지 몰라도 한국의 의료현실에서 결코 정의롭지도,
윤리적인 제도는 될 수 없다. DRG제도가 시행되면, 교통
사고, 산재의료사고 환자의 「강제퇴원과정」에서 간혹
경험하게 되는 환자와 의사의 갈등과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질 텐데...... 걱정이 태산이다. 의료보험제도 시행
후 개복술을 담당하고 있는 외과, 산부인과에서 위적출술,
자궁적출술 같은 개복술 후 맹장 수술을 덤으로 해주던
선심관례(?)가 사라지면서 남모를 갈등이 생겨난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의사는 책임과 윤리문제로 죽을
때까지 고민해야하는 전문 직업인이다. 어떤 의사도‘환자
를 볼모로’하는 진료거부를 저지를 수 없다. 단지 직업인,
생활인으로서 요구하는 일반적인 행위를 반사회적,
반도덕적 인간들로 매도해가는 현실에 의사들이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을 뿐이다. 환자를 포함하여 각 분야에
권리장전(權利章典)이 있다.
소비자, 노숙인, 당신, 협상가......
<소비자 7대 장전>으로 패러디(Parody)한 글이 있다.
<소비자 7대 권리장전>
1. 소비자는 맛있는 치킨을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2. 소비자는 맛있는 치킨을 합리적인 가격에서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3. 소비자는 맛있는 치킨을 정확히 알고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4. 소비자는 맛있는 치킨을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5. 소비자는 이웃을 사랑하는 치킨을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6. 소비자는 건강한 치킨을 먹울 수 있는 권리가 있다.
7. 소비자는 깨끗한 치킨을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어떤가? 치킨하나에도 이렇게 소비자의 권리가 많은데
자기 몸과 마음을 담당할 의료의 선택이 「의료 가격
정찰제」에 묶여서야 되겠는가!
왕고참 의사의 푸념 같아도, 나 역시 다섯 번이나
대수술을 받아 본 환자 였었다. 더욱이 홀아비사정,
과부사정 모두 알고 있으니, 감히 나랏님들의 결정을
이렇게 염려하고 있는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