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 서울 경마공원을 산책하다
이것은 아마도 가족적인 학교 분위기, 믿음 안에서 상부상조하며 끈끈한 정을 나누며 화목하게 지냈던 생활 풍토가 그대로 이어지게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리고 맡은 임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보여집니다. 수고한 역대 회장, 총무들에게 지면으로 감사드립니다.
다른 해보다 많이 참가한 이유는 금년 회장으로 선출된 박창섭 선생님(체육)과 총무이신 정희숙 선생님(음악)의 권유와 노력 때문이었습니다. 두 분이 환상의 궁합을 이루어 모임을 기획하고 진행하여 그동안 참석하지 못했던 박신성 선생님(성경)까지 참석하는 성과(?)를 거둔 것이지요. 오랫동안 안부도 모르고 지냈던 대부분 동료들은 오랜만의 만남을 반겼습니다. 90을 바라보는 연세에, 멀리 군포에서 부축을 받으며 참가하셨던 것입니다.
공원은 평일이라 소풍 나온 유치원 아이들의 세상이었지요. 경주마가 달리는 트랙과 관중석은 텅 비어서인지 엄청나게 넓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주말에 진행되는 경마를 떠올리는 순간, 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경주마와 그에 따라 환호하는 관중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 올랐습니다. 오늘은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온 서울 장안 다 보인다네 희망 안고 힘든 줄 모르고 열심히 올랐더니 과연 모든 장관이 다 보이더라 팔순 고지(高地) 알게 모르게 오르니 내 주위에 꽃 같은 젊은이가 너무 많아 나 스스로 늙은 것 모르건대 내 옆 친구 너무 늙은 할아버지 지금은 오감이 흐려지고 정신이 아른하여 겉모양이 자꾸 낡아 어허 팔순 고개 내 눈앞에 오십 년 사십 년 삼십 년은 길고 먼 세월이었는데 이제 십 년 이십 년은 너무 문 앞이야 이제는 주 안에서 잠들 때가 오고 있는데 느낄 듯 모를 듯 그날그날 살아가네 그러나 내 옆에 다정한 내 가족 내 친구 지켜주니 더욱더 행복하네 오호 주님 오늘이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 김찬권의 ‘어허 팔순(팔순)’ * 원본에는 남산의 높이가 1,000m로 되어 있는 것을 실제의 높이로 정정하였습니다. 고령이신 김찬권 선생님은 과학교사 출신으로 문학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 오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 이토록 진솔한 시를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한치도 발음의 흩어짐이 없이, 남산에 있는 숭의(崇義)에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며, 동료들과 생활했던 추억을 누구보다 아름다운 보람으로 생각하며 감사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정년은퇴 후, 어느덧 90을 바라보는 삶의 고지(高地)에 접어든 그는 지금도 가르침을 받은 젊은이들이 주변에 있어 가슴이 뿌듯하다고 느끼신 것입니다. 마치 이해인 시인이 <어느 교사의 기도>에서 ‘이름을 부르면 한 그루 나무로 걸어오고 사랑해 주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는 나의 학생들이 있어 행복했다’는 것처럼 그의 지난 생애는 보람으로 빛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어디 선생님뿐이겠습니까? 사실 우리 모두 선생님의 지적대로 수많은 세월 남산의 언덕길을 오르며 희로애락을 같이했습니다. 때로는 인간관계에서, 업무에서, 잠시 의가 상한 적이 있었다 해도, 그건 비 온 뒤 더욱 땅이 굳어지는 과정처럼 우린 한 목표를 향하여 열심히 달려갔고, 그래서 우리는 누구보다 더욱 끈끈한 ‘사랑의 띠’로 묶였던 것이지요. 추억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
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 ‘만남’의 의미를 새롭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숭의에서 만난 것도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평생 한 학교에서 근무하며 살았던 것도 실은 우연이 아닌 필연(必然)이었던 것을 말입니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저는 이미 오래전에 썼던 <만남>의 시 한 편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미천한 글이지만 여기 올립니다.
너는 발 빠르게 달려오는 밀물로 나는 발 빠르게 달려가는 썰물로 서로 뜨겁게 만난다 한 번은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젖은 눈물로 만나고 한 번은 육지와 맞닿은 곳에서 만월(滿月)의 가슴으로 만난다 하늘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육지가 되고 우리는 비로소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밀물과 썰물이 서로 만나듯 너와 나는 그리움의 바닷가에서 뜨거운 입맞춤으로 다시 만난다. - 남상학 의 ‘만남’ 사진설명 : 앞줄 좌로부터 남상학(국어), 김종기(국어), 류화현(수학), 권명순(행정), 송선철(음악), 유재영(수학), 박은자(가정), 이광수(국어) / 뒷줄 좌로부터 이영숙(국사), 서순희(양호), 이한수(음악), 김진섭(국어), 김찬권(물리), 최찬후(음악), 박창섭(체육), 최병희(생물), 송인숙(물리), 윤영옥(윤리), 김익란(미술), 박신성(성경), 정희숙(음악)
(글 / 사진 : 남상학)
2014.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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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솔길을 함께 걸어보실까요? 원문보기 글쓴이: 혜강(惠江)
첫댓글 정희숙 선생님 생각납니다 합창단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