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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2378.2026.8.9)
대하26:1-5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 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믿음을 잘 지켜낸 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유다의 10번째 왕인 웃시야 왕의 이야기입니다. 웃시야 왕은 열여섯 살에 남유다의 왕이 됩니다. 그런데 웃시야는 아직 어린 나이에 왕이 되고 자신의 믿음을 잘 지켜내며 통치를 했습니다. 웃시야의 아버지 아마샤 왕은 6년간 왕위에 있은 뒤, 16세된 아들 웃시야에게 남 유다의 10번째 왕권을 넘기고는 23년간 배후에서 섭정을 했습니다. 웃시야는 아버지가 죽은 후에 29년간을 더 통치하여 52년간을 유다 왕들 중 가장 긴 시간 왕좌에 있었습니다. 웃시야는 신앙과 실력을 함께 갖춘 탁월한 리더였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신앙인으로서의 웃시야는 스승 스가랴의 조언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정직하게 정치하고 정직하게 살았던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왕으로서도 많은 업적은 세웠습니다. 전략적 요지이며 구리의 주 생산지였던 해안도시 ‘엘롯’을 회복했고 오랜 숙적이었던 이방민족들을 정복했으나 괴롭히지 않고 오히려 그 성들을 재건하여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가축보호를 위하여 예루살렘 주변의 성읍들을 정비했으며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국방, 행정, 건축과 토목공사, 농업정책 등 국가 전반적인 부분에 큰 역량을 발휘하여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부분에 있어서 탁월한 나라가 된 것은 하나님의 형통케 하시는 도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웃시야’라는 그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능력,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이름의 뜻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그의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뭇 인간의 역사를 주장하시는 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부친이며 그의 선왕(제9대)이었던 ‘아마샤 왕’과 그의 조부이며 선선왕(제8대)이었던 ‘요아스 왕’의 일대기를 보면서 한 인간이나 한 나라의 성공과 실패는 그 어떤 인간의 힘이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 위에 부어지는 하나님의 도우심 여부에 달려 있는 것임을 철저하게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여러분도 말씀듣고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웃시야 왕의 통치기간 동안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본문 5절‘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이 말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아마 대부분의 믿는 사람은 이 구절에서 ‘여호와께서 형통하게 하셨더라’는 구절이 가장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오늘 본문에서 믿는 사람이 더 주목해야 할 말씀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이 말씀입니다. 사실 이 말씀에는 미묘한 여운이 남는 표현입니다.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이란 표현 속에는 ‘여호와를 찾을 동안이 아닌 때’를 예외로 여운을 남기는 표현입니다. 나중에 말씀을 드리겠지만, 웃시야 왕은 훗날 여호와를 찾는 삶을 지켜내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을 지켜내며 사는 삶을 실패합니다.
믿음은 끝까지 잘 지켜내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믿음을 지켜내지 못하도록 숱한 미혹과 시험을 가져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이 살고 있는 세상이 만만치 않습니다. 세상도 우리가 믿음을 지켜내기에는 매우 버거운 현장입니다. 얼마나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믿음을 지켜내야 합니다. 가장이 가족을 지켜내야 하듯이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지켜내야 합니다. 우리가 애써 모은 돈이 사라지지 않도록 잘 지켜내야 하듯이 우리의 믿음도 잘 지켜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후퇴하지 않도록 세상으로 가지 않도록 믿음을 지켜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명예를 지켜내기 위해서 오해와 맞서서 싸우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사람은 많은 시간과 돈을 쓰면서 법정에서 오랜 싸움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법정에서 이긴다고 큰 이득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외롭게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별 이득도 없는 것을 위해서 이렇게 시간과 돈을 쓰면서 싸우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쓴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 그렇게 싸우는 것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신의 명예를 지키내기 위해서 이렇게 외로운 싸움을 싸우는데, 우리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서 얼마나 믿음을 지켜내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잘 지켜내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믿음을 지켜내는 가장 큰 비결을 담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하나님을 찾았고’입니다. 믿음을 지켜내는 최고의 비결은 ‘여호와를 찾는 동안에’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동안에는 그 믿음 절대 빼앗기지 않습니다. 어떤 고난도, 어떤 미혹도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절대 잃어버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1.여호와를 찾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여호와를 찾는 삶이란 하나님 얼굴 앞에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사는 삶입니다. 웃시야 왕이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본문 4절‘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웃시야 왕이 하나님을 찾으며 살 수 있었던 근거는 하나님의 시선을 느끼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방금 읽은 말씀에서 ‘여호와 보시기에’란 말씀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는지 그것을 말씀합니다.
웃시야 왕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를 생각하며 살았다는 말입니다. 웃시야는 열여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남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왕자로 자라기는 했지만 아직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웃시야는 왕이 되면서 한 가지 분명하게 아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 무엇을 기뻐하실지 그것은 아는 웃시야였습니다. 그래서 웃시야는 정치는 어떻게 해야 잘하는지 잘 몰랐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잘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웃시야가 왕이 된 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런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어떻게 보실지 그것을 생각하며 통치한 웃시야 왕을 하나님께서는 무려 50년 동안 남유다를 통치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도 형통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웃시야가 왕이 된 후 하나님 보시기에 잘하려고 했던 사건 하나가 소개됩니다. 본문 2절‘아마샤 왕이 그의 열조들의 묘실에 누운 후에 웃시야가 엘롯을 건축하여 유다에 돌렸더라’ 웃시야가 열여섯 나이에 남유다의 왕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면서 가장 먼저 웃시야의 행적 하나를 소개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웃시야가 왕이 되었다는 내용과 함께 이 내용을 가장 먼저 소개를 했을까요? 언뜻보면 이 내용은 웃시야가 왕이 된 후 정치적인 공적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내용에는 웃시야의 신앙적인 마음이 담겨진 사건입니다.
웃시야가 왕이 된 후 가장 먼저 엘롯을 건축하여 유다에 돌렸다고 소개합니다. 엘롯은 다윗 시대에 이스라엘 땅이 되었던 곳입니다. 그러다가 여호람 왕 때에 에돔의 반란으로 다시 빼앗깁니다. 웃시야의 부친 아마샤에 의해 엘롯은 다시 유다 땅으로 되찾습니다. 그러나 이 땅은 방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웃시야는 왕이 되자마자 이곳 엘랏을 다시 건축하여 유다 땅으로 귀속을 시켰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웃시야는 왕이 되자마자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렸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마음을 헤아려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축복으로 엘롯 땅을 선물로 주었는데 그 이후 그 땅을 빼앗기기도 하고 또 소홀히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웃시야는 왕이 되자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땅이 방치되어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웃시야는 왕이 되자마자 엘롯 땅을 정비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일을 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웃시야 왕처럼 하나님께서 보실 때 무엇을 기뻐히실지 알고 그것을 행하며 사는 것이 진짜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입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해서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소소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순종할 때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것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도 웃시야 왕처럼 늘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어떠할지 그것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형통한 삶의 은혜를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2.여호와를 찾기 위해서 필요한 스가랴입니다.
여러분 목사님을 찾아서 기도를 부탁하시기를 바랍니다. 웃시야가 하나님께 구할 동안에 형통했습니다. 5절‘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신4:4절‘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붙어 있는 것이 곧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붙어 떠나지 않는 자만 생존했습니다. 요15:4절‘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있지 아니하면 버려져서 말라버릴 것입니다.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붙어 있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할 때 그렇다는 말입니다. 붙어있지 않는것은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결국 망하는법입니다. 웃시야 왕이 하나님과 함께 할 때는 형통했는데, 그가 하나님을 떠날 때는 불행했습니다. 대하26:21절‘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 웃시야 왕은 결국 비참한 생을 맞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믿음은 바로 이런 것이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신앙생활 잘하다가도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 잘 하다가 어느 순간에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그 자체가 비극이고 불행이고 저주입니다. 딤후4:10절‘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웃시야 왕이 ‘하나님을 찾을 동안에’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구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 또는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웃시야 왕이 하나님을 찾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에는 매우 중요한 사람이 있었음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본문 5절‘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웃시야 왕이 하나님을 찾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웃시야 개인의 믿음도 있었지만, 또한 곁에 스가랴 선지자가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본문은 밝힙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아직 어린 나이에 유다의 왕이 된 웃시야 곁에서 늘 기도해 주고, 또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고 격려해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정치를 잘하도록 지도한 것이 아닙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한 것은 기도와 말씀으로 함께 했을 뿐입니다. 그랬더니 웃시야 왕이 하나님을 늘 찾는 신앙생활을 했고 하나님께서 웃시야를 축복하셨습니다.
저는 늘 예배 준비하는 사람으로, 또 설교를 준비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물론 예배를 준비하고 설교준비하는 시간도 저에게는 너무나 깊은 은혜의 시간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분명 개인의 것입니다. 믿음도 개인의 것입니다. 누군가가 대신 해 줄 수가 없는 것이 구원이며, 믿음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절대 혼자서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내 곁에 믿음이 좋은 사람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복 중의 복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너무나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요나단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여호수아가 정말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곁에 갈렙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없었다면 여호수아는 얼마나 더 어려웠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곁에는 목회자가 있습니다.
요즘은 전기차가 많아졌습니다. 전기충전소도 이전보다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전기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불편은 역시 전기충전을 하는 것입니다. 충전소가 많지 않은 것도 불편하고, 기름을 넣는 차는 잠깐이면 기름을 넣을 수 있는데, 전기차를 충전하려면 충전소에서 급속충전을 하는데 약 30분 이상 걸립니다. 집에서 충전하려면 4~5시간 정도 걸립니다. 그러나 전기차를 타고 다니려면 그 시간을 기다려서라도 충전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려면 믿음이 충분하게 충전이 되어야 합니다. 웃시야 왕 곁에서 믿음이 충전될 수 있도록 도왔던 스가랴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 가운데서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믿음의 충전이 꼭 필요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믿음의 충전만은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믿음을 충전시켜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배와 기도의 자리에서 충분한 영적 충전을 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늘 주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서 영적 충전이 잘 되시기 바랍니다.
며칠전에 뉴스에 나오는데 많은 아파트에 전기가 나가니까 불편하다고 아파트 20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하는 일이 생겨났다고 했습니다. 자동차도 방전이 되면 끌고갈 수가 없습니다. 이 핸드폰도 방전되면 먹통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충전을 시키면 다시 쓸 수가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방전되어 먹통이 되는 우리의 영적생활도 오늘 말씀으로 충전하셔서 하나님과 동행하시고,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3.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웃시야 왕이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서두에서 제가 이 말씀이 미묘한 여운을 남기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웃시야 왕이 여호와를 온전히 찾는 것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이런 여운이 남아 있었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미묘한 여운이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웃시야 왕이 형통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대하 26:15절‘또 예루살렘에서 재주 있는 사람들에게 무기를 고안하게 하여 망대와 성곽위에 두어 화살과 큰 돌을 쏘고 던지게 하였으니 그의 이름이 멀리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었더라’ 웃시야 왕이 강성하게 되고, 남유다가 강성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웃시야 왕이 이제 강해지면 그의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웃시야 왕은 자기가 성전에 들어가서 직접 분향을 하려고 합니다. 아무리 왕이라도 제사장 이외에 성전에서 분향을 하면 안 된다고 율법에 말씀하셨습니다. 아사랴 제사장이 젊고 용맹한 제사장을 모아서 웃시야 왕이 분향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웃시야 왕이 제사장을 무시하고 그대로 분향을 하려고 하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웃시야 왕을 치셨습니다. 웃시야 왕에게는 나병이 생겨서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로 살게 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여러분이 아무리 훌륭하고 똑똑하더라도 예배드릴 때 만큼은 목사님들 무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가 새벽예배를 마치고 나면 할 수 있으면 운동을 하고 집에 들어갑니다. 북천가서 5키로 내지는 7키로를 살살 달리고 갑니다. 조금 쉬다가 뛰면 엄청 힘이 듭니다. 팔굽혀 펴기도 요즘 잘안해서 30개는 기본으로 하지만 그 이상 하려면 힘이 들어서 하루에 1개씩 들려갑니다. 북천냇가가 있다고 운동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단히 노력을 해야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떠날 귀찮으면 그냥 집으로 가기도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은 부단히 삶에서 이루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와 기도의 삶을 살아내야 하고,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삶에서 형통함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성도로서 항상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삶의 현장에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사탄의 공격과 세상의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여전히 웃시야 왕과 같이 하나님을 찾는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 아침에 이 점만은 분명히 하시고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의 형통의 비결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종 선지자를 신뢰하면 형통하게 된다’라고 하는 것을 말입니다. 대하20:20절‘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지금 ‘웃시야’와 그 가문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가 비록 어린 나이이고 그래서 경험이 부족하고 힘이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종을 신뢰했더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가 전쟁을 일으키면 하나님께서 전쟁을 도와주셨습니다. 그가 행하는 일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종류와 상관없이 형통케 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께서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을 형통케 하셨기 때문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크신 도움으로,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졌다는 말씀입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여러분, 이 ‘웃시야’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도 이 ‘웃시야’왕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여 그분의 도우심을 받으며 그분의 은혜로 현세에서의 형통한 삶을 살아가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앞장서는 복된 인생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앞이 막히고 뒤가 막히고 양 옆이 모두 막힌다고 하여도 하늘만 열리면 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결코 좌절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말3:7절‘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 가리이까? 하는도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또 출32:26절‘이에 모세가 진문에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자손이 다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하나님의 편에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종종 신앙인들을 보면, 하나님의 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편에 있습니다. 그래서 편 가르기 하고 싸우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까?
신앙인이 누구편에 서 있어야 합니까? 오직 주님 편에 있는 것이 정상이지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으면 형통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73:28절‘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 하리이다’ 웃시야 왕이 하나님께 가까이 했더라면 형통한 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다윗 왕처럼 끝까지 견고하고, 형통한 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이 축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웃시야 왕처럼 하나님을 찾을 동안에만 형통한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편에 붙어 떠나지 않아야 형통한 복을 받는 것입니다. 시1편에 나오는 말씀처럼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형통한 복을 받는 법입니다. 형통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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