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M. 브로크만"(Brockman Frank Marion,1878-1929.6.10 巴樂萬)
1878년 미국 버지니아에서 출생하였으며, 1902년 조지아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네브래스카 "오마하"(Omaha) YMCA 학생부 간사로 활동했다.
1905년 내한하여 1906년 한국 YMCA 부총무로 봉직하면서 직업교육을 주도했다.
1919년 선교잡지 "조선 청년"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이 무렵 직업교육은 하나의 새로운 전문직 창출(創出)을 위한 교육이었다.
특히 강연회와 토론회는 산업 교육의 필요성, 과학교육의 필요성, 산업의 기능과 국가 발전,
기업과 사회 발전, 복지사회의 건설” 등 다양한 주제의 강연회와 토론회는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많은 도움과 영향을 주었으며 청년들의 사회 참여를 유도했다
1908년 황성기독청년회에서 공동총무로 활동했으며 1914년, 조선중앙 YMCA와 9개 학생 YMCA 등을 포함하여
조선 YMCA연합회(현, 한국 YMCA연맹)를 조직하여 초대 총무로 선임되었다.
"이승만" 박사와 함께 상류 지식층 청년들을 상대로 YMCA 학생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의 초대교회는 주로 못 배우고 가난한 소외계층들이 구성원들이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상류층의 청년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브로크만"은 YMCA를 통해 조국을 잃고 실의에 빠진 한국의 청년들에게
복음의 능력으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주었다.
1911년 6월에는 개성에서 전국 21개 학교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제2회 하기 수련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이 하령회로 인하여 YMCA는 "105인 사건"과 연루되었고
"브로크만"도 학생들과 숙식을 같이하면서 모사(謀事)를 했다는 것이다.
"105인 사건"은 1911년 11월 11일 선천 신성학교 학생과 선생을 검거하여 서울로 압송한 사건 등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 사건은 조선 지식인과 YMCA를 못마땅하게 여긴 일제의 조작극이었다.
여하튼 이 사건으로 인하여 "저다인"(L. L. Gerdine) 회장은 강제 사면되고,
"질레트" 총무는 국외 추방되었으며, "이승만" 박사는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1916년부터 YMCA 협동 총무로서 1922년까지 청소년 교육에 힘썼다.
1919년 선교잡지 "조선 청년"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1923년, "신흥우" 총무와 농촌운동을 시작했는데 미국 국제 본부를 방문하여
1925년부터 10명의 농촌 기술자를 미국과 캐나다에서 파송 받고,
재정 원조도 약속 받기로 하는 등 성공적인 과업을 이룩했다.
그가 주도한 지도자협의회는 농촌운동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의 형 "플리쳐 S. 브로크만"(Brockman, Fletcher Sims, 1874-1939)은
중국 YMCA 총무로 활동하면서 1903년 한국 YMCA 창설 자문위원회 특별 강사로
내한하여 1903년 10월 28일 "황성 기독 청년회" 창설공로자이다.
1905년 동생 "브로크만"의 한국 파송도 주선하였고
가끔 YMCA 초빙을 받아 중국에서 한국에 입국하여 지도자 훈련 등에 참여했다.
1927년, 과로로 인하여 건강이 악화되어 귀국하였으나 돌아오지 못하고
1929년 6월 10일 미국에서 소천하여 "프린스턴" 신학교 장(葬)으로 장례를 치르고
유해는 그의 유언에 따라 양화진으로 돌아왔다.
"브로크만"가족의 묘.
뒤쪽에 있는 "Frank Marion Brockman"의 묘비.
묘비 아래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FOR
TWENTY FOUR
YEARS IN
KOREA,
SEER
BUILDER,
PEACE MAKER,
FRIEND
"24년 간 한국의 증인 일꾼, 평화의 친구"라는 뜻이다.
어머니 (Mrs. Brockman, W. A. 1840.2.26-1915.3.7)의 묘비.
어머니(Mrs. Brockman, W. A.)는 1840년 2월 26일 미국 버지니아에서 출생하여
1915년 3월 7일 한국에서 소천하여 양화진 아들의 곁에 안장되었다.
어머니의 묘비에는
"HER MOTHER HEART LOVED ALL THE WORLD"라고 기록해 놓았다.
딸 "바바라 브로크만"(Brockman, Barbara, 1914-1922)의 묘비.
"브로크만"은 1912년 35세의 늦은 나이에 "제시 윌리스"(Jessie Willis)와 결혼하여 2남3녀를 두었으나
첫딸 "바바라"(Barbara)는 1914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1922년 여덟살에 서울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