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뎐의📌짧은 생각(35)
제사장 카야파가
예수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인가?”
예수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26장 64절)
그러자
카야파는 자신의 겉옷을
찢으며 말했습니다.
“이 자가 하느님(하나님)을
모독하였다.”
무심코 넘어갈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카야파는 왜
자신의 겉옷을
찢었을까요.
그것도
대중 앞에서 말입니다.
여기에는
유대의 오래된
풍습이 있습니다.
요즘은 우리도
현대식으로
장례를 치릅니다.
예전에는 달랐습니다.
전통적인 유교 방식의
장례에서
상주와 유족은
남루한 삼베옷을 입고
대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짚었습니다.
유대인들도
비슷했습니다.
부모나 자식, 배우자가 죽었을 때
유대인은
자루옷을 입었습니다.
머리와 팔만
쑥 들어가는,
말 그대로
자루처럼 생긴 옷입니다.
그 옷을 히브리어로
“삭(saq)”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어로는
‘삭코스’입니다.
요즘 학생들이
짊어지고 다니는 배낭을
‘색(sack)’이라고 부릅니다.
그 어원이
히브리어로 ‘삭’이고
그리스어로 ‘삭코스’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할 때도
자루옷을 입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가까운 사람이 아플 때도
그 아픔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자루옷을 입었습니다.
전쟁에서 패했을 때는
그 패배를 인정하고
고개를 숙인다는 의미에서
자루옷을 입기도 했습니다.
그게 끝이 아닙니다.
자루옷을 입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아픈 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했습니다.
예전에는 상가에서
삼베옷을 입은 상주들이
지팡이를 짚고서
곡을 하듯이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입고 있는 자루옷을 찢으며
자신의 아픔을
드러냈습니다.
머리에 재나 흙먼지를
뿌리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잿더미에 들어가
뒹굴기도 하고,
금식하고
통곡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분함과 아픔을
전통적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제사장 카야파가
자신의 겉옷을 찢으며
“이 자가 하느님을 모독하였다”고
소리친 것도
그런 맥락에서
한 일입니다.
자신의 옷을 찢는
제사장이
저토록 마음 아파하고 있구나, 라고
군중이 보고 느끼길
카야파는 바랐을 겁니다.
그래서
시각적 효과가
확 두드러지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요.
결국은
안목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 말입니다.
율법주의에 젖어 있던
당시의 유대 제사장 그룹은
예수 안에 깃든
신의 속성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없었겠지요.
다시 말해,
그들은 자기 안에 깃든
신의 속성을
스스로 외면하고
살고 있지 않았을까요.
저는 생각해 봅니다.
만약에
2023년에
하느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온다면
우리는 그를 알아볼 수 있을까.
아니면
제사장 카야파처럼
우리도 겉옷을 찢으며
분노를 표출하게 될까.
그건 결국
눈에 달렸습니다.
자기 안에 깃든
신의 속성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예수 안에 깃든
신의 속성도
볼 줄 아는 눈이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런 눈을 갖기 위해
지금도
자신의 바퀴를
굴리고 있는 게
아닐까요. [출처:중앙일보]백성호:종교전문기자
㉟ 닭 울음소리에 베드로가 통곡한 진짜 이유
예수는 올리브산의 겟세마니에서 체포됐다.
성전 경비병들은 밧줄로 예수를 묶었을 터이다.
손을 묶었을까, 몸을 묶었을까.
예수는 꽁꽁 묶인 채 올리브산의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그리고 언덕길의 예루살렘 성문을 통과해 카야파 대사제의 관저로 끌려갔다.
나도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예수는 외로웠을 터이다.
제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예수가 겟세마니의 바위에 엎드려 기도할 때 제자들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예수가 체포되자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심지어
“가장 나이가 어린 제자는 몸에 두르고 있던 천까지 내던지고 알몸으로 도망쳤다”고
성경에 기록돼 있다.
한 패거리로 연루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오직 베드로만이 멀찍이 떨어져 끌려가는 예수의 뒤를 따랐다.
예수는 혼자였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칼과 몽둥이, 그리고 횃불을 든 적들만 있었다.
그러니 외롭지 않았을까.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유다 광야와 예루살렘을 누비며
“스승님”이라 부르고 따르던 제자들이 모두 도망쳤다.
제사장 카야파의 관저에서는 최고 의회가 소집됐다.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 율법 학자들까지 모였다.
예수에 대한 심문이 시작됐다.
베드로는 이 광경을 보려고 안뜰로 몰래 들어가 시종들 사이에 앉았다.
그리고 불을 쬐었다.
성전의 사제들은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 했다.
사형을 선고하기 위해 증거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신성모독’에 대한 증언을 찾아야 했다.
종교 국가인 유대에서 그보다 큰 죄는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에게 불리한 증언들이 이어졌다.
대부분 거짓 증언이었다.
증언들은 서로 앞뒤가 맞지 않았다.
“사람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는 다른 성전을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한
예수의 발언도 문제 삼았다.
그들은 예수의 말에 담긴 ‘깊은 뜻’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겉으로 나타난 문자적 표현만으로 시비를 걸었다.
예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베드로가 불을 쬐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날 밤은 추웠을 터이다.
이스라엘의 사막 기후는 낮에는 햇볕이 따갑지만 밤이 되면 순식간에 쌀쌀해진다.
더구나 유월절 이튿날 새벽이었다.
차갑고 냉랭한 공기 속에서 예수는 재판을 받았다.
<올리브산에서 예수가 체포되자 베드로는 뒤에서 조용히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새벽닭이 울기 전에 세 차례, 예수를 부인했다.>
생각만큼 진척되지 않자 대사제 카야파가 직접 나섰다.
그가 예수에게 말했다.
“내가 명령하오.
살아 계신 하느님 앞에서 맹세를 하고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인지 밝히시오.”
카야파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인지 아닌지 말이다.
카야파의 질문은 양날의 칼이었다.
‘메시아’는 유대의 왕이자 구원자다.
예수가 “그렇다”고 답하면 로마에 대한 반역자가 된다.
또 “아니다”라고 답하면 신에 대한 모독죄가 성립된다.
어떤 대답을 해도 올가미에 걸려든다.
카야파는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당시 유대인들에게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뭔가 달라야 했다.
하늘을 난다든지, 번개를 불러낸다든지,
놀라운 힘으로 주위를 한순간에 제압한다든지, 뭔가 특별한 징표가 있어야 했다.
그런 힘으로 자신들을 식민지 백성의 처지에서 해방시켜야 했다.
그런데 이방인이 득실거리는 갈릴래아 출신의 이 초라한 시골 촌뜨기
젊은이가 신의 아들이라는 것이, 더구나
자신들이 숱한 세월 동안 목이 타게 기다리던 메시아라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인가?”라는 카야파의 물음에 예수는 이렇게 답했다.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마태오 복음서 26장 64절)
예수의 말에 카야파는 자신의 겉옷을 찢고 이렇게 말했다.
“이 자가 하느님을 모독했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인이 더 필요한가?
방금 여러분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떤가?”
그러자 의회 구성원들이 말했다.
“그자는 죽을 죄를 지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크게 모욕당할 때도, 수치심을 느낄 때도,
큰 슬픔에 빠질 때도 자신의 겉옷을 찢었다.
특히 신을 모독하는 행위나 발언 앞에서 자신의 옷을 찢음으로써 감정을 표현했다.
그러니 대사제가 군중 앞에서 자신의 옷을 찢는 광경은 상당히 선동적이었다.
‘우두둑!’ 옷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카야파는 예수에게 신성모독죄를 덧씌웠다.
[출처: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