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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4월 5일이 결혼 20주년이었다.
제주도가 신혼 여행지라 제주도로 여행하려는 계획은 2차례나 연기되다
결국 지리산 2박 3일의 바이크 여행으로 변경했다.
물론 아내의 동의하에서…
여행지의 코스를 계획했다.
꼭 들러고 싶은 곳을 체크한뒤 거리를 고려하여 루터를 정하였다.
경험이 적은 바이크여행이라 되도록 짧은 거리로 정한다고 한 계획이다.
숙소를 미리 예약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귀찮은 일이었고
발길 닿이는 곳에서 숙소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옛날 생각으로 시작한 숙소 구하는 문제는 지금의 여행문화에서는 매우 무식한 생각이었다.
3월 1일자로 처음으로 장만한 바이크...
3달동안 바이크 여행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하였다.
동승자 등받이와 여행용 가방도 구입했었고, 비싼 짐받이대도 달았고 네비게이션을 위한 시가잭도 준비했고
가장 싼 하이웨이 스텝도 엔진 가드에 붙였다.
아내의 가죽 부츠와 목후드(마스크?)를 함께 가서 구입하는 즐거운 시간도 있었다.
동영상 촬영을 위한 거치대는 준비하진 못했다.
<5월 26일 토요일>
아침에 아이들 식사를 준비해서 함께 식사를 하였다.
가방을 부착하려고 주차장에 와보니 한쪽 난간에 낮선 담배와 라이타가 올려져 있고
바닥에는 담배꽁초가 여러개 떨어져 있었다.
밤새 누군가가 내 바이크 옆에 서성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
바이크 관리에 신경을 쓰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낙동강 강둑길로 가려다 길을 잘못들어 몇번을 돌아가는 바람에
주남저수지를 12시가 다되어서야 도착하였다.
더운 날씨에 가죽자켓은 힘들었지만 아내와 함께 달리는 기분은 행복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촬영했다는 장소가 이곳이 맞는지,
둘러보아도 찾지 못했지만 여유로운 저수지의 풍경과 몇마리의 철새를 편안히 감상할수는 있었다.
해인사로 향하는 중간 경유지로 남지를 지나쳤다.
한달전에 본 남지의 유체꽃은 오간데 없고 모조리 뽑아 버렸는지 황량한 벌판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많던 꽃도 잠시다.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해 난리를 치며 가꾸었던 일이었다.
해인사로 가는 지름길로 비포장도로 길을 개척하다 실패했기에 또다시 돌아서 가야 했다.
할리는 비포장에는 매우 불편했다.
포장이 역시 중요하다. 도로길도 물건도 사람도...
우연히 하늘에 멋진 무지개가 보였다. 바이크를 세우고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더 올려보니 일반적인 무지개가 아니다. 색의 규칙성도 달랐고, 태양방향으로 나타났다.
해무리였는데 장관이었다.
이렇게 선명한 무지개 모습으로 보이는 해무리는 처음이고 우리들의 여행을 축하하려는 듯했다.
아내는 벌써 엉덩이가 아파 힘들다고 한다. 구포의 다이소에서 구입한 천원짜리 야구장 방석을 두겹이나 해주었지만 바이크의 안장모양이 투어용이 아니라서 그리고 불안한 마음으로 뒤에서 앉아있는 것은 긴장의 연속일테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가야산의 해인사에 도착했다.
그렇게 큰산의 입구부터 해인사가 출입을 관리하니 마치 산 전체를 자기들의 소유인듯 했다.
명승답게 입구에선 고사목이 오랜 전통의 사찰을 말해 주는 듯하다.
1200년동안 살아오다 1945년 해방을 본후 고사했다고 한다. 우리 인간이 어찌 나무보다 우월하다고 할수 있을까?
팔만대장경으로도 인상적인 절이지만 이 나라의 해방을 보고난 뒤 조용히 생을 마감한 고사목을 보는 마음이 숙연해진다.
죽은지 수십년이 지나니 속은 다 비어있고 껕부분만 남아 있는 모습에서 우리 인간들의 삶과 비교되기도 한다.
석가탄신일을 이틀 앞둔 날이라 절을 빽빽히 메운 연등을 바라보다 수능준비로 여행도 오지 못하는 집아이들과 우리반 아이들을 위해 기도문을 적어 연등에 달았다.
세상을 살다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기도 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나로서도 소박한 소원의 말은 적을수 밖엔 없었다.
'내가 아끼는 이들이 행복하길 소원한다'고…
그럼 되지 않는가? 성공도 실패도 모두 행복보다 더 큰 표현은 아니지 않는가!
등을 달고 기도하고, 대웅전의 부처님께 기도한후 더운 날씨의 절간문을 나오는 순간
내가 아끼는 이가 행복하려면 결국 나 자신이 행복해야만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불행해지면 그들이 어찌 행복할수만 있는가!
그럼 나의 행복을 위해선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풀밭에 앉은 아내가 말한다. 엉덩이가 너무 아프다고…
하지만 표정은 어둡지는 않았다. 그러니 더욱 미안했다.
이렇게 날 믿고 따라와 주는 아내는 마치 날 믿고 결혼하기로 결심했고 나만을 위해 살아가 주는 것과 흡사하다는 생각에 순간 찡하다.
기념품 코너에서 아이들을 위해 108배 CD를 구입하다 눈에 띄는 시화 한장을 구입했다. 따뜻하며 감동적인 글이다.
실천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잘 사는 삶의 정의는 의외로 간단하다. 인연을 소중히 하는 것이다.
해인사에 있는 식당에서 산나물의 비빔밥과 도토리묵 그리고 동동주를 한잔했다.
다 내가 먹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 먹었다.
저녁 숙소로 거창의 관광호텔로 이동했다.
동창회 단체 손님이 없었다면 텅텅 빌 정도로 한적한 호텔이었지만 맑은 공기와 조용한 공간은 휴식하기엔 충분했다.
<5월 27일 일요일>
호텔 아침식사를 기대하기엔 장사가 잘되지 않게보여 아침에 일찍 길을 나섰다.
옛날 사신들을 배웅하고 환대했다는 명소인 거창의 수승대로 가는 아침길은 한마디로 지금까지 최고의 라이딩이였다.
지리산은 웅대한 산세와 주변 벌판엔 모내기한 논과 그리고 청보리밭, 강가와 아무도 흔들지 않은 깨끗한 아침공기, 아침이른 햇살속의 한적한 가로수길을 60키로로 느긋한 마음으로 달리니, 느껴지는 풀내음과 얼굴로 스치는 바람 그리고 이 모든 순간을 나혼자가 아니라 날 믿고 고생길을 따라 나선 내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하는 그 순간은 내생애 최고의 여행길이었다.
레플리 바이크를 타면 길이 보이지만 할리를 타면 풍경이 보인다고 말한다. 꼭 그렇지만은 않는 듯하다.
다방 레지 커피 배달 속도인 40키로가 경치 감상하면서 달리기엔 제일 좋지만 도로에 차가 없을때 말이다.
60에서 80이 바이크 소리도 듣기에 나쁘지 않고 풍경도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80에서 100사이엔 풍경으로 눈을 돌리기 보다는 길을 주시하게 된다.
100 이상에서는 아에 길도 잘 안보인다. 화면이 흔들리기도 하고 고글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에 눈물이 생겨 아른거리는 화면과 바이크 소리도 듣기에 좋지 않으니, 무엇을 타는가 보다는 어떤 속도인가가 더 중요해 보인다.
속도를 욕심내지 않는다면 높은 핸들로 바꾸어 달아서 라이딩을 하고 싶어진다.
좋은 물가를 본 우리들은 한결같이 집아이들이 어렸다면 데리고 오고 싶다는 말과 예전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 하던 시간들을 연상했다.
지리산 주변의 생초면으로 달려 쏘가리 매운탕과 피래미튀김으로 아침을 먹었는데 맛있었지만 속앓이(쏘가리)를 해야 했다.
왜냐하면 1인분에 3만원을 할지는 정말 몰랐다. 나중에 알고보니 민물에선 최고가의 물고기가 쏘가리란다.
배가 든든하니 여행은 더 여유롭다. 오도재를 올라서서 지리산 제1관문에서 쉬었다.
서울에서 카메라만 달랑 들고서 혼자 라이딩온 사람은 홈피에 올릴려고 우리 부부를 찍어갔다.
아내가 좋아하는 부라보콘을 먹고난뒤 벗어놓은 장갑을 누군가 들고가버린 것을 알았다. 그후로 여행내내 맨손으로 라이딩을 해야 했다.
힘들어서 쭈그려앉은 아내의 헬멧에 비친 나의 모습이 마치 아내의 머리속엔 내 생각만 가득하다고 즐거운 상상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
오도재에서 보이던 든든한 나의 애마 883R에도 이름을 붙여 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나중 집에 귀가한후 '팔팔마'라고 부르겠다고 하니 큰애가 엄마 등살에 "팔지마"로 들린다고 한다.ㅋㅋ)
화엄사로 가는 길의 중간지점으로 정한 노고단 산길은 길을 잘못 들어 결국 돌아서 바로 화엄사로 가게 되었다.
기름 탱크에 자석으로 부착하던 스마트폰 네비게이션은 여행내내 안전과 신속한 판단 그리고 심심해서 아내가 등뒤에 들고서 안내해 주었다. 눈길 안가도 그냥 네비(?)두어도 음성으로 안내하는 최신형이다.
화엄사에서 불공을 드린후 비포장 도로 산골속에 자리한 천지가든에 도착하여 작은 폭포물로 시원하게 세수한후 염소불고기를 먹었다. 약간 노린내가 나는 염소고기보다는 향기로운 산나물이 나는 더 좋았다.
화개장터는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치고 바로 토지의 촬영지인 최참판댁을 들렸다.
20살에 결혼한 작가 박경리는 4년만에 남편과 사별한후 83세까지 작가로 활동한 대단한 분이었다.
사람이 생각을 한다는 것에 많은 힘과 의미가 있다고 믿었던 분인가 보다.
너무 잘 만들어진 세트장이라 실제 사람이 살았다고 모두들 착각한다고 한다. 대문 너머 내려다 보이는 넓은 논들의 풍경은 토지에 얽힌 수 많은 사연들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해 보였다.
부부송에 입맞춘후 남해로 달렸다.
다랭이 마을에 도착하니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직 모내기도 하지 않은 다랭이 마을엔 수많은 사람들이 놀려와 있어, 일단 숙박부터 해결하려고 온데를 돌아 다녀도 구할수가 없었다. 수많은 팬션도 모텔도 방이 동이 났다고 한다.
어느듯 날이 어두워 지친 몸으로 길가에 바이크를 세우고 잠시 쉬려니 아내가 울고 있었다.
너무 힘든 여행이라 한다.
결혼 20주년 여행에 무슨 이런 생고생을 내가 다 시키고 있는지 나도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바이크 여행을 마음 먹었을뗀 모험과 도전이 가장 큰 여행테마이겠지만 그건 내생각이고,
전망과 분위기 좋은 팬션에서 따뜻한 목욕을 마친후 맛있는 식사와 와인한잔 하며 풍경을 즐기는 하루도 생각했을게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이렇게 방한칸 구하기가 힘들줄은 정말 몰랐다.
예약과 선착순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선착순보다 더 비겁한 제도가 예약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간판의 불이 커진 곳은 방이 다 나갔고, 간판불이 있는 집만 방이 남아있는 표식이란 것도 나로서는 이날 알았다.
무지가 곧 고생임을 실감하며 다시 방을 구하기 위해 바이크를 타고 상주방향으로 이동하였다.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상주에서 겨우 민박을 구했다.
저녁도 굶고 지쳐 바로 잠들려는 아내가 짐을 풀고 있는 나를 부른다. 베게위에 바퀴벌레가 있는데 좀 치워달라고 한다.
더 미안했다. '그냥 나가자'도 아니고 '좀 치워달라'는 말이 아내의 피곤함이 얼마나 컸을까라는 생각이 드니 더 미안할수 밖에…
<5월 28일 월요일>
추위로 아침엔 좀 늦게 출발하자는 전날의 제안보다는 빨리 벗어나서 아침도 먹고 집에 바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더 앞섰기에 저녁에 사둔 과일 몇개 깍아 아침으로 때우고 사천의 항공우주박물관으로 향했다.
사천의 순대국밥을 먹고 나니 입천장이 온통 벗겨졌다. 너무 뜨거웠지만 허겁지겁 먹었다.
항공우주박물관에는 전쟁박물관의 느낌도 함께 났다. 탱크와 미사일도 전시되어 있어 항공우주과학이 곧 국방에 중요부분이란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일게다.
모택동의 장남은 한국전쟁에 참가하여 5개월만에 미군의 폭격으로 전사했다고 한다.
돈도 권력도 명예도 아들의 생명보다 소중히 여길 부모는 아니었을게다!
견학한 후 등산용장갑을 구입한후 집으로 향했다. 또 길을 잘못들어 행로를 돌릴수 없는 자동차 전용 도로를 오랫동안 타야 했고 자동차 물결속에 혼자 바이크로 가는 동안 전혀 두렵지 않았다.
클럽투어때 접해본 불법자동차전용도로 경험이 도움이 되는 순간이다.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부산에 도착했다. 바로 잠자러 가는 아내를 두고 할리서비스 매장에 갔다.
나의 팔팔마에겐 760키로의 여행길에서 5천원, 17천원, 15천원 그리고 15천원의 여물(기름)만 주었지만 이제는 링거(엔진오일)와 목욕(세차)도 시켜주고 나니 소리가 더 부드럽고 경쾌해졌다.
이런 여행길에서는 연비는 2사람이 타고 다녔는데도 리터당 25키로는 충분히 나오는 것 같다. 시내 주행에서 혼자타도 연비는 대충 18키로인듯한데 어떤 도로주행을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난다고 이해된다.
하여튼 일단 나도 이제 한숨은 자야 했다.
집보다 좋은 곳은 있다? 없다?
zzzZ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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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휴일 클럽라이딩에 아내와 함께 나가고 싶지만 내 입으로는 말을 못할것 같다. 고생길을 경험한 사람에게 너무 미안해서다.
이젠 30분 이상의 라이딩엔 절대 안탄다고 했다. 또 좋은 방법을 연구해봐야겠다.
첫댓글 아~리얼리티가 있는 결혼20주년 라이딩 후기...아내 께선 조금은 후회&실망스러울수도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아름다운 결혼기념 투어라고 기억에 남는 20주년 여행이 라고 각인 될겁니다... 왜냐하면 이벤트 중에서도 이뻰트인 바이크 투어로 지리산 까지 2박3일을 보내셨으니까....잘읽었습니다~!!
잘 읽었읍니다 고생도 하시고요 하지만 넌지시 아내한테 가자고 해보세요 또다른경험을위해
나도 지리산 중산리 에서 1박하는 바이크 여행을 마눌님과 간적이 있었는데,그때의 기역이 살아나는 후기 잘 읽었습니다.돌아 올 때는,비를 만나서 비를 맞아가면서~~~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네요^^결혼 20주년 늦게나마 추카축하합니다^^
의도가 좋았지만 고생을 했을경우엔 시간이 지나면 그리움으로 남는다는 것이 많은 분들의 공통된 경험인듯 합니다.
시간적으로 여유있는 계획, 사각지역 저속운행, 바이크간 거리 확보... 최근에 느낀 점입니다.
안전하고 삶의 활력과 평안을 만들어가는 바이크로 우리 함께 만들어 가요!!!
삶이 지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모험, 이벤트, 그리고 추억들......
부럽습니다. 나는 언제 같이 투어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