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1일 토요일 오전 10시
종석산에서 열린다는 산신제에 참석하기 위해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산신제 축하 공연을 위해 와 준 산내 산울림 농악단원들,
이장 어르신과 가까운 친지들. 하마 40~50명쯤 모였을까요?
잠시 후
제단이 차려지고 햇빛을 가릴 차일이 쳐진 공터에 모인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단비 농장 부부가 부케를 들고
그 뒤를 따르는 세 아들들이 가슴에 꽃을 꽂고 있었거든요.
"얼레, 뭔일이래?"
"여기서는 산신제에 꽃을 들고 하는가베?"
그때 마이크를 든 사회자가 낭랑한 목소리로 발표를 했습니다.
"지금부터 제2회 종석산 산신제 겸 임영규, 이승희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그제서야 어찌된 일인지 알아차린 사람들이 와하하하~ 웃으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지요.
나이 쉰에 두 번째 결혼식을 치르는 두 부부는
들러리로 세아들을 거느린채(글쎄, 재혼이 주는 프리미엄이
자식들을 들러리로 거느릴 수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
제단 앞으로 행진을 했습니다.
웨딩마치로는 산울림 농악단의 신명나는 굿거리 장단이 울려 퍼졌구요.
이어 산신께 술과 삼배를 올린 제주이자 신랑의 축문 낭독이 있었습니다.
좀 길지만 두 부부의 서약이 담겨 있기에 올립니다.
유체차!
단기 4349년, 오월 스무 하루
종석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단비산약초 농장에서
종석산 신령께 삼가 엎드려 고하나이다.
신령이시여!
잡목 우거진 오솔길을 헤치며 지게 지고 올라와
괭이로 땅을 일궈 삼씨를 뿌린지도 어언 십여년,
이토록 기름진 땅을 내어 주어 풍성한 수확을 올릴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자연과 더불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여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신령이시여!
생동하는 봄, 온갖 나물과 약초를 싹틔워 주시고,
약동하는 여름, 산천초목이 무럭무럭 성장하게 하여 주시고,
빛나는 가을, 햇빛과 바람과 비를 머금어 뿌리와 열매를 익게 하시고
눈부신 겨울, 만물이 잎을 떨구고 깊이 잠든 시간에도 따뜻하게 품어 주시어
이곳 종석산에 깃들어 사는 인간과 뭇 짐승과 초목들이 조화를 이루어 살고 있습니다.
신령이시여!
앞으로도 종석산에 사는 이들과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이
이 땅에서 나온 약초와 먹거리들로 인해 심신이 건강하고 평안하게 하소서.
오늘 여기 모인 우리 님들께도 신령한 기운을 북돋아 주시고
늘 따사로운 봄날같은 날을 맞게 하소서.
우리 님들 하시는 모든 일들이 막힘없이 풀리게 하여 주시고
산을 배우고 산을 찾고 산과 같은 마음으로
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신령이시여!
종석산 품에서 인연을 맺은 저희 부부가 오늘
신령과 광명한 천지자연이 굽어보시는 가운데
결혼식을 올리고자 합니다.
저희 두 사람 남은 생 동안 서로에게
가장 좋은 벗이요, 오빠와 누이이며, 가슴 설레는 애인이자,
남편과 아내가 되고자 합니다.
이미 파뿌리가 된 흰머리가 다시 검은 머리가 될 때까지
부부의 인연을 소중히 지켜 가겠음을 서약합니다.
신령이시여!
성심껏 준비한 술과 음식으로 드리는두 번째 제례와 이 결혼식을
어여삐 여기시고 받아 거두어 주시옵소서.
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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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참석한 사람들도 산신께 술과 인사를 올렸고 기원이 하늘에 닿도록
축문에 불을 붙여 올려 보냈습니다.
결혼식 축사를 맡았던 분이 차가 밀려 도착하지 못하자 이를 대신해
산울림 농악단의 제일 어르신이 나서서 소박하고 진심어린 축하를 해주셨고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껏 이어져 온 우정을 과시하듯 신부 들러리로 화환까지 얹고 달려와 준
친구들이 "꼭 잘 키운 딸 시집 보내는 심정이다, 잘 살아라!" 하며 축사를 해 주었습니다.
축하공연은 산울림 농악단의 신명나는 풍물 한마당!!
신랑도 신부도 참석한 이들도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게 만든 공연이었답니다.
산신제 겸 결혼식이 끝나고
준비한 산양삼 능이 버섯 백숙과 하수오주, 삼주 등으로
푸짐하고 정겨운 만찬을 즐겼습니다,
결혼식 피로연은 종석산에 해가 설핏 기울때까지
계속 이어졌고
친구들의 요청에 신랑의
한판 장구 공연도 있었습니다.
식이 치러지는 날 새벽까지 눈이 퀭해질 정도로
결혼식을 쑥쓰러워하고 마뜩치 않아 하던(신부- 하고 싶다 하는 것이 좋다 해야한다,
신랑 - 꼭 해야하느냐 안해도 잘 살 수 있다로 이어진 5년 간의 기나긴 투쟁과 기다림 끝에
성사된 결혼식이었으니.....)
신랑이었는데, 막상 시작하고보니
기분이 좋아졌나 봅니다.
장구 가락이 힘있고 신명이 잔뜩 들어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종석산에서 치러진 세기의 결혼식(?)은 막을 내렸습니다.
멀리 서울에서 달려와 준 우리가 총각네 신훈 대표님,
산울림 농악단 여러준, 단비의 사랑하는 친구들,
얼결에 왔다가 혼인식 덕담을 넘치도록
해주신 동네분들, 가족들
참석 못함을 못내 아쉬워하며
아낌없는 축하를 보내준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생애 가장 행복한 날들 중 하나였습니다.
잘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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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파뿌리된 흰머리가 다시 검게 변할 때까지 *^^*
첫댓글 축하해요
행복이 막 넘쳐나네요
부러버라부러버라~~~ㅋ
부러우면 지는 거라던데..... ^^;;
깜짝 이벤트여서 더 재미있고 즐거웠어요.
첫번째는 얼결에 정신없이 지나가서 하나도 좋은 지 몰랐는데
두 번째라 그런지 막 여유도 생겨나고 넉살좋게 막 웃고 그랬어요.
축하 고맙습니다. ^^
멋져요~^^
고맙습니당~~ *^^*
아........눈물나도록 고마운 종석산 세기의 결혼식이네~^^. 진심으로 축하하오~ 종석산의 아름다운 발전을 바라며~~~.
카스. 페북이로 봤지만 여기서 보니 더 정겨워요. 무공해 청정지역에서 정말 순수한 세기의 커플 탄생! 작지만 큰 결혼식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