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식도교회 드림몸찬양 선교단이 김해제일교회에 다녀왔습니다.
김해 방문 여정 - 은혜가운데 마칠 수 있었습니다. 11명이 함께 하였으며 여정가운데 부산을 돌아볼 기회도 있었습니다. 숙소는 해운대에 부산 여전도회 수양관 - 대우트럼프월드마린 d동 803호 아침에는 세계최대규모의 스파 센텀시티를 낮에는 국제시장 자갈치부페를 경유하였고 김해에서는 진영단감농장을 들어 단감을 수확하는 기쁨도 가졌습니다.
국제도시를 방문하며 귀한 경험도 가졌지만 김해제일교회에서 심야기도회에 성도님들과 함께한 시간이 소중했습니다. 찬양을 드리기 시작하고 나서 웃을일이 생겼다는 단원의 간증과 고백 활짝핀 얼굴로 춤사위를 표현하는 선교단원들의 노래할 이유가 성도님들에게 도전이 되었던 거죠 섬의 일기가 불순해서 다음날 아침 첫배로 들어와야 했기에 기도회를 마치자마자 그밤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1993년 10월 10일 오전 10시 10분 공교롭게도 10이 겹쳐지는 이 시점에 서해안 위도 지역에서 엄청난 사고가 발생이 되었습니다. 362 명이 탄 여객선이 침몰해서 292명이 죽고 70명이 구조되었습니다. 위도 지역 주민이 61명이 승선했다가 3명만 목숨을 건졌고 식도에서도 30여명이 목숨을 잃은 참담한 사건입니다. 심지어 한 집안에서는 제사지내는 문제로 식구들이 섬에 들어왔다가 18명이 한꺼번에 죽기도 했습니다.
이날은 주일이었고 풍랑이 일고 있었으며 전날에 여객선이 결항한 상태라 정원보다 141명이나 더 승선한 여객선이 무리한 운항을 하다가 당한 참변이었습니다. 굳이 돌이키고 싶지않은 이 사건을 언급해 드린 것은 그 사고가 이들 생활 현장에서 일어났고 가족 이웃 친지들이 한꺼번에 곁을 떠나간 참혹한 사고이고 여기 함께한 단원들중에도 가족이 희생을 당한 사람이 있고 그때가 마침 주일이기 때문에 예배를 드려야 했기에 출타를 미루었던 이유로 그 재난을 벗어났던 단원도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해난 사고는 때로는 육지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바람 비구름 안개 이 모든 것이 삶을 위협하는 요인이고 늘 이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쩔쩔매곤 하다보니 그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서 바다용왕을 섬겼고 무당을 찾았으며 그 흔적으로 지금도 식도 산중턱에는 당제를 지내던 당산집이 있고 위도에는 해마다 풍어제를 지내며 띠뱃놀이로 짚으로 배를 만들어 띄우며 연중 무사고 무재해를 비는 미신 행위가 이제는 향토문화재로 주목을 받아 해마다 음력 정월 4일이면 큰 축제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섬마을에 교회가 들어서게 되고 뱃사람들은 알 수 없는 힘에 절하고 무릎꿇는 대신 하나님을 섬기고 미신을 몰아내기까지 섬마을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지금 저희 섬마을에는 당제를 드리는 일도 무당의 출입이 끊긴지도 수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섬마을에서 바다와 더불어 살아가는 어부들의 삶은 낮과 밤을 거꾸로 살아 해질녘에 밤바다로 나가 일하는 어부들이 날이 밝아 돌아오면 쉼이 필요한지라 잡아온 생물을 갈무리하여 육지에 내다 파는 일도, 선원들의 식사를 챙기고, 집안일에 텃밭일에, 물때따라 바지락과 굴을 캐는 일도, 봄이 되면 산자락에 올라 산나물을 캐고 다듬는 그 모든 일들이 섬마을 아녀자의 몫인지라 여행은커녕 얼굴 곱게 단장하고 육지나들이 할 틈새마저도 사치로 여기며 살아왔노라고 이들 단원들의 한스러운 고백을 듣습니다.
실제로 춤사위에 부채를 펴고 접어야 하는 그 손이 바지락에 굴을 까던 칼질에 상처를 입어 고통스럽기까지 한 단원이 지금도 여기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한 단원의 고백은 춤사위 속에 활짝 웃으면서 예수님을 찬양하고 고백하고 간증하기 전에는 사는 것에 웃을 이유가 없었노라는 고백을 하기도 합니다. 무대에서 자신의 뻣뻣한 몸이 믿기지않을 정도로 유연하게 주님의 은혜를 표현하기까지 생겨난 변화에 스스로도 놀랍다고 고백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