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메이저리그 진출 도전을 공식 발표한 SK 에이스 김광현(사진=SK) |
SK 에이스 김광현이 미 메이저리그(MLB) 진출 도전을 공식 발표했다.
10월 29일 김광현은 서울 스탠포드 호텔에서 열린 ‘김광현 메이저리그 진출 추진 기자회견’에서 “돈보단 꿈을 이루기 위해 미 메이저리그 진출에 도전하기로 했다”며 “(MLB 구단에서) 합당한 대우만 해준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MLB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비슷한 시각. 미국 캔자스시티 카우프먼 스타디움에선 월드시리즈 6차전이 열렸다. 1루 쪽 3층에 자리 잡은 기자실은 마지막 경기가 될지 모를 6차전을 취재하려고 몰린 기자들로 온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치열한 취재 경쟁 속에서도 각국 기자들은 이닝 중간마다 어울리며 이런저런 정보를 주고받았는데 주로 MLB 진출을 노리는 일본인 투수 마에다 겐타(히로시마)와 가네코 치히로(오릭스)를 화제의 중심으로 삼았다. 그러다 기자가 한국에서 왔다는 걸 알고는 자연스럽게 김광현으로 화제가 넘어갔다.
특히나 전미야구기자협회(BBWAA) 소속 미국 야구기자들이 김광현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BBWAA 소속 기자들은 대부분 베테랑이다. BBWAA 베테랑 기자들은 한발 앞선 정보력과 강력한 기사 파급력으로 ‘야구기자 중의 야구기자’로 불린다.
BBWAA의 한 기자는 “조만간 김광현이 MLB 진출에 도전할 것이란 소릴 들었다. 그에게 관심을 나타내는 빅리그 구단이 많은 것 같다”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빅리그 구단 고위층을 만났다. 그때 킴(Kim)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그에게서 ‘킴은 95마일 강속구를 던지는 좌완 투수다. 선발진이 약한 팀이라면 4, 5선발로 즉시 활용 가능한 좋은 선수’라는 긍정적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의 팀도 김광현을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고려할 때 킴만 원한다면 그의 MLB 진출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다른 BBWAA 기자도 김광현을 “아시아 FA 투수 가운데 좌완 넘버 원”이라고 평한 뒤 “10월 중순부터 킴과 관련한 이야기가 부쩍 많아졌다”고 했다. 덧붙여 “최소 5~10개 팀에서 킴을 매우 깊이 있게 지켜보는 것으로 안다”며 “그 팀들 가운데 3개 팀은 빅마켓 팀”이라고 귀띔했다.
월드시리즈 6차전이 열린 카우프먼 스타디움의 기자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김광현에 큰 관심을 보이긴 일본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8월 중순 미국 윌리암스포트에서 기자와 함께 리틀리그 월드시리즈를 취재했던 산케이스포츠 기자는 월드시리즈 6차전이 열리는 캔자스시티에서 기자와 다시 만나자 대뜸 “김광현이 미국행을 타진 중인 게 사실이냐” 묻고서 “확실히 일본이 아니라 미국 진출이 맞느냐”고 재차 물었다.
그의 옆에 있던 일본 통신사 기자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호투를 펼친 김광현을 일본 야구 관게자들과 팬들이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며 “굳이 미국이 아니라 일본에 진출해도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을 텐테…”하고 말끝을 흐렸다.
빅마켓 3개 구단 이상이 김광현을 주목하고 있다.
김광현을 관심 있게 지켜본 팀 가운데 캔자스시티 로얄스도 있다. 로얄스의 관계자가 한국에서 SK 경기를 봤을 때 공교롭게도 그날 김광현이 최고의 투구를 펼쳤다고 한다. 그래선지 현지에서 만난 로얄스 스태프들은 이미 김광현이 어떤 투수인지 잘 알고 있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이렇듯 대부분의 미국, 일본 기자는 김광현을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이들이 하나같이 기자에게 들려준 말은 “김광현과 관련한 정보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BBWAA 기자들은 “우리가 김광현이 어떤 투수인지 확인할 방법이라곤 KBO(한국야구위원회) 영문 사이트에서 그의 투구 기록을 찾아보거나 유투브를 통해 그의 투구 영상을 보던가 아니면 빅리그 구단 관계자들로부터 그의 단편적 이야기를 듣는 게 전부”라며 “그를 구체적으로 평가하기엔 정보가 많이 부족하다”고 털어놨다.
미국 기자들이 쓰는 김광현 기사가 기록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미국 기자들은 “우리도 여러 방법을 활용해 한국 기사를 검색하고, 이를 토대로 취재를 진행하고 있다”며 “미국 구단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언론이 미국 기사를 바탕으로 김광현의 미국 진출 가능성을 언급하는 게 아이러니일 수 있는 이유다.
미국 기자들은 되레 기자에게 김광현이 어떤 투수인지 꼬치꼬치 깨물었는데 “한때 KBO리그에서 LA 다저스 좌완 선발 류현진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투수”라고 소개하자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딱’ 한 가지 질문만 던졌다. 그 질문은 “어째서 2009년 WBC에선 김광현의 투구가 부진했느냐”는 것이었다.
기자는 “그건 벌써 5년 전의 이야기”라며 “당시 WBC에서 김광현은 매우 일시적인 슬럼프에 시달렸다”고 답했다. 미국 기자들은 “솔직히 2009년 WBC 이후 우리가 김광현의 투구를 직접 본 적이 없어 5년 전 일을 물을 수밖에 없다”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김광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그곳은 바로 미 메이저리그다(사진=SK) |
미국 기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안 건 김광현을 노리는 빅리그 구단들의 실체였다. 예상보다 많은 구단이 김광현 영입을 검토 중이었다. 놀라운 건 그 가운덴 월드시리즈 우승을 다투는 자이언츠와 로얄스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었다. 한 기자는 “로얄스가 KBO리그 시즌 중 ‘시스템 디렉터’를 한국으로 보내 김광현을 관찰하도록 했다”며 “자이언츠 역시 사람을 보내 김광현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미국 기자들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움직임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는데 한 기자는 “볼티모어는 타이완 좌완 선발투수 첸 웨인의 성공 이후 아시아 좌완 투수에 관심이 많다”며 “원체 즉흥적으로 거액을 쓰는 팀이라, 김광현 포스팅 참가 시 의외로 최고 입찰액을 쓸지 모른다”고 예상했다. 이 기자는 ‘김광현 영입에 관심이 있는 또 다른 팀’으로 뉴욕 메츠를 지목했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김광현을 가장 인내심 있게 지켜본 팀으로 확인됐다. 레드삭스 출입 기자 출신인 BBWAA 기자는 “지난해부터 레드삭스 고위층이 김광현을 유심히 관찰했다”며 이 고위층이 최소 3번 이상 김광현 투구를 보려고 직접 한국을 찾았다”고 전했다. 이 기자가 언급한 레드삭스 고위층은 주로 FA(자유계약선수) 계약과 트레이드 등을 담당하는 구단 중역인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기자들은 “뉴욕 양키스도 김광현 영입에 관심을 보인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한국을 방문해 김광현을 집중 관찰했던 양키스 소속 트로이 힐만(전 니혼햄 감독)이 얼마 전 다른 구단 코치로 자릴 옮기며 양키스의 김광현 관심도가 조금 줄어든 상황”이라고 알렸다.
MLB 진출이 불투명한 일본인 투수들. 김광현의 가치는 더 높아질 듯
미국 기자들은 김광현이 12월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싱글보단 가정이 있는 기혼자가 더 야구에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가족만큼 확실한 동기부여도 없다"며 "미국 진출을 노리는 김광현이 조만간 가정을 이룬다는 소식은 그의 영입을 고려하는 빅리그 구단들에겐 좋은 소식이 될 것"이라 말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김광현과 함께 MLB 진출을 노릴 것으로 예상하는 일본인 투수 가네코와 마에다의 새로운 이야기도 접할 수 있었다.
일본 스포츠전문지 소속의 한 베테랑 기자는 “올 시즌을 끝으로 국내 FA 자격을 획득한 가네코 치히로(오릭스)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미국 진출을 해야 하는 올해보단 완전한 해외 진출 FA 자격을 얻는 내년 시즌 종료 후로 미국행을 연기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전망했다.
이 기자는 덧붙여 “마에다 겐타(히로시마) 역시 MLB 진출을 강력하게 희망하지만, 히로시마 최고위층이 그의 NPB 잔류를 강력하게 원해 뜻을 이루기 쉽지 않을 것 같다”며 “만약 구단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마에다 역시 가네코처럼 MLB 진출을 뒤로 미뤄야 할 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만약 가네코, 마에다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미국행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김광현의 희소가치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가네코, 마에다를 원했던 구단들이 김광현으로 시선을 돌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김광현의 몸값도 당연히 상승할 수밖에 없다.
미 메이저리그 진출을 희망하는 일본인 투수 가네코 치히로. 설령 가네코의 미국 진출 도전이 확정돼도 김광현의 포스팅 시스템이 끝난 11월 중순 이후나 정식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김광현의 포스팅엔 큰 변수가 되지 않을 전망이다. 미 야구관계자들은 "가네코도 오른쪽 팔꿈치 부상 전력이 있다"며 "더 나빠질 가능성이 적은 부상이라면 김광현이나 가네코나 부상전력이 미국 진출에 큰 영향은 주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진=오릭스) |
미국 기자들은 김광현의 에이전트가 멜빈 로만이라는 소식을 듣고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평했다. 많은 중남미 출신 메이저리거를 고객으로 보유한 로만은 MLB 구단들로부터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무엇보다 에이전트 수수료에 따라 선수를 차등 대우하는 스캇 보라스와 달리 로만은 자기 고객이면 끝까지 책임지고 최선을 다해 계약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인지 미국 기자들은 “김광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행했던 몇몇 선수처럼 보라스의 무관심과 냉대에 시달리는 기분 나쁜 경험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이 건강하다는 것만 증명하면 MLB 진출엔 아무 이상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현지 기자들은 'MLB 구단들이 김광현을 4, 5선발감으로 본다면'이란 전제 아래 포스팅액 1천만 달러 이상을 예상한다. 그리고 김광현이 '제2의 류현진'이 되길 바라는 빅마켓 팀들이 그의 영입전에 과감히 뛰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김광현은 국내보다 미국 현지에서 더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