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료사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해태 타이거즈
‘야구’라는 스포츠를 참 좋아합니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생겨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팬이셨던 아버지의 영향과 현재 기아 타이거즈 선수인 오빠가 곁에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기아 타이거즈 야구를 챙겨보는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경기가 없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6시 반이 되면 야구를 봅니다. 만약 직접 보지 못하면 기사나 기록을 꼭 챙겨봅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아버지와 만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이야기도 야구입니다. 오늘은 누구 때문에 졌다, 오늘 오빠가 홈런을 쳤다, 수비를 잘했다, 내일 선발 투수는 누구인가, 등입니다.
오빠가 나오기 때문에 보는 것도 있지만, 야구는 예측불허의 스포츠라 만약 놓친 장면이 있다면 바로 그 장면이 그날의 하이라이트가 되기도 합니다. 10개 팀이 1년에 144경기를 치르며 이기기도 지기도 하지만, 매일 매일 다른 경기 내용과 다른 점수들, 큰 점수 차가 나도 홈런 몇 방이면 뒤집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뒤섞여 매일 챙겨보도록 하는 매력이 있는 듯합니다.
“야구에 대한 나의 열정은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출신의 톰 글래빈이라는 선수가 한 말입니다. 스피드건은 투수가 타석으로 공을 던질 때 그 공의 속력을 재는 기구입니다. 투수의 구속을 알기 위해 스피드건을 사용합니다. 속도가 빠르지 않다고 해서 열정이 적은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노고단, 그 뒷이야기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했을 정도로 마음속에 깊이 남은 하루가 떠오릅니다. 합동연수가 끝나고 자체워크숍 때 지리산 노고단 등반을 했습니다. 무릎이 좋지 않아 맨 뒤에서 가려 했습니다. 준혁이가 함께 해주었습니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준혁이가 함께 해주었다는 사실 때문에 제가 노고단을 기억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노고단을 잊을 수 없는 진짜 이유는 이제껏 저를 그렇게 기다려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은 저는 늘 맨 뒤에서 사람들을 챙겨주고 기다려주었습니다. 그런 제 뒤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혼자 남게 되면 앞에서는 온갖 씩씩한 척을 다 하면서 가끔은 무섭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늘 무서운 것을 숨겨야 했습니다. 저의 무서움을 함부로 드러냈다가 제 앞으로 가는 사람들을 막아서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함께 뒤에서 가준 일은 정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깊이 고마웠습니다.
아직도 그 돌길을 올라갈 때부터 바닥에 누워 잠시 별도 보고 나무 계단도 올라 대피소에서 라면도 먹고, 끝내는 도착하기까지. 이 모든 과정이 생생합니다. 준혁이는 묵묵히,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며 곁에서 함께 해주었습니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때 고마웠다는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아직도 미안합니다. 늦게나마 이 자리를 빌려 이야기합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 이후로 저도 모르게 준혁이에게 조금 더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힘겹긴 했지만 힘든 일도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로 의지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준혁이도 저에게 많이 의지해주었습니다.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사회복지학과 학생회장
저는 사회복지학과 학생회장 출신입니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 많은 사람들은 제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잘 꺼내지 않습니다. 사실 방화11에 지원할 때도 학생회장이었던 사실을 잠시 잊고 경력란을 빈칸으로 낼뻔하기도 했습니다. 경력란이 비어있는 것을 본 제 친구가 알려줘서 겨우 쓸 수 있었습니다.
저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저도 다른 친구들과 다름없이 전공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저 ‘학생회장’이라는 명칭 하나만 더 가졌을 뿐이었습니다. 제가 학생회장이 된 것으로 본다면 학생회장도 그리 대단한 건 없습니다. 1년간 제가 한 일은 그저 학생회 부원들과 임원들, 그리고 학과 학생들과 교수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뿐이었습니다.
학생회에서 주관하는 여러 행사를 기획할 때, 회의를 직접 진행하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학생회 내에서도, 총학생회에서도, 학과 자체 회의에 선거관리위원회 회의까지. 학교 내에서 사회복지학과가 가장 크기 때문에 학생회 밖에서 하는 회의인데 제가 진행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회의를 이끌어나가는 게 조금은 어색하기도 했습니다. 여태껏 그래 본 적이 없으니 익숙하지 않아서였겠지요.
여행을 가기 전까지 아이들과 총 14차례의 회의를 했습니다. 제가 아이들의 주체성을 살리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했습니다. 그동안 회의를 주도적으로 진행해오던 제 모습을 많이 내려놓으려 했습니다.
다른 사업을 하는 동료들은 하나둘씩 무언가 보이는 것들이 있는데 저만 보이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사무실 아침, 저녁 인사 때 동료들이 이룬 이야기를 들으며 난 지금 뭘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이미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저 자신이 더 자신을 힘들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습 기간뿐만 아니라 그 전부터 그래왔기에 더 스스로 그런 좋지 않은 생각을 내려놓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동안은 듣는 데에만 익숙했었습니다. 제 고민과 힘듦은 다른 사람에게는 나누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혼자서만 담아두고 삭히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힘든 일을 나누면 힘들지 않아도 되는 다른 사람이 힘들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늘 중심을 맡은 저였기에, 제가 흔들리게 되면 중심이 흔들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늘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아주 어려웠고 권대익 선생님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려 하고, 단순히 이야기만 나눈다기보다 힘든 일도 함께 궁리하려 했습니다.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하고 제가 동료들에게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단기사회사업’, 녹번종합사회복지관 이신영 선생님의 추천으로 처음 듣게 되고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이라는 곳에 분명 지원서를 넣고, 지원사도 쓰고, 면접도 봤는데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남원으로 합동연수를 갔을 때, 복지요결을 공부하며 조금씩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방화11에서 저는 스펀지가 되려 했습니다. 보고 들으며 겪는 모든 것을 다 흡수하려 했습니다. 다른 동료들만큼 사회사업 잘 알지 못하고, 열정이 부족하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단기사회사업이 끝난 지금도 모르는 것투성이입니다.
무지개와 함께한 여름
이번 여름, 비가 참 많이도 왔습니다. 그리고 딱 그만큼 울고 웃었습니다.
제가 맡은 어린이 여름 여행의 팀 이름은 무지개 여행팀입니다.
무지개. 비가 온 뒤에, 비가 왔다는 사실도 잊어버리도록 아주 예쁘게 나타납니다.
무지개 같은 우리 아이들 만나라고 비가 그렇게도 많이 왔나 봅니다.
이제는 비가 오지 않습니다. 일곱 빛깔 무지개, 제 여름의 전부였습니다. 비가 오면 또 무지개는 뜨고, 무지개 여행팀이 생각나겠지요. 무지개 덕분에 많이 웃고 울었습니다. 일곱 빛깔 아이들, 아까도 만나고 전화 통화도 했습니다. 예쁜 아이들과 예쁜 추억이 생겼습니다.
제 강점은 제 동료들입니다.
감히 말했습니다. 지난 강점 워크숍 때 마지막 제 강점은 저의 동료들이라 했습니다. 마지막 강점이 떠오르기 전, 참 강점이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강점이 떠오르고, 든든한 지원군 6명이 생긴 기분이었습니다. 저만큼 부족한 사람에게 이렇게나 많은 착하고 좋은 사람들과 인연이 생겨 참 기뻤습니다.
어떻게 이 사람들을 잊을 수 있을까요. 그동안 표현은 참 많이 서툴렀지만 제게 있어 한명 한명이 정말 소중합니다.
정말 어떤 말을 하더라도 항상 웃으면서 받아주고, 자기 일에 늘 열심인 상우오빠, 오빠의 순수한 웃음 뒤에는 늘 쓸쓸한 오빠의 모습이 그려져서 가끔은 안쓰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여름 내내 청소년들의 사랑을 받으며 오빠도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경이의 표현을 빌린다면, 유일한 동년배인 준혁이, 언젠가부터 주위에서는 ‘짱친’이라고 합니다. 원래 모든 사람에게 잘 다가가는 성격이지만 이렇게 깊게 친해지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신기하게도 준혁이는 예외였습니다. 다른 점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로 공통점이 참 많습니다. 이제는 표정만 봐도 생각과 마음을 헤아릴 줄 알게 되었습니다. 오래 곁에 있고 싶은 좋은 친구를 하나 만났습니다.
도움이 됐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해민이가 힘들 때면 저를 찾기도 하고, 제가 힘들 때는 해민이에게 조언을 듣기도 합니다. 기대주어 고마웠습니다. 동생이지만 오빠처럼 늘 앞서서 도와줍니다. 점점 그 깊이가 더 깊어져 가고 있는 해민노트. 이번 여름 해민이에게 참 많이 배웠습니다.
제 왼쪽 다리는 세경이 것입니다. 기록하다 막힐 때면 제 다리와 팔을 찾습니다. “언니가 참 재밌어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세경이 더 재밌습니다. 늘 피곤이 가득한 얼굴로 우리에게 웃음을 줍니다. 참 귀여운 동생이다 싶습니다. 세경의 글에는 진심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만큼 제 마음도 잘 헤아려줍니다.
늘 웃고 있는 도영이, 동생이지만 분명 저보다 훨씬 의젓합니다. 공항동에서 돌아오면 아이들과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주며 행복해하던 그 얼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같은 아이들 사업을 하는데, 아이들을 저렇게 사랑해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도영이로부터 마음 다해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예주, 막내딸이 있다면 예주 같을까요. 5주 동안 같은 방을 썼습니다. 언제든 받으면 기분이 좋은 선물 같은 동생입니다. 누가 언니인지 가끔 헷갈릴 때도 있지만, 예림 한정 애교도 많이 보여줍니다. 그 애교 덕에 힘든 하루도 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참 많이 사랑스러운 사람입니다.
이런 동료들이 여름 내내 함께해서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더 예쁜 말이 있다면 그 말로 동료들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표현력이 부족한 지금의 제가 매우 아쉽습니다. 고마웠습니다. 내내 사랑했습니다. 더 사랑하지 못해 미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