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子曰以力假仁者는 覇니 覇必有大國이오 以德行仁者는 王이니 王不待大라 湯이 以七十里하시고 文王이 以百里하시니라
以力服人者는 非心服也라 力不贍也오 以德服人者는 中心이 悅而誠服也니 如七十子之服孔子也라 詩云自西自東하며 自南自北이 無思不服이라하니 此之謂也니라
<家苑
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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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가라사대, “힘으로써 인을 빌리는 자는 패니, 패는 반드시 대국을 두어야 하고, 덕으로써 인을 행하는 자는 왕이니, 왕은 대국을 기다리지 않는지라 탕임금이 칠십 리로 하셨고, 문왕이 백 리로 하셨느니라.
힘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복종한 자는 마음으로 복종한 것이 아니라 힘이 넉넉하지 못해서이고, 덕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복종한 자는 속마음이 기뻐서 진실로 복종한 것이니, 칠십 제자가 공자에게 복종한 것과 같음이라. 시(大雅, 文王有聲편)에 이르기를, ‘서로부터 하고 동으로부터 하며 남으로부터 하고 북으로부터 함이 생각에 복종하지 않음이 없다.’하니 이를 이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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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苑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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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云自西自東하며 自南自北이 無思不服이라”는 『시경』大雅 文王有聲편 제6장의 시로 원문은 “鎬京辟廱에 自西自東하며 自南自北하여 無思不服하니 皇王烝哉샷다(호경의 벽옹에 서로부터 하며 동으로부터 하며 남으로부터 하며 북으로부터 하여 생각하여 복종하지 아니함이 없으니 황왕은 인군다우셨다.)”이다. 이 내용은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멸한 뒤에 나라를 새롭게 세우고 어진 정치를 펴자 이에 감화되어 사방에서 귀순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담아 노래한 것이다. 당시 혁명 뒤에 무왕은 귀순하는 백성들이 많아지자 도읍지를 아버지 서백창의 도읍지였던 풍(豐) 땅에서 호경(鎬京)으로 옮기고 천자의 學宮인 벽옹(辟廱)까지 세워 修德을 게을리 하지 않자 더욱 많은 백성들이 모여들어 나라가 번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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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苑
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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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패도(覇道)와 왕도(王道)에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대목이다.
패도정치는 얼핏 어진 정치인 것 같지만(以力假仁) 반드시 대국을 소유하려는 욕심에 물리적 수단으로 다른 사람들을 굴복시킨다. 하지만 복종하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복종함이 아니라 힘이 부족하기에 어쩔 수 없이 복종하지만(以力服人者 非心服也 力不贍也) 늘 불만에 차 있고 몰래 힘을 길러 대항하려 하기 때문에 나라 안이 불안정하다. 공자가 말씀하신 “道之以政하고 齊之以刑이면 民免而無耻니라”(『논어』 위정편 제3장)에 해당된다.
왕도정치는 덕으로 어진 정치를 행하기에(以德行仁) 백성들은 충심으로 기뻐하여 복종한다(以德服人者 中心 悅而誠服也). 그러므로 나라 안이 안정되어 귀순하려는 자들이 많아진다. 공자가 말씀하신 “爲政以德이 譬如北辰이 居其所어든 而衆星이 共之니라”(『논어』 위정편 제1장)이며 “道之以德하고 齊之以禮면 有耻且格이니라”(위정편 제1장)에 해당된다. 堯舜과 夏殷周 삼대의 三王이 모두가 以德行仁의 仁德 정치를 편 인물들이다.
출처 : 孟子易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