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반백년 역사 위에 빛나는 내륙문학
하재영 시인
카페 ‘시월(詩月)’ 창가에 앉아 창밖 풍경을 보다가 바람의 손놀림을 읽는다. 봄비 지나간 자리로 거세게 부는 봄바람이 파릇파릇 돋은 쑥과 망초 이파리를 지나 냉이, 민들레꽃의 볼때기를 연신 문지른다. 돋은 풀들도 바람의 흐름에 익숙한 듯 쓰러지는 척, 넘어지는 척, 그러다가 제자리로 몸을 세운다.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들 몸짓이 첼로를 연주하는 연주자의 몸짓처럼 격렬했다가 이내 느린 속도로 떨림을 유지하며 자신의 낮은 소리를 바람소리에 보태고 있다.
최근 문학단체에 신입회원으로 입회했다. 내 맘대로 문학 단체에 가입하겠다고 하여 가입할 수 있는 모임은 없다. 일정한 자격 여건이 갖추어졌어도 단체의 성격과 특성에 어느 정도 맞아야 하고, 회원 추천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귀향 전 바닷가 도시에서 30년 이상 살 때였다. 문학 단체 몇 군데 그러니까 10여 명에서 100여 명이 활동하는 단체 소속원의 일원으로 오랜 기간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정성을 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어울리다 보니 애증도 많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귀향하며 정든 문우들과 헤어지려니 맘 한 곳이 아련하게 저려왔다. 고향 쪽에 자리를 잡으며 그간 어울렸던 문우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어느 문인은 청주 무심천을 소재로 쓴 시를 문예지에 발표도 했다.
고향에 정착하며 막연하게 문학단체 한 곳에 가입하여 활동했으면 했다. 명성을 좇아 이름난 문인은 못 되어도 오랜 세월 변방에서 지역 문학을 위해 활동해온 자격지심으로 내 스스로 어떤 단체에 ‘나 좀 끼워 주세요,’ 란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굳이 어떤 단체에 들어가지 않아도 창작은 할 수 있는 게 문인이고 문학 활동이다. 그런데 내가 1987년 고향에서 객지로 이동하기 전 관심을 두었던 문학단체에서 가입의사를 물은 것이다. 당시 나는 그 모임에서 발간한 동인지를 창간호부터 갖고 있었다. 몇 번의 이사에 책은 사라졌지만 말이다.
가입한 문학단체는 2022년 50주년을 맞아 ‘내륙 숲길에 문학의 등불을 걸다’ 란 주제로 50주년 기념 문예지를 발간하고, 기념행사를 갖는 ‘내륙문학회’다. 정말 축하할 일이다. 50년 전, 1972년 충북 내륙을 중심으로 모인 문인들의 글이 담긴 창간호부터 올해 59호를 발간하기까지는 숱한 바람과 마주섰을 것이다. 그 바람을 헤치고 또 다른 반세기를 맞기까지는 회원 중 작고한 문인도 여럿이고, 그들이 발표한 향토색 짙은 작품은 인생보다 더 긴 예술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50주년을 맞은 짧지 않는 지역문학의 산실 내륙문학. 문학의 향이 바람을 타고 지역을 떠나 한국 사회에 또 다른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배턴을 주고받듯 세대를 넘어 회원들이 잇고 이으며 내는 높고 낮은 글 향이 멋진 화음을 이루기에 한층 아름답게 느껴지는 2022년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