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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역사 하나님 나라 그 하나 됨의 위대한 서막-2
2000 years of history, the great beginning of the unity of the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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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이신칭의에 대해서
(1) 성경적인 근거
※ 먼저 인간이 백날 소리쳐도 근거가 없는 말은 소용없다. 인간의 말이 아닌 거짓이 조금도 없으신 신실하신 그분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을 보자. 성경은 읽어보면 아는데 모든 과학 중에 최고의 과학으로 일 점 일 획 틀리는 말이 없이 정확하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이 성경의 흠을 발견하는데 도전했지만 결점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고 과학이 발달할수록 점점 더 그 정확성이 더 밝혀지고 있다.
하박국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여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개역개정) 믿음의 삶 혹은 생활
하박국 2:4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를 보아라.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 공동 번역)
로마서 1: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개역개정).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으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공동 번역)
창세기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개역개정)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주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공동 번역)/25년 믿음
생활을 철저히 함
로마서 4:17-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개역개정)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그의 의로움으로 인정하셨습니다.”(공동 번역) 약 25년간 변치 않는 믿음을 보시고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개역개정)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겨 주실 우리, 곧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을 믿는 우리까지도 위한 것입니다.
로마서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개역개정)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모든 믿는 사람에게 옵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공동 번역)
Hab 2:4 but the righteous person will live by his faithfulness.
Rom 1:17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Gen 15:6 Abram believed the LORD, and he credited it to him as righteousness
Rom 3:22 This righteousness is given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
Rom 4: 22 This is why “it was credited to him as righteousness”
Rom 4:24 but also for us, to whom God will credit righteousness- for us who believe in him who raised Jesus our Lord from the dead
※ 믿음의 행동성, 믿음의 시간적 연속성과 굳셈/ 믿음과 믿음의 삶 혹은 생활이 반드시 필요
4-2. 이신칭의에 대해서
(2) 하박국과 아브라함의 예
1. 하박국의 예: 하박국서 2장 4절에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표현이 있다. 이를 바울 사도가 로마서 1장 17절에 인용해서 믿는 사람이 의롭게 됨을 설명한다. 하박국은 구약의 선지자로 기원전 608년경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당시 남유다는 홀로 멸망치 않고 남아 있었는데 참고로 북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하고 포로로 잡혀갔다. 홀로 남은 남유다는 하나님 보시기에도 선지자가 보기에도 올바르지 않았다. 율법이 해이해져서 정의가 사라졌고 하박국 같은 의인이 살기에는 너무나 어려웠다. 참다 참다 견디지 못한 하박국이 정의의 하나님께 묻는다.
왜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이 악한 남유다를 그냥 보시고만 계시느냐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으로 당시 가장 강대하며 온 나라를 침략해서 노략하던 바벨론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유다를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이에 하박국은 다시 하나님께 비록 남유다가 악하지만 이보다 더 악한 바벨론을 하나님께서 어찌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가 있습니까? 하고 여쭈니 이에 대한 대답이 우리가 배우는 하박국서 2장 4절의 말씀이다. 선지자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답이다. 그 의미는 1장과 2장을 연결해서 보아야 하지만 여기에서 간단하게 설명하면 하나님께서 그 바벨론을 절대로 옳다고 보지 않으신다고 하시면서 그렇지만 자신이 인정하시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게 될 것이다라고 응답하신 것이다.
이 하박국서의 내용을 그대로 바울 사도께서 로마서 1장 17절에 인용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설명한 것이다. 하박국서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신 말씀의 의미는 비록 남유다가 불의하고 소망이 끊어져도 그리고 바벨론이 조국 남유다를 심판하는 참기가 어려운 현실이 닥쳐오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하나님을 굳게 믿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남유다 뿐만 아니라 바벨론도 결국 심판하시고 정의를 마침내 실현할 것을 믿고 세상이 어떠하든지 정의롭게 견디며 살 것이다라는 뜻이다. 즉 모든 여건이 어려워도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불의를 척결하실 것을 믿고 정의롭게 꿋꿋하게 살 것이다란 뜻의 행동하는 믿음을 말한다.
2. 아브라함의 예: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는 위대한 분이시다.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고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는데 또한 신약의 모든 믿는 이의 조상이 되기도 한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곳으로 갔다. 이후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하늘의 별과 강의 모래를 보여주시며 아브라함의 후손이 그와 같이 많게 될 것을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의롭다 인정을 하셨다.
이를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인용을 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예를 들었다(롬 4:3) 이와 함께 다시 로마서 4장 17-22절에서 이 믿음을 다시 설명한다. 그가 100세가 되어서도 하나님과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해졌다고 한다. 비록 자신의 육신은 점점 약해지고 아내도 날이 갈수록 아이를 가질 수가 없을 정도도 늙어갔지만 말이다.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를 의롭다 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마침내 이삭을 아들로 낳는 복을 누렸다. 이 이삭을 통해서 그리고 그의 후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되고 국가가 되었다. 여기에 로마서 4장 17-22절의 내용을 두 가지 버전으로 소개를 한다.
17. 성서에 "내가 너를 만민의 조상으로 삼았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하느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18. 아브라함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믿어서 마침내 "네 자손은 저렇게 번성하리라." 하신 말씀대로 "만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9. 그의 나이가 백세에 가까워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되었고 또 그의 아내 사라의 몸에서도 이제는 아기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20. 그는 끝내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굳게 믿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21. 그리고 그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어주시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22. 하느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습니다(공동 번역)
4-2. 이신칭의에 대해서
(3) 칭의의 주체-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나인가
주체: 하나님인가 혹은 나인가?
※ 성도를 의롭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신가? 혹은 믿는 개인인가?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여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개역개정)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를 보아라.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공동 번역)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개역개정)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주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공동 번역)
롬 4:17-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개역개정)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그의 의로움으로 인정하셨습니다.”(공동 번역) 약 25년간 변치 않는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하늘과 지구와 인간과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그리고 유일하신 분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그분의 속성이 사랑이시기에 나와 너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 그리고 정의로우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죄에 합당한 벌을 예수님을 통해서 받게 하셨다. 그리고 거룩하신 분이시며 어디에나 계시며 전능하신 분이시다. 모든 만물이 스스로 된 것이 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이 되었다. 나를 지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이 인간의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의무이다. 모든 인간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서 분명하게 이 하나님께서 하박국서 그리고 창세기 그리고 로마서를 통해서, 아브라함과 하박국서에 등장하는 의인들에게 의롭다 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성도의 칭의에 대해서 그 칭의를 결정하시고 선언하시는 분이 믿는 개개인이 아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됨에 대한 인정은 루터와 같은 신학자도 아니요 목사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어떤 믿음의 사람에 대해서 의롭다 인정을 하신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아브라함이나 혹은 하박국 시대 의인들이 하나님께서 의롭다 선언을 하시기 전에 자신이 스스로 혹은 주변의 사람이, 그 사람이 의롭다 할 수가 절대로 없다.
비록 그가 의롭게 살고 믿음 생활을 잘 해도 말이다. 그리고 혹 누가 그렇게 했다 해도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인지 우리는 확신할 수가 없다. 의로움에 대한 판단은 사람의 몫이 아니다. 그리고 로마서에 믿는 자에게 미치는 의니 차별이 없으니라는 표현은 믿는 사람이 인종이나 국적에 상관없이 의롭게 된다는 말이지 내가 스스로 내 의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기 전에 주장할 수가 있다는 말이 아닐 줄 믿는다. 이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성도의 칭의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는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내 스스로 나는 의롭게 된 사람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굉장히 위험한 일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에 대해서 칭의의 대상이 되는 믿는 우리 즉 칭의의 객체에 대해서 같이 알아보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를 하도록 해보자.
4-2. 이신칭의에 대해서
(4) 칭의의 객체: 죄인인 인간
※ 밤하늘의 별을 보며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을 보며 살고 있는 나는 과연 죄인인가 의인인가?
우리는 죄가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내가 그런 죄를 짓고 있는지 혹은 지은 적이 있는 사람인지 분별이 된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이 죄인임을 절대로 쉽게 알 수가 있는 존재가 아니다. 감옥에 가고 벌금을 물고 사회적인 지탄을 받을 때만 죄인이 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즉 국법을 준수하고 자신의 도덕적인 기준에 따라서 위와 같이 법의 처족을 받지 않고 살고 있다면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도리어 나를 의로운 사람으로 믿고 산다. 과연 나는 나의 생각대로 의로운가?
죄는 형법에 규정이 되어 있다. 법 없으면 죄 없다라는 죄형 법정주의가 있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세상의 질서를 위해서 만든 법에 여러 규정을 해놓고 이 법의 규정을 위반하거나 범하면 죄인이 된다는 원칙이다. 이와 달리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이 있다. 이 법을 어기면 하나님 편에서 보는 죄인이 된다. 당연히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이 법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고 있고 또 하나님에 대해서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항변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에 대해서 설명하시는 책이 성경이다. 성경을 통해서 인간이 죄인임을 알게 된다. 성경에서는 의인은 없나니 한 명도 없다고 하신다. 즉 모든 인간이 다 죄인이라는 말씀이다. 성경을 통해서 보면 하나님 앞에서 '내가 의인이요' 할 인간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인간 스스로에게 자신이 죄를 범하는지 아니 범하는지 인식하게 하는 장치가 있다. 그것은 각 사람 모두에게 있는 양심이다. 우리의 양심이 우리가 죄를 범하게 되면 우리를 찌르게 한다. 우리는 아직도 살아 있는 양심을 통해서 스스로가 죄인인지 알 수가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양심도 우리가 계속 죄를 짓게 되고 자신을 속이게 되면 무디게 되어서 죄에 대해서 둔감하게 된다.
죄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규칙을 어기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 아담이 죄를 범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셨는데 아담이 이를 따 먹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죄가 전가 되게 되었다. 이 죄로 인해서 영생을 누리며 살도록 창조된 인간이 지금과 같이 살다가 죽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쉬지 않고 성경에 있는 율법의 규정을 어기면서 살고 있으니 이 죄는 스스로 짓는 죄 곧 자범죄이다. 그런데 이렇게 죄를 지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죄에는 심판이 있고 그 벌은 죽음이며 피를 흘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이라고 할 때는 그 믿음 속에는 나의 죄에 대한 인식과 그리고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의인이면 죄인을 구원하려고 오신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전혀 없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되는 칭의에 대해서도 논할 필요가 없게 된다.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고 사람 사이에서 죄인이라면 내가 해야 되는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는 일이고 이는 나의 회개로 시작이 된다.
4-2 이신칭의에 대해서
(5)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는 믿음에 대한 설명
믿음은 히브리서 11장에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로 정의되어 있다. 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기도 하고 죄로부터 구원도 받게 되는데 이신칭의 즉 믿음으로 의롭게 된 하박국과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 보자.
1. 하박국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박국서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 즉 불의한 남 유다를 바벨론을 통해서 멸하시고, 역사의 주관자로서 당시 가장 강대국 바벨론도 결국 멸망시키시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그리고 끝내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 세상이 의인이 살기에 너무나 어렵게 되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이런 세상에서 모든 악을 멸하시고 결국에 의인이 평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건설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리고 하루하루 불의한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꿋꿋하게 정의롭게 사는 하박국과 같은 사람들이다.
2.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믿었다. 인간적으로 보기에 불가능한 일을 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고 그리고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다. 그리고 이 믿음이 그가 부르심을 받고 25년이 지나도록 변치 않고 도리어 더 단단해졌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된다. 즉 아브라함의 시간적으로 변치 않는 믿음에 대한 의의 인정이다.
3. 신약의 시대 성도의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
성도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 롬 4: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확실한 증거이다.
성도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 구세주 되시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예수님께서 하신 일-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일, 부활 승천과 재림과 심판에 대해서.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이 세상에 재림하실 예수님과 하실 일을 믿고서 믿음으로 삶을 사는 것. 즉 불의와 싸우며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사랑을 실천하고 선을 행하며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삶을 삶. 이렇게 성도가 살 때 칭의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어느 때에 이루어짐- 회개, 예수 이름 세례, 죄 사함, 성령 선물 그리고 믿음 생활을 지속적으로 할 어느 때 하나님께서 그 성도를 의롭다 하실 것임/ 정의로우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4. 결론: 믿음으로 의롭게 됨은 성경의 주장이기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의롭다 인정을 받는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아브라함의 예에서 보듯이 한결같이 믿음 생활을 25년 정도는 해야 했다. 하박국서에선 의인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하나님을 믿고서 정의롭게 살아야만 되는 것을 보았다. 이를 종합하면 믿음으로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변치 않는 신앙생활을 성도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어느 때까지 반드시 해야 되고 반드시 또 행동으로 정의롭게 살아야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필요조건이 있다. 다시 반복해서 강조하면 성도는 먼저 믿음 생활을 아브라함의 예에서 보듯이 시간이 가도 믿기가 어려워도 하나님을 변치 않고 믿고 그리고 의와 공도를 지키라고 명하신 하나님께 순종한 것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반드시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완성시키는 사랑을 실천해야 되고, 하박국 선지자의 예에서 보듯이 불의가 만연한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도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이를 척결하고 반드시 좋은 세상 즉 예수님의 재림을 통한 세상의 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함을 믿고서 꿋꿋하게 정의롭게 삶을 살 때 언제나 이에 대한 의의 인정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4-2. 이신칭의에 대해서
(6) 칭의 된 믿음의 도표를 통한 이해
불신/위대한 의인과 그 예
믿음 혹은 믿음 생활,
믿음의 진행 과정- 시간이 흐름, 행위적인 측면/ 개개인이 다름
예수님, 하나님 만남, 영접 | 회개 | 예수 이름 세례 | 죄 사함 | 성령 선물 | 칭의가 일어남 |
성경을 통해서 직접 만남, 전도, 다양한 개인 체험을 통해서, 설교, 예배, 기도 중에 만남 등등. | 죄를 짓는 자리에서 떠남, 예수님을 따름, 착하게 삶 | 교회에서 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음, 물세례 죄를 씻음 | 이런 성도의 과거에 지은 죄를 모두 하나님께서 용서하심 | 예수님 약속대로 성령이 임함, 마음이 부드럽게 되고 능력이 임함 (전 2:38, 겔 34장) | 계속 하나님을 믿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선하게 정의롭게 살 때, 하나님께서 때를 결정하심 |
초대 교회 성도- 직접 예수님 만남, 성령 체험을 함 | 예수님 따름 | 예수님께 제자, 요한 | 일어남 | 마가 다락방/ 3년 후(행 2장) | 예수님 만나 믿고 적어도 3년 후 |
바울-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시고 말씀하심 | 예수님 따름 | 아나니야를 통해 | 일어남 | 아나니야를 통해서(행 9:17) | 구약의 하나님을 믿은 후 수십 년 뒤 |
아브라함-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시고 말씀하심 | 75세 고향, 본토 아비 떠남 |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을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 하심으로 밝히심, 행하여 완전 하라고 명하심(창 17:1, 18:19, ) | 약 100세가 되어 하나님 만난 후 25년 뒤 | ||
하박국- 구약의 하나님을 믿고 율법을 지킴 | 선지자로 부름을 받고서 정의로운 삶을 살면서 당시 불의한 동족의 삶을 보면서 너무 힘들어 하나님께 심판을 요청함 | 하나님을 믿고 정의롭게 사는 사람 | |||
정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은 동일, 그러나 그 대상인 믿는 사람과 그 사람의 믿음의 내용이 각각 상황에 따라 다름 |
믿음, 칭의의 객체 죄인인 인간 의의 흉배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 즉 이신칭의는 성경에 있는 말씀으로 진리이다. 그러나 어떤 불신자가 예수님을 믿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은 시간과 과정과 그리고 인내와 즉 믿음 생활이 반드시 필요하다. 의에 대한 인정도 나의 스스로의 인정이 아니라 신학자나 목사의 나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나를 의롭다 인정하시는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의 인정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 시와 때는 그리고 결정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우리가 영적인 전투를 할 때 반드시 착용해야 되는 의의 흉배는 성도의 올바른 삶인가 혹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를 통해서인가 하는 논쟁이 있다. 일반적으로 의의 흉배의 의는 이신칭의의 의로 본다. 의의 흉배는 심장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영적인 무기로서 우리가 반드시 착용을 해야 된다. 이신칭의가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속적인 믿음 생활 즉 믿고 정의롭게 사는 것을 통해서 온다고 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인정을 기다려야 한다면, 나의 믿음으로 오는 의에 의한 심장을 보호하는 흉배는 언제 나에게 착용이 되는지 참으로 궁금한 내용이다. 그리고 그 흉배가 나를 세상의 공격으로부터 내 심장을 보호해 줄 수가 있는 흉배인데 분별이 필요하다. 가령 군인에게 방탄조끼를 나누어 주는데 정품과 불량품을 동시에 주고 모양만 같게 하면 이를 모르고 입고 전투에 나갔을 때 총알이 날라 올 때 어떤 일이 생기겠는가? 그리고 그 흉배를 얻어 입는 방법이 예수님을 믿음을 통해서 온다면 그 믿음에 대해서 위의 설명과 같이 제대로 알고 믿어야 된다면 나는 과연 이런 흉배를 입고 있는가 입고 있다고 믿고 있다면즉 나는 하나님의 의의 인정을 믿음으로 받고서 의롭게 된 자로 이 흉배를 틀림없이 입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 성능을 총알과 같이 강력한 영적인 도전이 나에게 왔을 때 이 흉배가 제대로 작동을 할 것인지 이에 대해서 다음을 기대하시라!
5. 찬양, 간증
할렐루야! 사랑과 자비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죄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의롭다 여기던 죄인을 불현듯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김 성수 장로님께서 전해준 성경 말씀을 보게 하시고 흉악한 죄인임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그때까지 옳다고 믿고 살던 삶의 길에서 완전히 떠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묵상하게 하시고 실천하려고 몸부림치게 하시고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과 말씀을 배우며 성경석 목사님을 통해서 장유 반석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게 하셨습니다(1991년 5월 19일). 그리고 제가 과거에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신림동 선민 교회에서 박기수 목사님께서 설교하실 때 예수님께서 성전을 가득 채우시며 나타나셔서 입으로 빨간색의 불을 제 가슴에 뿜어 주셨습니다. 제 가슴에 작은 촛불과 같은 불꽃들이 보이고 손에 땀이 나면서 누군가 예수를 믿는 분이 아프면 제가 만지면 나으리라는 믿음도 같이 왔습니다. 그리고 행정고시 2차 준비 중이었는데 이도 잊고 3일 동안 천국에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1992년 2월 중)
그때 주께서 목사가 되라고 명하셔서 약 19년 뒤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늘 불순종하고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저를 길이 참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그리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사도행전 2장 37-38절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주님께 불을 받은 후 훨씬 나중에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잠실교회와 모든 성도들, 천국에 가신 어머니와 홀로 사는 남동생, 그리고 제 처를 통해서 많은 사랑을 받게 하시고 도움도 받게 하셨습니다.
모두가 저보다 사랑이 크시고 한결같은 믿음의 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으로 무능하고 변덕스러운 자가 이렇게 온 세상에 주님의 진리를 전하니 그 은혜를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보잘것없는 인생을 참고 사랑하며 도운 잠실교회와 성도님들 그리고 제게 사랑을 베푸신 모든 분께 주께서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김성수 장로님의 가족을 기억하시고 성경석 목사님과 가족들을 축복하시며 박기수 목사님과 선민 교회 식구들이 모두가 건강하게 하나님께 충성하시길 빕니다. 홀로 사는 동생이 좋은 짝을 만나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께서 건설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이 땅에 건설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약한 자를 들어서 쓰시는 강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이 세세토록 찬양받으시길 빕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나라를 간단하고 줄여서 설명, 상금 500만)
행 2: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7.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38.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37. When the people heard this, they were cut to the heart and said to Peter and the other apostles, "Brothers, what shall we do?“ 38. Peter replied, "Repent and be baptized, every one of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for the forgiveness of your sins. And you will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Spirit(개역개정, 공동 번역, NIV)
샬롬! 성령 받은 주님의 도구인 저 David 목사는 세상에 흩어져 사는 모든 성령을 받고 주님을 사랑하며 그 뜻을 행하는 믿음의 형제에게 위로와 평강을 빕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힘을 내라” “내가 너를 사랑한다” 이 위로와 격려의 말씀으로 우리는 어두운 세상과의 전투에서 다시 힘을 냅니다.
복음을 전하는 모든 형제가 성령을 받고 전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우선해서 해야 될 일이 전도이고 이는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시고 가장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돈에도 재물에도 세상의 영광에도 심지어 주변의 사랑도 때로는 기대할 수가 없이 곤고합니다. 만물의 찌꺼기 같이 여김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만인이 나에게 대적으로 덤비는데 때론 사람이 우는 사자와 같이 막무가내로 덤빕니다. 이는 내가 절대로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정의롭고 흠이 없이 의의 흉배를 하나님께 받아서 마귀와 대적하기에 이를 싫어하는 어둠의 세력이 약한 심령을 꾀어서 우리에게 대적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때론 가족이 모두가 나를 싫어하고 만나기도 꺼려 합니다. 세상은 하박국 시대와 별로 다름이 없습니다. 어디 사랑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사랑을 품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교회는 나를 싫어합니다. 이유가 없이 싫어합니다. 그냥 보기 싫어합니다. 모든 선을 행하고자 하는 주님의 백성이 이런 고난을 겪고 옥에 갇히고 순교를 했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순교는 일부의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슬람 제국과 북한 그리고 복음의 전파를 싫어하는 국가에서 믿는 이들을 박해를 합니다. 이분들이 가장 어렵게 살고 있는데, 우리 모두 자유를 지니고 조금 고난을 받는다 해도 이들을 위해서 도리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주안에서 참된 형제가 되었으니 이들의 고난을 잊고 자유를 다른 방향으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형제임을 확인하고 서로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저도 그렇게 모든 것이 자유롭지만 가난하고 미움 당하고 배척당하고 그리고 때론 악의 세력에 악으로 대적할 수가 없어서 숨을 죽이며 살고 그리고 몰래 눈물도 흘리며 살고 있는데 약 30년 이상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집도 없고 모은 돈도 없고 그리고 직장도 자주 옮겨야 했습니다. 그래도 앞에서 고백한 대로 저를 도우신 분들이 많고 그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읽은 내용들은 세상을 완전히 바꿀 성경의 새로운 이해라 믿습니다. 모든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분들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인 줄 믿습니다. 값없이 그냥 받아서 누릴 수가 있습니다. 감동이 있으신 분은 이런 내용을 책으로 만들어서 온 세상에 전하게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동영상을 만들려고 합니다.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기도가 가장 큰 도움입니다. 모든 분들을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의 사역 복음 전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부탁을 드립니다. 곧 동영상으로 만나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늘 함께 하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믿는 이들이 천천이 만만이 될 줄 굳게 믿는 David 목사
이제 이 글을 온 세상에 전합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성도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다고 합니다. 로마서 3장 21-26절을 통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의는 믿음으로 오는 의가 있는데 구약의 모세 오경 즉 율법 중에 창세기를 통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오는 의가 있고, 예언서의 하박국서를 통해서 오는 의가 있는데 이것이 곧 이신칭의로 아브라함의 한결같은 25년의 믿음이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된 믿음이라고 말씀을 드렸고 이와 함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이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 함이라 해서 오직 믿고 마음대로 산 사람이 아니고 의롭게 공도를 행하면서 믿음도 변치 않고 했으며 더 나아가 행하여 완전하라고 명하셨기에 그의 행동이 완전하도록 정의롭게 사는 것을 추구하면서 믿음 생활도 했을 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고 이런 아브라함을 본받아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 율법을 받아서 의롭게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어야만 했습니다. 오직 믿음만 있고 행함이 없는 아브라함의 신앙이 절대로 아님을 성경을 읽고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아브라함을 부르신 의도는 민족의 조상이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은 틀림없이 맞으나 또 한편으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부르셨다고 하셨으니 이렇게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치 않고 오직 믿는다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아브라함을 절대로 의롭다 인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그 부르심의 목적을 말씀드렸는데 이를 거부하고 이를 불순종하고 불의하게 살고 공도를 행치 않고 세상의 사람과 같이 구분이 없이 거룩하게 살지 않는 아브라함을 보셨다면 대노하시고 절대로 절대로 순종치 않는 거짓된 인간의 믿음을 보시고 너는 참으로 의롭구나 하시지 않았을 것을 저는 믿습니다. 정말로 악을 너무나 미워하시고 정의롭게 사람이 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을 믿기 바랍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정의롭게 사는 믿음이 의롭게 되는 믿음임을 앞에서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를 다시 반복하면 남유다의 상황이 불의가 만연한데 멸망을 받을 정도로 정의는 찾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의롭게 사는 하박국은 너무나 이런 불의한 세상에서 의롭게 사는 것이 어려워서 차라리 동족을 멸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부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선지자는 악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음을 아셔야 합니다. 바벨론이 심판의 도구로 선택이 됩니다. 그렇지만 이 강대국도 더욱 악해서 바벨론도 결국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페르시아를 통해서 멸망을 당합니다. 모두가 악합니다. 행위가 올바른 자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의인은 누구입니까?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멸망시키실 것을 믿습니다. 아울러 바벨론도 멸망시킬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루하루 살 것이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믿음을 가지고 살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하박국과 같이 악을 미워하는 정의로운 사람은 이제 희망이 생겼습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악을 참지 않으시고 심판을 행하십니다. 숨통을 죄어 오던 남유다의 왕과 고관과 대작과 그리고 모든 불의한 자들이 죽음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가고 그 가산이 다 풍지박산이 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의인을 괴롭게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통치는 오래가지 않고 역시 더 센 페르시아에 의해서 멸망이 됩니다. 이제 소망이 없던 사람들에게 희망이 보입니다. 권력을 이용해서 악을 행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집과 땅을 빼앗았던 무리가 바벨론에 의해서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죽고 포로가 됩니다. 바벨론의 느부 사라단이 모든 토지를 다 이제는 가난한 농군들에게 넘겨 줍니다. 이렇게 악한 세력을 초토화시키시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는 자가, 당시에 살던 악한 이들과 같이 역시 불의하게 사는 것은 이렇게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계심과 능력을 절대로 믿지 못하는 무리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고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곧 하나님께서 이렇게 불의를 척결하시는데 왜 이를 참지 못하고 악의 세력에 동조를 하겠습니까? 만약에 자신도 악을 행하게 되면 역시 악의 세력이 되어서 심판의 대상이 되는데 말입니다. 분명하게 성경을 이렇게 이해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의 믿음대로 악한 세력을 멸하시는 장면을 당시를 살던 예레미야가 똑똑히 봅니다. 그리고 하박국 당시 악한 그들이 누리던 토지와 집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처리를 하시는지 보겠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을 하박국서가 쓰여질 때에서 약 20년 뒤에 예루살렘의 함락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묘사를 했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다
1. 유다의 시드기야 왕의 제구년 열째 달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2.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넷째 달 아홉째 날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
3. 바벨론의 왕의 모든 고관이 나타나 중문에 앉으니 곧 네르갈사레셀과 삼갈네부와 내시장 살스김이니 네르갈사레셀은 궁중 장관이며 바벨론의 왕의 나머지 고관들도 있더라
4.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모든 군사가 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밤에 왕의 동산 길을 따라 두 담 샛문을 통하여 성읍을 벗어나서 아라바로 갔더니
5. 갈대아인의 군대가 그들을 따라 여리고 평원에서 시드기야에게 미쳐 그를 잡아서 데리고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로 올라가매 왕이 그를 심문하였더라
6. 바벨론의 왕이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족을 죽였으며
7.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8. 갈대아인들이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고
9.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자기에게 항복한 자와 그 외의 남은 백성을 잡아 바벨론으로 옮겼으며
10.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 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
절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 악을 행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악하기 때문에 동족이, 이웃이 내가 아는 사람들이 다 멸망을 당하는데, 믿는다고 하면서 악하게 어찌 하나님이 두려워서 살 수가 있겠습니까? 악하게 사는 자를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살려두시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성경을 잘 읽어 보시면 하나님께서 악을 멸하실 때에도 자비를 베푸셔서 의인은 구원하십니다. 남겨진 그루터기도 그러하고 나라가 망해도 다니엘과 에스겔 같은 분은 여전히 포로가 되어 가는 곳에서도 존귀하게 됩니다. 의인이 피를 흘리고 죽게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받아 주실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의로우신 하나님의 백성은 정의롭게 살아야 하는 사명을 절대로 면제 받을 수가 없습니다. 정의를 세우고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로서 성령 안에 있다고 하십니다. 정의는 어디서 확보가 됩니까?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이 지켜지는 곳입니다. 율법이 틀림없이 지켜지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질서가 있으니 평안하고 그 평안이 있는 곳이 희락이 넘치는 곳이 됩니다. 성령 안의 의미는 성령을 받고 자발적으로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서 사랑을 실천을 통해서 율법을 잘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에스겔서에 이를 잘 설명했습니다.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그런데 이 칭의가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의가 동시에 나타난 십자가를 통해서 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음을 통해서 오는데 피를 믿음으로 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고 피흘림이 없으면 죄의 사함이 없는데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해서 이를 믿는 우리가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서 우리가 죄에서 용서를 받게 되는데 그 과정이 있습니다. 참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과학인 내용입니다. 놀라우신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과 정의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 온 세상에 사는 사람이 짓는 죄에 대해서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바로 벌을 주시지 않으시고 모든 인류의 죄를 바로 벌하지 않으시고 정말로 정의로우신 하나님 편에서 참기는 어렵지만 길이 참으십니다. 이렇게 하셨기에 모든 인류의 죄를 간과하셨기에 예수님께서 오셔야먄 하십니다. 그 죄는 분명하게 과거, 현재, 미래의 죄가 아니라 과거에 지은 죄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에 반드시 죄의 댓가로 죽어야만 하지만 또 그렇게 죽는 신세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죽게 된 인류일지라고 살면서 또 죄를 짓는데 이에 대한 벌을 바로 실행치 않고 유보하신다고 하십니다. 물론 죄로 인한 저주도 유보하실 것입니다. 아담의 원죄의 결과에 대해서도 잠시 유보를 합니다. 아담과 그 아내는 죄로 인해서 에덴을 잃고 엉컹키가 나고 남녀가 수고하면서 살아야 하는 지금 우리가 사는 땅으로 추방을 당했습니다. 이 자체가 죄에 대한 벌을 이미 받은 것입니다. 비록 인간은 태어나면서 죄인으로 태어나지만 또한 구원을 얻을 희망도 가지고 태어납니다. 내가 세상에 오지 않았다면 즉 인간의 형태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구원에 대한 논의도 희망도 없게 되는데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고 나는 정해진 수명대로 살면서 내가 희망하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누리며 에덴을 회복할 수가 있으니 이는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아닐 수가 없는데 이런 면에서 완전히 죽고 영벌을 처하게 되는 죄의 벌이 지금 집행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적어도 내가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그렇습니다. 이렇게 먼저 우리 모두의 과거에 죄에 대해서 묻지 않으시고 간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살인을 했든 강간을 했든 혹은 도적질을 했든 폭행을 했던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해서 벌을 내리지 않고 기다립니다. 그리고 아들을 보내시고 인류의 죄를 지시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십니다. 이 죄를 용서받을 길을 예수님의 피 흘심과 십자가 대속을 통해서 열어놓으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의와 사랑이 드러납니다. 이 예수를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고 의롭게 됨을 얻게 하셨는데 이는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의 간과를 통해서 가능하게 됩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를 죄에 합당하게 벌을 주셔서 우리를 바로 죽게 했다거나 혹은 재산과 신체적인 손해를 겪게 하셨다면 즉 우리의 지은 죄를 간과하지 않았으셨다면 우리는 모두 죄에 대한 벌을 받고 온 인류가 평안하게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합당한 벌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아무리 죄를 용서받을 길을 제시하셔도 이미 죄값을 치른 자들을 별로 호응하지 않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을 믿고서 얻는 이익이 별로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간과하시니 즉 처벌을 하지 않고 내가 예수님만 믿기만 하면 용서해 주시려고 간과하고 기다리시니 내가 이제 속히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 엄청난 죄의 대가에서 놓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류의 과거에 지은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셨는데 내가 이런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간과하신 죄들을 결국은 용서를 받지 못하고 소망이 조금도 없는 영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를 완전히 간과하신 후에 완벽하게 벌을 주시지 않고 용서해 주실 놀라운 은총을 우리 주 예수님과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서 모든 인류에게 베푸셨는데 어떤 사람은 죄인인 인간이면서 나는 죄가 없소 나는 의인이요 하고 주장하고 또한 자신을 살리는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지도 않음으로 이제는 아무 변명도 하지 못하고 영벌을 향해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에는 이런 놀라운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죄에 대한 이미 간과가 있으시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시고 이제 예수님을 믿으면 완전히 간과하던 죄들이 용서를 받게 되니 정말로 죄에 대한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완벽한 용서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죄에 대해서 세상은 또 법으로 사형으로부터 죄를 벌하게 정해 두고 죄를 지은 인간에게 벌을 주는 것은 피 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박철웅씨 같은 경우는 금당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체포가 되어서 사형에 집행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교도소에서 수감 중일 때 복음을 받아들여 완전히 회개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 그리고 수백명의 사람에게 예수님을 잘 전해서 믿게 했습니다. 그분의 글을 보면 너무나 분명하게 회개하신 모습이 보이고 영적으로 너무나 높은 경지에 있음이 보입니다. 저는 세상이 손가락질 하나 그분께서 천국에서 전도의 큰 상을 받고 영원토록 잘 사실 것을 믿습니다. 실상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죄인일 뿐만 아니라 원수였고 하나님을 대적하던 사람으로 누가 누구를 정죄할 자격이 별로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셨습니다. 모든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내리심으로 자신이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벌을 자신이 아들이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며 받게 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보시고 우리는 분명히 장래에 하나님께서 악을 행한자 즉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대로 죄중에 사는 사람들에게 하실 일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악은 절대로 결국에는 그냥 지나가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는데 그 심판이 최후 심판이라는 사실 입니다. 죽어서도 피해 갈 수가 없는 심판이 존재하고 있음을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분명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즉 죄는 피 흘림과 죽음이외에는 피해갈 길이 우주 전체를 다 뒤져도 없고 오직 예수님을 믿음을 통해서만 해결이 되는데 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회피하는 자들은 이런 하나님과 예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희생을 거절하는 자로서 어떤 소망도 없이 심지어 이를 인식도 못하고 살다가 영벌에 처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이들이 세상에서의 조금 잘 되는 것을 보고 이들을 부러워할 일이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자신의 의를 나타내신 것은 하나님께서도 의로우신 분이시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려 하심을 분명하게 로마서 3장 21-26절로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분명하게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는데 두 가지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오는 의이고 다른 하나는 정의의 하나님께서 정의로운 심판을 즉 인류 모든 사람의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심판 즉 처벌을 예수님의 피 흘리심과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서 행하심으로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증명하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고 있고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의의 발로인 십자가의 피 흘리심과 대속의 죽음을 믿으므로 죄를 용서 받게 되고 의롭다 인정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도 시간이 가도 변치가 않는 한결같은 믿음이고 또 정의롭게 사는 믿음이며 이렇게 사는 성도를 때가 되면 어느 때에 하나님께서 보시고 의롭다 인정을 하심을 또 보았습니다. 이신칭의의 믿음을 앞의 역사적인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죄를 용서받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의 의의 나타남과 예수님의 말로 형용할 수가 없는 고난을 생각치 않고 그리고 믿음 뒤의 그 세밀함을 살펴 보지 않고 즉 믿음의 앞과 뒤는 건너뛰고 오직 믿음만 생각하면 큰 일이 날 수도 있음을 이번에 분명하게 밝힙니다. 이런 내용은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와 성령님의 인도 아래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전도하고 그리고 주변의 도움과 기도로 이루어졌음을 고백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