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인이 본 53선 지식 28차 35, 회암사에 고터에서
양주에 있는 회암사 고터에서
나에게 보인 인연이 속삭임을 보니
인도의 승려인 지공 화상이
원나라에 후원을 받아 사찰 건립
원나라는 고려의 불교에 대하여 성찰하고 있었는데
고려에 침입하던 개성에 있는 고대사찰에 비하여
개성과의 지역을 벗어난 지역에 순행했던 지공이네
지공아 회엄사를 건립한 이후에 그 명성이
원나라에까지 전해지고 있었기에
화엄사에 대하여서는 고려에 승려들은
화엄사에 모여들고 있었다고 본다.
원나라에서는 고려 불교를 원나라
불교와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려고
고려불교를 전승하려고 함은 바로
원나라와 고려 불교를 전승하려는 서원이네
회엄사는 기황후의 영향력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고려국 재상 최화중의 협력이 있을 수 있고
최화중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은 바로
원나라의 승려 무국의 역할이며
무국은 회엄서에 거주하고 있었네
무국은 고려에서 승려들을 친경하고 있었는데
그 시기에 최고의 승려로 타고 보우를 찾았다
태고 보우는 고려의 승려이지만 고려으 재상인
최하중의 협력으로 무국의 요청으로
원나라에 방문하는 소임은 수행되었다,
태고 보우는 회암사에 출가하자 칭하고
원나라에서 훗날에 고려의 왕이 될 공민왕을
원나라에서 만났고 공민왕이 고려의 왕이 되었을 때
회암사는 원나라에서 최고의 사찰이었다,
화엄사에서는 원나라에 교류를 통해서 더욱 발전하여
거대 사찰로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원나라게 허약해지고
북쪽에서는 황건적이 고려를 침입함에 따라
공민왕이 남쪽으로 피난함에 화엄사에서도
그 소임을 수행치 못하고 있었다가
황건적이 물러나고 공민왕이 복귀하여
회암사는 고려의 왔지만, 왕사인 태고 보우가
열반에 들고 그 뒤에 나옹화상이 회암사 주지로
우왕 2년에는 화엄사에서 나 옹이 문수회 법회를 여니
전국에서 신도들이 모여옴에 도당에서는 나옹을
경상도 일성군으로 추방하여 가는 도중에 여흥
신륵사에서 비참하고 죽임을 당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나옹은 고려의 마지막 승려라고 칭할 수 있었네!
고려는 불교의 기능을 상실하고 우왕이 이성계에게
배신을 당하고 고려의 최고 장수 최영 도 주살당하고
고려가 멸함에 이성계는 고려의 왕을 추대하려고
두 색을 이용하고 정몽주에게 청하여 새롭게 왕을 추대
공양왕을 추대하고 공양왕은 우왕 창왕을
서인으로 강등하여 유배하였다,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국호가 변경하니 이성계 일파는
명나라에 왕을 즉위함을 고하니 그가 바로 공양왕이며
공양왕은 정몽주를 최고의 후원자로 인정했지만
이성계는 공양왕을 명나라에 입주를 청하니
명나라에서는 공양왕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으니
나 옹의 법을 이었다고 하는 무학을 대를 이어
불교를 전승하게 하였다고 말할 수 있네
공양왕 4년에 승려 자초를 접견하였다고 하니
이성계에 의하여 공양왕과 접견하였다는 점
무학 자초가 등장함은 지공 나온 무학으로
연결 지어짐을 말하고 있음이네
회암사에서 보았던 전경을 살펴보니
고려의 공민왕 이후에 전승된 불교에 대하여
역사를 기록하려고 함이 여기에 있음이네
조선 개국과 함께 전승된 회암사에 대하여서는
연구를 계속함에 대하여 여지를 남기고 있어
폐허가 된 회암사를 바라보면서 슬픔을 말함이네!
무학이 무엇을 위하여 등장했으며
화엄사에 대한 사찰의 기능을 상실함에
그 원인을 고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네!
회암사는 세조시대 효령대군이 주석하고
원각경을 봉독함에 세조는 원각사를 창건하고
문정왕후는 호응당 보우가 주석함에
봉은사 주지로 천하여 승과 시험을
승려들 가운데 서산 사명을 탄생함에
조선에서는 화엄사가 정치적인 사찰로
그러한 원인에 의하여 명종 21년에
유생에 의하여 사찰을 불을 지르는 행위
순조 때에는 탑을 헐고 무덤을 만든 전설
오늘과 회암사에 비극이 내려온 전설
쓸쓸한 회암사 뜰앞에 서 있음이 너무도
슬프다는 생각이 들어 이러한 시를
오늘에 기록하려고 함이네
2024년 5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