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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con)
《반야심경》
오늘은 (반야심경)에서 (조견)속에서 (멸성제,, 열반,, 해탈) 에 대하여 이어서 올리겠습니다,,,
《반야심경,, 般若心經》
《멸성제,, 열반,, 해탈,,》
3),, 멸성제,, 열반,, 해탈,,
이러한 괴로움의 원인이 소멸된 상태를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라 하여 멸성제(滅聖諦)라고 합니다,,,
이러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기 위해서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그 실천의 길이 바로 도성제(道聖諦)로,, 괴로움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진리를 말합니다,,,
4),, 도성제,, 중도,, 팔정도,,
도성제는 괴로움의 소멸,, 즉 열반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 도성제는 괴로움을 멸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그
열반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중도(中道)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양극단을 떠난 길입니다,,,
즉 지나치게 쾌락적인 생활도 아니고,, 반대로 극단적인 고행
생활도 아닌,, 몸과 마음의 조화를 유지할 수 있는 상태의
길을 말합니다,,,
거문고 줄은 지나치게 팽팽하거나,, 지나치게 느슨해도 좋은
소리가 날수 없고,, 가장 좋은 소리를 위해서는 그 줄이
적당한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듯이,, 열반을 얻기 위한
수행의 길 또한 극단적인 것을 피하고,, 중도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중도를 구체적으로 말한 것이 바로 팔정도 입니다,,,
팔정도의 정(正)이 바로 중도의 중(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팔정도는,, 불교 수행의 세 가지 핵심인,, 계(戒),, 정(定),,
혜(慧),, 삼학(三學)을 의미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팔정도는 계정혜 삼학을 중도설에 입각하여 세분하여
구체화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은 계(戒)를 의미
하며,, 이러한 계행을 통한 올 바른 생활을 바탕으로 올 바른
수행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한 바른 수행이 바로 정(定)이며,,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 의 세 가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바른 수행을 통하여 밝은 지혜를 증득할 수 있으니,,
이것이 혜(慧)이며,, 정견(正見),, 과 정사(正思),, 가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팔도정에서 수행의 핵심은 정견(正見),, 과 정정(正定),,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팔정도의 핵심인 정견,, 정정,, 을 말하기 앞서 나머지 정사유
(바른 사유,, 의업),, 정어(바른 말,, 구업),, 정업(바른 행동,,
신업),, 정명(바른 생활),, 정정진(바른 노력),, 정념(바른
관찰),, 등은 종교적,, 윤리적 생활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불교 윤리 사상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불교 윤리의 핵심이 바로 십선업인 것입니다,,,
십선업은 뜻으로 지은 세 가지 업인 불탐,, 불진,, 불치,, 와 입으로 지은 네 가지 업인 불망어,, 불기어,, 불양설,, 불악구,, 및 몸으로 지은 세 가지 업인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을 말합니다,,,
이러한 윤리 생활이 바탕이 되어 수행 생활로 나아가면 팔정도의 핵심인 정념과 정정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정념(正念)입니다,,,
이 원리에 입각해 지관겸수(止觀兼修),, 정혜쌍수(定慧雙修),, 등의 교학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반야심경,, 의 조견(照見),, 또한 이 정념에서 나온 것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정념과 정정을 올 바로 끊임없이 수행하는 것이 정정진이며,,
이렇게 수행했을 때 나타나는 올 바른 견해가 바로 정견(正見)인 것입니다,,,
정념이란,,
우리의 몸과 느낌,, 마음,, 그리고 대상에 대하여 가만히 비추어 보는 관찰 수행법입니다,,,
정정이란,,
마음을 한 곳에 집 중하는 것,,
즉 일체 경계에 집착하여 끄달리지 않고,, 항상 마음을 한 곳에 집중 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 두 가지 실천이 바로 참 선인 것입니다,,,
진정한 참 선은 가부좌하고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일상 생활에서 항상 마음을 흩트리지 않으며 (정정),, 일체 경계를 대함에 항상 비추어 볼 수 있는 자세 (정념),, 를 의미합니다,,,
이럴 때에 행주좌 와 어묵동정(行住坐 臥 語默動靜),, 모두가 참 선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활 참선,, 생활 수행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정념,, 정정,, 의 구체적인 수행법이 바로 사념처 수행 입니다,,,
이 수행법은 요즈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위빠사나를 말합니다,,,
즉 신(身),, 수(受),, 심(心),, 법(法),, 이 네 가지에 마음을 집중하여 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일체 모든 경계를 관하는 것입니다,,,
항상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어떤 경계에서든지 관을 하면 그 경계를 객관적으로 관조하게 되므로 그것에 대한 집착을 놓을 수 있습니다,,,
즉 화가 나서 싸울 때 그 순간 자신을 관찰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관하는 것은 그 싸움에 대한 집착을 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관 (알아차림) 하지 않는 다면 그 싸움에 흠뻑 빠져들어 흥분하게 되므로 어떤 일이 벌어 질지 알 수 없습니다,,,
즉 관을 하면 집착을 놓을 수 있게 됩니다,,,
(방하착,, 放下着),, 이 사념처,, 위빠사나,, 수행 또한 그 핵심은 무집착인 것입니다,,,
,,반야심경,, 의 ,,조견,, 이라는 단어는 바로 이 위빠사나와 일맥상 통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조견,, 을 수행법으로 제정립 한 것이 바로 위빠사나 입니다,,,
이것이 근본 불교의 ,,정념,, 에서 온 것임은 앞에서 미리 살펴 보았던 바와 같습니다,,,
이렇게 가만히 신,, 수,, 심,, 법,, 에 대해 관찰을 할 때 올 바른 반야의 지혜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편견과 고정관념이 전혀 배제 된 올 바른 진리의 관찰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올 바른 궁극의 관찰이 바로 정견(正見) 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사량 분별심과 분별의 대상을 가만히 비추어 보고 관찰하는 것이 ,,정념,, 이며,,
그 결과 올 바른 안목이 열리어 있는 그 대로를 있는 그대로 관찰 할 수 있는 혜안이 열리는데,, 그것이 바로 ,,정견,, 인 것입니다,,,
,,반야심경,, 에서의 ,,조견,, 은 이 ,,정념,, 과 ,,정견,, 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정념,, 의 수행을 통해 일체의 현상계를 ,,정견,, 했을 때 나타나는 진리가 바로 위에 말한 근본 교설이며,,
오온이 모두 공하다는 진리인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은 오늘 이어서 (반야심경)에서 (오온)에 대하여 이어서 올리겠습니다,,,
《나무 마하 반야 바라밀》
《행수 지성합장》
꽃사진 ㅡ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