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수원역 광장의 화장실을 이용하다 말고 알게 되었다. 이곳 광장 한편에 수원시가 마련한 노숙자를 위한 '정 나눔의 집'이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수원역 남측 버스정류장에서 서쪽으로 사십 여 미터쯤 거리에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면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회의실과 같은 의자 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언 듯 보아서는 오십 여 명은 편안히 앉아 쉴 수 있는 장소이다. 그곳을 나와 다른 한쪽에는 숙소도 마련되어 있었다. 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 된 터라 이곳에서는 많은 '식객'들이 밥 차가 나타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노숙자가 아닙니다_1
좀 더 자세한 것들을 알아보고 싶었지만 이곳에는 집 없는 사람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며 수문장처럼 서서 나를 벽안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 현장의 모습을 사진 찍기란 나와 같은 아마추어로서는 언감생심일 뿐이었다. 날카로운 그 눈빛들...왜 아니겠는가. 어쩌다 기구한 자신의 현실 모습이 남루하게 지인들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그가 받아야 할 상처는 불을 보듯 번한 일이다.
녹록치만 않은 세상사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시련쯤은 없을까 만은, 우리는 좋아진 세상을 살며 입에 맞는 좋은 일만, 좋은 세상만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한 번 돌아보게 된다.
내 객기어린 소리일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1970년대 나는 돈을 벌 목적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월남전에 자원했다. 몇 번의 사경을 헤매며 천운으로 살아 돌아왔고, 1980년대에는 불붙은 모래바람 속의 건설 현장에 뛰어들어 사우디 쿠웨이트를 누비며 악착같이 돈을 벌기 위해 싸워야 했다.
그것은 누가 뭐래도 가난이 가져다 준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너무나 부자가 되어서 탈이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이런 우리의 현실을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실업자와 노숙자가 많다고 걱정들 하며 대책을 호소하는 소리가 높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수많은 외국 이주 노동자는 볼 수 있어도 구걸을 한다거나, 일자리가 없어 길거리를 떠도는 모습은 아직 보지 못했다.
공장은 일손이 부족하여 난리이고, 늘어나는 실업자는 일자리가 없다며 난리다. 일하지 않고 거리를 떠돌며 놀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참 좋은 나라 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나는 등산을 하고 내려와 광교산 입구 반딧불이 화장실에서 안면이 많은 턱수염 긴 노숙자 한분을 또 보았다. 날이 추운관계로 그나마 화장실을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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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세면기 옆에는 손을 말리는 열풍기가 있다. 그는 거기에 매달린 가운데 마른 손을 내밀고 기도하는 자세랄까, 돌리고 돌리며 몸을 녹이는 모습이 보기에도 안타까웠다.
나는 그곳을 나오다 말고 발길을 되돌려 들어갔다. 마침 수원역 앞의 노숙자를 위한 '정 나눔의 집'이 문득 떠오른 것이다. 그분에게는 좋은 정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저~수원역 앞에 집 없는 사람들이 가면 밥도 주고 텔레비전도 볼 수 있고, 잠도 잘 수 있는 곳이 있는데 혹시 아세요?"하자 그는 망설임도 없이 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노숙자가 아니기 때문에 안 간다고 했다.
그 말 따라 나는 여기서 이렇게 지내면 노숙자가 아니고 뭐냐며 되물었고, 그는 집이 있고 갈 곳이 있다며 나름의 고집인지 철학인지는 모르지만 말을 섞다보니 보람도 없이 은근히 화도 났다. 언성을 높이는 가운데 엿볼 수 있는 것은, 겉보기에는 사지 멀쩡하면서도 그에게는 노동의 자활 의지가 없었다. 사람들을 만나거나 대화하기를 싫어하며 정신 건강의 문제인 것만 같아 안타까움을 더해왔다.
생각이 바르고 온전한 사람이라면 왜 노숙자생활을 하고 있겠는가. '정 나눔의 집'과 같은 일시적인 당국의 대책도 필요하지만 장기적인 치유와 재활의 복지가 요구되는 시점이 아닌가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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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고 싶은 마음에서 끼어들었다가 말싸움까지 벌이고 말았던 나는 다음 날 다시 그곳 화장실에 가보았다. 그러나 내게서 받은 상처 때문이었을까. 낡고 때 묻은 배낭 두 개에는 우주를 구겨 넣은 그의 별들이 가득했고,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턱수염이 유난히 긴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