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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1: 12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 벧전 1: 15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벧전 1: 12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한 내용이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요, 신약 성도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드러났다.
예수께서는 구약 예언의 성취자로서 나타나셨다. 또 이 사실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 전도자들이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전파하였다.
하늘의 천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 사역을 보기를 원한 바였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자들이므로 하나님의 뜻인 죄인들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 사역을 보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1]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예언자들이 간절히 알기를 원하며 열심히 상고하고 예언한 것은 예언의 내용 곧 메시야의 때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예언자 자신과 당대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었다(Blum, Stibbs, Michaels).
* 롬 4: 23-24 -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 롬 15: 4 -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 고전 9: 9-10 - ⑨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⑩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 고전 10: 11 -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2]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보내신'(아포스탈렌티)는 수동태 분사로 성령께서 보내심을 받았음을 나타낸다. '성령을 보낸 자'에 대해서 신약성경은 '하나님 아버지'라고 나타내었다.
* 요 14: 16, 26 - ⑯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갈 4: 6 -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또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내기도 한다.
* 요 15: 26 -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 요 16: 7 -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 행 2: 33 -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그러나 본 절에서는 '성령'을 보낸 자에 대해서 특정한 자로 정하기는 어렵다(Michaels).
앞서 언급된 예언자들이 메시야의 고난과 영광을 예언하여 전한 것을(11절) 본 절에서는 '복음'과 동일시하고 있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이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라 말씀을 상고하여 메시야의 고난과 영광을 예언하였던 바와 같이 신약 시대에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성령을 힘입어 메시야의 고난과 영광 즉 복음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였다.
3]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살펴보기를'(파라큅사이)는 '자세히 주의하여 보다'라는 의미로 잘 보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것을 나타낸다.
천사들은 본래 하나님의 계획을 전달하는 존재이기에 인간보다 훨씬 더 깊은 뜻을 알 수 있지만 구원의 계획은 너무도 오묘하여서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실현되어 하나님의 계획이 공개되고 선포될 때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그들은 예수의 초기 지상 생활을 지켜보았다.
* 딤전 3: 16 -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구속이 완성될 때에는 찬양으로 기뻐할 것이다.
* 계 5: 11-14 - ⑪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⑫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⑬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⑭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베드로는 10-12절의 논의를 통해 복음의 전달 과정을 세 단계로 기술하고 있다.
(1) 선지자(10절).
(2) 복음전파자(12절).
(3) 천사들(12절).
이러한 전달 과정을 거쳐 실현된 하나님의 오묘하신 구속 계획은 신실하게 성취되어 왔다(Lenski, Cranfield).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이시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실 메시아께서 오실 것을 예언하였고 특히 신적 구주이신 그가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였다.
이제 그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가에 죽으심과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다 이루어졌다. 그는 성경의 모든 예언을 이루셨다.
둘째, 처음 성도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했어도 믿었고 그를 사랑했고 그를 기뻐했다.
그것은 사도들의 증거와 신약성경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고 기뻐한다.
셋째, 우리의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이다.
우리의 영혼은 죄로 인해 죽었고 지옥 형벌을 받을 처지에 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장차 영광의 천국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다. 그것이 구원의 최종 목표다.
3. 성도의 성화 ( 1: 13 – 25 )
⑬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⑭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⑮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⑯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하셨느니라. ⑰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⑱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⑲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⑳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벧 전 1: 13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우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야 한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는 말은 나태하고 해이하거나 정신없이 살지 말고 깨어 있는 마음으로 바르게 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는 앞에서 말한 하늘에 간직된 기업과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 된 구원을 가리킨다. 그것은 천국과 우리의 몸의 부활과 영생을 가리킨다.
온전히 바란다는 말은 우리의 가치와 소망을 전적으로 거기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참으로 그것만 바라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히브리서 6: 11-12도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천국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였다.
1]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동이고'(아나조사메노이)는 '급한 일을 당할 때 취하는 태도'로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게으른 삶을 반성하고 목표로 매진하는 자세'를 가리킨다(Lenski).
* 출 12: 11 -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주님도 이 단어를 사용하여 종이 취해야 할 바른 자세를 말씀하셨다.
* 눅 12: 35 -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베드로가 동일하게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온전한 구원의 성취를 소망하는 가운데 긴장된 자세로 인내하며 주님을 기다리도록 권면하기 위함이다.
2] 근신하여 ... 온전히 바랄지어다.(네폰테스 텔레이오스 엘피사테)
본문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 헬라어 문법에서 부사가 '오스'로 끝나면 앞에 있는 날말을 수식한다는 점에 근거하여
'텔레이오스'가 앞에 있는 '네폰테스'를 수식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온전히 근신하여'로 해석한다(Michaels, Bigg).
이 경우 '온전히 근신하여'는 '인내'를 강조한다.
Ⓑ 일반적인 헬라어 문법으로 따질 때 동사 앞에 있는 부사가 동사를 수식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온전히 바랄지어다'라고 번역하며 '소망'을 강조하는 것으로 본다(Selwyn, Lenski).
이 두 해석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가져다 줄 은혜를 소망하면서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마음을 가다듬고 언어나 행동에 있어서 조심하며 인내 가운데 살아야 한다(Blum, Stibbs).
벧전 1: 14 순종하는 자식처럼 -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
우리는 또한 이전에 하나님과 그의 진리를 알지 못했던 때 좇았던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욕망을 따라 살지 말아야 한다. 우리를 구원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에서 거룩해야 한다.
우리는 구원받기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않았고 하나님 앞에서 더럽고 불결한 삶을 살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순종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라고 친히 말씀하셨다(레 11: 45). 거룩은 죄를 버리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1]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에 해당하는 '호스 테크나 휘파코에스'는 전형적인 셈어적 표현이다.
* 막 2: 19 -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 눅 10: 6 -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특별히 셈족 언어에서 '자녀'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상속자'라는 뜻으로 자녀는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을 권리를 지닌다.
(2) '부모의 인격이나 성품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이다.
이 의미일 경우 누구의 자녀이냐에 따라 자녀의 인격이 결정된다(Selwyn). 이러한 언어적 배경 속에서 베드로는 수신자들을 향해 '불순종의 자녀'(엡 2: 2)가 아니라 '순종의 자녀'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이며 순종하는 마음을 보이고 또한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자녀가 되어서 아버지에게 순종하며 그 성품을 배워가기 때문이다(Michaels).
* 롬 1: 5 -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 롬 16: 26 -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2]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알지 못할 때'(엔 테 아그노이아)에서 '아그노이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 '이방인'을 가리킨다(Cranfield,Selwyn).
왜냐하면 헬라어 단어 자체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을 의미하며 바울도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의 무지에 대해 여러 번 언급했기 때문이다.
* 행 17: 30 -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 엡 4: 18 -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 '유대인'들을 가리킨다(Michaels, Bigg).
왜냐하면 베드로에게 있어서 '아그노이아'는 십자가의 도를 모르는 것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행 3: 14-17 - 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⑭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⑮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⑯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⑰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이러한 두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즉, 이는 이방인이었든 유대인이었든 간에 진정한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 영적으로 죽은 상태를 나타낸다(Stibbs).
이러한 자는 사욕 즉 자연적인 충동에 사로 잡혀(Michaels, Stibbs) 충동대로 방종한 삶을 산다. 그러나 영적 생명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의 삶 즉 욕망에 사로잡힌 삶을 버려야만 한다.
벧전 1: 15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
'거룩한 자'는 70인 역에서 하나님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칭호로서 '거룩한 자' 혹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나타난다(LXX 시 70: 22. 77: 41. 88: 19. 사 1: 4. 5: 16. 12: 6. 17: 7. 29: 23. 30: 12,15. 31: 1. 41: 20. 45: 11. 55: 5).
이것은 하나님의 정결함과 도덕적인 완전함을 시사한다(Blum).
1]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하나님께서 수신자들이 과거에 처했던 어둠에서 광명한 빛으로 부르셨으며 하나님을 닮아 거룩한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2: 9. 5: 10).
2]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되라'(게네데테)는 '기노마이'(되다)의 단순 과거 수동태 명령형이다. 그러나 고전 헬라어에서 '기노마이'의 수동태 명령형 '되다'(become)의 의미보다 '이다'(be)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거룩한 자가 되라'는 명령의 의미보다 '거룩한 존재이니 거룩함을 나타내라'라는 의미이다
* 벧전 2: 9 -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닮아야 하는 존재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행실'(아나스트로페)는 본서에서 '선한 행실'(2: 12), '선한 양심'(3: 16), '정결한 행위'(3: 2)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것은 '거룩'이 하나님께로의 분리를 의미하나 일상적인 삶의 행동과 연관된 것으로서 세상에서 윤리를 실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Blum, Micha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