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전 5: 18 범사에 감사하라 - 살전 5: 21 범사에 헤아려
살전 5: 18 범사에 감사하라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성도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도 주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심을 인정할 때만 가능하다. 이 세상과 온 우주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진다.
1]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의 헬라어 '엔 판티'는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라는 의미이다(in all circumstances, NIV).
성도는 이미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였으므로 모든 상황에 있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
감사는 1: 2에 기록된 대로 기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빌 4: 6에는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도는 자기의 어떤 좋은 조건으로 인하여 감사할 뿐 아니라, 그의 불행한 듯 한 사건으로도 감사한다.
그 이유는 그에게 불행한 듯 한 사건도 필경은 주 안에서 유익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 롬 8: 28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는 자기뿐 아니라, 남이 잘되는 것도 자기의 감사 조건으로 삼는다. 그 이유는,
(1) 남도 나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까닭이며,
(2) 남의 잘되는 것을 인하여 감사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까닭이며,
(3) 나 자신도 기쁜 까닭이며,
(4) 무엇으로 인하든지 참되이 감사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악한 성품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은
(1) 허욕이 많기 때문이다.
인간은 허욕 때문에 큰 은혜도 작게 보며, 참된 것을 헛것으로 여긴다.
(2) 자기의 죄 많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대로 갚으셨다면 벌써 무서운 형벌을 받았을 것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안 된 줄을 그는 모른다.
(3) 인간의 도적 심리 때문이다.
사람들은 남의 도움을 거저 받는 것을 당연하다고 잘못 생각한다.
2]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4: 3에 언급된바 '성도들의 성화'(sanctification)에 있다.
혹자는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것'이 성령께서 성도들을 성화시키는 내적인 역사로 본다(Bruce).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장 원초적(原]初的)이며 기본적인 요소이다.
'그리스도 예수 밖에서' 성도들의 성화나 하나님의 뜻은 생각할 수 없다.
이 말씀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모파트(Moffat)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만 아니라 그 위에 있는 "항상 기뻐함"과, "쉬지 말고 기도함"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의미라고 하였다.
반 류웬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안하고 형통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환난과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한다. 고난의 단련은 성도로 하여금 죄악된 일을 버리고 거룩하게 하며, 높은 마음을 버리고 겸손하게 하며,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게 하는 유익이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고 그렇게 감사해야 한다.
본문은 이런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놀라운 복이며 특권이다.
분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 우리는 교회생활을 잘 해야 한다.
성도들은 그들의 목사와 장로들을 그들의 일 때문에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겨야 하고 교인들은 서로 화목하며 일치 단합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의 교훈을 복종치 않고 무질서하게 행하는 자들을 권면하며 경계하고 마음이 약한 자들을 위로하며 격려하고 심신으로 연약한 자들을 붙들어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아야 한다.
또 우리는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행해야 한다.
우리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며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복된 특권이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과 천국과 영생 때문에 항상 기뻐하고 섭리자 하나님을 인정하며 늘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살전 5: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 성령을 소멸치 말며 )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것은 성령의 감동과 감화를 억누르지 말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먼저 성령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을 구별해야 한다. 성령의 생각은 성경말씀에 합한 생각이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의 교훈대로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생각하는 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이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지 않은 문제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때에는 우리가 성경의 일반적인 진리와 교훈 안에서 각 사람이 소신껏 행해야 한다.
로마서 14: 5,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14: 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사도행전 15장의 초대 예루살렘 총회처럼 우리는 때때로 많은 변론 후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이 명확히 가르친 진리와 비진리, 정통 교리와 이단, 의와 불의, 선과 악은 우리도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
1] 성령을 소멸치 말며
이 말씀은 성령의 은사를 존중히 해야 될 것을 가르친다.
그러나 성령의 일반적 감동에 관하여 성도들을 주의시킨 내용도 가진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이 성령을 소멸한다고 함은,
(1) 남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았을 때에 귀히 여기지 않는다.
인간은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습성 때문에 남들이 받은 성령의 감동을 가볍게 여기는 죄를 범한다.
(2) 자기 자신이 성령의 감동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지 않는다.
그가 자기의 받은 성령의 감동에 대하여 무지하여 혹은 태만하여 순종하지 못하게 되기 쉽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경을 많이 앎으로 성령의 감동을 잘 분별하며 민첩하게 순종해야 된다.
'소멸치'의 헬라어 '스벤뉘테'(*)는 '불을 끄다'(quench, extinguish)를 의미한다.
따라서 '성령을 소멸치 말며'는 '성령의 불을 끄지 말며'로 번역할 수 있다. 이렇듯 성경은 성령을 '불'로 묘사한 예가 많이 있다.
* 마 3: 11 -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 눅 3: 16 -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 눅 12: 49 -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 행 2: 3 -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고린도 교회에서는 성령의 역사를 무절제하게 사용하여 광신적 태도가 만연했음에 비해(고전 12-14장),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는 오히려 성령의 활동을 제한하거나 배격하는 일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성령의 생각은 항상 질서 있는 생각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고린도전서 14: 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자기 형편과 처지에 맞지 않는 과분한 생각과, 공동체의 화평과 일치를 고려치 않는 무질서한 생각과, 남의 의견들을 잘 듣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독선적 생각 등은 성령의 생각이 아니고 육신의 생각이라고 본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을 소멸치 말아야 한다.
살전 5: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 예언을 멸시치 말고 )
사도 시대에는 예언의 은사가 있었다.
예언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교훈적 내용이다. 예언은 물론 장래 일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교훈적 내용이든지 장래 일에 대한 것이든지 예언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성도들이 그것을 멸시하거나 경시해서는 안 된다. 예언을 멸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 된다.
사도들을 통해 주신 예언들은 신약성경에 충족하게 기록되었다.
오늘날 신구약 66권의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교훈과 예언의 말씀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 3: 16).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성경의 예언, 성경의 교리, 성경의 생활 교훈, 즉 성경적 설교를 멸시치 말고 존중하고 믿고 받고 행하기를 힘써야 한다.
1]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예언'(*, 프로페테이아스)에 대하여
Ⓐ 직접 계시를 통한 예언을 의미한다.
Ⓑ 구약의 말씀이나 사도들의 교훈을 해석하여 가르치는 은사로서의 예언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하는 견해와(Lenski)
Ⓒ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있었던 '예언'은 예수의 재림과 관련된 앞일을 예언하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Morris).
일반적으로 전자의 견해가 유력하다.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는 '예언'에 대해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이유는 예언의 은사에 비해 방언의 은사가 훨씬 더 기적적이며 신비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 바울은 예언의 은사를 더 큰 은사로 강조한 바 있다(Alford).
* 고전 14: 5 -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예언'은 미래의 일에 대해서 뿐 아니라, 기타 하나님의 뜻에 관한 하나님 말씀의 대언(代言)이다.
살전 5: 21 범사에 헤아려 -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들의 말들을 다 믿지 말고 그것을 검토하고 분별하고 판단해야 한다.
잠언 14: 15,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
요한일서 4: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오늘날 사탄과 악령들의 활동이 많은,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진리와 비진리, 정통 교리와 이단, 의와 불의, 선과 악을 분별해야 하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 곧 의와 선과 진리와 정통 교리만을 붙잡아야 한다.
1] 범사에
'범사'(*,판타)에 대하여
Ⓐ 성도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것(Lenski).
Ⓑ 19,20절의 '성령의 은사'라는 범위 안에서의 모든 것(Thomas).
Ⓒ 예언의 은사에 국한되는 것(Bruce) 등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두 번째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
2] 헤아려
'헤아려'의 헬라어 '도키마제테'(*)는 '시험하다'(test), '검사하다'(scrutinize)의 뜻으로 동전이나 금속을 시금(試金)하는데 사용되는 용어이다.
'성령의 은사'의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기준은 '예수를 주(Lord)로 인정하는가? 그렇지 않는가?'이며 또 다른 기준은 '교회의 덕을 세우며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데 기여하는가?'의 여부이다(Bruce, Thomas).
3] 좋은 것을 취하고
이 구절에 대하여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해석은 윗 절에 말한바
"예언을 멸시치"않는 태도를 보여준다고 한다. 곧,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였다는 예언을 신중히 취급하여 잘 시험하여 보고 취할 것은 취함이다.
그러므로 윗 절에 '예언을 멸시치 말'라고 한 것은 누가 예언한다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으라는 것이 아니다.
* 살후 2: 2 -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 요일 4: 1 -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둘째 해석은,
이 구절을 앞 절과 관계없는 독립적 권면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뜻은 성도가 모든 일에 잘 살펴서 선한 것을 취하여 따르라는 말이다. 그러나 '헤아려'란 말의 헬라 원어는 '시험해 보라'는 의미이니만큼 첫째 해석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