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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깊이 읽기: 리르오트(보러 나갔더니)]
보러 나갔더니 (Lir'ot, לִרְאוֹת): 단순히 산책을 나간 것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창세기 3장에서 하와가 선악과를 '본지라(Ra'ah)' 할 때 쓰인 동사로, **'강렬한 호기심과 동경을 가지고 주의 깊게 관찰하다'**는 뜻입니다. 디나는 화려한 옷차림과 장신구로 치장한 가나안(세겜) 여인들의 세속적인 문화를 부러워하며 그 무리 속으로 깊이 들어간 것입니다.
[신학적 주해 - 영적 경계선의 붕괴]
비극의 근본 원인은 강간범 세겜에게 있지만, 그 영적 원인 제공자는 **'세겜에 텐트를 친 야곱'**에게 있습니다. 부모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예배의 자리(벧엘)를 떠나 세상(세겜)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타협할 때, 그 자녀들은 부모의 텐트를 넘어 세속 문화의 한복판으로 빨려 들어가 결국 영적, 육적 순결을 유린당하게 됩니다.
II. 영적 가장의 직무 유기: 침묵하는 야곱 (34:5-7)
딸이 처참한 일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야곱은 비정상적일 만큼 무기력한 태도를 보입니다.
(창 34:5, 개역개정)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원어 깊이 읽기: 헤에리쉬(잠잠하였고)]
잠잠하였고 (Hecherish, הֶחֱרִישׁ): 놀라서 말을 잃은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침묵하며 방관하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야곱은 32장에서 얍복 강을 건널 때 가장 앞장서서 위기를 맞았던 용기를 상실했습니다. 세겜의 경제적 기득권(하몰 가문)과 충돌하는 것이 두려웠거나, 혹은 레아의 딸(디나)이었기에 라헬의 자식들만큼 애착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영적 가장(리더)이 불의 앞에서 침묵하고 계산기를 두드릴 때, 그 가정(공동체)은 통제 불능의 피바람 속으로 빠져듭니다.
III. 언약(할례)을 무기로 삼은 끔찍한 신성모독 (34:13-17)
하몰과 세겜이 통혼(결혼)을 요구하며 막대한 혼수와 재산을 주겠다고 회유하자, 야곱의 아들들(시므온과 레위)이 사기극을 기획합니다.
(창 34:13, 15, 개역개정)
"야곱의 여러 아들이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속여 대답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그 누이 디나를 더럽혔음이라...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원어 깊이 읽기: 속여 대답하였으니 (미르마)]
속여 (Mirmah, מִרְמָה): '간교함, 사기'. 아버지 야곱이 이삭을 속일 때 썼던 바로 그 본성입니다. 아들들은 아버지를 넘어 더 악랄한 사기꾼이 되었습니다.
[신학적 절정 - 거룩한 표징의 타락]
할례 (Mulah, מוּלָה):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거룩한 언약 백성의 생명 같은 표징'입니다. 그런데 시므온과 레위는 이 거룩한 성례전을 **'상대방의 전투력을 상실시키기 위한 군사적 전술(살인 무기)'**로 전락시켰습니다.
십자군 전쟁이나 역사 속 수많은 종교 전쟁처럼, 내 복수심과 탐욕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신앙적 명분)을 들먹이는 것은 하나님을 가장 끔찍하게 모독하는 신성모독입니다. 목적이 정당하다(누이의 복수) 할지라도,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악용하는 수단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IV. 피로 물든 세겜, 악취를 풍기는 이스라엘 (34:25-31)
세겜의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고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제3일에,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차고 들어가 성읍의 모든 남자를 학살하고 재산과 부녀자들을 노략합니다.
(창 34:30, 개역개정)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원어 깊이 읽기: 히브이쉬니(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Hiv'ishni, הִבְאִישַׁנִי): 직역하면 **"너희가 나를 이 땅에서 역겨운 악취(Stink)가 나게 만들었다!"**입니다.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세상의 '복의 근원(향기)'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타협과 분노로 점철된 야곱의 가정은 세상 사람들에게조차 손가락질을 받는 '시체 썩는 악취(혐오의 대상)'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세속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지탄의 대상(악취)이 되는 현실을 뼈아프게 찌르는 말씀입니다.
[마지막까지 영적 맹인인 야곱]
이 끔찍한 학살극 앞에서도 야곱의 탄식은 "너희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느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모여 나를 죽이리니 내 집이 멸망하리라." 철저히 '나의 안전과 내 재산'에만 몰두해 있는 이기적인 불신앙입니다.
(31절)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아들들은 아버지의 비겁함을 조롱하며 맞받아칩니다. 하나님이 빠져버린 가정은 이렇게 산산조각이 납니다.
[설교 구성을 위한 제언: "세겜의 장막을 찢고 벧엘로 올라가라!"]
목사님, 오직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의 권위로 이 피 묻은 본문을 강해하실 때 **<영적 타협의 참혹한 결말과 무너진 제단>**이라는 주제로 다음과 같은 흐름을 제안합니다.
서론: 세겜에 멈춘 텐트, 세상 밖을 동경하는 디나 (1-4절)
기도의 응답(화해)을 받은 후 벧엘로 직행하지 않고, 화려한 세겜 도심에 안주해 버린 야곱의 타협을 고발하십시오. 부모의 신앙이 세속에 물들면, 자녀(디나)는 영적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의 사정권 안으로 걸어 들어가 영혼의 순결을 잃게 됩니다.
본론 1: 불의 앞에 침묵하는 비겁한 리더십 (5-7절)
가정이 파괴되는 위기 속에서도 내 기득권과 안전만 계산하며 '잠잠한(방관하는)' 야곱의 직무유기를 찌르십시오. 오늘날 교회의 강단과 가정의 영적 제사장들이 세상의 죄악 앞에서 침묵할 때, 피바람은 피할 수 없습니다.
본론 2: 종교를 무기로 삼은 끔찍한 신성모독 (13-29절)
십자가의 복음, 거룩한 직분(할례)을 나의 야망이나 누군가를 정죄하는 복수의 도구로 악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목적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하나님의 거룩한 표징을 훼손하는 것은 하나님을 가장 분노케 하는 죄악입니다.
결론: 우리는 세상의 향기인가, 악취인가? (30-31절)
세상을 향해 복을 흘려보내야 할 교회가, 시므온과 레위처럼 분노와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 세상에 '역겨운 악취'를 풍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더 이상 세겜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수치와 죄악을 안고, 당장 텐트를 걷어 하나님이 부르시는 처음 사랑의 자리, '벧엘'로 통곡하며 올라갈 것을 불을 토하듯 선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