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이름 없는 목자로 죽는 영광: 주님의 신부 앞에 사라지는 들러리'를 선포합니다.
1. 셀럽(Celebrity) 목회자의 파멸: 무익한 종의 자기 선언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누가복음 17:10)
관주: 고린도전서 3:5-7, 사도행전 14:14-15, 갈라디아서 6:14
누가복음 17장 10절에서 주님이 요구하신 목회자의 정체성은 '무익한 종', 헬라어 원문으로 δοῦλοι ἀχρεῖοί(Douloi achreioi)입니다. ἀχρεῖος(Achreios)는 어떤 대가나 보상, 칭송을 요구할 권리가 없는 자, 그 자체로 내세울 공적이 전혀 없는 비천한 노예를 뜻합니다.
현대 교회의 가장 참담한 질병은 목회자가 강단의 스타이자 셀럽(Celebrity)으로 등극하려는 영적 권력욕입니다. 회중의 환호와 대중적 영향력에 취해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자는 강단에 선 우상숭배자에 불과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7절은 단언합니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여기서 '아무 것도 아니로되'는 헬라어로 οὔτε ... ἐστίν τι(oute ... estin ti)입니다. 심는 자 바울이나 물 주는 자 아볼로는 문자 그대로 '영(Zero)', 아무런 실체가 없는 흙먼지에 불과하다는 선언입니다. 목회 사역의 결산에서 목회자의 이름과 흔적은 지워져야 마땅합니다. 스스로 특별한 존재가 되려는 모든 영적 과시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 한 분만을 남기는 무익한 종으로 서야 합니다.
2. 신랑의 친구: 신부를 그리스도께 넘겨주고 물러서는 들러리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한복음 3:29-30)
관주: 고린도후서 11:2, 에베소서 5:25-27, 계시록 19:7-8
요한복음 3장 29절에서 세례 요한이 자신을 규정한 정체성은 '신랑의 친구', 헬라어로 ὁ φίλος τοῦ νυμφίου(Ho philos tou nymphiou)입니다. 고대 유대 혼인 관습에서 신랑의 친구(들러리)는 신부를 정결하게 보호하여 예식장으로 인도하고, 신랑의 손에 신부를 넘겨주는 중개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혼인 잔치의 주인공은 결코 들러리가 아닙니다. 만약 들러리가 신부의 마음을 훔치려 하거나 자신이 신랑 행세를 하려 든다면, 그는 간음자요 배신자입니다. 교회의 유일한 신랑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사도 바울 역시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서 외칩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목회자의 전 생애는 성도들을 자신의 추종자나 개인적 영향력 아래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흠 없는 신부로 빚어 참된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품에 안겨드리는 '거룩한 중매'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신부의 손이 그리스도의 손에 닿는 순간, 들러리는 뒤편의 어둠 속으로 완전히 퇴장해야 합니다."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Ἐκεῖνον δεῖ αὐξάνειν, ἐμὲ δὲ ἐλαττοῦσθαι)." 사역자가 사라지고 그리스도만 오롯이 드러나는 것, 이것이 목회자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순결하고 완전한 기쁨입니다.
3. 피로 사신 양 떼의 청지기: 주장하는 자세를 깨뜨리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베드로전서 5:2-3)
관주: 사도행전 20:28, 에스겔 34:2-4, 마가복음 10:42-45
베드로전서 5장 3절에서 '주장하는 자세'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κατακυριεύοντες(katakyrieuontes)입니다. 이는 '위에서 내리누르며 폭력적으로 지배하다', '자신의 소유물처럼 군림하다'라는 뜻입니다.
양 떼는 목회자의 사유 재산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이 명시하듯,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τὴν ἐκκλησίαν τοῦ θεοῦ, ἣν περιεποιήσατο διὰ τοῦ αἵματος τοῦ ἰδίου)"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목회자의 야망을 채워주는 벽돌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독생자의 생명을 대가로 치르고 사 오신 영광스러운 보혈의 결정체입니다.
성도를 수단화하여 교회의 외형을 키우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양 떼를 약탈하는 삯꾼의 만행입니다. 참된 목자는 양 떼 위에 올라타 지배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발밑으로 내려가 십자가의 흔적을 삶으로 새겨내는 거룩한 본(τύποι, Typoi)이 되어야 합니다.
4.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썩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베드로전서 5:4)
관주: 디모데후서 4:7-8, 요한계시록 2:10, 고린도전서 9:25
베드로전서 5장 4절의 '목자장'은 헬라어로 ἀρχιποίμην(Archipoimen)입니다. 교회의 궁극적인 최고 목자는 오직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지상의 목회자는 그분의 대리 목자, 잠시 위임받은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이 던져주는 박수갈채와 명예의 면류관은 풀의 꽃과 같이 순식간에 시들어 썩어 없어질 오물입니다. 세상적 성공에 목을 매는 자는 결국 사람의 인정이라는 썩을 면류관을 좇다가 영원한 심판대 앞에서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거친 개척의 현장에서, 한 영혼의 이름을 부르며 무릎을 꿇고 눈물로 흙먼지를 마시며 양 떼를 지켜낸 '이름 없는 목자'들을 향해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ἀμαράντινον τῆς δόξης στέφανον)을 얻으리라!"
ἀμαράντινος(Amarantinos)는 영원히 시들지 않고 부패하지 않는 천국의 생명을 뜻합니다. 29년간 메릴랜드 벨에어의 양 떼와 함께 뒹굴며 제가 깨달은 목회의 최종 종착지는 화려한 기념비가 아니었습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오직 은혜의 흔적만을 안고 무익한 종으로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이제 모든 기만을 멈추고 거룩한 무명의 자리로 내려앉으십시오.
대중의 박수와 숫자의 마력에 묶여 있던 헛된 야망의 족쇄를 십자가의 보혈로 끊어내십시오. 주님의 교회를 내 손아귀에 쥐려 했던 모든 교만한 지배욕을 내려놓고,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교회를 온전히 인도한 뒤 기쁨으로 소멸하는 거룩한 들러리가 되십시오.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다시 오실 목자장 예수 그리스도의 불꽃 같은 눈동자만을 바라보십시오. 비록 이 땅에서는 이름도 빛도 없는 골고다의 순례자로 마쳐질지라도, 마지막 날 주님께서 여러분의 눈물을 친히 닦아주시며 썩지 아니할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이 거룩한 소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