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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씨버선길 3코스
김주영객주길
외씨버선길 3구간 김주영객주길은 보부상을 통해 이 땅 민초들의 억척같은 삶을 조명한
소설 '객주'의 주무대인 청송의 파천면과 진보면 일대를 지나간다
김주영객주길 탐방을 앞두고 소설 '객주'를 읽어 보고 걷는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
부랴부랴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왔으나 짧은 시간에 방대한 양의 대하소설(10권)을 읽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결국 소설의 일부만 읽고 탐방길에 나섰지만 무작정 걷는것 보다는 소설 속 보부상의 일원이 된 느낌으로 걷는 재미가 나름 쏠쏠하였다
오늘은 보부상 천봉삼이 되어 객주길을 사뿐사뿐 걸어 보자
여행코스 : 신기리 느티나무→감곡저수지→수정사→마묻골저수지→너븐삼거리→동천지→각산저수지→월전리→고현지
신기리느티나무 - 2.2km - 감곡저수지 - 3.6km - 수정사
오전 9시 50분쯤
파천면 신기1리(새터마을) 입구에 도착
# 신기리느티나무(천연기념물 192호)
지난 구간의 종점이자 오늘 걸어야 할 구간의 시작점인 느티나무 앞에서 단체 기념사진 찍고 10시쯤 출발
느티나무에서 지난 구간에 지나왔던 방향으로 2,3십여 미터 백하여 삼거리에서 좌측길로 접어든다
(우측길은 지난번 걸었던 2코스 구간)
신기1리 마을길
# 감곡교
마을길을 조금 걷다 마주하는 천변로를 지나 새터마을과 감곡마을을 이어주는 감곡교를 건넌다
신기천(新基川)
겨울이라서 그런지 하천이 메말라 바닥을 다 드러내 놓고 있다
신기천은 파천면 옹점리중대산 자락에서 발원하여 파천면 신기리에서 용전천으로 유입되는 지방 하천이다
신기1리(새터마을)와 신기2리(감곡마을)는 신기천을 사이에 두고 나누어진다
전통마을 숲
감곡교를 건너니 고령의 느티나무와 소나무 등 다양한 수종의 나무로 들어찬 분위기 있는 숲이 하천변을 따라 자리잡고 있다
이 숲은 오래 전에 이 마을의 선조들이 마을의 재앙을 막기 위하여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지난 구간에 지나왔던 파천면 덕천리 마을에도 선조들이 마을 입구에 마을의 액운을 막기 위해 쌓아 만들었다는 '조산무더기'라고 하는 숲?이 있었는데...
과거에는 마을 입구를 가리고(裨補林), 외부의 불길한 경관적 요소를 차단하여 강한 기운을 완화(厭勝林)시키려고 이러한 숲들을 조성하였던 것 같다
숲에서 잘 보이는 곳에 '기곡재사'로 가는 안내 표지판이 서 있는데 '기곡재사'가 뭐 하는 곳일까?
기곡재사(崎谷薺舍) - 퍼온 사진
기곡재사(崎谷薺舍)는 진성이씨(眞城李氏) 시조이며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6대 조인 이석(李碩)의 묘소를 돌보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운 건물이라고 한다
숲을 가로지르는 진입로를 따라 마을로 향한다
지금은 겨울이라 삭막하게 보이지만 여름이면 마을 사람들에게는 시원한 휴식처가 될 수 있겠다
숲의 끝자락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약 250여 년 된 소나무가 기품있게 서 있다
마을 앞 전통마을 숲을 벗어나면 전방에 작은 마을이 보인다
감곡마을은 마을 앞 숲에서 2백 여 미터의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 정겨운 돌담집
# 신기2리 마을회관 지점(구간 누적거리 0.8km)
감곡마을은 참닥나무 산지로 신라시대부터 제지마을이었다고 하며,
1920년대까지 20여 호에서 한지를 생산하여 '한지마을'로 알려져 있었으나
전통 한지의 수요가 감소하여 모든 제지 공장이 문을 닫아 현재는 한 곳도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버선길은 감곡마을을 벗어나 산기슭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멋진 길...
어느 분은 이 길을 걸으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기분이라고 했다
전방의 비봉산 능선 봉우리는 구름으로 덮혀있고...
한적하고 멋진 길을 걸으며 모처럼만의 여유를 즐겨 보자
내일이 입춘(立春)이니 얼마 안 있으면 푸른색으로 변해가는 들녁을 보면서 걸을 수 있겠다
버선길은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건너 계속 이어지고...
(포장도로를 건너 뒤돌아 본 풍경)
저수지 제방 앞에서 버선길은 우측 산길로 안내한다
완만한 경사의 산길은 푹신푹신 기분 좋은 소나무 숲길
기분 좋은 숲길을 따라 잠시 올라섰다 다시 조금 내려서면 감곡저수지가 나온다
감곡저수지(구간 누적거리 : 2.2km)
(저수지 제방 위에서 본 지나온 길)
감곡저수지는 1985년 1월에 착공하여 1986년 1월에 준공된 관개용 저수지다
감곡저수지는 V字形으로 산 속에 있는 저수지로서는 규모가 제법 크다
날씨는 흐리고 가랑비가 오락가락 하지만,
산봉우리를 덮고 있는 운무가 멋진 풍경을 보여주며 우리의 서운한 마음을 달래준다
주산지처럼 왕버들 군락지가 있는 감곡저수지는 '리틀 주산지'로 불리기도 한다
제방을 건너니 표지목이 이제 우측으로 가라한다
저수지를 끼고 도는 멋진 버선길
외씨버선길은 5월~10월에 걷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겨울에 걷는 것도 나름 분위기가 있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걸었던 그 때 그 날이 최고의 날이다'
저수지 물이 황톳빛을 띠고 있다
이 지역은 유난히 붉은 마사토로 뒤덮혀 있어 감곡저수지도 항상 흙탕물 같은 누런빛을 띠고 있다고 한다
감곡저수지 왕버들 군락지
주왕산 주산지에 심어진 버드나무와 같은 수종인 왕버들 나무 수십 그루가 심어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
왕버들은 키가 10~20m로 자라며 수백 년을 살 수 있다.
왕버들이란 '뭇 버들의 왕' 이란 뜻으로 자라는 곳은 습기가 많고 축축한 땅이나 대체로 바로 옆에 물이 있는 개울가에 터을 잡는다
청송 주산지의 왕버들이 물 속에 사는 대표적 왕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경종 2년(1721)에 저수지가 완공될 때 자라고 있던 왕버들이 물속에 갇히게 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왕버들이 물을 좋아하지만, 1년 내 물속에 있다 보면 뿌리를 통한 호흡을 할 수 없어서 살아남지 못한다
주산지의 왕버들은 가뭄이 계속되면 뿌리까지 드러나는 이 기간에 잠시 뿌리 호흡을 하면서 버틴다고 한다
감곡저수지의 왕버들 군락은 아직 수령이 오래되지 않아 그런지 그닥 볼거리가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여름에는 안그럴라나?
왕버들 군락지를 벗어나면 본격적인 산길로 들어선다
분재처럼 땅바닥에 달라 붙은 작은 소나무에 솔방울들이 앙증스럽게 달려 있다
산길을 조금 올라오니 임도와 마주하게 되고
임도를 따라 짧막한 언덕을 올라서니 확트인 개활지가 나타나고 전방에 멋진 비봉산 능선이 펼쳐진다
개활지에서 좌측으로 본 풍경
개활지를 약간 돌아서니 나무 밑에 아담한 정자가 서 있는데...
여름철이라면 여기서 시원한 막걸리나 한 사발 마시고 쉬었다 갔으면 좋겠다
거~참! 볼 수록 맘에 드는 정자일쎄~^^
정자에서 내려서는 길에는 전나무? 묘목을 심어 놓고 토사가 유실되지 않도록 코코넛망을 덮어 놓았다
최근에 화재가 있었나?
전나무 묘목이 심어진 구간을 지나자 다시 탁트인 개활지가 나오고 좌측 아래로 송강2리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이 모습을 보고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는 봉황을 연상하여 비봉산(飛鳳山)이라 명명하였을까?
송강2리 마을
수정사 절 아래에 있는 동네여서 수정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개활지를 돌아서 내려오면 포장된 마을길을 만나고...외씨버선길은 우측으로 올라선다
포장된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내려와 물 없는 계곡을 최근에 놓인 듯한 징검다리를 밟고 지나간다
이 계곡 위에 세워진 사찰 이름을 '계곡의 돌과 물이 수정처럼 빛난다' 하여 '수정사'라 명명하였다고 하는데 오늘은 '수정'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은 듯하다.^^
수정사 일주문(안쪽)
계곡을 건너 올라서니 넓은 소나무 숲이 보이고 좌측으로 수정사 일주문이 보인다
수정사는 일주문에서 오른쪽으로 100여 미터만 올라가면 볼 수 있어 들렀다 가기로 한다
수정사로 들어가는 길은 멋진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소나무 숲이 끝나갈 무렵 불후의 명곡 '황성옛터' 작사가인 왕평 이응호의 묘소로 가는 안내 표지판이 서 있다
왕평 이응호 선생은 1908년 3월 15일 경북 영천 성내동에서 출생했다.
아들 6형제 중 둘째로 태어나 5세 때 모친을 잃고 부친으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글재주가 뛰어났다
1924년1세에 서울로 올라가 배재중학과 조선배우학교를 다녔다. 식민지 대중문화운동에 돈독한 뜻을 두고 극단 <조선연극사> 소속으로 활동하며 전국을 순회 공연하였다
왕평은 식민지 대중문화계에서 중심인물로 떠오르게 되었으며, 주된 활동범위는 가요시 작사, 연극대본 집필, 만담대본 창작과 출연, 영화설명 및 배우로서의 출연 등이다
왕평이 세상에 남긴 작품 195편 중 가요시 장르가 159편으로 가장 많은데 그가 작사한 대표적인 노래로는 <황성옛터>, <조선팔경> 등이 있다
왕평 이응호 선생의 묘 - (퍼온 사진)
왕평 이응호 선생은 1940년 평안도 강계에서 악극단 공연 중 무대 위에서 연기 중에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이후 부친이 살고 있던 경북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 수정사 입구인 이곳 산기슭에 안장되었다
'황성옛터'의 모티브가 된 개성 만월대의 모습 - (퍼온 사진)
황성옛터
본명이 이응호인 청송사람 왕평이 작사하고 전수린이 1928년 작곡한 노래로 폐허가 된 고려의 옛 궁터 만월대를 찾아 받은 쓸쓸한 감회를 그린 노래이다
이 노래는 가수 이애리수가 불러 크게 히트, 삽시간에 전국에 퍼져 갔으며
그로 해서 조선총독부는 이의 유행을 방지하기 위해 노래를 금지시켰으나 계속 불렀으며 이후 고복수, 남인수 등이 부르기도 하였다
수정사
일주문에서 소나무 숲을 지나 100여 미터를 올라가니 단아한 모습의 수정사가 자리잡고 있다
수정사는 고려 공민왕 때 나옹대사가 창건하여 조선시대에 중건한 천년고찰로
계곡의 돌과 물이 수정처럼 빛난다하여 수정사로 명명하였다 한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가 있다
수정사 대웅전
대웅전은 조선시대 양식으로 단아하며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맞배 기와지붕 건물이다
수정사 대웅전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3호로 지정되어 있다
수정사 원래의 절터는 현재의 위치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본래의 사찰은 300여 년 전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 수정사라고 불리는 사찰은 원 절의 산내 암자였다고 한다
산신각
대웅전의 뒷면 오른쪽에는 앞면 1칸, 옆면 1칸으로 된 산신각이 있는데 현판에는 산영각(山靈閣)으로 쓰여 있다
요사채
대웅전의 3단 석축 아래 좌우에는 요사채가 있다
풍경(風磬)
법당의 처마 부분에 달려 있는 풍경은 바람에 흔들리는 맑은 풍경 소리에 수행하는 스님에게는 게으름을 경계하고
중생에게는 소리를 내어 깨우침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남각산수정사 일주문
수정사 입구의 매화나무. 오른쪽은 백매화, 왼쪽은 홍매화라고 한다
3월이 되어 매화꽃이 화사하게 피어있을 이 길을 상상하며 다음 길을 재촉한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욕심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 하네
- 나옹 선사 -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역시 👍입니다.
외씨버선길 졸업구간까지
이대로 쭉~~~욱
멋진사진 부탁드려요~^^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