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TV나 유튜브에서만 보던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아,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나의 머리는 방금 일어난 일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한 듯 보였다. 나의 손에는 방금 전까지 아늑하게 들려있던 햄버거의 푹신하고 말캉한 감각이 여전히 남아있는 듯 했다.
그것은 내가 오늘 생을 마감하기로 결정한 후 선택한 최후의 만찬이었다. 그것은 편의점 폐기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는 나에게 상당히 호사스러운 햄버거였는데, 몇 년 전 강남에 처음 입점한다고 뉴스까지 나온 햄버거이니 소위 말하는 인싸감성 햄버거였던 것이다. 그 햄버거는 화려한 겉모습 속에 추악한 본성을 숨기고 나를 괴롭히던 고등학교때 인싸놈들처럼 아기자기한 포장지 뒤에 사악한 가격을 감추고 있었다. 아마 내일을 더 살기로 결정한 나였다면 절대로 사 먹지 못할 햄버거였다. 그런데 그 소중한 햄버거를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갈매기에게 빼앗기다니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다.
내 인생은 마지막까지도 이 모양 이 꼴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진학, 취업, 연애 등등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단 한번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 본 적이 없었고, 내가 주체적으로 뭔가를 결정하거나 선택해 본적도 없었기에 내 인생은 줄곧 패배주의에 찌들어 있었다. 덕분에 원래도 소심했던 성격은 더 소심해지고 음침해져만 갔다. 그렇다고 딱히 세상을 원망하지는 않았던게, 솔직히 말해 크게 하고 싶었던 거라던지, 간절히 원하던 것들도 없었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땀 흘려 열심히 노력해 본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삶은 언제나 고요하게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파도처럼 큰 물살에 흐름을 맡기고 따라가는 식이었다. 아마 그래서 내가 나의 마지막을 이 해변가에서 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평소 같았으면 '내가 그렇지 뭐'하고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쪽팔림을 최대한 감추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종종 걸음으로 퇴장할 나였지만, 오늘만큼은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세상이 미웠다. 마지막까지 단 한번을 안 도와주는 세상이 정말로 싫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분노가 마음속에 떠오르자 뜨거운 피가 내 온몸에 차오르며 머리가 핑 돌고 얼굴이 시뻘개지는 것이 느껴졌다. 떨리는 손으로 주먹을 꽉 쥐고 미친 사람처럼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살면서 처음으로 이렇게 큰 소리를 내보는 것 같아 속으로도 놀라던 참이었다. 지금까지의 나는 언제나 참기만 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화가 나서 죽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부서지듯 쏟아지는 햇볕은 넘실거리는 바닷물 위로 쏟아지며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불꽃놀이가 타오르듯 반짝거리며 여유로운 오후의 한때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걸 윤슬이라고 부른다며 여자친구에게 설명해주는 남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내 발을 쑥쑥 빨아들이는 모래사장 위를 신발이 벗겨진 것도 모른 채, 입고 있던 모자와 외투도 벗어 던지고 내 햄버거를 낚아 챈 갈매기의 뒷 꽁무니만 쳐다보며 따라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린 땀방울이 내 콧잔등을 타고 고통스럽게 벌어진 입 사이로 들어가 짭쪼름한 감각을 선사했다. 나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개처럼 헐떡였다. 아무리 쫓아가도 놈과의 거리는 좁힐 수 없었고, 그 망할 갈매기가 해변 건너편의 얕은 바닷가에 우뚝 솟아 있는 높다란 바위산 위로 날아가는 것을 평소처럼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원래라면 포기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분노로 눈이 뒤집어진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 갈매기를 찾아내야만 할 것 같았다. 설령 놈을 잡을 수 없다면 그 놈의 둥지를 찾아내서 알이라도 박살을 내야만 편히 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