첵은 세상을 보는 나만의 눈
김규진
11년간 운영해 온 독서모임 북 파워(Book Power) 단톡 방 나가기를 눌렀다. 1시간 동안 나가기 센서만 쳐다보다가 목맨 인사말을 끝으로 달퇴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오랜 기간 동고동락한 독서모임에서 강퇴 아닌 강퇴 당한 느낌이었고, 그 동안 행복의 빈도가 힘 없는 강도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규진아 너 퇴직 했고, 꼰대는 사라져야 하잖니, 젊은 피를 수혈한 북 파워, 더 잘 될꺼야'
직장 독서 동호회를 만 든건 2012년 1월이다. 이전 동호회 목록에는 축구, 테니스 등 동적인 모임이 주류였고, 정적인 독서모임은 없었다. 독서 모임을 만들고는 싶은데 용기도 부족하고 방법도 몰랐다. 그래서 일단 둘레길 동호회를 가입해서 운영 정관도 알아보고, 운영과 회장의 역할 등을 삼 개월간 몸으로 체험했다.
운영정관과 모집공고(안)을 만들어 놓고도 삼 개월이 지나도록 망설였다. "과연 신청자가 있을까, 얼마나 책을 읽는다고 책 모임을, 술만 먹었지 책도 읽었나, 꼴 값을 떨어요" 등 무시하고, 외면하고, 멸시하는 시선이 두려워 앞으로 나가질 못했다. 그러던 중 몇몇 절친한 후배들과 의기투합, 아니 참여 강권을 약속하고 동호회 모집공고를 내부 게시판에 올려버렸다.
무려 27명이 참여의사를 밝혀왔다. 뜻박이었고 너무 기뻣다. 드디어 동호회 첫 만남을 가졌는데, 선.후배 모든 분들이 잘 만들었다고 칭찬했다. 독서 동호회를 은근 기다렸다고도 했다. 평소 책을 좋아하고,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가입했다고 했다. 또한 강제적인 독서 습관을 키우고, 자녀에게 독서하는 부모가 되고싶다라는 다양한 가입 배경을 피력했다. 그간 걱정하고 우려했던건 나만의 기우였다.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매월 한 권의 책을 선정해서 토론하고 리뷰도 작성 했다. 토론 할 때는 20대부터 50대 남녀노소 직원들의 생각이 모두 달랐다. 남녀 감정의 높낮이가 분명했고, 세대간 받아들이는 온도와 분위기가 달랐다. 호불호가 분명이 갈리는 책도 있었고, 두껍고 어려워 다 읽지 못하는 회원도 있었다. 타자의 가치관을 이해하게 되고, 나만의 옹고집을 허무는 책의 선물을 조금씩 받아들였다.
작가와 만남의 시간도 있었다. 2013신춘문예당선작가 조수경, '폴링 인 폴' 소설 백수린 작가, '그들에게 린디 합을' 쓴 손보미 작가, 이병철 작가, 김학중 시인, 이재준 시인과 만났다. '지구 만큼 슬펐다고 한다.'를 쓴 신철규 시인과는 작은 북 콘서트도 열었다. 콘서트 중에 회원들이 기증한 책과 시인의 책 수익금은 적지만 불우이웃 성금으로 기탁 했다. 거마비 등의 문제로 무명 시인과 소설가를 모셨지만 회원들의 인문학 성찰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인문학 여행도 기억에 남는다. 윤동주 시인 기념관을 찾아 토론하고, 종로투어와 치맥 안주를 책으로 삼았다. 정약용 생가를 찾아 500여권의 저서를 남긴 과정을 알게 되고, 18년간 귀향기간이 오히려 주옥 같은 명저를 후손들이 읽게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국립미술관에서는 그림을 멀고 가깝게 보는 방법을 듣게 되고, 파주 헤이리 책방 여행은 회원간 부부 인연이 맺어진 아름다운 탐방이었다.
독후감 경진대회도 주관했다. 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작품에 대한 경진대회 결과 북 파워 회원이 한 명도 없었다. 문인협회가 심사했는데 장려상 조차 없다는데 무척 놀라웠다. 읽는 것과 잘 쓰는 스킬은 또 다른 영역임을 회원들 모두 뼈저리게 느꼈다.
11년간 132권을 읽고 토론했다. 코로나19 기간에는 줌 영상 모임으로 권태기를 방지했다. 34년 직장생활중 독서모임을 만들고 운영한 것이 내가 제일 잘 한 일이다. 한 권을 더 읽고자 하는 의무감과 선정된 책을 깊이 읽고자 하는 몰입감이 커졌다. 책과 함께 토론하며 조금씩 세상을 보는 나만의 눈을 가지게 되면서 책 사랑 꾼으로 변모해 갔다. 이젠 다음에 읽어야 할 여분의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이 모든 것이 책이 주는 선물이었다. 북 파워(Book Power) 사랑합니다.
첫댓글 책과 사람과 세상을 향한 소통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모아 독서모임을 만들고 책읽은 소감을 나누며 사람과 세상과 소통한 시간이 참 길었고, 많은 책을 읽고 쌓였을 김규진님의 삶도 존경스럽습니다. 설명이 잘 되게 쓰셔서 잘 읽혔습니다. 책에 얽힌 이야기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여러 독서모임에 참여중인데, 11년간 독서모임을 하셨다니... 대단하시네요! '행복의 빈도가 힘 없는 강도로 추락하는 기분이라니' 라는 표현은 너무 공감이 됩니다. 좀 더 구체적인 독서모임의 대화가 적혀 있었으면 더 살아있는 글이 되었을 것 같아요. 다이런 책은 이렇게 받아들일 수가 있구나 하고 저희도 같이 참여하는 기분이 들것 같아요. 여행도 다니시고, 작가 초정까지!! 이 독서모임 참.. 부럽네요 ㅎㅎ
11년이라니 어마무시한 시간이네요. 분명히 좋은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바통을 넘길때 복잡한 감정과 회상하면서 느낀 감정이 더 많이 섞여있었으면 더 좋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