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사의 성은 강(姜)이요 이름은 일순(一淳)이요. 자는 사옥(士玉)이요. 호(號) 증산(甑山)이시니 단군기원 사천이백사년 이조 고종 팔년 신미 구월 십구일(서력 일천팔백칠십일년 십일일일)에 조선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지금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신기)에서 탄생하시니라.
부친이 이름은 흥주요 모친은 권씨요 집은 고부군 우덕면 손바래기라 권씨가 그 부근 답내면 서산리 친정에 근친하려고 가 있을 때에 하루는 하늘이 남북으로 갈라지며 큰 불덩이가 내려와서 몸을 덮음에 천하가 광명하여지는 꿈을 꾸고 이로부터 잉태하여 열 석달만에 천사를 낳으시니라.
낳으실 무렵에 부친이 비몽사몽간에 두선녀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산모를 간호하더니 이로부터 이상한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하고 밝은 기운이 집을 둘러 하늘에 뻗쳐서 이레동안 계속하니라.
점차 자라심에 얼굴이 원만하시고 솔성이 관후하시며 총명과 혜식이 출중하시므로 모든 사람에게 경애를 받으시니라.
어려서부터 호생의 덕이 많으사 나무 심으시기를 즐기시며 자라나는 초목을 꺽지 아니하시고 미세한 곤충이라도 해하지 아니하시며 혹 위기에 빠진 생물을 보시면 힘써 구하시니라.
일곱 살 되시던 정축년에 농악을 보시고 문득 혜각(慧覺)이 열리셨으므로 장성하신 뒤에도 다른 굿은 구경치 아니하시되 농악은 흔히 구경하시니라.
이 해에 부친이 훈장을 구하여 천사께 천자문으로 글을 가르칠 새 하늘천자와 따지자를 가르칠 때에는 따라 읽으시나 검을현자와 누루황자를 가르칠 때에는 따라 읽지 아니하시거늘 훈장이 만단개유(萬端改諭)하되 종시 읽지 아니하심으로 할 일 없이 그친지라 부친이 천사를 안방으로 불러들여 연고를 물으니 가라사대 하늘천자에 하늘 이치를 알았고 따지자에 땅 이치를 알았사오니 더 배울 것이 어디 있사오리까 남의 심리를 알지 못한 훈장이 남 가르치는 책임을 감당치 못하리니 돌려보내사이다 하시거늘 부득이하여 그 훈장을 보내니라.
아홉 살 되시던 기묘년에 부친께 청하여 후원에 별당을 짓고 홀로 거쳐하사 외인의 출입을 금하시고 간일하여 암꿩 한 마리와 비단 두자 다섯치씩 구하여 들이시더니 두 달 후에 문득 어디로 나가셨는데 방안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더라.
그 뒤에 집으로 돌아오사 자의로 외접(外椄)에 다니면서 글을 배우시니라.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실 때 한번 들은 것은 곧 깨달으시고 동무들과 더불어 글을 배우심에 항상 장원을 하시니라.
하루는 훈장이 여러 학부형에게 미움을 받을까하여 문장이 다음 되는 다른 아이에게 장원을 주려고 뜻을 정하고 글을 꼲었더니 또 천사께로 장원이 돌아가니 이는 훈장의 뜻을 미리 알으시고 문체와 글씨를 변하여 분별치 못하게 하신 까닭이라 모든 일에 이렇게 혜명(慧明)하시므로 보는 자가 다 이상히 여기니라.
부친이 정읍 읍내 박부호에게 수백냥 빚이 있어서 독촉이 심하므로 걱정으로 지내거늘 천사 부친께 청하여 돈 오십냥을 준비하여 가지고 박부호에게 가서 돈을 주시고 그 집 사숙에 가서 학동들과 싸여서 노실 새 훈장이 운자를 불러 학동들로 하여금 시를 짓게 하니 천사 함께 글짓기를 청하사 낙운성시(落韻成詩)하심에 시격이 절묘하거늘 훈장과 학동들이 크게 이상히 알며 박부호도 심히 기이히 여겨 집에 머물러 그 자질들과 함께 글읽기를 청하는지라 천사 부득이하여 며칠동안 머무르시다가 부친의 빚을 걱정하시니 박부호가 모든일에 크게 기특히 보고 심히 사랑하여 드디어 채권을 포기하고 증서를 불사르니라.
하루는 부친이 벼를 말리는데 새와 닭의 무리를 심히 쫓으시니 천사 만류하여 가라사대 새 짐승이 한 알씩 쪼아 먹는 것을 그렇게 못보시니 사람을 먹일 수 있나이까 하시되 부친이 듣지 않고 굳이 쫓더니 뜻밖에 백일에 뇌우가 대작하여 말리던 벼가 다 표류하여 한 알도 건지지 못하였더라.
열세살 되시던 계미년에 모친이 친히 짠 모시베 예순자를 마을 사람 유덕안에게 들리사 정읍장에 팔러 가셨는데 덕안은 다른일이 있어서 다른 곳에 가고 천사께서는 모시베를 포목전 곁에 놓고 앉으셨더니 문득 헛눈을 파는 사이에 모시베를 잃어버렸더라. 덕안이 이 말을 듣고 빨리 돌아화서 찾으려하나 날은 저물고 많은 사람 중에 찾을 길이 없으므로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시기를 청하니 천사 듣지 아니하시고 즉시 고창으로 가시며 가라사대 내일 들어가리라 하시거늘 덕안은 어찌하는 수 없이 혼자 돌아가니라.
이튿날 천사께서 모시베 값을 가지고 돌아와서 모친께 올리시니 온 집안이 이상히 여겨 사실을 물으매 가라사대 모친이 무한한 근고를 들여서 짜신 물건을 잃었음에 얼마나 애석히 생각하실까 하여 오늘이 고창장이므로 반드시 장에 나올 듯 싶어서 바로 고창으로 갔더니 다행히 찾아서 팔아왔나이다 하시니라.
열일곱 살 되시던 정해년 어느날 외가에 가시더니 어떤 술주정꾼이 무고히 패욕을 가하거늘 천사 아무 대항도 하지 아니하시더니 문득 어디서 큰 돌절구통이 떠내려 와서 주정꾼의 머리 위로 덮어 씌우니 주정꾼이 절구통 속에 갇혀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라 천사 몸을 빼쳐 다른 곳으로 가시니라.
스물 네 살 되던 갑오년에 태인 동골사람 전봉준이 당시의 악정에 분개하여 보국안민의 표호로 동학 신도를 모아 고부에서 혁명을 일으키니 온 세상이 들끊는지라. 천사 그 전도가 이롭지 못할 줄 알으시고 「월흑안비고 선우야둔도 욕장경기축 대설만궁도(月黑雁飛高 墠于夜遁逃 欲將輕騎逐 大雪滿弓刀」란 옛글을 여러사람에게 외워주사 겨울에 이르러 패멸될 것을 예언하시며 망동치 말라고 효유(曉諭)하시니라.
이해 시월에 동골에 가사 동학접주 안윤거를 방문하시니 마침 태인 닥뱀이 안필성이 한 마을에 사는 동학신도 최두연과 함께 와서 윤거에게 도담을 듣고 있더라. 천사 마루에 걸터 앉으사 윤거와 더불어 성명을 통하신 뒤에 일러 가라사대 고부에서 난리가 일어나서 동학군이 황토마루에서 승리를 얻었으나 필경 패망을 면치 못하겠으므로 동학군의 발원지인 이곳에 효유하러 왔노라.
그대가 접주라하니 삼가 전란에 참가하기를 회피하여 무고한 생민을 전화에 몰아들이지 말라. 섣달이 되면 그들이 전패하리라 하시고 돌아가시는지라 . 윤거 이 말씀을 듣고 드디어 접주를 사면하고 전란에 참가치 아니하니 최두연은 믿지 않고 윤거의 대(代)로 접주 겸 명사장이 되어 윤거의 부하를 인솔하고 출전하더라.
필성은 두연에게서 도를 받은 뒤에 남원으로 와서 종군하라는 군령을 받고 스무날 닥뱀이를 떠나 남원으로 향할때 전주 구이면 정자리에 이르니 천사 길가에서 계시다가 필성이 이르름을 보시고 일러
가라사대 그대가 올 줄을 알고 이곳에서 기다렸노니 함께 가자 하시고 필성으로 더불어 두어 마장을 행하여 임실 마군단 주막에 이르러 가라사대 날이 차니 이곳에서 쉬어 기다리라.
남원에 가서 만날 사람을 이곳에서 만나게 되리라. 필성이 가로대 여비가 없으니 만날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곤란하겠나이다.
가라사대 밥 굶을 걱정은 하지말라 하시더니 두어시간이 지난 뒤에 문득 방포성이 나며 과연 두연이 수천 군마를 거느리고 지나가며 필성에게 남원으로 가지말고 전주로 따라오라 하는지라.
천사 필성에게 일러 가라사대 군마의 뒤를 가까이 따라감이 불가하니 천천히 가자 하시고 전주 수통목에 이르러 가라사대 오늘은 전주에서 소란하여 살상이 있으리니 이곳에서 자고 내일 가자 하시고 필성과 더불어 수통목에서 쉬시니라.
이튿날 필성을 데리고 전주에 이르사 조용한 곳에 주인을 정하시고 저녁에 필성에게 일러 가라사대 거리에 나가면 볼것이 있으리라 하시며 함께 나가사 한 곳에 이르르니 세 사람의 머리가 길 바닥에 구르는지라 가라사대 저것을 보라 이렇게 위험한 때에 어찌 경솔하게 몸을 움직이리오 하시더라. 필성은 이곳에서 천사와 작별하니라.
그믐께 동학대군이 전주를 떠나서 경성으로 향할 때 필성이 종군하여 여산에 이르니 천사 길 가에 서 계시다가 필성을 불러 물어 가라사대 이제 종군하느냐 대하여 가로대 그러 하나이다. 가라사대 이 길이 크게 불리하리니 조심하라 하시더라
필성은 천사를 작별하고 종군하여 진잠읍을 지나 유성 장터에서 쉬고 다시 하루를 행군하여 다음날 새벽에 청주 병영을 진공할 새 삼십리 가량 미치지 못하였는데 천사 또 길가에 서 계시다가 필성을 불러 물어 가라사대 너의 군중에 한 중이 있더냐 대하여 가로대 있나이다.
가라사대 너는 이 길을 따르지 말라 저희들이 요승의 말을 듣고 멸망을 당하리라 필성이 가로대 이런 중대한 일에 어찌 불길한 말씀을 하시나이까 가라사대 나의 말을 믿지 아니 하느도다 내가 어찌 저희들을 미워함이리오. 저희들의 불리한 장래를 알므로 한 사람이라도 화를 면케 하려 함이로다 가로대 그러면 선생은 어찌 이곳까지 오셨나이까 가로사대 나는 동학에 종군하여 온 것이 아니요 구경하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때에 김형렬이 필성의 곁에 있다가 천사 필성과 수작하시는 말씀을 듣고 인사를 청하거늘 천사 형렬에게도 종군하지 말라고 권하시는지라 필성과 형렬은 천사의 말씀을 믿지 않고 종군하여 가다가 청주 병영 앞 산골에 이르니 좌우에서 복병이 일어나서 포화를 퍼부음에 동학군에 죽는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지라.
필성과 형렬은 황겁하여 몸을 빼어 송림 속으로 들어가니 천사 이곳에 계시다가 불러 가라사대 너희들은 잘 도망하여 왔도다. 이곳은 안전하니 안심하라 하시니 형렬은 비로소 천사의 지감이 비상하심에 감복하니라. 두 사람은 종일 먹지 못하여 주림을 이기지 못하거늘 천사 돈을 내어주시며 가라사대 저곳에 가면 떡집이 있으리니 주인이 없을지라도 떡값을 수효대로 떡 그릇 안에 두고 떡을 가져오라 필성 명하신대로 하여 떡을 가져오니 천사 두 사람에게 나누어 먹이시니라.
천사 두 사람에게 일러 가라사대 동학군이 미구에 쫓겨 오리니 우리가 먼저 감이 옳으니라 하시고 두 사람을 데리고 돌아오실 때 진잠에 이르러 문득 가라사대 동학군이 이곳에서 또 많이 죽으리라. 두 사람이 이 말씀을 듣고 심히 불쾌히 생각 하거늘 가라사대 저희들을 미워함이 아니요 사태의 진전될 기미를 말함이니 아무리 듣기 싫을지라도 불쾌히 생각하지 말라 하시니라 .
산중 유벽한 곳에 쉬시더니 얼마 아니하여 총소리가 어지러이 일어나며 그 곳에서 격전 끝에 동학군이 많이 사상하니라.
이곳을 떠나 산 길을 행하시더니 문득 목탁소리가 들리거늘 찾아가니 곧 계룡산 갑사더라.
가라사대 해는 아직 이르나 더 가다가는 해를 입으리니 이곳에서 자고 가자하시고 쉬시더니 얼마 아니하여 한 중이 이르러 말하대 동학군이 노성에서 유진(留陣)하여 도망하는 군사를 붙든다 하거늘 필성과 형렬이 크게 근심하니 가라사대 이곳에서 쉬자는 것은 정히 이러한 화를 피하려 함이라 내일 아침에 떠나가면 아무 사고가 없으리니 염려 하지말라 하시더라.
이튿날 아침에 갑사를 떠나시면서 가라사대 그대들은 이로부터 큰 화가 없으리니 각기 갈려 가라 하시니 두 사람은 오히려 두려운 마음을 놓지 못하여 천사와 동행하기를 청하거늘 허락하시고 함께 여산에 이르사 가라사대 만일 읍내를 지나면 옷을 빼앗기리라 하시고 샛길로 들어 고산 인내 장터로 향하시니라.
이때에 여산읍으로 지나는 동학군은 모두 읍 사람에게 옷을 빼앗기고 벗은 몸으로 흩어져 가니 대개 전번에 동학군들이 복상할 때에 읍 사람들의 옷을 빼앗아 갔음을 보복함이러라
이 길로 전주에 이르사 두 사람을 각기 돌려 보내실 때 필성과 형렬이 숙박비가 없음을 걱정하거늘 가라사대 내가 이곳에 있으니 염려하지 말고 돌아가라 하시거늘 이에 천사께 작별하고 형렬은 구릿골로 필성은 닥뱀이로 각기 돌아갔더니 이 뒤에 동학전군이 도망해 와서 섣달 열사흗날 원평 접전과 보름날 태인 접전으로 연전연패하여 산망하여 버리니라.
스물 다섯 살 되시던 을미년 봄에 고부지방 유생들이 평란(平亂)되었음을 축하하는 뜻으로 두승산에 모여 사회를 열 때 천사께서도 참여하였더니 한 노인이 천사를 조용한 곳으로 청하여 작은 책 한권을 전하거늘 천사 그 책을 통독하시니라.
하루는 송광사에 가서 여러 날 동안 지내시더니 어떤 중이 무례하게 대접하는지라 천사 노하사 꾸짖어 가라사대 요망한 무리들이 산속에 모여 불법을 빙자하고 백악을 감행하여 세간에 해독을 끼치니 이 소굴을 띁어버리리라 하시고 법당 기둥을 손으로 잡아당기심에 기둥이 한 자나 물러나는지라 온 절이 크레 놀래어 여러 중들이 몰려와서 절하며 사죄하거늘 이에 노를 그치시고 그대로 두셨더니 그 뒤에 그 법당을 여러번 수리하여도 물러난 기둥이 원상대로 회복되지 아니 하더라.
이 뒤에 전주에 가사 백남신의 아우 소실 기생의 친가에 사관을 정하시고 오랫동안 머무르시더니 그 기생이 천사의 우아하신 의표를 탐내어 하루는 밤을 타서 천사의 거처하신 방으로 들어오거늘 천사 꾸짖어 보내셨더니 그 뒤에 다시 수차 들어오거늘 여전히 개유하사 돌려보내시니라.
혁명란 후로 국정은 더욱 부패하여 세속은 날로 악화하고 관헌은 오직 포학과 토색을 일삼고 선비는 허례함 숭상하며 불교는 무민혹세만 힘쓰고 동학은 혁명 실패 후에 기세를 펴지 못하여 거의 자취를 거두게 되고 서교(예수 신 .구교)는 세력을 신장하기에 진력하니 민중은 고궁에 빠져서 안도할 길을 얻지 못하여 위구와 불안이 온 사회를 엄습하거늘 천사 개연히 광구할 뜻을 품으사 유불선 음양 참위의 모든 글을 읽으시고 다시 세태와 인정을 체험하기 위하여 정유로부터 유력(遊歷)의 길을 떠나시니라.
충청도 연산에 이르사 역학자 김재일에게 들르시니 이대 재일의 꿈에 하늘로부터 천사가 내려와서 강사옥과 함께 옥경에 올라 오라는 상제의 명을 전하거늘 재일이 천사와 함께 옥경에 올라가 요운전 (曜雲殿) 이라고 액자가 써 붙여진 장려한 금궐에 들어가서 상제께 뵈이니 상제가 천사께 대하여 광구 천하라려는 뜻을 칭찬하며 극히 우대하는지라.
재일이 크게 이상히 여겨 이 일을 말한 뒤에 요운(曜雲)이란 도호(道號)를 천사께 드리고 심히 경대(敬待)하니라.
이 길로 경기, 황해, 강원, 평안, 함경, 경상 각기를 차례로 유력하시니 천사의 혜식은 박학과 광람을 따라 명철하여 지시므로 이르는 곳마다 신인(神人)이라는 칭송이 높더라
이렇게 수년동안 유력하시다가 경자년에 고향으로 돌아오시더니 이때에 전주 이동면 전용리 이치안이 구혼차 충청도로 향하다가 주막에서 천사를 만나 하룻밤을 같이 자고 그 이튿날 떠나려 할 때 천사 치안에게 일러 가라사대 그대가 이제 구혼차 길을 떠났으나 반드시 헛걸음이 될 것이니 이 길을 가지 말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전일부터 의혼하여 오던 곳에서 매파를 보내 정혼하기를 구하리라 . 만일 이 기회를 놓치면 혼로가 열리기 어려우니 빨리 돌아가라.
치안은 천사께서 자기의 사정을 밝히 알고 말씀하심을 신기하게 여겨 비로서 성명을 통하고 천사의 주소를 자세히 물은 뒤에 곧 집으로 돌아오니 과연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라.
이 뒤로 치안이 천사의 신기하심을 흠모하여 자기집으로 모셔 오니라.
치안의 아들 직부는 그 마을 이장이라. 마침 그 마을 인구를 긴급히 조사할 일이 있다 하거늘 천사 수를 놓으신 뒤에 호수와 남녀 인구를 자세히 일러 주시고 사흘 안에 한 사람이 적어질 것을 말씀하시거늘 직부는 믿지 아니하고 온 마을을 돌아 낱낱이 조사한 즉 과연 한 집 한 사람도 틀림이 없고 또 사흘만에 한 사람이 죽는지라. 직부가 비로소 놀라 천사의 신기하심에 감복하니라.
서른한 살 되시던 신축년 가을에 집에 들어오자 선령(先靈)의 공명첩(攻名帖)을 불사르니라.
정씨부인이 간곡히 말씀하여 가로대 이제는 그만 돌아다니시고 집에서 남과같이 재미있게 살림이나 하사이다 하니 천사 가라사대 그렇게 적은 말이 어디있느뇨 하시고 이로부터는 집에 가까이 아니 하시니라.
자료출처 : 대순전경(大巡典經) = 제일장 천사(天師)의 탄강(誕降)과 유소시대(幼小時代)
첫댓글 공부 않고 아는 법은 없다고 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