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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개아(個我)
6. 능력
인류의 역사이래 수많은 사이불사(死而不死)의 성인군자(聖人君子)들이 세상에 나와 인류역사의 등불이 되었고 또한 현인(賢人). 대가(大家)들은 음악. 미술. 건축. 문학.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불후의 명작과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물론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타(他)에 추종을 불허하는 신기(神技)를 보유한 명인(名人), 명장(名匠), 달인(達人)들도 많이 있다. 그들은 범인(凡人)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전혀 다른 우성(優性)의 유전자로만 구성되어 있거나 아니면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은 다른 종(種)의 인간인가? 그 문제에 대한 자화론(自化論)의 관점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서기1198년 고려 신종시대 무신정권의 집권자 최충헌(崔忠獻)의 가노(家奴)였던 ‘만적’이 난(亂)을 일으키면서 세상을 향해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느냐”라고 일갈(一喝)했다고 한다. 신분의 차별이 엄격했던 그 시절에 王. 侯. 將. 相. 奴를 동일선상에 놓고 그렇게 외쳤다고 하니 인간평등에 관하여 그는 진정 선각자였다. 평등(平等)은 아주 넓은 의미를 갖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권리, 의무, 자격 등에서 차별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다 같은 인간이고 그 인간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아무런 구별이나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난을 일으킨 만적의 말대로 왕후장상(王侯將相)과 노비(奴婢)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인권뿐만 아니라 능력에 있어서도 태어날 때는 다같이 평등하지만 성장한 어느 한 시점에서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람에 따라 현격한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활 속 달인(達人)들의 예를 보면 알 수가 있다. 그러면 인간의 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어디까지일까? 무소불위(無所不爲), 무소부지(無所不知), 무소부재(無所不在)의 조화원(造化元)은 그의 능력인 원능을 천지만물을 위해 능력으로 예비하였다. 인간의 능력이란 원능(元能)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알아내고 그 아는 것을 아는 대로 실행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인간의 능력 중 체능(體能)은 몸의 각 기관에 따라 그 기능과 힘의 범위를 설정하여 그 한계를 넘을 수 없도록 제한되었으나 지능(知能)에 있어서는 마음의 작용이므로 무한성(無限性)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무한(無限)이란 개념은 수학, 신학 및 철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쓰이지만 대체로 끝이 없거나 한없이 큰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이 무한하다고 해서 종류를 가리지 않고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는 만능(萬能)이나 안되는 것이 없이 다할 수 있는 전능(全能)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수준 이상을 넘지 못하도록 한계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인간의 능력은 그 얻어지는 원천과 시기에 따라 본능(本能)과 습득능(習得能) 그리고 잠재능(潛在能)으로 구별할 수 있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에게는 특유의 생득적(生得的) 행동능력이 있다. 이것을 본능(本能)이라고 한다. 본능은 태어날 때 조화원의 원능이 생명유지에 필요한 만큼 부여된 것으로 경험으로는 습득할 수 없는 능력이며 주로 자신의 유지. 보존 등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만큼 발현되며 선악을 구별하는 기본적 능력은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나타나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의 행동에 대하여 그것이 본능에 의한 것인지 학습에 의한 행동능력인지 구분하기란 매우 어려우나 의지에 의한 거듭된 학습과 경험으로 행동능력이 향상되었을 경우에는 본능은 그 의미를 잃게 된다. 사람의 노력으로 원계(元計)의 원리를 밝혀 체계화한 것이 과학이고 학문이다. 학문을 익혀 얻은 지식과 경험을 통해 터득한 지식에 연상(聯想)과 상상(想像)을 더해 발전시켜서 축적한 지식과 기술이 습득능(習得能)이다. 배워 얻는 습득능은 각자가 처한 생활환경이 다르고 신체적 조건과 성장과정, 관심과 열의가 다르고 교육과 경험의 정도가 다를 뿐만 아니라 능력을 습득하는 일은 각자의 자유에 속하므로 의욕과 노력여하에 따라서 영재(英才)가 될 수도 있고 중간인 범재(凡才) 그리고 좀 부족하다 싶은 둔재(鈍才)일 수도 있다. 만약 사람의 능력에 다양성과 우열이 없이 평등하다면 인간사회는 어떤 상태가 될까? 아마도 그 결과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보편적 이상을 실현한 만족보다는 불평등의 조화(調和)가 주는 실용성(實用性)의 결여로 불편하고 재미없는 삭막한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은 다른 생명체들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수준의 정형화된 필수능력과는 달리 습득과 활용이 각자 자유의사에 속한 것이므로 능력의 평준(平準)은 있을 수가 없게 된다.
미래(未來)란 단순히 아직 다가오지 않은 시간적인 개념뿐만 아니라 희망과 변화의 가능성이 함축된 인간의 기대이기도 하다. 앞으로 전개될 새로움에 대한 기대라는 의미에서의 미래는 무엇에서 시작되는가? 미래는 우리의 마음속 잠재능에서 싹이 튼다. 잠재능(潛在能)이란 아직 발휘되지 않고 자신 속에 축적되어 있는 미래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학습이나 체험에 의해 취득한 습득능을 바탕으로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개발 분야를 스스로 탐구하여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조화원(造化元)의 능력인 원능(元能)의 감응(感應)에 의한 득리(得理)와 득력(得力)의 가능성을 잠재능이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이란 현재의 습득능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잠재능력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실현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새로운 것의 실현에서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 안에 잠재해 있은 능력에 따라 인생의 향방이 달라지게 된다. 만약 내가 가지고 있는 잠재능력과 전혀 다른 영역의 일을 한다면 그 일로 하여 보람을 느낄 수 없을 것이고 결국 새로운 것을 개발해내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잠재능력이 무엇이며 얼마만큼인가 확인해볼 수는 없으나 진정으로 재능을 발휘하려면 자신의 마음이 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다. 어느 쪽도 인생의 성공을 보장하는 길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인생의 중요한 방향을 결정할 때는 이러한 기본적인 개념의 틀을 놓고 고민해봐야 한다. 잠재능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이법(理法)을 발견하고 그것을 현실에 응용하여 인류사회에 크게 이바지한 예를 하나 들어 본다. 사람의 육체는 본시 하늘을 날수 없게 설계되어 있다. 그러므로 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리 없고 가능성조차 찾을 길이 없기에 옛날에는 사람이 하늘을 난다는 것은 꿈에서나 있을 법한 불가능한 일중에 첫째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동안 하늘을 날고자 하는 욕망을 이루고자 피나는 노력으로 날 수 있는 원리를 터득하여 비록 육체의 한계를 넘어 몸이 새처럼 직접 날지는 못하지만 대신 도구를 사용하여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날고 더 나가 로켓(rocket)으로 우주여행을 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끝없는 노력과 사람의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게 한다. 조화원의 화신(化身)인 인간은 신(神)의 능력에 비견되는 잠재능력을 누구나 다 가질 수 있지만 그 능력의 발현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고 해보고 싶은 일에 대하여 꼭 이루겠다는 목적의식과 집념, 불타는 열정이 간절한 소망과 함께 할 때 비로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유유상종(類類相從)의 법칙에서 볼 때 욕기(慾氣)에서 비롯된 사욕충족을 위한 노력이라면 아무리 애를 써도 억지춘향이 일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평생 5%도 못쓰고 간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줄을 알지못해 어디에 쓸 엄두를 내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고 또 쓸 곳이 없어 쓰지 않았기 때문에 남아도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이 그렇게 많다고는 하지만 막상 무슨 일을 하려면 항상 능력의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현실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능력의 가능성은 무한하지만 그 능력의 발휘를 가로막는 요인 또한 그에 못지않게 많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선입견(先入見)이다. 선입견이 마음을 구속하기 때문에 끝없이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창의성을 방해한다. 선입견이란 사물. 사항. 인물 등에 관하여 미리 접한 정보나 자신이 처음 접했을 때 갖게 된 지식이 강력하게 작용하여 그 대상에 대하여 형성되는 고착적이며 변하기 어려운 관념 또는 견해를 말하며 역사적, 사회적, 종교적인 것 등 여러 요소에 의해 형성되고, 무비판적이고 감정적이며 편견으로 발전하게 되면 객관적인 사실이 왜곡 인지되어 그 모순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일에 대하여 선입견이 감당의기(堪當意氣)를 위축시켜 해보기도 전에 넘을 수 없는 부정적인 한계의 벽으로 인식시켜 '나는 할 수 없다’ 라는 체념의 자리에 주저앉혀 버리고 만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인격형성이 시작되는 어린이에게 이것은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등등 제 딴엔 이해되지 않는 수없이 많은 제지와 강요와 간섭이 어린이의 지능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어른들의 지나친 보호나 훈육이 자칫 강자의 억압으로 이해되고 그에 따라 르상티망이 될 수도 있다. 르상티망(Ressentiment)은 철학자 니체의 유명한 말로 약자나 패배자의 원한, 증오, 질투 따위의 감정이 되풀이되어 마음속에 쌓인 상태를 가리킨다. 강한 르상티망이 쌓이게 되면 마음이 산만해져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나 상상력, 집중력을 저하시킨다. 이와 같이 이해나 공감이 되지 않는 많은 부정적인 요소들이 선입견으로 고착되어 알게 모르게 마음이 좁다란 Category(範疇)에 갇히게 되고 무비판적으로 피동(被動)에 길들여져 자기의 주관(主觀)이 아닌 친구끼리 내기장난으로 사다리타기 하듯 남이 정해 놓은 길을 그저 이리 저리 뒤 따라다니는 맹종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지적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을 평가하는 점수평가에도 문제점이 있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시험을 100점 만점으로 하고 점수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평가의 폐해는 학생들에게 ‘100점’ 그 자체가 이미 성취의 허상으로 마음속에 자리매김되고, 자신의 시험점수가 만점에 근접하게 되면 만점을 향한 성취욕구는 어느 정도 달성한 것이 된다. 이미 충족된 욕구는 그 이상의 큰 성취욕구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 정도에서 안주하게 될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교육의 성취도를 측정하여 앞으로의 지도방향과 계획을 세우는데 자료가 필요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우열을 가려 정해진 인원을 선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해도 점수평가가 다양한 지능발달과 창의성을 가로막는 덫으로 작용하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 불세출(不世出)의 위인은 차치물론(且置勿論)하고 대소 CEO(Chief Executive Officer)중에 학교 시험점수 톱랭커(Top ranker)가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때 사람의 능력은 시험점수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중의 크나큰 성취의 만족을 위하여 현재의 작은 만족이나 욕구, 유혹 등을 참아내거나 포기하는 능력을 ‘만족지연능력’이라고 한다. 만족지연능력은 인생에서 성공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제 작은 만족을 뒤로 미루고, 또한 내 스스로 내 능력을 가둔 한계의 울을 걷어 내고 무한대를 향해 마음껏 키워 유감없이 발휘해야 할 것이다.
사람에게는 아주 특별한 능력이 존재하기도 한다. 정신병으로 여겨질 정도로 정신집중을 못하거나 말 더듬질 또는 자폐증이나 뇌 손상으로 인한 정신지체자가 음악연주 또는 절대음감, 그림, 수(數)에 관한 기억 등 특정분야에서 경이로운 천재적 재능을 나타내는 서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이 있다. 연구에 의하면 서번트들은 좌뇌의 손상을 보상하기 위해 우뇌가 발달하여 나타나는 현상으로 장애로 인해 좌뇌가 제 기능을 담당하지 못하는 만큼 우뇌가 비약적으로 발달해 천재성을 보인다고 한다. 1887년 L. Down이 처음으로 서번트에 대해 기술한 이후 지금까지 보고된 서번트 신드롬환자는 세계적으로 약100명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정확도와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거듭하는 컴퓨터와 IT문화 속에서 서번트들의 능력은 날이 갈수록 쓸모 없는 초라한 것으로 폄하(貶下)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기계나 컴퓨터가 대신할 수 없는 정(情)을 가진 우리 인간들만의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세상이 원망스럽고 자신이 서러워 눈물 흘리며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 백치천재(白癡天才)인 그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따뜻한 관심, 이 땅의 미래인 다른 아이들과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노력,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장애아라 할지라도 그 능력이 보다 좋은 일에 쓰일 수 있다는 용기를 일깨워주는 배려, 이 모든 것이 바로 우리의 따뜻한 눈길에서 비롯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능력이 무한하다면 초능력이라 불리는 심령현상(心靈現象)도 과연 인간의 실제 능력이며 신뢰할 만한 것인가? 심령 현상이란 현대의 과학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하고 증명할 수 없는 초상적(超常的)인 정신현상, 즉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생각이 서로 감통(感通)하는 정신감응현상. 예언. 예지 따위의 천리안적 초능력현상. 죽은 자의 혼령과 산 자의 영혼이 교감한다는 영매(靈媒) 등의 심령 물리현상을 총칭하는 말이다. 미국 듀크대학교의 라인(J.B.Rhine)은 연구대상이던 심령현상인 투시(透視), 텔레파시, 예지(豫知)의 현상을 총칭하여 ESP (Extrasensory perception. 超感覺的 知覺)라고 하였다. 보통 지각은 대상으로부터 지각자(知覺者)에게 물리적 자극이 도달하여 그것이 감각기관의 흥분을 일으키고, 그 흥분이 중추에 전해져서 감각을 일으키는 것이지만, ESP의 경우는 물리적 에너지가 매개(媒介)하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조건하에서 대상에 관한 정보를 얻으며, 또 이것에 관계하는 감각기관의 존재도 명확하지 않다. 이것이 ‘초감각적’이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ESP 현상은 옛날부터 일상생활 속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에 관하여 보고되어 왔으나, 이것을 조직적인 실험에 의해 증명한 사람이 라인이다. 그는 ‘ESP 카드’라는 특별한 카드를 사용하여 카드 맞히는 법에 의한 적중률이 우연 기대 값보다 통계적인 의미를 가질 정도로 높을 때가 있음을 제시하고, 이것을 ESP의 증거로 삼고 있으나 연구수준에 머무를 뿐이라고 한다. 아무튼 무협지(武俠誌)에서 운위(云謂)하는 운기조식(運氣調息)으로 응축된 내공(內功)과 초자연적인 능력인 초능력은 조화원(造化元)의 원능(元能)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하여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또한 외계인이 하는 말을 지구의 말로 변환(channeling)해서 들려준다고 하는 채널러(channeler) 역시 마찬가지이다. 초능력사냥꾼이라 불리는 제임스 랜디(James Randi)는 1996년 설립한 제임스랜디교육재단(JREF)을 통해 누구라도 통제된 실험실 환경에서 초능력을 입증하면 100만 달러를 상금으로 지급하는 ‘파라노말 챌린지(Paranormal challenge)’를 개최하여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100만 달러 파라노말 채린지”에 도전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초능력을 행사하는 초능력자가 존재함을 인정하기는 사실상 애매하다. 그럼에도 세상에 알려진 초능력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그 중 중요한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ㅇ예지(豫知, Precognition)
현재 가지고 있는 지식을 근거로 한 추론(推論)으로는 예측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미래사(未來事)를 미리 지각하는 것을 말하며 예언. 예계(豫戒). 예감. 등도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ㅇ투시(透視, Clairvoyance)
어떤 장애물로 가려져 있는 내부의 사물, 또는 먼 거리에 있는 사건과 같이 감각적. 지각적으로는 파악이 불가능한 현상을 초감각적으로 감지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실제 가능여부는 확실치 않으나 기계로는 가능하다. 물체에서 자연적으로 방출되는 밀리미터파를 수신해 영상을 얻는 것으로 사람의 옷, 안개, 화재공간, 천막 같은 일부의 장애물에 가려진 물체를 투시카메라로 확인할 수 있다.
ㅇ제노글로시(Xenoglossy)
배운적이 없는 외국어를 읽고 쓰고 말하고 이해하는 초능력으로 대부분은 일시적으로 나타나고, 그 때 사용했던 언어에 대한 기억은 일정 시간이 흐르면 사라진다고 알려져 있다. 심리학자들에겐 인정받지만 언어학자들에겐 인정받지 못한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ㅇ텔레파시(精神感應 Telepathy)
감각채널이나 육체적 상호작용을 통하지 않고도 한 사람의 생각. 말. 행동 따위가 멀리 있는 다른 사람에게 전이되는 심령현상을 말하는 텔레파시는정의하기가 쉽지 않은, 의미가 광범위한 세계이다. 이런 텔레파시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많은 사례를 접해보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한다. 텔레파시는 사람과 사람 사이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물 사이에도 일어나는 것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의사를 전하는 수단으로서 특별한 통신능력을 사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일 뿐이다.
텔레파시가 전해지는 메커니즘에서 텔레파시의 정체를 알려면 두 가지 측면에서의 사실파악이 필요하다. 하나는 에너지/정보의 확실한 정체와 뇌가 어떤 절차로 텔레파시를 수신하는가 하는 면이다. 첫 번째의 경우에 대해서는 19세기 이래 전자에너지설이 제기되어 왔으나 이 설에는 결점이 있다. 전자에너지라면 거리가 멀면 멀수록 파워가 약해져 전달이 안될 터인데도 텔레파시 실험에서는 거리와는 관계없이 모두 전달이 되었던 것이다. 텔레파시에서 거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밝혀진 이상, 텔레파시의 전달매체는 전자에너지가 아님이 분명해졌다. 그렇다고 중력장이 매체냐 하면 그것도 문제가 있다. 중력장의 정체가 아직도 애매모호한 점이 많이 있는 만큼 중력장론도 유력한 설은 되지 못한다. 동양적 개념의 기(氣)를 상정해 보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합당할 듯하다. 기에는 물질적 수준의 것이 있는가 하면 시공(時空)의 제약을 받지 않는 정신적 수준의 기도 있다. 정신적 수준의 기는 거리와는 관계없이 아무리 먼 곳 사이에도 사실상 동시에 작용한다. 두 번째의 경우는 뇌의 어떤 부위에서 어떤 절차로 텔레파시를 수신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도 현재로서는 정설이 없다고 한다. 차라리 전신으로 수신한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ㅇ사이코 메트리(Psychometry)
시계나 사진 등 특정한 인물의 소유물을 만짐으로서, 그 소유자에 관한 정보를 읽어내는 심령적 행위로 미국의 과학자 버캐넌(J. R. Buchanan, 1814~99)이 제창한 용어이다. 실험에 의하면 남성 10명 중 1명, 여성 4명 중 1명이 이 능력을 가진다고 한다. 이 능력은 투시의 일종으로, 과거에 존재한 사람의 기억이 냄새처럼 주위의 사물에 남는다는 초심리학적 가설에 의거하고 있다. 근래 사이코메트리를 이용해서 범죄현장의 유류품에서 범인이나 피해자의 행방을 찾는 시도도 영ㆍ미에서 행하여지고 있다.
ㅇ염력(念力, Psychokinesis)
인간의 의지 또는 의도로 근육의 힘이나
물리적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사념(思念)을 집중하는 것만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 동물, 또는 장비를 조종하는 능력 말한다. 가령 마음에 두고 있는 주사위의 눈을 생각한 대로 낸다든지, 사념을
집중해서 스푼을 휘게 하는 것, 멈춰있는 시계의 바늘을 움직이게 하는 것 등이다. 이런 능력은 아동에게 더 많은데 그 중에는 청년기까지 계속되는 사람도 있다. 융은 이를 초심리학적 외재화작용이라고 하였는데, J.B. 라인
이후 염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의 초심리학의 사고방식에서 이 현상은 열역학의 제2법칙인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파괴하는 사례로 생각되고 있다. 즉, 에너지가 흐르는 방법이 통상의 물리법칙에 따르지 않고 가끔 역으로 흐르는 경우가 있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에서 시간은 엔트로피 증대의 방향으로 향해서 흘러가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는데
이 점에서 말하면 시간이 미래에서 과거로 역류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