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하나님이 주신 가시는 무엇인가?
고린도후서 12:1-10 제목은 7절
체부동교회(體府 1929.9.1)
參考聖經
荊棘無花果. 눅六章四十四節.
荊棘火. 出三章二節. 必如汝目中之棘. 民三三章五五節.
荊棘中播種. 馬可四章十八節. 四面更無刺戟. 徒二八章二四節.
棘下無賴輩. 욥三十章七節.
懶者田에荊棘. 箴二十四章三十一節.
荊棘冕. 馬太二十七章二九節.
棘惡木也, 無用於人而反有害, 然爲敎訓者不少, 今保羅之所言神之棘, 有益於保羅故言神之所賜也. 世人所賜之棘, 使救主流血, 名雖爲冕 太二十七章二十九節. 似爲榮光. 然實使人流血也. 主使万世之人, 示榮光在苦痛中出. 金自火出後有光彩也. 人之光亦然, 經無限苦痛而後爲世之光也. 又刺人心胸不勝苦痛, 甚至流淚家庭之內敎會之內大同, 卽有投妻山中者, 又有本夫毒殺者, 此皆人所賜之棘也. 今神之棘敎訓甚多. 一, 使人不驕, 驕是信者之仇, 保羅有各種驕傲, 門閥驕, 文驕, 敎閥驕, 此皆世人之驕. 天國亦有驕, 善知聖書之驕, 善說교之驕, 黙示之驕. 保羅得黙示之後, 到有此驕, 主賜一棘. 又,使人不强, 强非實强, 終當失敗, 力如參孫而敗, 力如項羽而敗, 柔能勝强此主訓也. 主亦曰權能勝於弱, 齒弊舌存亦此理也. 更詳此理, 主不居强者之內, 居弱者之內也, 我欲誇强之時, 主已遠去. 摩西以腕力殺人主不偕之, 西乃牧羊之時主偕之. 主祈禱曰主隱於知慧通達之人顯於乳兒云, 大圍幼時殺골리앗亦證其事. 保羅欲强剛之時, 主賜一棘. 又,使人不變, 多變無忍耐之證也. 使保羅所執目的終不變, 以忍耐爲武器, 奮鬪努力有如何逼迫如何苦痛, 皆不顧以戰士着全身之甲, 演出善戰, 爲祭酒灌地, 馳盡善路, 幷以忍耐成之. 主曰荊棘不能摘無花果눅六章四四節. 保羅之事業必結實乃已, 不如擊空, 又不如荊棘之無花果也. 吾等事業必如是着實近理可也. 又,使人有胆敵罪有力也. 今日工課亦云試驗之時何不避去也, 又何不祈禱也, 又何不勤職也云. 盖試驗之來不使于我可也. 鳥過頭上可也. 使巢于頭上不可也, 敵罪如是, 敵一罪又敵一罪, 敵之不已乃生膽力, 我乃誓心曰 若不盡除, 必爲我目中之棘 民三三章五五節. 一次蹉跌後悔莫及矣. 養毋遺患也, 俗語曰知爪下之棘而不知心下之虫也云, 此誠至言也. 若留罪于心中心乃腐, 誠如是克復, 以色烈之四面更無刺棘結(에스겔 28:24)二八章二四節.云. 吾等之環境克之不已, 則四面泰平無事, 終亮之世南夷不復叛矣. 終吾之世座無愆過矣. 更思荊棘之火, 棘雖無用然火燒不滅 出三章二節. 以示以色之民雖不足稱道而多經患亂, 然猶爲不滅, 必入聖地迦南. 吾信徒亦然, 外雖不足觀, 然必多經苦痛而猶不敗滅. 必入天國矣. 保羅有感於此, 反喜神賜之棘受多種, 使不驕, 使不强, 使不變, 使有膽力, 以進王國也. 願僉位雖有困難, 必忍耐甘受, 以進天國焉.
참고 성경.
가시나무와 무화과 (누가복음 6:44).
떨기나무의 불 (출애굽기 3:2).
너희는 눈의 가시가 되리라 (민수기 33:55).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 (마가복음 4:18).
사방에 찌르는 가시는 다시는 없다 (에스겔 28:24).
가시나무 아래 있는 무뢰배 (욥기 30:7).
게으른 자의 밭에 가시덤불 (잠언 24:31).
가시 면류관 (마태복음 29:29).
가시는 좋지 못한 나무입니다. 가시나무는 사람에게 쓸모가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는 교훈이 적지 않습니다. 지금 바울이 말한 바의 ‘하나님의 가시’가 바울에게는 유익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려주셨다’고 말하였습니다. 세상 사람이 준 가시는 구주(救主)로 하여금 피를 흘리게 하였으니, 그 이름은 면류관으로 영광인 듯하지만(마태복음 27:29), 사실은 사람으로 하여금 피를 흘리게 한 것입니다.
주님은 만세인(萬世人)이어서 영광이 고통 가운데서 나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쇠는 불속에서 단련되어 나온 후에 광채가 나는 것입니다. 사람의 광채 역시 그러합니다. 곧 무한한 고통을 견딘 뒤에 세상의 빛이 됩니다. 또한 사람의 마음과 가슴속에 이길 수 없는 고통을 주어 심하게는 눈물을 흘리도록 합니다. 가정이나 교회의 안에서도 거의 같습니다. 곧 자기 아내를 산중에 버리거나 본 남편을 독살 하는 것은 다 사람이 준 가시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가시는 첫째 사람으로 하여금 교만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신자의 원수입니다. 바울에게는 각종 교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문벌의 교만, 학문의 교만, 교벌(敎閥)의 교만으로써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교만입니다. 교회 생활에도 교만이 있습니다. <성서>를 잘 안다는 교만, 설교를 잘 한다는 교만, 묵시(黙示)의 교만입니다. 바울은 묵시를 터득한 뒤에 이러한 교만에 이르자 주께서 가시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주님은 사람에게 강(强)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강한 것은 실제로 강한 것이 되지 못하게 되며 마침내 실패하게 됩니다. 삼손은 힘이 센 사람이었지만 실패했고, 항우같이 힘센 이도 패했습니다.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기게 하는 것이 주의 교훈입니다.
주님은 ‘능력은 약(弱)한 것을 이긴다.’라고 하였는데, 이가 빠져도 혀는 남는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이치입니다. 이 이치를 자세히 말하자면, 주님은 강한 자와 함께 하지 않고, 약한 자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강한 것을 자랑하려고 할 때 주님은 멀리 떠나십니다.
모세가 완력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 주님은 그와 함께하지 않았고, 시내 산에서 양을 기를 때 주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주께서 ‘지혜에 통달한 사람에게 숨어 있다가 어린 아이에게 나타나신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이 어릴 때 골리앗을 죽인 것 역시 그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굳세 지려고 할 때 주님은 가시를 주셨습니다. 인내로 무기를 삼아 분투노력하게 되면 어떠한 핍박이나 어떠한 고통도 이겨낼 수 있으며, 전사(戰士)로서 전신갑주를 입고싸우는 일을 연출하게 됩니다. 주께서 ‘가시넝쿨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44). 바울의 사업도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막대기로 공중을 치는 것과 같지 않고, 또 가시덤불에서 무화과를 따는 것과 같이 헛된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업이 이와 같이 착실하게 이치에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또 사람에게 담력을 주셔서 죄에 대적하도록 하셨습니다. 시험을 치를 때가 되면, ‘왜 시험을 피하지 않고, 또 왜 기도도 하지 않고, 부지런하지 않았는가.하는 점을 살펴보게 됩니다.새가 머리 위를 지나가더라도, 머리 위에 둥지를 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죄를 상대하는데 있어서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의 죄를 상대하고 나면, 또 다른 죄가 나타납니다. 상대와 대적하는 일이 계속 되면 담력이 생깁니다. 마음속으로 이들을 다 제거하지 않으면 반드시 내 눈의 가시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민수기 33:55). 이렇게 한번 잘못할 경우, 후회해도 소용없으니, 우환이 될 일을 기르지 말아야 합니다.
‘손톱 밑의 가시는 알아도 심장을 긁어먹는 벌레는 모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은지극히 맞는 말입니다. ‘마음속에 죄를 남겨두면 마음이 부패해지므로, 이처럼 극복해야 이스라엘의 사방에서 찌르는 가시가 없어진다.’고 했습니다.(에스겔 28:24). 환경을 극복해야 사방이 태평하게 됩니다. 제갈량이 죽을 때까지 중국에는 남쪽 오랑캐가 다시는 반역하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우리의 자리에서 허물이 없어야 합니다.
다시 가시덤불의 불을 생각하여 봅시다.
모세가 광야에 있을 때, 쓸모없는 가시넝쿨이지만, 그것은 불에 태워도 없어지지 않습니다.(출애굽기 3:2).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칭찬할 만한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숱한 환난을 극복했기 때문에 오히려 멸망당하지 않고, 거룩한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믿는 자들도 이와 같아서 밖으로 보면 보잘 것 없는 것 같지만,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오히려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여러 가지 가시를 주심에 도리어 기뻐했습니다. 그리하여 교만하지 않고, 강하지도 않으며, 불변하는 담력으로 왕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라건대 여러분은 비록 곤란이 있더라도, 인내로써 달게 받아 천국으로 나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