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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근현대의 세계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은 누구일까? 20세기에는 왕조 식민제국과 군국주의의 퇴조와 함께 세계는 자유민주 국민국가와 공산주의 인민국가의 양대 진영이 대립하는 동서 냉전 체제의 시대가 전개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전반 공산 진영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세상의 지평을 바꾼 소련의 혁명가 레닌(Lenin)이, 중후반에는 중국의 공산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한 모택동(毛澤東 Mao Tse-tung)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 진영에서는 영국의 명예혁명과 프랑스 시민혁명, 미국의 청교도혁명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인도의 무저항 독립 투쟁을 전개한 간디(Gandhi)와 미국의 흑인 해방운동가이자 평화주의자인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가 있습니다.
한편 근현대의 세계사적 흐름에서 그들 못지않게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 있습니다. 20세기의 마지막 흑역사(黑歷史)를 종식 시키고 21세기 자유 세계의 새로운 문을 연 인물인 남아프리카공화국(南阿共 South Africa)의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1918~2013)입니다. 그는 지구상에 남아있던 마지막 제국주의의 잔재와 인종차별주의, 공산주의, 억압된 자유와 인권, 국가 폭력 등에 항거하여 끝내 이 모두를 극복해낸 남아공의 민족 지도자입니다.
음베조(Mvezo)라는 마을은 지금 내가 사는 강원도 산촌의 외진 마을만큼이나 조그만 시골 마을입니다. 이곳은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가 태어난 곳입니다. 넬슨 만델라는 오랜 투쟁 끝에 자신의 조국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South Africa)을 새로운 나라로 재탄생시키고 분열되었던 국가를 통합시킨 인물입니다. 현대를 살아간 사람이지만 남아공 역사를 통틀어 가장 두드러진 인물입니다. 그의 고향마을 음베조는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Pretoria)로부터는 약 1,000km쯤의 먼 거리에 있습니다.
상당히 먼 거리지만 그곳을 가보고자 했던 것은 이 시대의 위대한 지도자의 한 사람인 넬슨 만델라의 체취를 직접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뉴욕 타임스가 20세기 최고의 책으로 선정한 그의 자서전 『Long Walk to Freedom』(자유를 향한 긴 여정, 1994년 영국에서 출간됨)을 읽으며 그 책에서 너무도 정겹고 아름답게 묘사된 그의 고향마을 음베조를 꼭 한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700여 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부피의 이 책에는 실로 파란만장한 그의 생애, 그리고 자유와 인권,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그의 삶과 사랑, 헌신적인 투쟁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내가 읽어본 그 어떤 작품 못지않은 문학성을 지닌 수작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편 넬슨 만델라의 고향마을을 찾은 것은 남아공의 국가발전이라는 현안 과제의 입안에 그의 고귀한 정신과 불굴의 열정을 담아냈으면 하는 전문가로서의 의도가 작용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2018년 11월 당시 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우리나라의 새마을사업을 모델로 한 농촌개발 프로그램의 매니저로서 여러 전문가와 함께 그 사업 추진을 총괄하고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도시 지역에 비해 크게 낙후된 남아공 농촌 지역의 개발 촉진을 위해 우리나라 새마을 방식의 농촌개발 프로그램을 남아공의 여건에 알맞게 개발하고 두 지역의 농촌개발 시범 프로젝트를 설계하는 것이었습니다.
남아공에는 우리의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새마을 정신과 유사한 우분투(Ubuntu)라고 하는 공동체 정신이 남아공 전역의 사회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넬슨 만델라가 주장하는 자유와 평등을 확보하고 국가의 화해와 발전을 도모하는 그의 정신과 열정을 남아공 사회의 공동체 정신인 우분투 전통과 잘 결합하여 이것을 남아공의 농촌개발 프로그램 입안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한국과 남아공 양국의 전문가팀은 마콜로켕과 아마징치라는 남부 지역의 시범사업 대상 마을로 가는 길을 이번에는 비행기로 가지 않고 육로를 통해 가면서 넬슨 만델라의 고향마을인 음베조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프리토리아로부터 열 시간쯤의 길을 달려 더반(Durban)이란 곳에서 하루를 묵고 다시 다섯 시간을 달려 음베조 마을로 가는 길목의 음타타(Umtata)란 곳에 도착했습니다. 음타타는 과거 남아공의 여러 부족이 세운 나라의 하나인 트란스카이(Transkei)라는 부족국의 수도였습니다. 음타타는 지금은 음타타군의 군도(郡都)로 넬슨 만델라가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고향마을로부터 20km쯤의 이곳으로 와서 중학 학업을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음타타 읍내의 거리에는 마침 쟈카란다(Jakaranda) 가로수가 나뭇가지 가득 보랏빛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음베조 마을은 완만한 구릉이 연이어있는 광활한 벌판에 다소 우뚝한 언덕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언덕의 정상 근처에 마을의 촌장댁과 마을 공회당이 있고 언덕 아래의 계곡과 평지에는 론다벨(Rondavel)이라는 원형의 토담 초가집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도랑물이 있기는 하지만 메마르고 건조한 듯이 보이는 구릉의 곳곳에는 듬성듬성한 모습의 나무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황량하게도 느껴졌습니다.
넬슨 만델라는 그의 어린 시절 우리나라에서 마치 개똥이라는 식의 이름처럼 ‘롤리랄라(Rolihlahla)’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롤리랄라라는 말은 그곳의 ‘소사어(Xhosa)’로 ‘나뭇가지를 잡아당기는’이라는 뜻으로 말썽꾸러기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만델라는 어린 시절 무척이나 개구쟁이였다고 합니다. 그가 넬슨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그가 그의 어머니의 고향마을인 쿠누(Qunu)란 곳으로 옮겨 살기 시작한 곳에서 얻은 이름입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에 들어간 만델라는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넬슨(Nelson)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제독 넬슨의 이름에서 빌어온 것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이 만델라가 그의 자서전에서 언급한 추측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말썽꾸러기 Nelson Rolihlahla Mandela가 되었습니다.
한편 그가 어머니의 고향마을 쿠누로 옮겨가서 살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가 그 지역 치안판사로부터 항명죄의 판결을 받아 그의 마을에서 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그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어머니의 고향마을 쿠누는 그의 고향마을 음베조 북쪽의 마을로 음타타와는 좀 더 가까운 곳입니다.
그의 고향마을 음베조에는 남아공 전통가옥인 론다벨 형태의 넬슨 만델라 박물관이 있습니다. 여러 채의 론다벨 가옥으로 세워진 「Mvezo Komkhulu Museum」이란 명칭의 이 박물관은 공교롭게도 휴관 중이어서 관람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쿠누 마을에는 현대적인 건축물의 또 다른 박물관인 「Qunu Nelson Mandela Museum」이 있습니다. 박물관은 「Youth & Heritage Centre」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박물관을 넘어서서 청년세대에게 넬슨 만델라의 정신과 이상을 물려주기 위한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그 박물관으로부터 큰 창으로 내다보이는 언덕바지에는 넬슨 만델라가 그의 어린 시절 썰매를 타고 놀았다는 바위와도 같은 바윗덩이가 내다보였습니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는 이후 국내외 여러 대학에서 다양한 사상과 이념을 접하면서 정치 사회에 대한 안목을 넓혔습니다. 그는 대학 재학 중 아프리카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ANC)에 참여하여 청년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변호사로 활약하기 시작한 만델라는 더욱 행동적인 민족주의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중시하면서 남아공 내 아프리카인에 대한 인종차별정책(Apartheid)에 항거하는 민족주의적 행동을 적극화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그는 국가반역죄로 46세의 나이에 체포되어 27년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그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프리카 대륙의 전역을 휩쓸다시피 한 공산주의를 철저히 배격하였다는 것입니다.
그의 나이가 73세가 되던 1990년 감옥에서 풀려난 만델라는 남아공 최초의 평등선거를 통하여 1994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백인에 의한 차별과 압제하에 있던 남아공은 마침내 해방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과거의 인종차별정책 등으로 빗어진 국가 폭력 및 인권 탄압, 국민적 갈등 따위의 중대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치로 진실화해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TRC)라는 특별 기구를 설립하여 운영하였습니다. 그는 해결하기 매우 어려운 과제를 그가 일생을 바쳐 투쟁해온 자유와 인권의 가치 추구, 차별 철폐와 폭력 추방의 연장 선상에서 슬기롭게 해결하였습니다. 남아공이 191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이후 1990년대까지 이어진 인종차별과 인권 탄압의 과정에서 빗어진 화형, 총살 등 참혹한 인권 유린과 국가 폭력의 문제를 진실 규명과 화해의 차원에서 가해자가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고 뉘우친다면 이를 용서하고 사면하는 포용의 손길로 해결하였습니다.
넬슨 만델라라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이토록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바로 이 역사적 사실이 우리의 현 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가 헌재에서 기각 내지는 각하가 이루어져서 윤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하지만 이 경우 과연 윤 대통령은 어떤 방법으로 그가 천명했던 반국가 반체제 세력의 척결을 일거에 이루어낼 수 있을까요? 난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폭넓게 침투해있는 반국가 반체제 세력에 속하는 인사를 모두 색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한편 설사 그들을 색출했다고 하더라도 이들 모두를 법정에 세워 법의 판결을 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했던 것과 유사한 진실화해위원회(TRC) 방식의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하나의 좋은 대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한편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반국가 반체제 세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종북주의자, 공산주의 추종자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에서의 활동과 암약을 제한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엄하게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양심 고백과 용서의 기회를 주되 이에 따르지 않는 경우 그것을 강력하게 제재할 수 있는 특별조치를 취해야만 합니다.
자유를 향한 여정은 멀기만 합니다. 우리나라 건국의 초기 극심한 정치 사회적인 혼란 속에서 공산주의 세력과의 처절한 투쟁을 거치며 자유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625를 통하여 더욱 처절한 동족상잔의 비극과 함께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자유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반국가 반체제 세력과의 투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바른 생각을 지닌 모든 국민이 합심하여 불온 세력을 몰아내야만 하겠습니다. (2025.3.15.)
첫댓글 국내든 해외든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순우의 체험글을 읽고 느끼곤 합니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지요. 간접적이나마 넬슨 만델라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