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밑에 선 봉숭아
맹 영 숙
정신을 놓친 웃음은 허허롭다. 어린아이같이 천진해진 어머니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만 들어도 한 맺힌 소리로 우신다. 마음 한 쪽이 무너진다.
알츠하이머 벌레는 어머니의 뇌에서 집을 짓고 살았다. 엄마는 왼 종일 햇볕
이 내리는 구석자리에 앉아 옷의 보푸라기를 벌레라고 우기며 뜯었다. 아흔 세
월의 더께는 총기 있고 정갈하던 어머니를 휘청거리게 했다.
어머니께서 누나를 애타게 찾으며 그리워 한다는 동생의 전갈이 왔다. 한 달
만 맡아 달라는 올케의 간청에 승낙을 했더니 동생은 다음날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동생은 미안쩍은 표정을 지으며 어머니께서 두 달간 시름없이 앓으셨다
했다. 가슴이 아려왔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만난 딸을 반가워 할 줄도 모른다. 숨만 쉴 뿐 옛 모습
은 찾기 힘들었다. 민들레 홀씨가 되어 바람에 날아갈 것 같이 왜소하다. 꾀죄
죄한 옷차림에 흰머리는 바람에 날리는 명주실 같지만, 해맑은 표정은 늦가을
들국화처럼 청초하다.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치민다.
아버지가 저세상 가신 뒤, 어머니는 누굴 붙들고 푸념이나 우스개를 한 번
한적 없다. 오로지 자식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함부로 자녀들
앞에서 헤프게 웃음을 보이지도 않았다. 회초리를 방문 옆에 걸어놓았다가, 자
식이 어긋난 짓을 하면 매를 들고 종아리를 쳐서 훈육하셨다.
세월은 속절없이 흐른다. 어머니 친구들도 꽃이 지듯 저세상으로 한분 두 분
갔다. 세상을 버린 이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는 이름을 부르며 치마폭
으로 눈물을 훔쳤다. 주변의 가까운 이들이 모두다 가버리고 난 빈 정류장에서
막차를 기다리듯 어머니 혼자 우두커니 서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살던 바다가 있는 꽃동네를 항시 그리워했다. 홀연
히 떠난 남편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인가. 옛날 우리가 살던 동네는 이웃사촌같
이 정이 넘쳤다. 집집마다 동백나무가 감나무만큼 컸었는데 붉은 꽃, 동백꽃나
무는 다 어디로 실려가 버렸을까. 큰길이 생기고 현대식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
찼다. 우리 집은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어머니를 모시고 가보고 싶지
만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을 보면 마음속에 고향을 잃은 듯 더 슬퍼할 것 같다
이젠 고향을 그리워하는 희미한 기억마저도 잊어버린 모습이지만.
탱자나무 울타리 밑에는 봉숭아꽃이 짙붉게 피어났다. 나와 동생은 화단의
여러 꽃을 보며 마루에 길게 엎드려 숙제를 하곤 하였다. 어머니는 가지런히
핀 봉숭아꽃과 쭈빗한 이파리를 따 소쿠리에 담았다. 봉숭아꽃과 잎사귀를 백
반과 소금을 넣고 절구에 찧으면 거무죽죽한 색이 된다. 진한 즙이 흥건히 절
구통에 고이면 어머니는 대청에 돗자리를 깔고 딸 셋을 뉘였다. 봉숭아 즙을
딸들의 손톱에 소복이 올리고 파란 봉숭아 잎으로 감아 실로 묶었다. 우리는
만세를 하고 잠이 들었다. 별들이 쏟아지는 창가에서 어머니는 부채로 모기를
쫓으며 “울 밑에 선 봉숭아” 노래를 가만가만 불렀다. 여기저기 풀벌레 소리가
찌르르, 짹짹, 찍찍, 화음을 넣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 사단이 났다. 언니와 동생은 열손가락 봉한 지붕이 그대로 집을
짓고 있는데, 내 손톱에 묶은 것은 한 손가락만 붙어 있었다. 몸부림을 치는 통에
어디론가 달아났다. 손톱에 물감은 고사하고 삼베 홑이불에 봉숭아 물감을 여기
저기 짓이겨 놨으니 엄마가 혼낼만하다.
어머니를 목욕 시켰다. 겨드랑이에 비누칠을 하며 간지러움을 주었더니 기분이
좋은지 키득키득 웃는다. 어머니와 함께 미장원에 갔다. 머리를 자르고 파마를
했다. 10년은 젊어 보였다. 큰 거울 속에서 어머니가 환하게 웃고 계신다.
어머니의 웃는 모습을 보니 내마음도 갈대숲에 흔들리던 바람이 잔잔해졌다.
새로 바라보는 어머니를 향한 사랑이 첫사랑같이 따뜻해 진다.
농장하는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 다음날 친구는 흰 비닐봉지에 봉숭아꽃을 가득
넣어 들고 왔다. 어머니를 편안히 눕혔다. 갓 찧은 봉숭아를 열손가락 손톱에 소복
이 얹었다. 묶은 손가락을 이리저리 펴 보이며 어머니는 빙긋이 웃는다. 입술이 몇
번 움직이더니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어릴 때 잘 불러 주시던 “울 밑에 선 봉숭
아”다.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자그만 소리로 부르신다. 보슬비가 창가에 내린다. 비
는 오락가락하는 어머니 정신을 맑게 씻어 주려는 듯 점점 세차게 내렸다.
B동 반장(착각)
맹 영 숙
햇살이 내리는 아침이다.
엘리베이터 안의 얼굴들도 모두 밝고 환하다. 나는 우리 아파트 B동의 반장이다. 갑자기 이사 가는 반장을 대신해 다음 차례 바통을 받아야 한다고, 통장은 억지를 부리며 밀어 붙였다. 피할 수 없어 받아들이기로 했다. 멍멍한 마음을 즐거움으로 돌렸다.
가는 날이 장날이다. 반장이 되자 나라의 큰 행사인 총선거 투표 날이 따라왔다. 선거유세 차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확성기 소리는 거리를 시끄럽게 누볐다. 유세차에는 유니폼을 입은 선거운동원들이 흰 모자와 장갑을 끼고 음악에 맞추어 열심히 춤을 춘다. 거리를 가로질러 걸려있는 현수막에는 출마자들의 얼굴이 바람인형처럼 곡예를 하고, 기호와 프로필이 숨바꼭질을 한다.
관리실에서 내준 호구조사표 용지를 받았다. 세대마다 명부를 대조하며 확인하는 일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306호 앞에 와서. 초인종을 눌렀다. 인기척은 있는데 반응이 없다. 벨을 연거푸 누르고 기다렸다. 현관문이 열리자 반듯한 이마에 짙은 눈썹과 서글서글한 눈매가 확 들어온다. 낯익은 남자다. 아파트 주변에서 종종 마주치던 얼굴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정면으로 본 그의 이목구비는 그리스 조각처럼 잘 생겼다. 무언가 몰래 훔친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콩닥질 한다. 그가 나타나면 혜성처럼 빛이 났다. 남자다운 체격과 준수한 인물은 아파트의 많은 여심을 사로잡았다. 그와 마주치는 날은 푸른 초원에서 네 잎 크로바를 찾은 기분이다.
운동 삼아 남천 강을 걷는다. 인파에 묻혀 걷다보면 많은 사람 속에서 그는 나를 찾는 듯 환한 미소로 사방을 둘러보다 눈도장을 찍는다. 그와 마주칠 때마다 홍당무처럼 붉은 얼굴로 쩔쩔매는 내 모습이 바보같이 보일까? 순수해 보일까? 싱긋 웃으며 답례를 하고 내 옆을 지나친다. 젊은 남자에게 환대를 받으니 발이 땅에 닿지 않고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어머나! 이집에 사세요?” 먼저 인사를 했다. 눈인사하는 정도로 익힌 사람이 반장으로 변하여, 마주칠 줄은 꿈에도 몰랐나보다. 그도 흠칫 놀라는 표정이다.
가족끼리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다. 샤워를 하고 머리에 클립을 넣고 돌돌 말아 고정시켰다. 머플러를 두를까 하다가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일바지 차림을 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누가 이 모습을 본다면 떠돌아다니는 장돌뱅이로 볼 수도 있겠다. 재빨리 갔다 와야지. 잔뜩 꾸겨 넣은 탱탱한 종량제 봉투의 무게를 양손에 느끼며 빠른 몸짓으로 현관문을 나섰다.
이상하다. 뒷덜미에 벌레가 기어가듯 스멀스멀한 느낌이다. 쓰레기 박스에 종량제 봉투를 넣고 돌아서는데 B동 창문 쪽에서, 누군가가 내 모습을 찍는 듯 스마트폰을 들이대고 있다. 검은 썬 그라스와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그쪽에서도 깜짝 놀란다. 지르는 소리 때문에 사진기의 셔터를 놓쳤나 보다. 사진은 실패로 돌아갔다. 썬 그라스에다 모자까지 눌러쓴 그가 누구일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계획대로 가족과 함께 여행은 다녀왔지만 조금도 즐겁지 않다. 양파 껍질을 벗겨내듯 미스터리가 훌훌 벗겨진다. 가슴속에서 파장이 일어난다. 입안에 물기가 말랐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니 이 남자가 한참 얄미웠다. 왜? 사진을 찍으려고 하였을까. 남의 사진을 찍으려면 일단 양해를 구해야 예의가 아닌가. 아직 우리는 통성명도 하지 않은 사이다. 서로 스치듯 마주치면 호의적으로 알은체하고 눈인사가 전부이다. 거울 앞에서 몸단장이라도 준비된 예쁜 모습이었다면 이렇게 화나지 않을 것이다.
306호 앞에서 숱한 말을 곱씹고 있지만 함부로 내뱉지 않았다. 무슨 근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우연일치로, 그가 나에게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 한다. 어느새 나는 예리한 명탐정이 되어 콩 한 조각을 몇 등분으로 분해하듯 어려운 계산을 밀고 당겼다. 벨을 3번 눌렀는데도 문을 제때 못 여는 것을 보니 현관문 외시 경으로 나의 얼굴을 확인했을 것이 뻔하다. 그는 불시에 덜미가 잡혀 스스로 마음속에서 항복하고 있을게다.
“B동 반장입니다. 댁의 식구가 몇입니까?” 안면 딱, 외면하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4명입니다”라고 대답하는 말투가 썰렁하다. 조사받는 사람처럼 그는 기가 한풀 꺾인 모습으로 손을 모으고 서있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예전 같지 않고 데면데면하다. 솔직히 잘못되었다고 한마디 사과라도 하면 어떨까 싶다. 뜨뜻미지근한 태도와 묵비권으로 뭉기적 거리고 있는 행동이 별로 탐탁지 않다. 주민등록 번호를 곁눈으로 슬쩍 훔쳐보았다. 쉰다섯, 젊은 나이다. 내 막내 동생뻘이다. 아직 싱그러운 젊음이 꿈틀대고 있을 법도 하다. 그 젊음의 발산을 쓰레기장 앞에 초로의 여인에게서 찾았다면 소박한 발상이라고 하나, 부끄러워 어디론가 숨고 싶다. 정신 병원에서 방금 도망친 것 같은 옷차림에 클립은 사람의 품위를 떨어뜨린다. 혹시 동물원에 있는 원숭이 보듯 재미가있어 셔터를 누른것은 아닐까. 점점 여자를 상실한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처구니없던 헛된 꿈이 날개를 달고 멀리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