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 8. 향기 이영란
내가 행복을 느끼는 때
이오덕
내가 행복을 느끼는 때는
오후에 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왔을 때다.
햇빛은 내가 앉아 있는
책상 위에 찾아와
아이들이 적어놓은 글자 한 자 한 자를
환히 비쳐 보인다.
그러면 그 글자들은 모두 살아나
귀여운 병아리가 되고
팔딱팔딱 뛰어다니는 아기 염소가 되고,
여울을 헤엄치는 피라미가 되고
별 같이 반짝이는 눈망울이 된다.
오후에 해님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내가 보는 책장이 더욱 환하게 되면
아, 나는 이 세상에서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구나 싶어
눈물이 난다.
한 여름 용서 없는 땡볕더위와 짧은 파장의 일정한 음으로 맹렬히 울어대는 매미소리는 닮았다. 한밤중 방충망에 붙어 귀를 훑어대는 소리에 잠을 깨서, ‘너 좀 심하다, 밤에는 좀 쉬어’하며 툭 쳐서 쫓아보낸다. 그런데 신기한 건, 대놓고 움직일수록 덜 덥다는 걸 아는지..... 에어컨, 선풍기를 껴안고 있다가 잠시 햇빛에 나가면 그렇게 더울 수가 없지만, 아예 운동을 한다든지, 해의 짱짱함이 덜 가신 오후 5시쯤 밭에서 고추를 따면 땀이 비 오듯 흐르지만 내 몸의 열보다 더 차가운 땀이 한껏 달아오른 몸을 식혀준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견딜만 하다는 것이다.
이 강렬한 볕은 벼 이삭을 여물게 하고, 사과와 배를 상큼한 단맛으로 채워줄 것이다. 땅 속의 생강과 땅콩, 고구마를 영글게 하는, 생명에게 향하는 더운 온기일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없다며 천대받는 잡풀이나, 염치도 자기 자리도 모르고 뻗어대는 칡 넝쿨에게도 공평하게 쬐어주는 은혜로움이다.
안식년이 주는 여유와 평화의 기쁨에 바이킹이 날아오르는 것처럼 솟구치던 만족스러움은 6월까지는 유효했던 듯 싶다. 연구과제와 연수이수시간에 대한 압박에서 부담을 덜었던 6월 모임 이후 급격히 긴장의 끈은 무뎌지기 시작하여 한여름 시멘트 바닥에 눌러붙은 고무줄처럼 늘어졌다. 자신의 몸을 돌보고 살피지 않은 사람처럼 살이 쳐지고 고운 데라고는 없는 매력 없는 사람이 되었다.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모조리 촉수를 세웠던 예리함은 흔적이 없었다. 감동할 줄도 슬퍼할 줄도 사랑할 줄도 모르는 능력을 거세당한 것처럼 감정불능을 회복하는 일이 가능한지 아득했다.
2박 3일간 경기도 오산의 한신대학교에서 전국글쓰기연구회 연수를 다녀왔다. 연구회 회원을 포함, 50여명이 모이는 연수에는 대부분이 초등학교 교사들이고, 중등교사, 퇴직교사, 대안학교 교사, 출판사 보리 사람들이 함께 한다. 이번 모임에서는 아이들과 글쓰기, 시 쓰기, 이오덕 교육철학을 배우고 그리고 모둠으로 나누어 난상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숙소는 대학 기숙사에서 머물렀는데, 배움이 열리는 강의실과 식당까지 오르내리다 보면 하루 운동양이 저절로 채워진다. 3인 1실로 된 기숙사는 휴식과 생활로서의 공간의 기능보다는 잠을 자고 샤워하는 기능적인 역할에 충실해 보였다. 나 역시 91년부터 2년 동안 기숙사에서 머물렀는데 4인 1실의 2층 침대에서 성향이 잘 맞지 않는 친구와 2년을 보냈다. 출입문마다 전자카드가 있어야만 입장이 가능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학생들에게 제공되어야 할 숙소에 대한 기능과 가치가 달라진 것이 없어보였다. 음식에 대한 눈만 한껏 높아진 선생들은 대학식당의 밥을 두어번 먹고는 식사시간에 대한 기대를 그다지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대학생들이 이런 공간에서 머무르면서 그런 밥을 먹고 생활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3일간의 생활이 다소 불편하여도 모임에 대한 반가움과 즐거움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주로 익숙한 얼굴의 회원들이어서 반갑고 애틋하다. 아이들에게 글쓰기 지도를 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은 선생들 중에서 마음이 맑고 고운 사람들만 모아 놓은 것 같다. 아는 얼굴을 선뜻 아는 체 하기보다는 못 본 척 지나쳐 버리는 걸 훨씬 더 잘하는 나이지만 이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표정관리에 노력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다.
도무지 내가 한 일을 내세우지 않는 사람들이다. 사례 발표를 하는 사람들은 ‘나는 이렇게 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지 ‘내 것이 맞소’라고 하지 않는다. 강원도 양양에서 온 탁동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수수꽃다리’라고 이름을 가르쳐주기 보다는 이파리가 쓰다고 ‘한의원꽃’, ‘발가락꽃’이라고 이름 붙인 아이들의 재치와 기발함을 더 높게 쳐준다. 해바라기를 두고 아이들은 ‘해님의 아들 꽃’, ‘서 있네 꽃’, ‘동무 꽃’이라 이름 짓는다. 어른의 손이 하나도 가지 않은 아이들만의 텃밭공간을 주면서 실패를 거치는 것을 기꺼이 허락하는 선생님이다. 자기 동기들은 모두 교장, 교감이라며 머리를 싸 쥐는(그것까지 유머이다) 탁동철선생님과 나는 뒷풀이 자리에서 세상 환한 웃음을 지으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이 사진을 남편이 보면 곤란하겠다 생각하면서)
교사들은 대부분 자존감이 높지 않다. 교육으로 바뀔 수 있는 부분, 아이들을 가르쳐서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믿음이 자꾸만 깎여 흔적기관처럼 퇴화되었다. 높은 장대에 바나나를 매달아 놓고 이틀정도 굶은 원숭이를 들여다 보내어 바나나를 만질 때 싫어하는 물을 뿌리자 장대만 힐끗 쳐다보고 도무지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는 원숭이처럼. 물벼락을 맞은 경험이 없는 원숭이가 올라가려고 하는 시도조차 말리는 원숭이처럼.(정재승의 <열두발자국>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의 불씨를 일으켜 세우는 일 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안식년의 이 편안한 안락은 결코 행복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 시간이다. 빨갛고 붉게 익어가는 고추는 달척지근한 맛에 덤벼드는 벌레들의 공격과 비바람을 견뎌 내어 맺은 것이다. 주위에서 흔히 보는 나무들 역시 온 머리를 휘날리며 바람을 달랜 나무들이다. 생명과 고난은 동전의 양면일 것이다.
나는 뵌 적이 없지만 이오덕 선생님을 알고 있는 회원들은 실제로 무척 엄격하고 꼬장꼬장한 분이라 말한다. 옳지 않은 일에 쓴 소리를 마다않는 분이었는데 우리는 뒷풀이에서 지나치게 많은 음식과 일회용 접시, 플라스틱 컵을 쓰며 그 분이 계셨으면 날벼락이 떨어졌을 것이라는 소리 없는 꾸중을 들으며 반성했다. 책에서나 만날 수 있는 저쪽 너머 세상에서 온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고 노래하며 박수치고 놀았다. 주책 맞은 소리, 맞지 않는 음정의 노래, 엉성한 춤사위 그 모든 것은 즐거움을 더하는 것들이었다.
평화로운 오후, 책상을 비추는 햇살 한 줌에서조차 눈물 나는 행복을 찾아낸 이오덕 선생님 앞에서 부끄러워진다. 정성껏 기른 복숭아 18알이 9900원이라는 현실 앞에서 숙연해진다. 살랑대는 토끼풀과 개망초꽃이 대견한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머의 시간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