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선한 싸움
2019. 06. 백란주
축제가 시작되었다.
2019 FIFA U-20 폴란드 월드컵 대회의 7시간 시차는 경기시청에 대한 의무감으로 스스로를 이겨내야 했다. 오랜만에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들고 TV전원부터 켠다. 선수들의 모습에서, 시청하는 자세에서 12번 선수로서 ‘한팀’을 느끼며 운동장을 함께 뛰는 심장박동수를 느끼게 된다. 경기는 새벽잠을 물리친 자들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이었다.
16강 진출이 그리 쉽지 않은 조 편성이었다. 하지만 어린 선수들이기에 변수는 언제나 고갯짓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고 행운이 따른다면, 어쩌면 16강 진출도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우승후보로 점쳐지는 포르투칼, 아르헨티나랑 한조에 배정되었기에 예선통과에서 조 3위 일지라도 상위 4개 팀이 출전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매 경기 최선을 다해야 했다. 조 2위로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는 일본과의 경기를 16강에서 만났다. 1:0으로 이겼다. ‘특급 조커’ 엄원상의 빠른 발은 작은딸아이보다 어린 선수에게 “오빠∼”하고 싶을 만큼 상대 측면을 공격했다. 작은 키에서 나오는 스피드는 볼을 잡으면 무언가 공격이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는 엄원상의 팬이 되었다. 문득 1983 U-20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었던 박종환 사단의 팬이었던 시간이 떠올랐다.
또래 아이들이 연예인 특히 가수나 배우에게 마음을 빼앗길 때 나는 운동선수들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농구선수 전자슈터 김현준을 엄청 좋아했다. 그가 교통사고로 세상과 갑자기 이별하게 되었을 때 나 또한 많이 슬펐다. 씨름선수 최욱진의 뒤집기 기술을 보며 감탄사를 쏟아 냈다. 배구선수 장윤창의 백어택과 스파이크 서브에 열광했다. 고교야구선수가 소개되는 여학생 잡지는 어떤 경우라도 사야만 했다. 잡지 속 류중일의 모습은 지금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요즘 말로 나는 스포츠 선수에게 ‘덕질’을 했다.
여고 1학년 때 1983 U-20 월드컵 4강 신화 주역이었던 김종부 선수가 통영에 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친구와 나는 김종부 선수 집으로 찾아가 무작정 기다리기로 했다. 가을 추수를 끝낸 나락이 마당에 널려 있었다. 형님 되시는 분이 김종부 선수의 어린 시절 사진첩을 꺼내서 보여주었고, 우리는 좋아라 두근거리며 무작정 기다렸다. 너무 지루해서 함께 나락 담는 것도 도와 드렸다. ○○당구장 앞으로 가면 만날 수 있다는 말씀에 우리는 쏜살같이 당구장 앞으로 갔다. 고등학생인지라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 기다리고 있으니 김종부 선수가 나와서 싸인을 해 주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며 친구랑 종이를 가슴에 품고 돌아왔던 기억을 폴란드 월드컵이 내게 안겨준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경기에서 지기라도 하면 밥도 안 먹고 우는 내게 부모님은 “가들이 너그 오빠나 삼촌이라도 되나?” 오빠나 삼촌보다 더 좋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렇게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덕질’이 대단했다. 그래서 큰아이가 ‘빅뱅’ 덕질을 할 때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앞으로 나는 엄원상에 대한 덕질을 하게 될 것 같다.
8강에서 세네갈과의 경기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새벽 3시에 알람을 맞춰놓았다. 몽롱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의 정신은 30분 정도 예열이 필요했다. 3시30분 경기 시작과 함께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VAR이 주연이었다. 7번의 VAR 중에서 5번이 판정 번복으로 이어졌다. 특히 연장전 끝에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였던 오세훈의 슈팅이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주심이 VAR을 통해 세네갈 골키퍼가 오세훈이 슈팅을 하기 전 양발을 지면에서 떼고 움직인 것을 보고 오세훈에게 다시 슈팅의 기회를 주었다. 골인! 승부차기 승으로 4강에 진출했다.
1983 4강 신화의 magic이 시작되었다. 다시 새벽 3시에 일어나 커피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파트 불빛들을 보니 희망을 꿈꾸지 않은 것인지 의외로 불 켜진 곳이 그리 많지 않았다.
정정용 감독은 “내가 국민과 한 약속(4강)은 지켰으니 이제 너희들이 국민에게 약속(우승)한 것을 지켜야만 할 때가 왔다.”라고 말했다. 또한 위기상황에서도 선수들이 이겨낼 거라고 생각했기에 두렵거나 긴장되지 않았다고 한다. 경기 내내 감독은 솔선수범하는 부모의 모습이었고 선수들을 무조건 믿는 자애의 눈길이었다.
설마설마 했던 두근거림, 현실이 되었다. ‘이강인’의 이름처럼 ‘2강in’이 되었다. 짜릿한 1:0 승자가 되었다. 12번 선수가 된 나는 호적에도 없는 아들이 무더기로 생겨난 기분이었다. 결승전을 앞두고 나는 이미 즐기는 자가 되었다. ‘덕질’을 해 본 사람은 안다. 결과보다 과정을 즐길 줄 알게 되는 시점이 덕질하는 자의 자세라는 것을. 오히려 선수들이 큰 부상 없이 경기를 마치고 각 소속팀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랐다. 이번 대회의 경험을 밑바탕으로 더 멋지게 비상해야할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 1:3으로 졌다. 승복해야 했다. 체력, 기술, 경험이 우리 선수들 보다 앞서는 경기였다. 후회 없는 경기를 했다는 선수들의 말을 나는 믿을 수 있다. 지도자를 믿고 동료를 믿고 12번 선수를 믿고 스스로를 믿고 이미 그들은 선한 싸움으로 즐기고 있었다. 선수들의 애국가 제창은 그 만으로도 충분했다. 결승전에 울려 퍼진 애국가, 우리 국민들의 응원은 시작부터 패배하지 않음을 선전포고하는 듯 했다.
‘희망을 버린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더구나 그건 죄악이거든.’ 『노인과 바다』 산티아고의 말처럼 선수들은 끝까지 자신들이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종료 휘슬이 울릴 때 까지 나 또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결승전이 끝나고 인터뷰하는 이강인의 모습이 그랬다.
― 안 울었죠?
― 뭐 하러 울어요. 전 후회 안 합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 지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산티아고가 결과 보다는 과정, 목표보다는 수단과 방법에 무게를 두는 것처럼 1:3의 결과는 이미 파멸된 숫자일 뿐이었다. 막내형 이강인의 즐기는 모습은 국민모두를 행복하게 했다. 마치 IMF시절 박세리의 맨발 투혼처럼, 박찬호의 직구처럼.
노력이란 가치는 상대적 평가에 따른 결과물로 드러나겠지만 어떤 경우라도 자신은 알 수 있다. 패배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한 양심으로 스스로와 선한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나를 이길 것인가, 나를 패배자로 만들 것인가. 헤밍웨이는 언젠가 확실하지 않은 내세를 생각하기보다 지금 현세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현재를 즐기는 자, 나를 믿고 나 자신과 끊임없는 선한 싸움을 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희망을 꿈꾸면서 축제는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