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망처(亡妻) 순천김씨(順天金氏) 기일예배(忌日禮拜)
1950년 1월 30일
부인 김씨는 친가가 경북(慶北) 문경군(聞慶郡) 소양(瀟陽)인 고로 세인이 칭하여 소양부인(瀟陽夫人)이라 하였다. 별세한지 18년이고 가아(家兒) 삼형제와 여식이 다 경성에 와있게 됨으로 해마다 이 기념일을 지키되 저의 형제가 서로 의논하고 순번으로 돌려가며 기념을 지키고 금년은 희영의 집에서 지키는 고로 노부가 참석하여 예배를 인도하였다.
예배순서를 정하여 가지고 먼저 여식 신영(信永)으로 기도하고 서(壻君사위) 홍호(洪壕)로 왕상 2:1-4을 봉독하고 덕영(悳永)은 잠언 3:1-10을 봉독한 후에 나의 소감과 가인의 경력을 이야기하여 자손들로 기억하게 하였다.
유인(孺人)은 순천(順天) 김씨 중 벌족(閥族)에서 태어나 비록 배운 것은 없으나 고가(古家)의 법을 지켜 천성이 깨끗하고 고결하였고 나의 생활이 극히 빈약하여 의식(衣食)이 넉넉하지 못하여도 한번도 원망하는 일이 없고 일편단심 자녀 사남매 기르는 것이 그의 천직이면서 한 번도 마음 놓고 밥을 지여 먹지 못하고 두벌 옷이 없어 예배의 출석에 새 옷을 입어 보지 못하였다. 나는 월봉생활로 사느라고 집이 없어 유리 방황하였다.
한번은 이은철(李殷哲) 박사님의 소개로 남문 외 앞에 매삭(每朔) 7원을 주고 집 한 칸을 얻었는데 그 옆에 일본여인이 살며 욕설을 퍼붓고 우물에서 물을 길지 못하게 한다. 그러다 윤성렬(尹聲烈) 목사 대부인의 소개로 달마다 25원씩 물어가는 기와집을 샀다. 가인의 동의가 아니면 사지 못한다. 가인은 고생을 참기로 상약(相約)하고 배고픈 것을 참아가며 그 집값을 양년(兩年)에 배정하여 다 가리였다.
그 후에는 또 토지를 사서 양미(糧米)를 예비하려고 상약하고 아펜셀라 교장에게 돈을 선대(先貸)하여 사놓고 달마다 갚아갔다. 삼년간 계속하여 해마다 백미 8합을 가져오나 이것을 방매하여 빗을 가리느라고 그 쌀을 집에서 먹어보지 못하였다.
한번은 가인의 말이 이번에는 그 쌀을 양미로 쓰자고 청하는 것을 나는 허락이지 않았다. 먹고자 싶은 맘이야 있지만 빗을 두고 먹을 수 없는 까닭이다. 그 비혹(悲酷) 한 말이 지금까지 내 귀에 있고 마음에 걸린다. 눈물이 아니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다 부가 3.1운동 시 서대문감옥에 갇혔을 때 밥 지여 먹은 것은 배재교장의 동정으로 생활비를 주어 살았다. 유인은 그 때 나의 옥중생활을 생각하고 여러 동지들의 부인들과 같이 조석 밥을 차입하느라고 고생하였고 한번은 반찬속에 일봉서(一封書)가 있는데 바깥일은 조금도 염려 말라는 부탁이다. 반찬을 넉넉히 보내주어 차입 심부름하는 청인(淸人)이 하도 그 반찬을 먹으면 하고 배고픈 양을 보고 그 남은 반찬 한 가지를 집어주었더니 이것이 발각 되여 3일간 수족에 맹꽁이 열쇠를 채우고 밥을 임의로 먹지 못하게 하였다.
한번은 재판장의 출두 명이 내려 오동 마차를 타고 가노라니 희영(喜永)은 앞에 서고 유인은 뒤에 서서 마차를 바라보는 것을 보고 조석으로 밥을 차입하느라고 얼마나 고생하는가 그러나 동지의 부인들이 서로 의논하고 옥문밖에 모여서 기간(其間)으로 취사를 시작하여 때마다 더운밥을 먹게 되였다고 어느 간수의 말을 들었다.
자기는 굶어가며 나의 옥중생활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노부의 옥고뿐 아니라 택영(澤永)이도 같이 옥중에 있으니 부자의 뒤를 치다꺼리 하는 유인의 정성(情性)이야 말할 수 없이 비고(悲苦) 하였다.
오늘 너희들의 집을 지니고 학업을 닦고 자녀를 거느리고 사는 것이 첫째로 하나님의 축복이요 둘째는 너의 모 곧 유인의 적고(積苦)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너희들이 효의 도를 생각하고 오늘에 기념식을 지킬 때 효라는 것이 부모 생전에만 한할 것 없고 사후에도 효의 도를 잘 지킬지니 왕상 2:1-4, 잠 3:1-10말씀과 같이 믿음을 지켜서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는 자는 곧 부모에 대하여 효가 되고 여호와에 대하여 신(信)이 되고 너희 자손들에 대하여 복이 된다.
아비의 나이 78세라 앞으로 몇 해를 더 살런지 모르나 깊이 느끼는 것은 네 모를 너무 동정하지 못한 것과 빈곤에 시달려 너무 고생시킨 것이 뉘우친다. 나의 고의가 아니요 너희들을 교육시키느라고 된 일이다. 너의 모의 동의로 되였지만 부(父)는 깊이 후회한다.
아무쪼록 너희 자손들 중에 배신(背信) 배효자(背孝子)가 없이 가정에서 세수(世守)하여 내려온 청덕(淸德)을 저버리지 말고 잘 지키는 것이 너희들이 효이요 오늘 부의 희망이다. 아 - 멘
1950년 1월 30일 애인(愛人) 金 鎭浩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