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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국아, 너 뭐하는 것이냐”
“산토끼를 키우려고요”
“생명을 구속하면 안 된다. 울타리를 만들지 마라”
조사전으로 용건을 묻는 종무소 스님들의 출입이 잦아지자, 혜국은 자신의 암자로 올라가자고 말했다.
“고 선생, 세상 사람들은 절이 한가할 것이라고 하지만 절 살림도 이렇게 번다합니다. 대중들과 논의하고 처리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절 위쪽에 암자를 하나 마련했습니다. 틈나는 대로 올라가 참선하기 위해서입니다.”
밖에는 봄비가 다시 내리고 있었다. 산을 적시는 빗소리가 제법 크게 들리고 있었다. 혜국은 조사전 벽에 세워져 있는 검은색 우산 중에서 하나를 고명인에게 건넸다. 어느새 몰려왔는지 비구름 자락이 산허리를 덮고 있었다. 문득 고명인은 어느 절에선가 기둥에 걸어진 주련의 글귀가 생각났다. ‘산하대지 청정법신’이란 글자까지만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석종사 양편으로 펼쳐진 산허리들이 청정한 법신 같았다. 그것도 누워 쉬고 있는 와불(臥佛)의 형상이었고, 비구름은 와불의 천의무봉한 가사 장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암자로 가는 산길은 조사전 뒤편의 작은 개울을 따라 나 있었다. 입구에는 닫혀 있는 사립문이 보였다. 사립문을 연 뒤 혜국이 말했다.
“수행자 외에는 누구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토굴입니다. 저를 가두고 싶을 때 가두는 무문관입니다. 그래서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지요. 결코 제가 사람들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암자는 뜻밖에 가까운 데 있었다. 조사전에서 20여 미터쯤 될까 말까한 거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빗줄기가 자못 거세어 암자 둘레를 둘러볼 여유는 없었다. 바로 암자로 들어가 조금 전에 듣다 만 얘기를 고명인은 마저 들었다.
“저도 머리를 깎았습니다. 머리를 깎고 나니 비구니스님들이 저를 귀여워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너 집에 가지 마라, 일타스님 상좌만 되면 너도 큰스님 될 거다, 하고 귀여워해주셨습니다.”
그래서 혜국은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일타에게 말했다.
“비구니스님이 그러는데 스님 상좌만 되면 큰스님 된대요.”
“큰스님이 있다면 작은 스님도 있겠구나. 하하하. 스님은 다 같은 스님인 것이야. 비구니 고것들이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는구나.”
“스님, 상좌 되고 싶어요.”
“그래 알았다.”
이와 같이 어린 혜국은 자연스럽게 일타의 제자가 되었다. 제자가 되고 나니 일타는 혜국을 조금 더 엄하게 대했다. 하루는 혜국이 나무하러 갔다가 산토끼를 잡아다 절에서 키우려고 울타리를 만들고 있을 때였다. 일타가 물었다.
“혜국아, 너 뭐하는 것이냐.”
“산토끼를 키우려고요. 잘 키울 자신이 있어요.”
“이놈아, 어서 놔주어라.”
“산토끼가 저를 따르게 할 자신이 있어요. 산토끼와 친구가 될래요.”
“돌아다니는 생명을 구속하면 안 된다. 울타리를 만들지 마라. 자유로이 놓아두어야 한다.”
일타가 어린 혜국을 엄하게 정색하고 꾸짖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수행자의 근본을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었다. 돌아다니는 생명을 구속하는 것은 수행자로서 무자비(無慈悲)한 일일뿐더러 결국에는 자신의 자유를 빼앗는 울타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혜국은 차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닌 듯했다. 찻잔을 앞에 놓고도 차를 따르는 것을 잊어 먹곤 했다. 목을 축이고 싶을 때에야 다관을 끌어당겨 고명인에게 따라주곤 했다.
“열다섯 살 가을이었을 겁니다. 가야중학교 여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해인사로 소풍 왔습니다. 교복을 입고 있는 여학생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게 보입니다.”
혜국은 그때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난 듯 미소를 지었다. 고명인은 차를 마시며 누구라도 사춘기에 겪는 이성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명민한 혜국은 사춘기를 남다르게 앓았다. 어린 혜국은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과 한번만이라도 얘기를 건네 보고 싶었고, 그 여학생들이 해인사를 떠난 뒤에도 그 여학생들을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얼굴을 붉혔다. 그런 혜국을 보고는 한 사미승이 말했다.
“거봐라. 내가 먼젓번에 뭐라고 했냐. 큰스님이 되려면 영어도 알아야 하고 수학도 알아야 된다고 했지. 그뿐이냐. 학교를 다니면 여학생들하고 얘기도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일타는 사미승들이 학교에 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일타와 친하게 지내던 광덕은 행자 때부터 학교에 보내야 된다고 주장했지만 일타는 ‘중은 참선공부만 하면 된다’고 반대했다.
결국 혜국은 일타 곁을 도망쳤다. 낯선 땅은 두려웠으므로 다시 고향 땅 제주도로 돌아갔다. 집으로는 돌아가지 않았다. 일타와 ‘너 집에 안 갈 자신 있어’ 하고 약속한 말이 떠올라 집으로는 가기 싫었다. 그래서 혜국은 제주도의 빈 절을 찾아 나섰다. 마침 노보살이 한 분 계시는 절이 나타났다. 노보살은 혜국이 학교에 다니는 것도 허락했다.
혜국은 노보살의 절에서 제주시에 소재한 학교를 오가며 3년을 공부한 다음 서울로 갔다. 서울에 머문 절은 성북동에 자리한 정법사였다. 서울생활의 즐거움이란 시간이 날 때마다 청계천 고서점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고서들의 향기가 좋아 틈만 나면 그곳으로 달려가 기웃거렸다.
그러던 혜국은 어느 고서점 안에서 오래된 불경과 불서를 발견하고는 크게 흥분했다.『부모은중경』,『사십이장경』,『불조삼부경』과『절요』가 있었다. 자리를 뜨면 누가 곧 사가 버릴 것 같아 불안하여 조바심이 났다.
혜국은 고서점 주인에게 팔지 말 것을 부탁하고는 즉시 병원으로 달려갔다. 가진 것이라고는 자신의 피 밖에 없었으므로 피를 팔아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 번 피를 뽑은 값으로는 불경을 사는 데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피를 두 번째 뽑았다. 그래도 부족하여 세 번째 뽑으려 하자 병원에서 거절했다.
절로 돌아온 혜국은 고서점의 불경이 생각나 견딜 수 없었다. 누가 사가지는 않았는지 불안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당장 돈을 마련하여 가겠다고 약속해 놓고 자신이 어겼으니 누군가에게 판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혜국은 복통을 앓듯 밤새 뒤척거렸다.
‘저 불경들은 전생에 내가 보던 책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저 불경들을 잃어버린 과보로 지금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 부처님 말씀들을 내 곁에 두고 정진해야만 나도 불(佛)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은 자유로운 도인이 될 것이다.’
혜국은 벌떡 일어나 법당으로 들어갔다. 법당의 부처님과 주지스님에게 큰 죄를 짓는 일이었지만 참지 못하고 불전함에 손을 넣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보는 악행이었다. 평생 괴로워할 악행인 줄 알면서도, 평생 등에 질 무거운 짐인 줄 알면서도 혜국은 아침공양을 거른 채 고서점으로 달려가 자신의 피를 판 돈에다 불전함의 돈을 합쳐 불경을 샀다.
“1967년인가, 1968년에 서울로 올라가 그 절의 법당에 들어가 참회를 했습니다. 편지를 썼지요. ‘이 절에서 학교 다니던 스님인데 책을 사고 싶은 마음에 불전함의 돈을 훔쳤으나 마음의 부담을 떨어내지 못해 원금과 복리 계산한 이자를 돌려드립니다’ 하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조금은 나아지대요.”
혜국이 정법사를 떠난 것은 또 그 이성의 문제 때문이었다. 글 쓰는 동아리에 참여했다가 회원 중 한 아가씨에게 또 다시 마음을 빼앗겼던 것이다. 해인사에서 사미승으로 있을 때 보았던 그 교복 입은 여학생에게 마음이 휘둘렸던 때와 마찬가지였다. 법당에 들어가 목탁을 잡고 지심귀명례를 크게 소리쳐 보지만 들뜬 마음은 싱숭생숭할 뿐이었다.
할 수 없이 혜국은 은사 일타를 찾아 해인사로 내려갔다. 그러나 일타 곁을 도망친 전력이 걱정스러워 『자경문』등을 잘 외운다고 칭찬하던 성철에게 먼저 갔다. 백련암으로 올라가 성철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불벼락이 떨어졌다.
“야 이 쌍놈의 새끼야. 너 가스나 생겼지.”
성철은 혜국을 보더니 그의 마음을 간파하고는 소리쳤다.
“중노릇 제대로 한번 해보려고 왔습니다.”
“니 동자 때 준 세뱃돈이 아깝다. 좋은 중 되라고 했더니만 도망친 놈 아이가.”
“스님, 한 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 선방 좌복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혜국은 가까스로 해인사 선방인 소림원에 들어가 좌복에 앉았다. 물론 극락전 골방으로 가 일타에게도 참회를 했다. 일타는 성철의 날벼락 대신 미소를 지으며 받아주었다.
“이제는 선방을 나서지 마라. 세상에서 제일 좋은 자리가 선방 좌복이라는 것을 깨달을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방의 용맹정진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졸음이 달라붙으면 화두고 뭐고 다 달아나 버렸다. 참선만 하면 모든 문제가 수학의 삼각함수처럼 저절로 풀리고 아가씨 생각, 어머니 생각이 한꺼번에 사라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성철은 새벽 두시만 되면 나타나 회초리를 들고 다녔다. 꾸벅꾸벅 조는 사람에게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물푸레회초리는 낭창낭창하여 어깨나 허리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아프게 착착 감겼다. 다른 어른 수좌들은 잠을 깨워놓고 경책을 한 뒤 죽비를 치는데 성철의 방법은 무지막지했다. 성철이 두려워 선방 문을 닫아 놓고 있으면 어느 순간엔가 사천왕 같은 얼굴의 성철이 달려와 문을 확 열어젖혔다.
혜국은 성철의 회초리가 무섭고 언제 날아올지 몰라 신경이 과민해졌다. 어느 날에는 성철에게 하소연을 했다.
“스님, 참선이 안 됩니다.”
“이 새끼야, 오천배를 지대로 안 해서 그렇지. 지대로 오천배를 해봐.”
“장경각으로 올라가 오천배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만 지대로 하고 나중에는 가스나 생각에 오천배를 지대로 한 적이 있느냔 말이다. 내 말이 틀렸나, 맞나.”
드디어 혜국은 작심하고 날마다 오천배를 시작했다. 성철에게 회초리를 맞은 몸이 멍들고 상처가 나 고통스러웠지만 결심한 날 바로 장경각으로 올라갔다. 일타가 곁에서 응원을 했다. 상처가 난 몸에 약을 발라주거나, 절하다 시장하면 먹으라고 먹을 것을 갖다 놓고 가기도 했다.
그래도 머릿속에서 번뇌 망상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흙탕물 같은 갈등이 가라앉은 날이 없었다. 일타는 그런 혜국의 마음을 다잡아주었다.
“혜국아, 이리 와보라. 절하느라고 다리 아프제. 넌 아직도 이 길을 갈까, 저 길을 갈까 하고 망설이고 있구나.”
“스님, 그렇습니다. 학자의 길을 가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참선은 점점 자신이 없어집니다.”
“학문이라는 건 말여, 네가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저 장경각 안에 있는 경이 팔만천이백오십팔장인데 평생 읽어도 저거 삼분의 일도 못 읽고 죽어.”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장경각의 책이 전부가 아니야. 옥스퍼드대학, 서울대학, 하버드대학에 엄청난 양의 책이 있지만 그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어. 그 책들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었으면 벌써 해결됐어야 해. 그래도 학자의 길 가고 싶은 거여.”
혜국은 산이라도 밀어붙일 것 같은 신심이 났다. 일타의 자비로운 경책은 발심을 솟구치게 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진짜 오천배를 하게 했다.
비로소 절이 잘 되었다. 처음에는 절을 하는 자신이 주체가 되었지만 어느 새 절하는 자신이 없어지고 법당에 절하는 마음만 덩그러니 있었다. 마치 허공에 둥근 달이 무심하게 떠 있는 듯했다. 문득 절과 자신이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절하는 동안의 지루함이 사라졌다. 오천배를 마치려면 열 몇 시간을 쉬지 않아야 했으므로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다가도 나와야 했던 것이다. 오천배를 하고 나서 퇴설당에 앉아 있으면 배가 고픈데 배고픔도 없어졌다.
그날도 혜국은 장경각에서 오천배를 하는 동안 몸은 사라지고 절하는 마음만 남아 있는 상태였었다. 법당의 부처님과 어떤 기운으로 대화할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아직도 혜국에게는 경전 공부에 대한 욕심이 남아 있었는지 일타의 은사 고경까지 나타나 꾸지람을 했다.
이미 입적하여 세상에 없는, 사진으로만 보았던 고경이 혜국의 등 뒤에서 쑥 올라와 앞에 서더니 누런 표지로 된 『법화경』을 휙 집어던지며 꾸짖고 있었다.
“내가 누군지 아나. 어려서부터 참선만 하겠다고 물 건너가서 태어난 내가 누군지 아나. 그런데 또 학자가 되고 싶으냐. 이 자식아, 업 지어 가지고 업이나 따라다녀라.”
놀란 혜국은 오천배를 하다 말고 극락전 골방으로 뛰어갔다. 마침 일타가 골방에서 좌선을 하고 있었다.
“스님, 노스님께서 보시던 『법화경』을 줘보세요.”
“왜 그러느냐.”
일타는 파란 표지의 『법화경』을 혜국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그 파란 표지의 『법화경』은 방금 혜국이 보았던 것이 아니었다.
“스님, 파란 표지 말고 노란 표지로 된 거로 보여주세요.”
일타는 몹시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혜국에게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계속〉